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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글 단편 묵상

바울이 보낸 골로새 편지(안타까운 분별)

by GOTOKINGDOM 2025. 5.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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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골로새서에서 나타나는 성도의 구분

골로새서 1:2에서 바울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골로새에 있는 성도들, 곧 그리스도 안에서 신실한 형제들에게 편지하노니…”

사도 바울이 단순히 ‘성도’라고 하지 않고, ‘신실한(πιστοῖς, pistois)’이라고 수식하고 있습니다.
이는 당시 교회 안에서도 '신실한 자'와 그렇지 않은 자가 있다는 뜻일 수 있습니다.

여기서 사용된 신실한(πιστοῖς, pistois)’는 ‘믿을 수 있는, 충직한, 신실한, 성실한’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유대인들이 이 단어를 사용할때는 좀더 정확하게 사용됩니다

유대인들은 혼자 골방에 있을때나 많은 사람들이 있을때나 동일하게 행하는 사람

또 내것이나 남의 것이나 동일하게 소중히 여기는 사람 

그리고 누가 보든 보지 않든 동일하게 일을 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대표적인 성경 인물이 다윗입니다

자신의 양을 칠때에나 다른 사람의 양을 칠때의 마음이 같은 자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왕으로 양을 치는 어린 다윗을 늘 지켜보고 계셨습니다

그런 다윗을 하나님은 내 마음에 합한 자라고 하셨습니다

그 종 다윗을 택하시되 양의 우리에서 취하시며 젖 양을 지키는 중에서 저희를 이끄사

그 백성인 야곱, 그 기업인 이스라엘을 기르게 하셨더니

이에 저가 그 마음의 성실함으로 기르고 그 손의 공교함으로 지도하도다(시78:70-72)

 

2. 성령이 임하셨는데 왜 불경건한 성도가 있을까?

a. 성령을 받은 것과 성령을 좇아 행하는 것의 차이

  • 갈라디아서 5:25: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
  • 성령이 임한 것은 새 생명의 시작일 뿐, 성령을 따라 살아가는 훈련과 순종은 지속적인 성장의 과정입니다.
  • 성령 받은 사람들 중에도 육신을 따라 살아가거나 게으르거나 신실하지 않은 사람들이 존재할 수 있습니다.

b. 은사 vs 열매

  • 고린도전서 12~14장을 보면, 성령의 은사는 놀랍도록 나타났지만, 그들은 시기, 분열, 음란, 교만으로 가득했습니다.
  • 성령의 임재와 은사는 있을 수 있지만, 성령의 열매(갈 5:22–23)는 성숙과 훈련을 통해 맺히는 것입니다.

성령을 받았는가? 보다 더 중요한 질문은
그 성령을 따라 살아가고 있는가?입니다.

신실함은 한 순간의 열정이 아니라,
하루하루 주님을 따라 걷는 자의 걸음에서 맺히는 열매입니다.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고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게 하시고” (골 1:10)

 

3. 그렇다면 분별은 어떻게 해야 하나?

a. 열매를 통해 분별함

  •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마태복음 7:16)
  • 성령이 임하셨는지 아닌지를 은사나 감정이 아닌, 삶의 열매, 즉 성품과 행위에서 드러나는 신실함으로 분별해야 합니다.
  • 종교성이 많은 사람들은 일시적으로 열매가 보이는듯하나 자원하며 기쁨의 헌신이 아닌 습관적일수 있습니다

b. 신실함은 성령과의 ‘동행’의 결과

  • 골로새서 1:10: “주께 합당하게 행하여…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고…”
  • 성령이 임했다면, 결국은 그 사람의 삶에 열매 지속적인 회개, 겸손함, 섬김의 자세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 성령은 모든 참된 신자에게 임하십니다.
  • 성령을 좇아 행하느냐, 육신을 따르느냐에 따라 신실한 성도와 불경건한 성도가 구분됩니다.
  • 분별은 은사나 열정이 아닌, ‘성령의 열매’와 ‘삶의 방향성’을 통해 이루어져야 합니다.
  • 골로새서의 핵심은, "그리스도 안에서의 새 생명"이 열매로 드러나야 한다는 바울의 간곡한 권면입니다.

4. 모두가 성령을 받았지만, 열매는 다르다?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에게 주시는 약속입니다.
그러나 성령이 임하셨다 해도, 모두가 그분을 좇아 살아가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 (갈 5:25)

신실함은 성령과 함께 사는 일상의 태도이며, 자발적인 순종의 열매입니다.
육체를 억제한다고 고행하고, 절제하고, 종교적인 모양을 내는 것처럼 보여도,
성령 없이 하는 경건은 참된 변화에 아무 유익이 없습니다.

