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에훗 묵상 때부터 함께 올리려고 했으나 예상치 않게 묵상 글들이
모두 너무 길어져서 미루고 미루다 그냥 따로 올리게 되었습니다.
특별한 내용은 아니지만 중요한 한 가지는 우리 마음 즉 영에 함께 하시는
성령님을 증거하기 위해 간증 같은 혹은 다윗과 같이 토설을 하겠습니다.
지난 세월 열심히 살았다 생각했는데 모두 주님께서 지키신 것입니다.
그것이 삼갈과 같이 소모는 막대기를 드신 주님이 인도하셨음을 알았습니다.
내가 성장하고 믿음이 있어 좀 나은 존재로 변했다 생각했는데
그렇다 해도 그것이 내 자랑이 될 수는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아는것과 행함에는 내 안에 있는 많은 블레셋과 같은 영적인
대적들과 싸워야 했습니다.
성령께서는 이런 저의 연약한 부분을 한 사건을 통해 훈련하셨습니다.
언제부터인지 성령님께서 제가 구하지 않았지만 필요하신 것을 채워주셨고
신기하리 만큼 내가 깜박 잊어버린 것들을 모두 해결해 주셨습니다.
예를 들어 이유 없이 돈이 들어 왔는데 좋아서 맛있는 거 먹을까? 하다 보면
생각지 않게 병원비가 나갈 일이 생기게 되고 약속한 것을 잊어버리고
다른 약속을 더블로 잡아버렸는데 상대방이 먼저 전화가 와서 약속을 취소하고
몸이 피곤해서 저녁은 배달시켜야겠다 생각하고 있었는데 식구들이 갑자기
밥 먹기 싫다고 배달시켜 먹자고 합니다.
또 토요일 새벽기도를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갑자기 새벽에
말씀 앱에 뜨는 말씀이"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입니다.
이뿐 아니라 수없이 많은 순간 성령께서 함께 하시며 나의 모든 것을
간섭하시고 바른길로 인도하심을 느끼게 하셨습니다.
제가 왜 이런 당연한 말을 하는가? 하시면서
모두 다 그렇게 동의하며 성령에 민감한 삶을 살고 계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사실 한 달 전에 질문을 받았습니다.
당신은 어느 때에 성령님이 함께하심을 느끼십니까?
사실 그때 저는 숨 쉬는 순간마다 함께하심을 느낀다고 말하려고 했습니다.
만약 제가 그렇게 말했다면 그 사람은 아마 "밥 맛없어"하고 대화를
끊어버렸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때 성령님이 제 입술에 친히 지혜로 말씀하셨습니다.
"내 생각과 너희 생각이 다름을 증거 하라"하십니다.
그것이 무슨 뜻인지 저는 바로 알아 들었습니다.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으니라.”(사 55:8-9)
인간의 내면에 있는 죄악 즉 나의 숨겨진 악한 모습이 성령께서 다스리시면
더욱 선명하게 분리가 됩니다.
대화를 할 때 성령께서 제 입을 통하여하시는 말씀과 제 생각이 따로 움직입니다.
저는 성령께서 하시는 말씀에 동의가 되지 않은 상태라도 입술이 움직입니다.
분명한 것은 처음부터 제 생각이나 지식에 있던 대화 내용이 아니기에
제가 마음에 없는 말로 거짓말을 했던 것이 아닙니다.
제 생각과 상관없이 대화 상대에게 하시고 싶은 말씀을 제 입술을 사용하시고
그것을 저 또한 귀로 듣게 되는 경우입니다.
말 그대로 제 입술을 성령께서 주장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현상들이 항상 있는 것은 아니며 성령의 강권적인 능력으로
예언의 말씀을 하신다든지 성령의 탄식하시는 기도를 할 경우 나타납니다.
일반적으로 영이 깨어 있도록 성령님께 민감하게 집중하는 모든 삶 가운데
내 뜻대로 행하지 않으려고 하면 성령의 인도하심을 듣게 됩니다.
그래서 이런 영적인 세계를 알지 못하는 질문자에게 이런 내용을 말하면
그들은 모두 믿지 않을 것이며 또 믿지 않는 것이 그들 탓도 아닙니다.
그래서 실제 있었던 일을 간증 같이 그에게 말해 주었습니다.
성령님은 나를 사랑하시고 보호하시며 많은 은사와 달란트를 주십니다.
