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신앙 상담 안에서 그와 한 마음으로 성령님의 답변을 들으며
함께 나누었던 대화에서 상담자들과 나또한 같은 질문 아래 있는 것에 신기해 하며
상담의 내용 일부를 동의 아래 함께 나누어 봅니다
이전에 다니던 교회를 나와서 홀로 가정 예배를 드리는 분들과
또 한분은 다니던 교회에서 나와서 이곳 저곳 여러 교회를 다니며
예배를 드리고 계신 분 그리고 이제 교회에서 나오려고 하는 분들과의
줌 대면 상담 이었습니다
참고로 먼저 말씀드리면 저는 정해진 교회를 다니고 있으면서
이분들의 상황 초입에 있는 예배자 입니다
먼저 개인적인 사정들은 모두 뒤로하고 상담 시간 공통적인 부분들만 추려서
질문 형식으로 나누었던 대화들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물론 질문에 대한 답은 제가 한것이지만 모임의 원칙상 각자의 상황에서
느끼고 평안을 주었던 결과를 제가 나누었던 답에 보충하기도 했습니다
그 이유는 나의 답이 정답이 아니듯이 그들의 답이 오히려 제게 평안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제목에 "7천인을 찾습니다" 라고 해서 제가 꼭 7천인에 속한 자인양
가르치려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오늘 상담 내용들과 같이 고민하고 아파하며 외롭운 길을 홀로 가는듯한 분들께
함께 공감하며 위로가 되고 또 위로를 받으며 힘내자고 조금더 인내하자고
셀프 응원같이 성령으로 그 마음이 전달되기를 바래서 입니다
많은 질문과 답변 가운데 고의적으로 몇가지만 뽑았습니다
오늘은 두가지 질문과 함께 나누었던 답변을 정리해 보면서
한가지씩 나눌때 마다 예수님이 당신의 결박을 푸시고 자유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첫번째 - 공동체에 나만 따로 서 있는 기분이다
두번째 - 기쁘게 지고가던 짐이 갑자기 힘겨워 내려 놓고 싶다
첫번째 질문은 먼저 홀로 서 있는 기분이 든 계기가 있었을 것입니다
모두 각자 다르겠지만 우리의 나눔은 마지막 때임을 알고 종교생활을 하던 우리를
주님이 인격적으로 다시 만나주셨으며 십자가에 어린 양의 피의 은혜를 체험하고
이후로 성령님과 함께 동행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예배자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질문은 종교인들 곧 교회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것이며
기존의 교회 종교인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중매자 역활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상하지 않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이 모인 곳이 교회인데 그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한다니
그들에게는 우리가 다른 복음을 전하며 미혹하는 자 같아 보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답은 이미 우리는 다 알고 있습니다
성경에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들 주로 선지자들은 늘 혼자 였습니다
하나님이 선지자를 보내실 때는 대부분 회개를 선포하며 돌아 오라 하실때 였습니다
그런데 아이러니 하게도 환란때에는 회개 선포가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평안할때(육신이) 회개를 선포하면 모두 발끈하며 변론하자고 몰아 세웁니다
엘리사, 이사야, 예례미야, 에스겔 등등 이들 모두 외로이 홀로 서 있던때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당신이 지금 서 계신 자리의 의미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지금 상황은 외롭고 답답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실패의 자리가 아니라 파수꾼의 자리입니다.
성경에서 파수꾼은 성이 무너지지 않도록 소리를 높이는 사람이 아니라,
아직 아무도 보지 못하는 징조를 먼저 보는 사람입니다.
그 징조는 적들이 밀려오는 것을 보기도 하고,
해가 뜨고 지는것 달이 뜨고 지는것 별들이 떨어지는것을 늘 관찰하며
또 기쁨의 소식을 가지고 오는 정찰병을 먼저 보고 알려주는 자리입니다
믿음의 성도에 대한 당신의 역활은 “이 가르침이 틀렸다”를 증명하는 말이 아니라,
성도들이 더 이상 교회 안에서 소진되지 않도록 지키는 방식으로 서 있는 것입니다.
이미 교회는 목회자의 말을 따르는 구조에서 종교생활이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에 대한 정면 반박은 오히려 그 교회 성도들을 더 곤고히 만듭니다.
