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 있는 자는 들을찌어다
이 세대를 무엇으로 비유할꼬 비유컨대
아이들이 장터에 앉아 제 동무를 불러 가로되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애곡 하여도 너희가 가슴을 치지 아니하였다 함과 같도다
요한이 와서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아니하매
저희가 말하기를 귀신이 들렸다 하더니
인자는 와서 먹고 마시매 말하기를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 하니
지혜는 그 행한 일로 인하여 옳다 함을 얻느니라 (마 11:15-19)

오늘 말씀 묵상은 성령님께 책망과 조명을 받은 부분을 함께 나누려고 합니다.
마태복음 11장 16-19절 말씀을 읽으면서 항상 바리새인과 완고한 사람들을 떠올렸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새 공동체에서 예배드리며 한 순간 제 마음을 비추는 거울처럼 보였습니다.
새 공동체에 목사님은 눈물이 참 많으신 분이십니다.
말씀을 전하실 때도 찬양을 할 때에도 기도를 할때에도 순간순간 울컥하시며 진행을 멈추실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성도들은 함께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두 손을 높이 들고 자신의 믿음을 고백하는 모습도 보입니다
옆에서 믿음이 연약한 저희 남편도 훌쩍거리고 있었습니다
그런 예배 상황들 가운데 항상 그렇지는 않지만 때때로 진심이 느껴져 나도 울컥할 때가 있었지만
그럴 때마다 마음을 다스리고 냉철함을 붙들며 감정에 휩쓸리지 않으려고 주님께 집중하였습니다
목사님이 말씀하신 상황을 나는 다 알지 못했고 교회의 고난과 가정들 상황을 새로 입교한 내가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울컥하는 마음에 휩쓸려 나도 눈물을 흘리면 혼적인(감정) 연민에 머무르게 될까 점검했고
또 혹시 외식처럼 보일까 조심하며 마음을 붙들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평안한 마음으로 범사에 감사하고 기뻐할 수도 없었습니다.
목사님의 마음이 진심으로 느껴졌기 때문에, 단순히 분위기에 맞춰 감정을 흘러 보낼 수 없었습니다.
그때 성령으로 말씀이 내 심장을 두들겨 때렸습니다.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애곡 하여도 너희가 가슴을 치지 아니하였다 함과 같도다"
처음엔 설마 나에게 하신 말씀 아니겠지....하며 외면하려 했습니다
그런데 결국 눈물을 쏟아 버렸습니다
주위 사람들은 내가 자신들처럼 목사님 말씀 듣고 은혜받았다고 생각했겠지만 아닙니다
성령님이 말씀 지팡이로 저를 때리셨기 때문에 너무 아파서 울었습니다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를 우리는 지팡이는 나를 건지시고 막대기는 늑대한테 던져 쫓는다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 막대기로 양을 때리실 때가 더 많습니다
미련하여 제각각 원하는 대로 가기도 하고 엉뚱한 목자를 따라가기도 하거든요
그래서 엉뚱하게 가고 있는 양에게 막대기를 던지면 놀라서 다시 되돌아옵니다
피리를 불고 곡을 해도 반응하지 않는 내 모습, 이것이 바로 내 마음이 열리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목사님의 전하시는 이런저런 말씀을 내가 옳다 생각하는 대로 스스로 제단하며
마음의 문을 꼭 닫고 있으면서 마음을 지키는 것이라 착각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누군가를 정죄하거나 깎아내리려는 마음은 없었지만, 분별한다는 교만이 있었던 것입니다.
