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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글 단편 묵상

호세아 13:8-14 묵상 – 찢으시는 하나님, 구속하시는 하나님

by GOTOKINGDOM 2025. 5.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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찢으시는 하나님, 구속하시는 하나님

호세아서 13장은 하나님의 분노와 심판이 절정에 이르는 장면을 그리고 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떠나 우상에게 마음을 주었고, 번영할수록 자신을 더 높이며 하나님을 잊었다.

그 결과 하나님은 짐승의 형상으로 그들에게 묘사하신다.

 

8절에서 하나님은 자신을 새끼 잃은 곰과 같은 분으로 묘사하셨다.

“나는 새끼를 잃은 암곰 같이 그들을 만나 그의 염통 꺼풀을 찢고”

여기서 '염통 꺼풀을 찢는다'는 표현은 히브리어로 "וְאֶקְרַע סֹכֵר לִבָּם" (ve'ekra sokher libbam)이다.
"크라"(qara)는 '찢다', "소케르"(sokher)는 '덮개' 혹은 '막'이라는 뜻이며, "리밤"(libbam)은 '그들의 마음'을 가리킨다.
즉, 단순히 육체를 찢는 것이 아니라 마음 깊숙한 중심부를 찢는 행위로,

그들의 완고함과 감각 없는 영혼을 강제로 흔드시는 심판을 나타낸다.

하나님의 분노는 단순한 감정의 폭발이 아니라, 자녀를 잃은 어미 곰의 격렬한 슬픔과 분노가 뒤섞인 복합적인 고통이며

이 분노는 죄를 대면하시는 거룩한 하나님께서 잃어버린 자녀에 대한 애끓는 사랑 속에서 나오는 것이다.

 

또 암사자 같이 삼키시겠다고 하셨다 אַרְיֵה הַמְּעַטֵּר 아례 하므앗테르 (aryeh ham’atter):

אַרְיֵה (aryeh): 사자 (lion) , הַמְּעַטֵּר (ham’atter): 암컷, 암사자 (literally ‘the one who has young’

또는 ‘she who has a crown’라는 의미도 있음

하나님의 분노가 “암사자”, 또는 “새끼를 가진 사자”라는 의미로, 본문에서는 “새끼 잃은 암곰”과 같이

포악하고 사나운 ‘암사자’그리고 새끼를 가진 상태라 극도로 예민해진 공격성을 나타낸다

 

그리고 들짐승이 그들을 찢으리라 하심은 어떤 존재를 도구로 상용하시겠다는 뜻이다

히브리어: חַיַּת הַשָּׂדֶה 하야트 하사데(chayat hasadeh)

חַיַּת (chayat): 짐승, 동물 (beast, animal) , הַשָּׂדֶה (hasadeh): 들, 들판 (field, wilderness)

 “들짐승” 또는 “야생 짐승”을 뜻하며, 본문에서는 하나님의 분노와 심판의 상징으로 사용됨.

실제로 하나님은 앗수르를 사용하셔서 북이스라엘을 심판하셨다

그러나 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 받으심의 말씀이시기도 하다

다윗이 시편에 기록하기를

많은 황소가 나를 에워싸며 바산의 힘센 소들이 나를 둘렀으며

내게 그 입을 벌림이 찢고 부르짖는 사자 같으니라다(시 22:12-13)

 

이제 12절로 가 보면, 하나님의 심판이 일시적인 감정이 아니라 오랜 기다림 끝에 쌓인 것임을 알 수 있다.

“에브라임의 죄악이 봉함되었고 그의 죄가 저장되었느니라”

‘봉함되었다’는 표현은 히브리어로 "צָרוּר עֲוֹן אֶפְרַיִם" (tzarur avon Efraim)이다.
"차루르"(tzarur)는 ‘묶다’, ‘싸매다’, ‘보관하다’는 뜻으로, 마치 판결을 위한 증거물이 보관되듯 

죄가 하나님 앞에 저장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회개하지 않은 죄는 하나님 앞에 보관되어 반드시 드러날 날을 기다리고 있는 죄다.

 

13절에서는 해산의 비유가 나온다.

“해산이 임박한 여인의 고통이 그에게 임으리니 그는 지혜 없는 자식이라 

해산할 때가 되어도  나오지 못하느니라”

‘지혜 없는 자식’은 히브리어로 "בֵּן לֹא חָכָם" (ben lo chakam)이다.
즉, "지혜(호크마, חָכְמָה)"가 없는 아들이라는 말이다.
하나님이 주신 출산의 기회, 다시 말해 회개의 기회를 놓치고, 마치 태에서 나올 줄 모르는 아이처럼 

고통만 겪고 변화하지 못하는 상태를 가리킨다.