하지만 성령님께서 저와 함께 하시며 가장 많이 하시는 일이 계십니다.
바로 저의 죄를 드러내시고 아빠같이 훈계하시며 내가 죄를 너무도 싫어하도록
가르치시고 훈련시키십니다.
왜냐하면 성령님은 저를 너무나 사랑하시는데 내가 죄를 짓고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가면 죄에 대한 무감각으로 회개하지 않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죄가 내 안에 자리를 잡으면 성령님이 저와 함께 하심을 깨닫지 못합니다.
첫 사람 아담이 죄를 범하기 전에는 하나님과 동행하며 얼굴을 뵈었습니다.
그러나 죄를 범하여 하나님의 동산에 있지 못하게 되었고 아담은 하나님을
느끼지 못하게 되었으니까요.
성령님의 사랑을 받은 자들은 그 사랑에 메어 다른 사랑에 만족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죄를 짓게 되면 성령님과 담이 생겨서 사랑을 느끼지 못하게 되지요
그것은 성령이 우리를 떠나시거나 이제는 사랑하지 않으심이 아니요
죄의 역할이 성령님과 우리 사이를 갈라놓는 것입니다.
그러니 한순간도 죄에 빠지지 않기 위해 성령 안에 있어야 합니다.
그러니 지금의 내가 있는 것은 성령께서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본 간증을 하기 전에 이렇게 서론을 말하고 본론으로 들어갔습니다.
몇 주 전에 반갑지 않은 전화번호가 떴습니다.
그 짧은 순간에도 전화를 받을까, 말까? 고민이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전화 상대는 대부분 돈을 빌려달라는 용건이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이 싫어서도 아니고 그 사람이 나쁜 사람도 아닙니다.
사실 저도 돈은 항상 없는 사람이라 그렇습니다.
부유해서 아무 조건 없이 어려운 사람 도움이 된다면 너무 좋겠습니다.
그러나 여유가 없이 살고 있는 저로서는 분명히 거절을 해야 하기에
미안하기도 했지만 그런 형편인 제가 자존심이 상하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저도 어려운 삶 속에서 지인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고 돈 많이 빌리러 다녔습니다.
돈 나올 곳은 없는데 일용직으로 하루 벌어 아이들과 먹으면 2주마다 내야 하는
렌트비가 부족했습니다.
그분도 일용직이고 2주마다 꼬박꼬박 렌트비를 내지 않으면 쫓겨나야 하는
사정을 누구보다 경험으로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가족과 함께 하기에 힘이 되지만 그분은 홀로 사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그분의 부탁을 거절하는 것이 불편하고 안타까울 뿐입니다.
지금의 저는 젋었을때보다 물질이 나은 것은 아니지만 자식들이 모두 자라서
자기들 몫을 하고 있기에 적어도 남들에게 돈을 빌리려 다니지는 않습니다.
그분은 저 보다 나이도 많은데 의지할 가족이 아무도 없습니다.
이런저런 곤란한 생각 중에 나도 모르게 전화 버튼을 눌러 버렸습니다.
아차... 이젠 뭐라고 거절을 해야 하지?.... 하는데 다름 아닌 돈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그런데 생각지 않게 소액을 부탁하셔서 눈치채지 않도록 정말 기쁘게
"네"하고 바로 빌려드렸습니다.
정말 얼마나 기쁘고 감사한지 큰돈은 없어서 거절해야 되는 나 자신이
자존심이 상했는데 소액이라 그런 자존심 내색 안 되고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저는 스스로 그분을 도울 수 있어 나 자신이 기특하고 자랑스러웠습니다.
이런 내 모습에 성령님께서도 기뻐하실 거라 생각되어 말씀드렸습니다.
"성령님 저 잘했지요? 이 정도면 좀 성장하고 변화되지 않았나요?"
"저 이정도 금액은 돌려받지 않아도 됩니다"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아무 말씀 없으셨고 공허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제가 느끼는 감정이 있는데 가슴이 철렁하고 내려앉는듯합니다.
성령님은 언제나 나의 철없는 어린아이 같은 어리광을 흐뭇하게 받아주십니다.
그런데 이렇게 가끔은 성령께서 안 계신 것과 같은 두려움이 올 때가 있습니다.
이런 감정은 성령에 민가 하지 않으면 느낄 수 없습니다.