이전 교회에서는 마지막 환란을 준비하며 스스로 어떤 존재가 되기 위한 열정적인 싸움을
강조했기에 한 곳으로 치우친다고 마음을 닫았습니다
새 교회에서는 목사님과 성도들의 온유함과 눈물에 섬김과 사랑이 느껴졌지만
육신에 속한 관계로 은혜 안에 멈춰있을까 마음을 열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묵상하면서 깨달은 점은, 세례 요한과 예수님이 보여주신 두 가지 방식,
즉 금욕과 회개, 은혜와 충만함이 모두 하나님께로부터 온 부르심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어느 한쪽만 옳다고 하는 것이 아닌 하나님 뜻 안에 모두 이루어져야 하는 부분들입니다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그가 네 앞에서 네 길을 예비하리라 한 것이
이 사람에 대한 말씀이라"(눅7:27)
"만일 너희가 즐겨 받을진대 오리라 한 엘리야가 곧 이 사람이니라"(마11:14)
예수님의 이 말씀에는 여러 세대에 나타나는 엘리야의 비밀이 담겨 있습니다
위에 말씀은 말라기 3장을 인용하신 것입니다
말리기에서는 엘리야가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보내신다고 합니다
세례 요한이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왔다면 그 시대가 당한
그날은 이스라엘이 역사 속에서 사라진 날이었을 것입니다
오늘날 이스라엘이 다시 회복되었고 나라가 이제 곧 제3 성전을 세우겠다고 합니다
이것으로 보아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한번 더 남은 것을 알 수있입니다
사도 요한이 계시록에 기록한 두 증인의 사역이 마지막 엘리야의 사역으로 봅니다
예수님은 세례 요한을 말라기에서 말하는 엘리야라고 소개했습니다
그럼 세례 요한 본인은 어떻게 소개했는지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나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과 같이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다"
이 말씀은 이사야 40장에 있는 말씀인데 그곳을 자세히 보면 같은 말 같은데
반복되이 조금씩 다르게 표현을 하며 3-11절에 3번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외치는 자의 소리여 가로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케 하라
골짜기마다 돋우어지며 산마다 작은 산마다 낮아지며 고르지 않은 곳이 평탄케 되며
험한 곳이 평지가 될 것이요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고 모든 육체가 그것을 함께 보리라
말하는 자의 소리여 가로되 외치라 대답하되 내가 무엇이라 외치리이까
가로되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듦은 여호와의 기운이 그 위에 붊이라
이 백성은 실로 풀이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영히 서리라
아름다운 소식을 시온에 전하는 자여 너는 높은 산에 오르라
아름다운 소식을 예루살렘에 전하는 자여 너는 힘써 소리를 높이라
두려워 말고 소리 높여 유다의 성읍들에 이르기를 너희 하나님을 보라 하라보라
주 여호와께서 장차 강한 자로 임하실 것이요 친히 그 팔로 다스리실 것이 라보라보라
상급이 그에게 있고 보응이 그 앞에 있으며 그는 목자 같이 양무리를 먹이시며
어린양을 그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먹이는 암컷들을 온순히 인도하시리라

첫 번째 단락의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가 세례 요한이라고 했습니다
두 번째 단락은 성령이 임하신 후의 사도들의 사역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 단락이 마지막 두 증인의 사역으로 시온을 회복하는 사역입니다
물론 이것은 제 개인적인 해석입니다
다르게 생각하셔도 모든 말씀 해석은 성령으로 자유하시기 바랍니다
요한은 금식하며 회개를 외쳤고, 예수님은 먹고 마시며 천국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사람들은 요한에게는 “귀신 들렸다” 하고, 예수님께는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긴다”라고
"죄인들의 친구다" 말하며 둘 다 책 잡으며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이 비유 속에서 장터에 아이들을 바로 “이 세대”라고 나타내십니다.
처음에는 부르는 아이들은 요한과 예수님, 반응하지 않는 아이들은 사람들,
또는 부르는 아이들은 사람들 같이 따르지 않은 아이들이 요한과 예수님이라
이분법으로 나누었는데, 말씀을 자세히 묵상하면서 새로운 방향으로 보였습니다
장터에 있는 아이들 모두가 "이 세대"이며 그들의 "상태"를 보여주는 비유라는 것이었습니다.
피리를 불고 곡하는 쪽, 반응하지 않는 쪽 모두 비유 속 그림 안에서는 아이들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의미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자기 기준으로 판단하고 반응하는 사람들의 상태를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부르는 자도 자기 뜻대로, 반응하는 자도 자기 뜻대로 반응하는 아이들 같은 행동을 말합니다.
헬라어로 아이들 παιδίοις(파이디오이스)이며, 기본형은 παιδίον(파이디온)입니다.
이 단어는 어린아이, 아이, 소년소녀를 넓게 가리키는 말로
행동하고 놀고 서로 부르며 반응하는 ‘아이들의 모습’에 초점이 있는 단어입니다.
일상적인 어린아이, 놀이하는 아이들을 떠올리게 하는 표현이지요
그래서 예수님 비유에서도 피리를 불고 곡하며 서로 반응을 요구하는 놀이하는 아이들의
모습으로 자연스럽게 나옵니다.