 

그러나 이 무서운 심판의 장면 한복판에서 놀라운 반전이 일어난다. 14절이다.

“내가 그들을 스올의 권세에서 속량 하며 사망에서 구속하리니”

‘속량 하다’는 히브리어로 "אֶפְדֵּם" (epdem), 동사 padah에서 나왔다.
이는 값을 지불하고 되찾다는 뜻으로, 친족 구속자의 행위를 의미한다.
‘구속하리니’는 "אֶגְאָלֵם" (eg'aleim), 동사 ga’al에서 왔다.
이 역시 되사다, 가까운 자가 속량 하다는 의미로, 

구약에서 하나님이 구속자로서 자기 백성을 되찾는 사랑의 행위를 나타낼 때 자주 사용된다.

양을 보호하시는 예수님 사진가시 면류과 받으시며 희로하는 군사 사진

 

"פָּרַשְׂתִּי בַּגַּת לְבַדִּי, וּמֵעַמִּים אֵין אִישׁ אִתִּי; וְאֶדְרְכֵם בְּאַפִּי, וַאֲרְמְסֵם בַּחֲמָתִי; וְיֵז נִצְחָם עַל-בְּגָדַי, וְכָל-מַלְבּוּשַׁי אֲגָאַלְתִּי."

"만민 중에 나와 함께한 자가 없이 내가 홀로 포도즙 틀을 밟았는데, 내가 노함으로 말미암아 무리를 밟았고,

분함으로 말미암아 짓밟았으므로, 그들의 선혈이 내 옷에 튀어 내 의복을 다 더럽혔음이니라."(사63:3)

 

이사야 말씀처럼 하나님의 진노를 그 누구도 감당할수 없기에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혼자 그 모든 진노를 받으신 것이다 

결국은 하나님은 우리에게 내려질 진노를  스스로 받으신 것이다

그러니 호세아서에 기록된 진노는 자신을 찢는 심판이 되는 것이다 

 

“사망아 네 재앙이 어디 있느냐, 스올아 네 멸망이 어디 있느냐”(호 13:14)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이 이김의 삼킨 바 되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응하리라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고전 15:54-55)

 

호세아 말씀은 고린도전서 15장 55절에서 사도 바울이 인용하여 부활의 승리 선언으로 연결한다.
사망의 권세는 하나님 앞에 무력하다.
죽음도 스올도, 하나님의 구속을 막을 수 없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망을 깨트리고 승리하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망은 이김에 삼킨 바 되어 이미 승리하신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를 흔들지 못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일평생 죽기를 두려워하여 사망에 종노를 하는 자들을 놓아주셨고

죄인들을 구속하셨기 때문이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으로 들아가는 관문일 뿐이다

사망은 이미 이기신 그리스도 생명 안에 삼켜졌기 때문이다

그럼 죽음 뒤에 우리는 어디서 눈을 뜨게 될까?

당연히 생명 안에서 눈을 뜨는것이다   할렐루야!

 

이 구절 마지막 부분의 "뉘우침이 내 눈앞에서 숨겨졌으리라"는

히브리어로 "וְנֹחַם יִסָּתֵר מֵעֵינָי" (venocham yissater me'enai)로, 문자적으로는
"내 눈앞에서 긍휼히 감추어졌다"는 뜻이다.
즉, 지금은 긍휼을 유보하고 공의로 심판하겠다는 단호한 선언이다.
그러나 앞의 구속 선언을 고려할 때, 이는 영원한 유기가 아니라 징계 가운데 잠시 가려진 은혜이다.

하나님은 찢으시는 분이시지만, 찢기 위한 목적이 아닌 더 큰 회복을 위해서이다 

죽음까지 삼켜서라도 다시 살리기 위한 것이다.
그분은 심판자이시나, 궁극적으로는 구속자이시다.

나는 지금 어떤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서 있는가.
마음을 찢고 회개의 자리로 나아가고 있는가.
아니면 하나님께서 직접 찢으셔야 할 만큼 완고하게 굳어진 마음을 가지고 있는가.

하나님의 심판은 무섭지만, 그보다 더 크고 깊은 하나님의 사랑이 그 심판 너머에 기다리고 있다.
생명 되신 그리스도께서 나의 죽음을 삼키시고 나를 품으신 암사자 되신다.
그분이 나의 하나님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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