그래서 성경적 반발을 하되, 싸우지 않고 온유한 마음으로 대하며
그러나 지지 않는 자리에서 당신의 사명을 감당하는 길이 있습니다.
디모데후서 2: 24-26
“주의 종은 다투지 아니하고 모든 사람에 대하여 온유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참으며
거역하는 자를 온유함으로 훈계할지니 혹 하나님이 그들에게 회개함을 주사 진리를 알게 하실까 하며
저희로 깨어 마귀의 올무에서 벗어나 하나님께 사로잡힌바되어 그 뜻을 좇게 하실까 함이라.”
여기서 성령 안에서 묵상해야 하는것입니다.
회개와 진리 그리고 깨어 마귀 올무에 벗어나는 것도 내 설득과 사명의 결과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주권으로 행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적 당신의 태도는 이렇습니다.
말해야 할 때는 말하되, 결과를 붙들지 않으며 논증은하되, 결론을 강요하지 않습니다.
그들의 주장에 끌려가지 않지만 그렇다고 그들을 외면하지도 않습니다
모든 성경 변론에는 ‘너희는 틀렸다’가 아니라 ‘나는 이렇게 믿는다’로 답을 합니다.
사람들은 논쟁에는 본능으로 방어를 하지만, 진솔한 고백에는 마음이 흔들립니다.
예수님도 다수를 위해 가르치지 않으시고 소수만이 끝까지 따르게 하셨습니다
이 자리가 바로 “지지 않고 당신의 사명을 감당하는 자리”입니다.
그래서 당신이 모두를 설득하지 않아도 당신의 영혼을 지킬 수 있고,
나중에 그들이 무너진 후 돌아오는 자리의 기준점이 될것입니다.
지금은 말이 통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당신이 맡은 사명을 변론하며 이기려고 애쓰지 마십시오.
오직 당신이 십자가 아래에 서 있다는 사실이 가장 분명한 입장표명입니다.
두번째 질문은 먼저 "짐"은 삶의 짐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린 양의 십자가를 체험하고 삶의 짐은 모두 주님께 옮겨 졌습니다
이후로는 주님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 영혼의 무게 짐입니다
가정 안에서 교회 안에서 직장 안에서 혼자가 된것에 익숙해 졌습니다
그러나 문득 문득 우리에게도 그 안에 감당해야 하는 짐들이 있습니다
가정에서는 가족이 그리스도를 만나지 못하고 형식적인 예배만 갖추며 모든 삶이
육체에 집중됨을 볼때 이들이 환란에 남게될까 염려되어 지나치게 깨우는 역활을
주님보다 앞서 나갈때가 있습니다
교회에서는 종교 활동이나 율법적인 행함과 그 어떤 행함으로 따르는 성취욕으로
높아지는 우월성과 교만을 볼때 그것을 영적으로 가르치고 깨닫게 하려고하면
알아듣지 못하는 자들과 지도자들은 오히려 당신을 더 교만한 자로 보이게 됩니다
직장에서는 대부분 삶의 현장이기에 그 본분은 지켜야합니다
그런데 동료들과의 대화를 모두 예수님의 가르치심으로 대응을 하다보면
당신을 대화 상대로 어려워하며 모두 피할것이고 당신도 직장내에서 그리스도인으로
행동거지 하나하나가 신경쓰여 불편하고 결국 지치게 될것입니다
이 모든 결과는 깨움이 아닌 깨어지는 관계로 주로 나타납니다
그래서 함께 삶을 살아가는 관계 안에서 믿는 자로써의 삶을 넘어
이제는 주님 다시 오심을 기다리는 삶을 살아가는 당신으로써는
이 모든것이 무거운 짐이 될때가 있습니다
이제 그만하고 싶고, 관계 안에서 내 편은 없어 원망스럽기도 하고,
왜 나만 다른건지 낙망되기도 합니다
당신이 지금 느끼시는 이 고통은 연약함이 아니라 매우 성경적인 감정입니다.
엘리야가 로뎀나무 아래에서 “이제 족하오니 내 생명을 거두어 주소서”라고 말했을 때,
“왜 믿음이 없느냐”, “끝까지 싸워야지”라고 하나님은 책망하지 않으셨습니다.