성령님을 만나 뵙기 위해 더 깊은 골방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먼저는 그분을 미리 판단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반갑지 않은 이유 판단은 선과 악을 내 관점으로 정의 내리는 것입니다.
그것이 선악과를 따먹은 죄의 양상입니다.
그리고 적은 금액이라 해서 내 마음대로 한 것
또 그것으로 내 의를 세웠다는 것입니다.
이런 말씀 중에 생각해 보니 그분의 전화가 내게 유익을 준일도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고정관념에 그분 전화는 항상 돈 문제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외롭고 힘드셨을 텐데 용건이 없다고 안부 인사도 자주 안 했습니다.
그리고 내게 있는 어떤 것도 크던 작던 모든 것이 주께서 주신 것인데
적은 금액이라고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 생각했습니다.
성령 안에 민감하게 있다고 생각하던 내 그 순간 성령님께 여쭤보지도 않고
내 기쁨으로 선을 행한다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것도 모르고 저는 성장해서 기특하다고 스스로 교만했던 것입니다.
과연 내게 큰 금액이 있었더라도 기쁨으로 드릴 수 있었을까요....
그럼에도 저는 내 의를 그 선한 행동에서 챙겨 스스로 높아졌습니다.

우리의 선한 행동은 세상 사람들에게도 있는 선입니다.
그것이 아담에게 시험의 도구로 사용된 선악과 나무입니다.
위에 두 나무 중에 어떤것이 선악 나무로 보이시나요?
저는 금빛 나무가 선악 나무 같습니다.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러운 나무와 과실이었다 하니...(장답은 없습니다)
아무튼 선과 악은 한 나무이며 한 뿌리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에는 선악과 나무는 없습니다.
생명 나무만이 존재합니다.
인간 세상의 시험이 끝났을땐 그 사용 두구인 선악과 나무는
용도 폐기되는 것입니다.
다시는 저주의 선악 나무는 없고 하나님의 얼굴의 뵙지 못하도록
쫓겨나는 일이 없이 영원히 주와 함께 살것입니다.
"저가 수정 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 나무가 있어 열 두가지 실과를 맺히되
달마다 그 실과를 맺히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소성하기 위하여 있더라
다시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과 그 어린 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 있으리니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 그 얼굴을 볼것이요
그이 이름도 저희 이마에 있으리라."(계시록22:1-4)

그분은 다음 주에 일을 해서 꼭 갚겠다고 했지만 저는 이미 그분이 입으로
약속한 것을 지키지 못할 것임을 알았습니다.
저도 그런 경험이 실제로 있었고 또 이 상황들은 성령께서 저를 교훈하시려고
내 안에 숨겨진 죄성을 드러내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스라엘의 죄악을 바로잡으시려고 사용된 "에훗의 검과 삼갈의
소모는 막대기"와 같이 그분은 사용받은 도구였습니다.
약속 날짜에 돈을 갚지 못한다는 그분의 전화를 받고 저는 그분의
마음이 편해지도록 "돌려주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려고 했지만
성령께서 제 입을 다물게 하셨습니다.
아직도 제게 교훈이 되지 않았던 것이지요.
그래서 저는 "괜찮으니 편하실 때 주시면 됩니다"라고 그분께 말씀드렸습니다.
한편으론 그분의 사정을 잘 알고 있기에 거짓말 하는 모습으로 보일까
염려하는 마음이 그대로 전달 되었습니다.
정말 지금 일용직 일이 없다는 것을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분의 마음을 편케해 드리고 싶었지만 그럴수 없었습니다.
저는 별일 아닌 일에 성령께서 시간을 더 연장하시는 이유를 깨닫지 못했습니다.
마침 한국에 어머니께서 병원에 입원하셨는데 정말 적게라도 도움이 되고자
조금씩 돈을 모아 보내는 중이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그 돈을 한국으로 보내시는 것을 원하심인지....
생각하고 한 주를 더 기다렸습니다.
그러다 에훗 묵상을 마무리 하며 깨닫게 되었습니다.
인간의 죄악은 하나님의 일을 한다면서도 나라는 존재가 함께 그 영광을
받고자 한다는 마귀적인 악함으로 숨겨 놓은 채 살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저를 때마다 보혈로 넘어가게 하시고 말씀으로 깨끗이 씻어 주시며
위로의 날개 아래 덮어서 보호해 주셨습니다.
