샬롬~
묵상글을 준비하고 글을 날려 먹을 때 그 허무함과 마음의 상심.....
주님의 뜻이 있으실거야 .... 하면서도 그 마음을 다시 추스리기에는
힘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이번 묵상글도 다 기록하고 더 욕심을 내어 뭔가를 첨가하려다
글을 다 날려 먹었다
이럴 때마다 에스더가 생각이 난다
에스더는 왕이 하사한 단장품을 사용하고 더 이상 무엇을 구하지 않았다는데
나는 왜 아직도 이렇게 뭔가를 더 노력하려고 하는 것일까.....
처음 받은 마음으로 기록한 부분에서 많은 부분을 잃었겠지만
다시 마음 주님 앞에 엎드려 묵상을 한다
주님 저의 부족함과 어리석음을 용서하시고 주님의 옷자락으로
나를 덮으시고 은혜를 베푸시옵소서.....
나는 당신의 시녀 룻이오니
당신의 옷자락으로 시녀를 덮으소서
룻기 3:9
2장의 끝은 룻이 보리, 밀 추수 때까지 나오미와 함께 거하였다 기록으로 마친다
대부분 우리가 알고 있기에 보리 추수는 첫 번 휴거자들이고 밀 추수는 두 번째 휴거자들이라
알고 있다 그런데 룻은 보리, 밀 추수 때까지 나오미와 함께 거했다면 첫 번 휴거자가
아니라는 말일까?
룻기 3장 묵상을 다시 찾아 복귀될 때까지 시간이 필요하니
지난번 2장 묵상 글에 올리지 못한 내용들을 한 번 더 살펴보기 원한다
지극히 개인적인 묵상 부분이니 생각이 다른 것은 이해를 구합니다
* 초실절(레 23:9-14: 고전 15:20)
초실절은 히브리어로 바쿠림이라 불리며 무교절 기간 중에 있는 절기로, 유월절 후 첫 안식일 다음 날이다.
유월절 양은 7월 14일에 죽임을 당하고 무교병 잔치는 7월 15일에 시작되며, 첫 열매를 바치는 것은 7월 16일에 행해진다
곡물의 첫 이삭 한 단을 드리는 절기이며 보리추수를 시작하는 시점이다.
초실절 예물을 하나님께 드리기 전에는 떡이나 볶은 곡식, 생 이삭이라도 먹지 않았다.
룻기 2장을 보면 보아스는 보리추수를 시작했고 곡식 베는 자들과
룻도 함께 청해서 떡도 먹고 볶은 곡식도 먹었다는 기록이 있다
이것으로 보아 보아스는 초실절 예물을 드린 것으로 보인다
식사할 때에 보아스가 룻에게 이르되 이리로 와서 떡을 먹으며
네 떡 조각을 초에 찍으라 룻이 곡식 베는 자 곁에 앉으니
그가 볶은 곡식을 주매 룻이 배불리 먹고 남았더라(룻2:14)
너희는 너희 하나님께 예물을 가져오는 그날까지
떡이든지 볶은 곡식이든지 생 이삭이든지 먹지 말 찌니(레 23:14)

분명 예수님으로 비유되는 보아스와 결혼을 하는 룻이다
그럼 룻기는 어떠한 방향으로 묵상을 해야 하는 것일까?
성경에 유다 족속은 왕권의 계승으로 메시아가 오시는 계보이다
왕은 왕후와 후궁들을 취할 수 있었다
왕에게 아내를 많이 두어서 그 마음이 미혹되게 말 것이며(신 17:17)
이 말씀은 아내를 많이 두지 말라 하신 말씀이라기보다
미혹되지 말라는 말씀에 비중을 두어야 한다
역대왕 중에 아내를 적게 둔 사람이 없고 있다 한들 선한 왕은
극히 드문 일이었다 또 많이 두지 않는 것이 몇 명이라는 기준이 없다
왕후와 후궁의 신분과 영광의 위치는 다른 것이다
그래서 성경에 나오는 여인의 신분들이 다양하게 표현이 되어있다
다윗 왕의 여인들 , 솔로몬의 여인들, 이방 왕의 여인 에스더.....