열왕기상 19장에서 하나님은 지쳐있는 엘리야에게 천사를 통해 먹이시고,
다시 잠든 엘리야를 깨우시며 또 먹이시고 40주,야 길을 갈 힘을 공급하셨습니다
이 말씀의 영적 장면은 매우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엘리야의 영적 상태를 먼저 점검하시며 책망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육신적 한계부터 인정하셨습니다.
지금 “힘들다”, “그만두고 싶다”, “원망스럽다”는 감정은
당신의 믿음이 무너지거나 시험에 든 증거가 아니라
당신이 너무 오래 혼자 서 있었던 증거입니다.
그리고 “아무도 내 편이 아니다”라는 상한 마음은 엘리야도 동일한 성정이었습니다
성경은 이 차이를 매우 정직하게 느낄수 있도록 기록하였습니다.
엘리야도 “나만 남았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니다, 칠천인을 남긴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니 엘리야의 말은 진리와는 다릅니다. 그러나 느낌으로는 그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남기신 그 칠천은 엘리야 곁에 서 있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성령 안에서 묵상해야 하는 부분입니다.
하나님은 엘리야의 현재 외로움 자체를 부정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엘리야에게 마지막 사명을 주셨습니다
먼저는 이스라엘을 치러 오는 적군의 왕을 기름부어 세웁니다
다음은 이스라엘 왕가를 개혁할 새왕을 기름부어 세우고
엘리야를 대신하여 엘리사에게 기름부어 선지자가 되게 하라 하십니다
하나님이 엘리야에게 더 많은 무거운 짐을 주시지 않으셨습니다
엘리야가 힘겨워할때 그를 대신하여 다른 사람을 준비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헌신을 강요하지 않으십니다
그 후에도 하나님은 엘리야를 취하여 가시기 전까지도 함께 하셨습니다
그래서 당신에게 기쁨이었던 짐을 이제는 내려 놓고 싶다해서
그 짐은 버려지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더 견뎌야 하는가, 이제 짐을 내려놓아도 되는가.”
이 질문에 대해 성경은 단 하나의 공식도 주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사명의 문제 이전에 당신의 영원한 생명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자기 십자가를 지라”고 하셨지만,
모든 짐을 지고 계속 머물러 있으라고는 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 자신도 사람들이 돌을 들 때 그 자리를 피하셨고,
형제들이 믿지 않을 때 설명하지 않으셨고,
어떤 도시는 지나치기도 하셨고 그 자리를 떠나시기도 하셨습니다.
사도 바울도 어떤 교회에서는 끝까지 싸웠지만,
어떤 곳에서는 먼지를 털고 나왔습니다.
지금 당신 곁에 아무도 없이 당신 편이 없어보이지만
가정에서도 교회에서도 직장에서도 당신을 필요로 합니다
그들은 어쩜 당신을 사랑해서가 아닌 자신들의 유익 때문에 당신이 필요한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람의 악함이라기 보다 두려움과 연약함 때문에 그런것입니다
당신이 힘든것을 알지만 당신이 겪는 그 대가를 함께 질 용기는 없는 것입니다
당신도 그것을 알고 있기에 상처가되어 이젠 그 짐을 내려 놓고 싶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그런 마음을 처음부터 다 알고 계셨습니다
그럼에도 당신이 그 짐을 지고있게 하신것은 당신이 그들보다 먼저 서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원망이 올라오는 것도 죄가 아닙니다.
시편에는 이런 고백이 수없이 나옵니다.
“나의 친구가 나를 대적하였나이다.”
지금은 알수 없고 어쩔수 없는 상황이라 할지라도 반드시
선지자 엘리사 앞과 많은 생도들 앞에서 엘리야를 취하여 가심처럼
당신도 그날이 올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상담의 결론은 이렇습니다
"당신이 지금 홀로 서 있는것 같아도"
주님은 당신을 떠나지 않으실 것입니다
"당신이 짐을 내려 놓는다 해도"
“주님은 당신을 내려 놓지 않으신다”는 신뢰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소리로 오지 않습니다.
흥분이나 큰 징조로 오지 않습니다.
당신이 버틸 힘조차 없을 때 남아 있는 미약한 붙듦으로 옵니다.
지금 그 붙듦이 남아 있습니다.
그것이면 충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