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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글 단편 묵상

작은 자의 신앙 고백과 성령님의 신앙 상담

by GOTOKINGDOM 2025. 5.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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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 마치고 운전 중에 문득 하늘을 보았다

구름 없는 맑고 푸른 하늘에 한 점이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바로 그것이 비행기라는 것을 알았다

 

왜 저렇게 작지(비행기)?

하늘 참~높고 넓다

 

혼자 중얼거리듯이 말을 하는 중에 말씀이 떠올랐다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래 맞아!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은데....얼마 전 고국 방문할 때 타고 간 비행기를 생각했다약 300명 탑승이 가능한 그 비행기의 크기를 대략 상상해 보았다저 눈에 보이는 하늘에 그 비행기가 점같이 보이는데 하늘의 또 하늘 위에 계신 우리 아버지 집

 

갑자기 이런 말이 툭 하고 튀어 나왔다아버지, 눈에 보이는 저 하늘도 저렇게 높고 넓은데왜 아버지 집 가는 길을 이렇게 멀고도 험하게 만드신 거예요?전 인류가 다 가고도 넉넉한 곳일 텐데 왜 저희가 들어가기 이렇게 힘이 들지요?

 

ἐν τῇ οἰκίᾳ τοῦ πατρός μου μοναὶ πολλαί εἰσιν·
εἰ δὲ μή, εἶπον ἂν ὑμῖν, ὅτι πορεύομαι ἑτοιμάσαι τόπον ὑμῖν.

 

위 헬라어를 직역하면 이렇게 된다

 

“내 아버지의 집에는 거처들이 많이 있다.
그렇지 않았다면, 내가 너희에게 말했을 것이다.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간다.”(요 14:2)

 

오이키아 οἰκίᾳ (oikia) – 집, 거주지, 가족

(단순히 건물로서의 '집'이 아니라 가족이 함께 사는 공간, 하나님의 가정을 상징한다.)

파테르 πατρός (patros) – 아버지

모네 μοναὶ (monai) – 거주, 거처, 머무름, 지속, 존속

(이 단어는 동사 "μένω - meno, 거하다"에서 나온 명사형으로,
“머무는 장소”, “임시가 아닌 지속적으로 거하는 집”을 의미한다.)

 

포류오마이 πορεύομαι (poreuomai) – 가다, 여행하다

(예수님께서 의도적이고 목적 있는 여정을 떠나시는 것을 나타낸다)

헤토이마조 ἑτοιμάσαι (hetoimasai) – 준비하다, 마련하다

(결혼식 준비, 손님맞이, 거룩한 목적을 위한 준비에 사용되는 단어이다.)

토포스 τόπον (topos)- 장소, 곳(place)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라”
(마태복음 7:13–14)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그 문은 인간 본성에 맞는 길이 아니라,
자기 부인과 회개, 믿음, 순종의 길이 따르는 여정이다

요한복음 14장에서 예수님은
"내가 너희를 위해 거처를 예비하러 간다"라고 하신 후,
"내가 곧 이요 진리요 생명이라"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의 삶과 죽음은 어떤 길이었나요?

  • 섬김의 길
  • 자기를 부인하고 낮아진 길
  • 고난과 죽음의 길

그러므로,
예수님이 열어 놓은 그 길을 따라 걷는다는 것
그분처럼 자기 십자가를 지고,
세상의 유혹과 자기를 부인하며,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길을 가는 제자의 삶것이다.

그래서 좁은 문 그 길은 좁은 것이다.

 

혹여 여쭈오되 주여 구원을 얻는 자가 적으니 이까

저희에게 이르시되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눅13:23-24)

ἀγωνίζεσθε εἰσελθεῖν = "들어가기를 힘쓰라"

 

You must agonize to enter,

목숨 걸고라도 그 문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라.

 

 

이 말씀은 단순한 노력이나 시도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전심전력, 고통을 감수하는 투쟁, 신앙을 위한 치열한 싸움을 의미한다.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딤전 6:12)
ἀγωνίζου τὸν καλὸν ἀγῶνα τῆς πίστεως
같은 어근 agōnízomai 사용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고전 9:25)

 ἀγωνίζεται 사용.

