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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글 단편 묵상

듣기만 한다면 자신을 속이는 자 라고 합니다

by GOTOKINGDOM 2026. 2. 7.

 

 

너희는 도를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약 1:22)

 

당신이 듣고 있는 말씀을 행하지 않고 있다면 당신 자신을 속이는 자입니다 

다시 말해 당신이 듣고 있는 말씀이 참 진리라면 행하고 싶은 갈망이 일어납니다

이는 사랑에 빠진 사람이 모든 삶에 드러나는 것과 같습니다 

말씀과 사랑에 빠져보세요 

 

새로운 환경속에서 종교생활을 시작한지 한달이 지나고 있습니다 

종교생활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내 모든 삶이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입니다

그러나 성령안에서 걷는 삶을 함께 나누며 영혼을 사랑하고 섬기는 공동체도 필요합니다

그런 나눔을 할수 있는 곳을 종교생활이라 표현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말씀 앞에서 솔직한 나의 모습을 진단하며 점검해 보았습니다

한주전 말씀 묵상을 올리며 한국 방문 때문에 당분간 묵상 글을 올리지 못한다고

글을 마무리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나의 이성적인 생각에서 나온 것이라 이렇게 또 성령님이 말씀을 

행하는 자로 바로 세우십니다 

 

 

요즘 솔직한 나의 모습은 이렇습니다

생각이 많고 그에 따른 말씀이 나를 묶어서 머리가 너무 복잡합니다

그런 생각들이 나를 지배하지 못하도록 예수님이 그 묶인 끈을 꼭 잡고 계십니다 

교회는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해집니다 

그러나 우리는 교회 자체가 완전한 곳을 찾고 있습니다

완전한 교회는 없습니다

불완전한 교회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인 되시면 완전한 것입니다

이전 공동체에는 어떠했기에 내가 나왔고 새 공동체는 어떠했기에 내가 들어간 것이 아닙니다

오랜 시간 기도를 했는데 영혼을 위한 기도였습니다

 

교회 공동체 영혼들과 내 가정의 영혼들과의 저울질이었습니다

사명이라는 부분에서 공동체 영혼들을 향해 받은 부분들에서 내 자리를 지키는 것과

내 가정의 영혼들을 잃지 않기 위한 내 집안을 먼저 지키는 것에 갈등입니다 

어떤 길을 선택하든지 주님은 나를 다스리시고 그 뜻을 이루실 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부분을 선택하였을 때 나의 이기적인 생각으로 진리를 외곡되이 포장할까 염려되었습니다

며칠 전 우연히 펼쳐보게 된 야고보서 말씀에 선명하게 내 마음에 새겨지는 부분이 본문 말씀입니다

이전에는 고정관념으로 깊게 생각해 보지 않았는데 그날은 이상하게 마음에 걸림이 되었습니다

그렇지 믿음도 행함으로 증명이 되지....

그런데 듣는 것과 속이는 것은 무슨 관계가 있나....

그리고 다른 사람을 속이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속인다고?

 

성령님이 가르쳐주신 사도 야고보가 흩어져 있는 열 두 지파에게 문안하는 

편지를 받아 보려고 합니다 

야고보는 그 시대 있지도 않은 열 두 지파를 말하며 흩어져 있는 열방에 전하는 메시지입니다

계시록 7장을 보면 하나님의 인맞은 열 두 지파가 나옵니다 

비밀이 있는 메시지를 오늘날 나에게도 전해 졌습니다

야고보서는 율법 행함을 강조하기 위한 종교적 훈계가 아닙니다.
말을 줄이고, 화를 다스리고, 선행을 늘리라는 삶의 모범된 모습도 아닙니다.
야고보가 찌르고 싶은 핵심은 단 하나입니다.

말씀을 들었다고 믿음 있는 자로 착각하며 자기기만으로 가려놓은 본모습을 보는 것입니다.

 

 

 

위에 천으로 가려놓은 물동이 같은 물병이 있습니다

첫 번째 사진은 검은 천으로 덮어 두어서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겠습니다

두 번째 사진은 물병 아래와 손잡이 부분이 보여 무엇인지 조금 유추해 볼 수 있습니다

세 번째 사진을 보니 그 형태는 보이지만 속에 정확한 색상을 알 수 없습니다

네 번째 사진을 보니 그 속에 무엇이 있는지 거의 다 보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덮혀진 얇은 천을 통해 본모습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비유를 찾느라고 고생했습니다

성령님이 가르쳐 주신 것을 표현하려니 참 난감했습니다

최대한 이해될 수 있기를 바라며 성령의 도우심을 간구합니다

처음 물병에 덮인 검은 천은 우리의 본모습을 가리고 있는 우리의 자아입니다

우리는 남들에게 보이는 내 모습을 잘 포장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포장을 해놓아도 남들은 그 포장지 벗기는데 신중을 기여하지 않습니다