 ‘운전 안 배우고 핸들만 붙잡은 사람’

신앙생활을 가끔 운전 연습에 비유하곤 합니다.
어떤 이는 차에 앉아 핸들을 붙잡고 앉아 있습니다.
엔진도 걸고, 라디오도 켜고, 좌석에 벨트도 했습니다.

그런데 출발은 하지 않습니다.
왜일까요?
운전하는 법을 배울 생각은 하지 않고, 자동차 안에서 형식만 갖췄기 때문입니다.

성령이 임하셨다면 이제는 출발해야 합니다.
방향은 그리스도가 머리 되신 곳을 향해,
속도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목적지는 신실함의 열매를 맺는 삶입니다.

 5.건강한 교회는 어떤 모습일까?

골 1:18에서 바울은 말합니다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시라…”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고, 우리는 그 몸의 지체들입니다.
머리 되신 그리스도로부터 모든 명령과 생명, 방향이 흘러나옵니다.

그러나 머리의 인도 없이 각 지체가 제 맘대로 움직인다면,

혹여 각 지체가 각자의 역활을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몸이 아닌 괴물이 됩니다.

건강한 교회는 그리스도의 형상입니다

모두 팔이 될수 없고 모두 다리가 될수 없듯이 그리스도께서

각 지체의 분량대로 직책을 나누어 주셨습니다 

 

바울은 골 2:19에서도 경고합니다

“머리를 붙들지 아니하는지라…”

사람의 철학, 전통, 율법주의, 겸손을 가장한 자기 수련 등은
머리이신 그리스도께 속한 것이 아니며, 진정한 성장도 거기서 나오지 않습니다.

자신의 생각과 지식으로 아니 성령으로 인도하셨다해도 그것은 자신에게 주신 분량입니다

교회 모든 지체들을 자신과 같이 만들려고 한다면 건강한 몸이 될수 없습니다

 

6. 골로새 교회에 침투한 거짓 교리

골 2장에서는 바울이 경고한 여러 형태의 거짓 교리가 소개됩니다

  1. 헛된 철학과 인간의 전통
    바울은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사로잡을까 주의하라"(골 2:8). 이는 당시 유행하던 헬라 철학과 인간의 전통이 복음의 진리를 흐리게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2. 율법주의와 의식주의
    일부 교사들은 음식 규정, 절기 준수, 안식일 등 유대교의 율법을 강조(골 2:16). 이는 그리스도의 완전한 구속을 믿지 않는 행위로 바울이 늘 말하던 다시 의문의 법으로 돌아가는 것이 됩니다.
  3. 천사 숭배와 신비주의
    "천사 숭배를 주장하며 그가 본 것을 의지하여 육신의 생각으로 헛되이 과장하고"(골 2:18)라는 말씀에서 보듯, 일부는 겸손을 가장하여 천사를 숭배하고, 환상과 신비로운 체험을 신앙의 기준으로 삼았습니다. 이는 그리스도를 머리로 삼지 않는 태도이며 자신을 스스로 특별한 존재로 높아진 상황입니다 
  4. 금욕주의와 육체적 고행
    "이런 것들은 자의적 경배와 거짓 겸손과 몸을 괴롭게 하는 데는 지혜 있는 모양이나 오직 육체를 따르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골 2:23). 일부는 엄격한 금욕 생활을 통해 경건을 추구했지만, 이는 실제로 육체의 욕망을 억제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요즘 어떤 이들은 건강을 위해 맨발로 산을 오르는 훈련을 합니다.
추운 겨울에도 신발을 벗고 거친 흙길을 걷습니다.
처음엔 의지가 멋져 보이고, 정신력도 강해집니다.

하지만 의사는 말합니다.
근본적인 건강엔 아무 도움이 안 됩니다. 오히려 감염 위험만 커져요.”

신앙도 그렇습니다.
몸을 괴롭게 한다고 해서 마음이 정결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자의적 경배와 거짓 겸손과 몸을 괴롭게 하는 데는 지혜 있는 모양이나 

육체의 정욕을 금하는 데는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즉, 종교적 고행이나 ‘절제 훈련’처럼 보이는 행위들이
진정한 죄의 뿌리와 싸우는 데는 무기력하다는 뜻입니다.

진짜 변화는 성령을 좇는 삶, 머리이신 그리스도께 순종하는 것으로만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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