그래서 룻은 어느 쪽에 속한 여인일지 깊이 묵상해 본다
계시록 12장에 아이를 낳는 여자의 내용들이 있다
그 여자는 아이를 낳고 하나님이 그 아이만 하늘 보좌로 올리신다
그리고 여자는 하나님이 예비하신 곳에서 양육을 받는다
여자가 아들을 낳으니 이는 장차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라
그 아이를 하나님 앞과 그 보좌 앞으로 올려가더라
그 여자가 광야로 도망하매 거기서 1260일 동안
저를 양육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예비하신 곳이 있더라(계 12:5-6)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권세는 7 교회 중에 두아디라 이기는 자에게
주시는 말씀으로도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여자는 광야 예비처에서 양육을 받는다고 한다
양육이라는 원어를 살펴보면
양육 = 보스코 = 먹이다, 치다
이 말씀은 요한복음 21장에 베드로에게 하신 말씀이기도 하다
부활 후 디베랴 바다로 제자들을 찾아오신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먼저 세 번 질문을 하신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내 어린양을 먹이라 , 내 양을 먹이라
그중에 1번째와 3번째 답을 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에 같은 표현을 하신다
세 번째 가라사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가로되
주여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양을 먹이라 (요 21:17)
먹이라= 보스코=먹이다 , 치다
하나님은 여자를 왜 취하여 가지 않으시고 예비처에 양육하시는 것일까?
아들을 낳은 여자이면 신부라는 것 아닌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급 시키실때 하나님은 그들의 남편이라 하셨다
그래도 하나님을 떠난 백성들에게 다시 완전한 언약을 하시겠다 말씀하신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열조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세운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파하였음이니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러나 그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에
세울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렘 31:32-33)
이 말씀은 남편 된 하나님 입장에서 하신 말씀이다
남편인 하나님을 떠나 다른 남자와 결혼을 했다 (호세아의 아내 고멜과 같이)
그런데 하나님이 이제는 다른 남자에게 가지 말라고 당부하며
남편된 하나님 사랑을 아내의 마음속에 새겨 주시겠다고 하신다
남편을 마음으로 사랑하게 되는 것이다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이스라엘 자손이 다른 신을 섬기고
건포도 떡을 즐길지라도 여호와가 저희를 사랑하나니
너는 또 가서 타인에게 연애를 받아 음부 된 그 여인을 사랑하라
내가 은 15개와 보리 한 호멜 반으로 나를 위하여 저를 사고
저에게 이르기를 너는 많은 날동안 나와 함께 지내고
행음하지 말며 다른 남자를 좇지 말라 나도 네게 그리하리라(호 3:1-3)
우리는 주님을 남편으로 언약을 맺었는데 신랑이 오시기까지
수많은 이유들로 주님보다 다른 것들을 더 사랑한 것이 얼마나 많았던가
내가 고멜과 같은 창녀이기도 하지만 또한 마음에는 사랑하는 사람을 품고
몸은 다른 남자 곧 나에게 주어진 삶(직장, 가족, 건강 등)을 안전하게 지킬 수 있는
것에 의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 목숨을 대신 주신 예수님의 크신 사랑이 내 마음에 깊이 세겨져서
그 어떤 것으로도 지울 수가 없다
계시록 12장에 여자가 광야 예비처로 가는 이유는 바로 옛 남편을 버리고
참 남편을 기다리는 시간을 허락하신 것이 아닐까 생각을 해본다
룻과 나오미도 옛 남편이 있는 여인들이었고 풍족한 중에 나간 나오미를
모든 것이 비어서 돌아오게 하심도 연결이 된다고 본다
요 4장에 사마리아 여인을 찾아주신 예수님이 그 여인에게 네가 기다리고 있는
메시아가 나이며 장차 다시 오실 주님이 너의 참남편이라는 것을 예시해 주심같이
마음을 지키고 기다리는 인내의 시간을 허락하신 것이라 생각한다
여자가 낳은 아들이 철장을 가지고 만국을 다스리는 자라고 말씀하신다
앞서 말했지만 그 권세는 두아디라 교회에 이긴 자들에게 주실 권세이다
두아디라 교회 주신 말씀에 보아스가 룻에게 하는 동일한 말씀이 있다
내가 네 사업과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를 아노니
네 나중 행위가 처음 것보다 많도다(계 2:19)
너의 베푼 인애가 처음보다 나중이 더하도다(룻3:10)
그래서 두아디라 교회 책망의 현상을 보면 자칭 선지자 이세벨로 인해 미혹되어
음행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는 일들을 행하게 된다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이 어떤 존재에게 미혹되어 베들레헴을 떠난 것이라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분명 우상의 나라 모압에서 그들 신들을 섬기며 행음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는 일이 없었을까? (물론 개인 추론이다)
그로 더불어 간음하는 자들도 만일 그의 행위를 회개치 아니하며
큰 환난 가운데 던지고 또 내가 사망으로 그의 자녀를 죽이리니
모든 교회가 나는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는 자신줄 아찌라(계 2:22-23)
두아디라 교회에 경고 하심 같이 엘리멜렉의 두 자녀도 죽었다
성경에는 어떻게 죽게 되었는지 기록을 남기지 않았다
하지만 성경 전체를 보며 추론해 볼 수 있는 부분들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이긴 자에게 주시는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는
왕권의 권세라고 볼수 있다
바로 보아스와 룻이 다윗 왕의 조상이며 또한 메시아가 오셨다
솔로몬의 여인은 1000명이라고 하였다 (왕상 11:3)
그러나 솔로몬의 초기왕 시절에 아가서에서는
"왕후가 60이요 비빈이 80이요 시녀가 무수하되" (아가서 6:8)
이때까지 솔로몬의 여인들은 140명이며 무수한 시녀들은 결혼한 관계는 아니다
그럼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라는 칭호를 얻었던 다윗 왕은 어떠했나?