빨리 그 내용물을 보고 싶어 하니까요

 

어떤 사람은 자신을 포장해도 별로 고급져 보이지 않아 만족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선택하는 방법이 검은 천으로 물병의 모습을 볼 수 없도록 덮어버리는 것이지요 

그러면서 사람들이 검은 천 안에 무엇이 들었을까 궁금해하는 것을 은근히 즐기고 있습니다 

말씀을 듣기만 하고 행하지 않는다면 그 가려진 천이 벗겨지지 않습니다

말씀 앞에 서서 자신을 발견하고 양파 껍질 벗기듯이 하나하나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렇게 자신을 그대로 드러네는데 두려워 하지 않을수 있습니다 

그런데 참 신기하게도 입에서는 그렇게 말씀을 선포하는데도 자기 자신을 보지 못함은

무슨 연유일까요?

 

야고보는 처음부터 공동체를 향해 손가락질하지 않았습니다.
이 단락에서 반복해서 등장하는 대상은 언제나 ‘자기 자신’입니다.

말씀의 날썬 검의 끝이 바로 나를 향해 있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말씀이 내 안에서 찔림이 되었을 때 나타나는 반응으로 나를 점검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서두에 성내는 것을 먼저 말하고 있습니다.

그로 보건대 사람이 듣기에 좋은 말로 들리지 않는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듣기는 속히 하라는 말은 말을 잘 들으라는 인성 훈련이 아니라,
말씀 앞에서 즉각적인 판단과 반응을 멈추라는 요청입니다.
말이 많아지고 분노가 앞서는 순간,
말씀은 더 이상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바깥에서 튕겨 나가게 됩니다.
그래서 “사람의 성냄은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분노는 죄의 크기 이전에, 말씀이 구원의 일을 이루는 통로를 막는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마음에 심긴 도를 온유함으로 받으라.”

여기서 ‘마음에 심긴 도’는 새로 배우는 말씀이 아닙니다.
헬라어 ἔμφυτος λόγος(엠퓌토스 로고스)
이미 안에 심겨 있고, 살아 있고, 자라려는 말씀을 뜻합니다.
야고보는 이미 18절에서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다”고 선언했습니다.
즉, 이 말씀은 우리를 거듭나게 한 바로 그 말씀입니다.

문제는 말씀이 없는 것이 아니라,
이미 심긴 말씀이 자라지 못하게 가로막는 태도입니다.


그래서 야고보는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버리라고 말합니다.
도덕적 결벽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거부하게 만드는 자기 의와 방어를 내려놓으라는 뜻입니다.

그다음 나오는 “행하라”는 말은 무언가를 더 하라는 명령이 아니라
야고보가 가장 날카롭게 겨누는 것은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상태”입니다.

여기서 ‘자신을 속인다’는 말은 단순한 거짓이나 위선이 아닌

παραλογίζομαι(파랄로기조마이)는 논리적으로는 맞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론이 완전히 빗나간 자기기만을 뜻합니다.

말씀을 들었다는 것이 이성으로 이해하고 감정으로 느꼈다 하여 
회개를 대신하고
순종을 대신하고
변화를 대신하는 
사람은 가장 안전한 착각 속에 빠져서 자신의 본모습을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야고보는 거울 비유를 들어 말합니다.
말씀은 거울이고, 그 앞에 서 있는 사람은 나 하나입니다.
이 거울은 남을 비추라고 주어진 것이 아니라 내 상태를 보라고 주어진 것입니다.
보고도 잊어버리는 사람은 말씀을 버린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착각한 것입니다.

말씀이 지식으로 이해되어 자신이 안다고 스스로 포장했기 때문입니다 

 

이에 반해 25절에서 말하는 사람은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행하는 자”입니다.

여기서 율법은 정죄의 율법이 아닙니다.
νόμον τέλειον τὸν τῆς ἐλευθερίας
자유에 속한, 자유를 낳는 그리스도의 율법입니다.

이 율법은 밖에서 나를 누르는 규칙이 아니라
안에 심긴 말씀이 자라 만들어낸 그리스도의 사랑입니다.
그래서 이 율법은 사람을 포장하고 묶지 않습니다.
죄로부터, 자기기만으로부터,
스스로를 변호하느라 애쓰는 삶으로부터 자유하게 합니다.

 

야고보가 말하는 ‘행함’은 눈에 띄는 성취나 종교적 경건함이 아니라
말씀이 실제로 내 선택을 지배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내가 말하고 싶은데 멈추는 것
내가 옳아 보여도 침묵하는 것
나를 인정하는 사람의 반응보다 말씀을 더 무겁게 여기는 것
나를 하나님 말씀 앞에서 계속 점검하는 것

이것이 거울 앞에 자신의 모습을 계속 기억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래서 마지막에 야고보는 혀와 마음과 삶의 방향을 말합니다.
이것들은 조건이 아니라 검증 지표입니다

말씀이 안에서 다스리면 혀가 먼저 변하고
자기기만이 줄어들고 삶의 방향이 정직해집니다.