 

이 단어는 운동선수가 시합을 준비하듯, 또는 군인이 생사를 걸고 싸우듯 

신앙의 좁은 문을 통과하려는 영적 싸움의 긴장감과 헌신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모든 믿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질문합니다

"하늘은 그렇게 넓은데, 왜 하나님은 좁고 힘든 길로 오라 하셨을까요?"

각자 자신의 답을 마음에 품어 보세요 

 

1.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하나님은 모든 인류를 사랑하사 구원하시길 원하신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딤전 2:4)

 

하지만 하나님은 강제로 끌고 가는 사랑이 아니라,
자발적이고 진실한 사랑의 반응을 원하시는 것이다.

좁은 길은 하나님을 정말로 사랑하는 자들이 자발적으로 걷는 길인 것이다.
넓은 길은 내 뜻대로 사는 길이요 어쩜 알면서도 설마 하는 생각으로 외면했을 것이다
좁은 길은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로 작정한 자들의 길이다.

사랑은 강요가 아닌 스스로의 선택을 통해 입증된다.

 

2.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시다 — 죄가 함께할 수 없다

하늘이 넓다고 아무나 들어갈 수 있다면,
그곳은 더 이상 거룩한 하나님의 집이 될 수 없다.

“거룩함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히 12:14)

 

좁은 문, 좁은 길은
우리 안의 죄와 자아, 교만, 세속성, 불순종을 꺾는 통로이다.
그것 없이 천국에 들어간다면, 천국이 천국일 수 없기 때문이다.

 

3. 하나님은 형상과 모양이 있으시다

좁은 길은 ‘통과 의식’이 아니라 ‘변화의 길’이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단순히 들어오는 사람이 아니라,
그분의 형상과 모양으로  변화된 자녀들이다.

원래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으로 지음 받았다

그러나 그 형상과 모양을 잃어버렸다

그래서 그 형상과 모양을 다시 찾아와야 한다 

좁은 길은 바로 그 변화의 과정이다.

죄인을 십자가의 사랑으로 믿는 자들을 거룩하게 하시고,
자기를 위해 준비된 신부로 만드시는 길이
다.

 

이렇게 하늘을 보며 성령님과 함께 묵상을 하다 보니 작은 자의 신앙 고백으로 이끄신다 

"과연 내가 그 길을 완주할 수 있을까?"

"내가 십자가를 지고 주님의 길을 따를 수 있을까?"

"마지막까지 내가 성령님을 붙들 수가 있을까?"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으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마태복음 19:26)

 

십자가를 지고 주를 따른 다는 것은 순교의 길을 말하는 것이다

내 목숨뿐만 아닌 나로 인해 죽을 수도 있는 가족들을 내가 견딜 수 있을까....

하나님은
"자신의 아들을 내어주신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하셨다."
(요 3:16)

그 사랑이, 그 믿음이,
성령으로 우리 안에 부어질 때에는 순교의 믿음은 가능할 것이다.

 

"마지막까지 내가 성령님을 붙들 수가 있을까?"

우리는 늘 “내가 성령을 붙잡아야지”라고 생각하지만,
더 정확히는, 성령이 우리를 붙잡고 계신 것이다.

 

우리의 손은 떨릴 수 있고, 놓칠 수 있지만, 성령님의 손은 결코 놓지 않으신다.

“그가 능히 너희를 보호하사 실족하지 않게 하시고
그 영광 앞에 흠 없이 기쁨으로 서게 하실 이에게
영광이 있을지어다.”
(유다서 1:24)

 

순교는 어느 날 갑자기 닥치는 것이 아니다.
성령님은 우리를 조용히 준비시키신다.
믿음의 연습, 순종의 훈련, 작은 고난을 감당하는 마음을 통해
점점 그날을 감당할 수 있는 믿음으로
자라나게 하신다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무덤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고전 15:55)

 

이 고백은 하루아침에 나오는 게 아닌 것이다.
오랜 순종과 성령의 인도 속에서 깊어지는 믿음의 열매가 된다.

 

그리고 우리가 염려, 걱정할 때

예수님은 지금도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중보하고 계신다.
(히브리서 7:25)

“아버지여 내가 비옵나니…
저희를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옵소서.”
(요 17장 중)

 

예수님은 이미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고,
그날을 위해 지금도 기도하고 계신다.

우리는 모두 연약하다

 

히브리서 11장에 나오는 믿음의 선진들 곧 허다한 증인들도 강해서가 아니라,
믿음 안에서 하나님을 더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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