병행구절 말씀으로 누가복음 7장을 보면 예수님이 말씀하신 부분이 다르게 기록된 것이 있습니다
마11:12-15 과 눅7:29-30 부분이 그렇습니다
너무도 현저하게 다른 기록이라 각 부분마다 의미가 깊습니다
그러나 오늘 저는 눅 7:29-30 말씀으로 예수님의 의도를 나누고자 합니다
모든 백성과 세리들은 이미 요한의 세례를 받은지라 이 말씀을 듣고
하나님을 의롭다 하되
오직 바리새인과 율법사들은 그 세례를 받지 아니한지라
스스로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니라
마태복음에 없는 이 말씀은 예수님이 비유로 드신 아이들이 누구인지 말해주는 내용입니다
모든 백성과 세리 그리고 바리새인과 율법사들이 다 "이 세대" 곧 "장터에 아이들"입니다
그런데 백성과 세리들은 행한 것이 있고 바리새인과 율법사들은 하지 않은 것이 있습니다
바로 요한의 세례입니다
그런데 요한의 세례를 받고 안 받고는 너무도 큰 결과를 낳습니다
말씀을 듣고 하나님을 의롭다 하는 믿음의 고백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그러나 요한의 세례를 받지 않은 바리새인과 율법사들은 말씀을 들어도
하나님을 높이지 않고 스스로 하나님의 뜻을 저버린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이런 말씀으로 연결되어 풀 수가 있을까요?
바로 세례 요한을 보내신 분도 하나님이시고 그 뜻을 이루시는 분도 하나님 돼 시기 때문입니다

내가 와서 물로 세례를 주는 것은 그를 이스라엘에게 나타내려 함이라(요1:31)
나를 보내어 물로 세례를 주라 하신 그이가 나에게 말씀하시되
성령이 내려서 누구 위에든지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곧
성령으로 세례를 주는 이인줄 알라 하셨기에
내가 보고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 하였노라(요 1:33-34)
이 말씀이 세례 요한도 예수님도 모두 하나님의 보내심으로 오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세례 요한이 물로 세례를 주는 것이 예수님을 나타내기 위한 사명이었음을 말합니다
예수님이 세례 요한에게 요단에서 세례 받으실 때 하신 말씀입니다
요한이 말려 가로되 내가 당신에게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마3:14-15)
예수님도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므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신 분을 성령이 임하시므로 증거 하셨기에
세례 요한이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증거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것으로 끝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의도하신 뜻은 그 하나님의 자녀가 또 있다는 말씀을 알려주시려 하십니다
지혜는 자기의 모든 자녀로 인하여 옳다 함을 얻느니라(눅7:35)
헬라어 원어에서 ‘지혜’는 소피아(σοφία)로,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의 경륜 속에서
드러나는 참된 지혜를 뜻합니다.
마태복음에서는 “행한 일”은 에르곤(ἔργων)으로,
누가복음에서는 "자녀들"(테크논, τέκνων)로 기록이
행함과 삶의 열매를 의미합니다
하나님 안에서 맺은 삶의 열매로 옳음이 드러난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좀 더 깊이 볼 것은 지혜는 성경에 그리스도로 나타냅니다
잠언에서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아들로 지혜를 얻는다는 표현도 많이 있습니다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고전1:24)
"나 지혜는 명철로 주소를 삼으며 지식과 근신을 찾아 얻나니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악을 미워하는 것이라
나는 교만과 거만과 악한 행실과 패역한 입을 미워하느니라(잠8:12-13)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 (잠9:10)
"여름에 거두는 자는 지혜로운 아들이나
추수 때에 자는 자는 부끄러움을 끼치는 아들이니라"(잠10:5)
지혜는 자녀 또는 행한 일로 옳다 함을 얻는다고 하시니 마치 지혜를 존재로 표현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 말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눅3:8)
이 말씀이 지혜는 그 행한 일 또는 그 자녀들로 옳다 함을 얻는다는 해석입니다
회개에 합당한 열매는 행한 일입니다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는 것은 자녀들입니다
그러니 예수님이 세례 요한에 대해 말씀에 기록된 자라 증거하셨고 또 여자가 낳은 자중
가장 크다고 하시며 천국에는 극히 작은 자도 그 보다 크다는 천국 비밀도 언급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요한의 세례를 받은 모든 백성들과 세리들은 그런 말씀을 듣고 하나님은 의로우시고
옳으신 분이라는 것에 동의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에 반면 바리새인과 율법사는 하나님의 뜻을 스스로 저버렸다는데 그것이 요한의 세례를
받지 않았다 곧 회개의 열매를 스스로 맺기를 버렸다는 것입니다
요한의 세례도 성령 세례도 모두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을 곧 지혜라고 표현하신 분의 자녀들이 누구라는 말입니까?