주님의 뜻은 그 어떤 일과 상황 속에서도 성령님이 함께 동행하시니
그의 뜻을 구하며 내 마음을 성령 안에 두라는 뜻이셨습니다.
내게 있는 모든 것이 주께서 주신 것이며 허락하셨기에 기쁘게 드릴 수 있고
선을 행하는 데 사용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후에 그분은 돈을 갚겠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저는 그 돈으로 함께 맛있는 식사를 하려고 했는데 집에 손님이 왔다고 둘러대고
죄송하지만 영양가 있는 반찬을 식당에서 사 드시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분은 너무 죄송해했고 감사한다 했지만 사실은 제가 더 죄송하고 감사했습니다.
이런 내용들을 그분께 설명할 수 없었기에 반찬 사 드시라고 말씀드린 것도
너무 부끄럽고 민망했습니다.
이런 내용을 "어느 때 성령께서 함께하심을 느끼십니까?"질문했던 사람에게
간증으로 이야기를 하며 이렇게 그리스도 안에서도 저는 항상 죄를 발견합니다.
그런데 지금 제가 당신에게 토설한 내용들은 내가 말하지 않으면
아무도 모르는 죄악입니다.
그럼에도 저는 이런 죄가 내 안에 있는 것이 너무도 싫습니다.
겉모습은 경건하고 의로운 그리스도인처럼 행동하며 포장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마음의 중심을 보신다고 하셨는데 이런 제 마음의 중심이
죄악으로 가득하다면 하나님 나라에 갈 수 있겠습니까?
사람은 내 속에 있는 악을 보지 못해도 성령께서는 모두 다 보고 계시니
어떻게 그 죄를 그냥 보고 계시겠습니까?
그러니 저는 죄로 가득한 내 마음이 보일 때 성령께서 함께하심을 느낍니다.
그런데 너무 감사한 것은 내 죄가 항상 보인다는 것이며
그것은 곧 성령께서 함께 하시기 때문임을 알고 있습니다.
죄가 죄로 보이지 않을 때는 당신이 죄의 아비 마귀에게 잡혀 있다는 뜻입니다.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제가 질문자에게 이해가 되도록 설명한 것일까요
그럼 당신은 어떻게 답하실 것인지 궁금하네요
에필로그라고 올렸지만 사실 부끄러운 토설입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이 내용을 나누기를 원하시는 것은 사사기를 묵상하는 중에
계속해서 발견되는 우리를 대적하는 악이 내 안에 있다는 것을 보게 되기 때문입니다.
사사기 묵상을 이전에도 나누었지만 이번에는 또 다르게 깊은 감정에
더 낮아지고 성령님께 완전히 항복에 이르게 하시는 이끄심을 느낍니다.
세상은 더욱 악하고 캄캄하지만 그 안에 한줄기 빛으로 준비되어지는
신부들의 모습에서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가 투영되어 보입니다.
그날에 저 또한 그 대열에 함께 서게 되기를 간절히 소망하며
함께하는 지체님들과 성령으로 연합되기를 기도합니다.
할렐루야~
여호와여 광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이김과 위엄이 다 주께 속하였사오니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
여호와여 주권도 주께 속하였사오니 주는 높으사 만유의 머리 심이니이다.
부와 귀가 주께로 말미암고 또 주는 만유의 주재가 되사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모든 자를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이 주의 손에 있나이다.
우리 하나님이여 이제 우리가 주께 감사하오며 주의 영화로운 이름을 찬양합니다.
나와 나의 백성이 무엇이관데 이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드릴 힘이 있었나이까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
주 앞에서는 우리가 우리 열조와 다름이 없이 나그네와 우거한 자라
세상에 있는 날이 그림자 같아서 머무름이 없나이다.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우리가 주의 거룩한 이름을 위하여 전을 건축하려고
미리 저축한 이 모든 물건이 다 주의 손에서 왔사오니 다 주의 것이니이다.
나의 하나님이여 주께서 마음을 감찰하시고 정직을 기뻐하시는 줄 내가 아니이다.
내가 정직한 마음으로 이 모든 것을 즐거이 드렸사오며
이제 내가 또 여기 있는 주의 백성이 주께 즐거이 드리는 것을 보오니
심히 기쁘도 소이다. (역대상 29: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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