야고보가 남기고 가는 교훈은 이것입니다.

행함을 강조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을 정죄하려는 것도 아닙니다.


“너는 말씀을 지식으로 소유하고 있느냐, 아니면 말씀에 사로잡혀 순종하고 있느냐.”

말씀을 들었다고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진 것이 아닙니다 
말씀 앞에서 자신과 그리스도의 마음이 얼마나 다른지 보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19–27절 전체가 도달하는 하나의 결과물입니다.

우리는 스스로 의롭게 될 수 없습니다

말씀이듣 율법이든 어느 쪽도 우리는 온전히 행하지 못합니다 

예수님처럼 우리가 온전히 거룩해질 수 있어 의롭다 하심이 아니라 

온전하신 예수님을 믿음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다 하신 것입니다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이라.” (빌 3:9)

 

여기서 한 가지 유의해야 될 것은 자신과 그리스도의 마음이 얼마나 다른지 발견하게 될 때

자신을 정죄하고 낙담하라 하신 것이 아닙니다

더욱 그리스도의 은혜를 붙들고 미혹되지 말아야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행할 수 있습니다

자책만 하고 자신의 연민에 빠져들면 그 또한 회개를 하고 있는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됩니다 

그 어떤 것도 우리 스스로 뭔가를 한다고 생각이 될 때는 마땅히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르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마 18:3)

여기서 어린아이는 헬라어로 παιδίον(파이디온)인데, 단순히 나이가 어린 존재라기보다

보호와 돌봄에 전적으로 의지하는 작은 아이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스스로 설 수 없고, 아버지를 신뢰하고 의지하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그곳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막 10:15)

여기서는 ‘받들다’라는 의미가 강조되는데, 어린아이가 선물을 받듯이 하나님 나라를

계산이나 자격으로 얻으려 하지 않고 그대로 받는 마음을 말합니다.

영적인 의미를 생각해 보면, 어린아이와 같이 된다는 것은 지식이 없어진다는 뜻이 아니라

마음의 태도가 바뀌는 것을 말합니다.

스스로 옳다고 붙들고 서 있는 열심을 내려놓고, 하나님께 의지하며 믿는 마음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린아이에게 처음부터 큰 것을 바라지 않으시고 아이에게 맞도록 가르치십니다

 

자유하지 않는 율법은 어린아이에게 처음부터 갖추어진 복장을 입혀줍니다

겉으로 보기에 멋져 보이고 자랑스러워 보입니다 

그러나 아이에게 맞지 않는 농구 골대에 어른의 눈높이에 맞도록 훈련시킵니다

훈련시키는 자도 결국 지쳐버리고 아이를 정죄하면 포기해 버립니다

반면 자유하는 그리스도의 율법은 겉모습에 치우치지 않습니다 

어린아이 그 모습 그대로를 보게 합니다 

어린아이가 어른 농구대 높이에 골을 넣을 수 없음을 보여줍니다

바로 이점이 중요합니다 자신을 알게 하는 것이니까요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훈련할 수 있도록 어린아이 눈높이로 골대를 낮추어 줍니다

아이가 자라도록 골대를 점점 높여 가는 것이지요

모세의 율법과 그리스도의 율법은 이렇게 차이가 있습니다 

위에 그림을 보며 당신도 그 자유하는 율법을 행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어린아이는 아버지 앞에서 숨기지 않습니다

그저 아버지를 신뢰하기에 자기 마음을 그대로 드려냅니다 

그것이 어린아이는 이기적이고 때를 쓰며 막무가내 울고 발버둥을 치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아버지가 아이를 버리지 않습니다 

아버지는 이런 아이들을 잘 성장하도록 가르치십니다 

우리 모두는 이런 어린아이 같은 시기를 다 거쳐갑니다 

말씀 앞에 행하고 있다면 우리가 자라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돌아서서 자신의 모습을 곧 잊어버리는 자가 바로 어린아이 시절을 잊은 자입니다 

 

과정은 없고 결과로만 말하는 것은 성경적이지 않습니다 

우리 모두는  광야 시절을 거치게 되어 있습니다 

모세를 따르던 1세대들은 모두 실패하고 여호수아를 따르던 2세들은 성공했다가 아니라

이 모든 과정을 거치게 하시고 결국은 하나님 뜻을 이루시는 분을 알아야 합니다

말씀 앞에서 지식으로 스스로 옳다고 서 있는 사람이 아니라, 거울을 보고 고치는 사람,

즉 어린아이처럼 아버지의 고침 받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마음입니다.

이런 마음이 하나님 나라에 합당하다는 뜻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받는 일이 우리의 노력이나 열심히 되지 않습니다 어린아이처럼 주시는 대로 감사함으로 받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에게 그 뜻을 이루실 줄 믿습니다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