기록에는 9명으로 나와 있으나 더 많은 후궁들이 있었다
다윗이 아들 압살롬과 전쟁을 할 때 예루살렘을 떠나게 되었다
그때 다윗이 아내들을 모두 데려가지 않았다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지만 후궁 10명을 남겨두고 궁을 지키라 한다
그 후궁들 즉 아버지의 아내들을 압살롬이 동침을 한다
이에 사람들이 압살롬을 위하여 지붕에 장막을 치니 압살롬이 온 이스라엘
무리의 눈앞에서 그 부친의 후궁들로 더불어 동침하니라(삼하 16:22)
이 말씀은 다윗이 밧세바를 범하였을 때 나단 선지자를 통해 알려 주신
죄의 대가 중 하나로 말씀이 이루어진 것이다
그런데 이 후궁들에 대한 다윗의 대처방법이 어떠했을까?
아쉽지만 다윗은 우리 주님과 같지 않았다
예루살렘에 다시 돌아와서 가장 먼저 한 일이 후궁들을 벌하는 것이었다
다윗이 예루살렘 본궁에 이르러 전에 머물러 궁을 지키게 한 후궁 10명을 잡아
별실에 가두고 먹을 것만 주고 더불어 동침치 아니하니
저희가 죽는 날까지 갇혀서 생과부로 지내니라(삼하 20:3)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연약한 여인 10명이 어떻게 궁을 지키며
압살롬이 힘을 가하는데 어찌 여인들이 버틸 수가 있겠는가....
그런데 죽이지 않은 것을 보면 이에 또 다른 비밀을 숨겨 두신 것 같기도 하다
바로 위에 영상처럼 어쩔 수 없이 더럽혀진 몸이라도 정결해지는 시간을
허락하여 주신 것일까?
광야 예비처에서 보호하시는 여자처럼 다윗의 후궁 10명도
그런 의미가 부여되지 않았나 하는 추론도 할 수 있겠다
그러니 지금 현재 나를 보면 몰랐을 때 지었던 죄(세상죄 말고)도 회개하며
주님을 사랑하면서도 더럽혀지는 일들이 태반이다
그러니 어떻게 정결해질 수가 있을까?
오직 주님의 긍휼과 이해할 수 없는 나를 향한 사랑에 의지하는 수밖에......
결론을 내기 너무 어렵다
룻은 이방여인으로 아주 낮은 신분이다
본인도 보아스에게 자칭 시녀라고 한다
시녀가 보아스와 결혼하니 왕후 아니면 후궁의 신분으로 상승되는 것이다
다윗의 아내들도 보면 아비가일도 과부이며 밧세바도 어찌 되었든 과부이고
첫 번 아내 사울의 딸 미갈 또한 다른 남자와 살다 다시 찾아온 여인이다
솔로몬 또한 140명의 아내 있을 때에도 사랑하는 여인은 술람미 여인이라 한다
이로 보건대 우리 왕의 여인들은 모두 점과 흠이 있어 보인다
그런데도 우리의 왕은 그런 신부 그대로를 가장 사랑하신다
창세 전데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엡 1:4-6)
내가 떠 그에게 새벽 별을 주리라(계 2:28)
나 예수는 교회들을 위하여 내 사자를 보내어
이것들을 너희에게 증거 하게 하였노라
나는 다윗의 뿌리(메시아) 요 자손(예수)이니 곧 광명한 샛별이라 (계 22:16)
새벽 별은 예수님이라고 말씀하신다
끝까지 인내하여 이기는 자에게 신랑이신 예수님을 주시겠다고 하신다
우리의 어떠한 모습이나 행위와 상관없이 그 마음이 오직 남편만을 향하는
그 뜻과 마음을 살펴보시고 사랑하는 남편으로 오시겠다는 것이다
다윗이 후궁들에게 행한 일은 좋게 이해되지 않는 아쉬운 마음이 있다
세상에 속한 사람은 그 사람의 행위를 보고 결정을 할 것이다
그러나 하늘에 소망을 두고 있는 사람은 그 마음을 보고 결정을 한다
사람의 마음을 누가 알 수 있을까?
오직 그 마음의 주인이 알수 있다
나의 마음의 주인이 누구인가......
룻기 2장 모테기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요일 2:15-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