바로 회개를 한 백성들과 세리들이 하나님의 자녀라는 말씀입니다
그 시대 가장 거룩하고 지혜롭다는 바리새인과 율법사들은 그 자녀됨을 스스로 버린 것이고요
참고로 예수님이 이 땅에서 세례를 주신 일은 없습니다 제자들이 했습니다
성령 세례가 임하기 전 제자들이 행한 세례는 요한의 세례와 동일한 회개의 세례입니다
"예수께서 친히 세례를 주신 것이 아니요 제자들이 준 것이라"(요4:2)
“그때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마11:25-26)
여기서 말하는 어린아이는 단순한 나이 어린이가 아니라,
자기 지혜를 의지하지 않고 겸손히 하나님께 회개로 마음을 여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그 시대 지혜롭고 슬기 있다는 바리새인과 율법사들은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를
마음을 열고 듣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가난하고 죄인들은 성전이나 왕궁 가까이 가지 못했습니다
그런 자들은 모두 광야에서 외치는 세례 요한의 소리를 들으며 마음을 열었던 것입니다
마 11:27 아들을 통하여 계시를 받는 사람만이 아버지 하나님을 알 수 있다는 말씀과 연결됩니다.
결론으로 장터에 앉아 부르는 아이들이나 반응하지 않는 아이들과 달리, 마음을 내려놓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사람은 어린아이와 같은 상태가 되어 계시를 받고 아버지를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제가 딱 “이 세대” 비유 속 장터 아이들의 모습이었습니다.
마음을 닫고, 눈물이 나 기쁨에 솔직히 반응하지 않으면서, 판단하며 조심하고 있었던
제 모습이 바리새인과 율법사였다는 것이 그대로 비쳤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성령께서 마음을 만지시며 깨닫게 하신 것은,
성령이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저와 늘 함께하시며
성장하는 아들로 양육하고 계시며 하나님의 부르심은 다양한 방식으로 오시지만
결국 아들에게 나타내신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이전 교회를 떠났지만 여전히 그곳을 사랑하고, 새 교회도 아직은 낯설지만
성도들과 목사님을 사랑하고 존경하게 된 마음도, 결국 성령 안에서 한 마음이라
열어 주신 은혜임을 깨달았습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서도 목사님이나 사역자가 자기 방식과 사명만 옳다고 외치며
하나님 부르심의 뜻을 자신의 방식으로 해석하여 미혹되어 있는 모습이 대부분입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누가 옳고 그른가 가 아니라, 하나님이 지금 무엇을 하시는지를
보는 눈과 듣는 귀를 가지는 것입니다.
자기 지혜와 판단이 아닌,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순종하는 사람만이 하나님을 알게 되고,
어린아이와 같은 상태로 계시를 받게 됩니다.
외식이나 판단이 아닌, 진실로 마음을 열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들으려는 경외함과
피리를 불고 곡하는 두 가지 방식만 아니요 요한도 예수님도 모두 부리시고 보내신
하나님께 순종하심만 있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이 세대로 표현하신 장터에 아이들이 아니라면 이런 반응이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나의 말한 바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요 그의 앞에 보내심을 받은 자라고 한 것을
증거 할 자는 너희니라 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나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하나니
나는 이러한 기쁨이 충만하였노라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하니라(요3:28-30)
요나단이 그에게 이르기를 두려워 말라
내 부친 사울의 손이 네게 미치지 못할 것이요
너는 이스라엘 왕이 되고 나는 네 다음이 될 것을
내 부친 사울도 안다 하니라(삼상23:17)
장터의 아이들은 자신들의 방식을 따라오라 고집하고 싫으면 하지 않는 친구들이지만
하나님의 자녀 된 자라면 자신이 서야 할 곳과 물러나야 할 곳을 잘 알고 있습니다
다윗도 성전을 짓고 싶었지만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고집하지 않고 그 뜻에 순종하여 솔로몬이 성전을 짓기에 부족함이 없도록
모든 재정과 일군들을 붙여 주었습니다
이렇듯이 하나님의 자녀들은 온전하신 그 뜻을 알고 순종합니다
자기 뜻만 고집한다면 당신은 바리새인과 율법사에 속하는 이 세대 아이들입니다
그 부르심에 응답하지 않는 ‘이 세대’의 상태를 깨닫는 것이
오늘 저에게 엘리야의 심령으로 마음을 아비에게 돌이키는 큰 은혜였습니다.
또한 성령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하나님께 순종하며 나아가는 삶이
얼마나 귀한지 다시 한번 느끼게 되었습니다.
저와 같은 혼란과 마음의 닫힘을 겪고 계신 분들이 있다면,
오늘 이 말씀을 통해 위로받으시길 바랍니다.
세대 속에서 혼란스러워도 괜찮습니다.
그래서 이 세대 아이들의 무대가 세상 삶의 터전으로 분주한 장터로 비유된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마음을 열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으로 겸손히 하나님의 부르심에 귀를 기울일 때,
아들을 통해 아버지를 아는 지혜를 받게 될 것입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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