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가 내 앞에 보일러 오니 이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냐
내 마당만 밞을 뿐이니라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내가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내 마음이 너희의 월삭과 정한 절기를 싫어하나니
그것이 내게 무거운 짐이라 내가 지기에 곤비하였느니라(사 1:12-14)
오늘부터 성경에 나오는 제사를 묵상해 보려고 한다
오래전부터 말씀을 들을 때마다 마음에 무거운 짐으로 쌓였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로 드린 일과 솔로몬이 일천 번제를 드린 말씀 부분이다
자신의 생명과도 같은 마지막 우상이었던 독자 이삭을 하나님께 드렸을 때
마지막 싸움을 완성했다 하는 것과 또 솔로몬이 자신의 내면의 악을 일천번이나
죽이는 싸움으로 하나님께 올려드려 하나님이 지혜를 주셨다는 설교 말씀을 들었을 때
충분히 설득력 있는 풀이라고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것만이 정답이라고 또 옳다고 하면 안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나에게 교훈하신 성령님이 기록된 말씀의 지혜로 알려주신 내용도 한번 나누어 보려고 한다
먼저 아브라함도 솔로몬도 공통된 것은 번제로 드렸다는 것이다
번제는 모든 제사에 부합되는 한 부분이다
그러나 번제만으로 독립된 제사가 따로 있었다
그래서 특정한 인물에게 명령해진 번제가 독립된 번제인지
어떤 다른 제사에 부합된 번제인지 분별해야 한다
번제 - 올라 ( עֹלָה ʿolah )“오르다, 올라가다”
제물의 어떤 부분도 사람에게 돌아가지 않고, 모두 하나님께 불로 태워 올려지는 제사
죄 사함의 의미보다도, 예배자 자신을 하나님께 온전히 드리는 헌신과 복종의 표현
레 1:4"그가 번제물의 머리에 안수할지니 그것을 기쁘게 받으심이 되게 하며,
그를 위하여 속죄가 되게 할지니라"
속죄가 되게 할지니라(순전히 죄만 관계된 것이 아니다)
כָּפַר kaphar - 덮다, 덮어서 가리다, 화해하다, 속죄하다, 역청으로 위에 칠하다
관계 회복과 접근 허용의 목적
예배자가 하나님께 나아가기 위해, 자신을 드림으로 ‘죄의 장애’를 가리고 관계를 여는
삶을 드리는 헌신의 시작으로서의 "속죄"이다
구별된 번제는 “나 자신을 하나님께 온전히 드리는데,
죄로 막힌 관계를 덮고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여는 것”이다.
레 4:20 — “그가 그 속죄제로 그들을 위하여 속죄한즉 그들이 사함을 받으리라”
כִּפֻּרִים kippurim 속죄, 속죄일 (ex: 욤키푸르 - 대속죄일)
‘속죄제’는 죄의 결과에 대한 제거, 죄인의 용서가 목적이며 의도치 않게 지은
죄를 제물에 전가하고 피를 뿌리고 태움으로 죄인 자체를 정결케 하는 목적이다
번제와 속죄제의 구별은 드리는 제물의 피를 처리하는 방법에서 다르다
번제로 드리는 제물의 피는 제단의 사면에 바른다
속죄로 드리는 제물의 피는 모두 제단 아래 쏟아야 한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로 드리려 할 때, 하나님께서 수양을 대신 준비하심"(창 22:1-13)
"솔로몬이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부친 다윗의 법도를 행하되
오히려 산당에서 제사하며 분향하더라 이에 왕이 제사하러 기브온으로 가니
거기는 산당이 큼이라 솔로몬이 그 단에 일천 번제를 드렸더니"(왕상 3:3-4)
엘리야가 갈멜산에서 바알 선지자들과의 대결에 번제로 하나님께 드릴 때,
하나님은 하늘에서 불이 내려 제물을 사르신다(왕상 18:36-38)
또 히스기야 왕이 성전을 정결케 하고 유월절을 지킬 때에 수많은 번제가 드려졌다
그 모든 번제와 속죄제로 히스기야 왕과 방백들이 즐겨 드리는 자원한 예물이
번제와 속죄제로 여호와 하나님께 드려졌다(대하 29,30장 참고)
그러므로 아브라함이 이삭을 드린 번제는 거절할 수도 있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몰렉에게 제사를 드리는 것과 같이 자녀를 불로 지나게 하는
가증한 숭배 형태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언약을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다고 했다
약속의 씨로 주셨고 그 자손이 하늘의 별과 같이 될 것이라 하셨기에
반드시 다시 살리실 것을 믿었다고 기록이 되어 있다
저가 하나님이 능히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히 11:19)
그래서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로 드린 것은 믿음으로 행하는 전적인 헌신인 것이다
죄와 상관없이 즐겨드리는 믿음의 옳은 행실인 것이다
그것을 뒷받침하는 말씀은 약속의 자녀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고 하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곧 하나님이 믿음을 시험 하시 것입니다
그러니 내 죄 때문에 하나님께 인정함을 받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너의 우상인 하나밖에 없는 사랑하는 독자를 나보다 더 사랑하니 내놓아라
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약속의 씨라고 하시고 그 언약을 이삭으로 이루시겠다고 하신
하나님을 끝까지 신뢰하는지 그 믿음을 시험하신 것이다
내 안에 우상으로 자리 잡고 있는 마지막 내 생명과도 같은 사랑하는 아들을 믿음으로
드렸을 때 비로써 믿음을 증명했다 해도 아주 좋은 깨달음입니다
그러나 그것만이 정답이라 하면 안 됩니다
솔로몬이 일천 번제를 드리듯이 내면에 죄악을 죽여 제사 지냈다고 해도 괜찮습니다
그러나 솔로몬이 하나님을 사랑하여 자원해서 일천 번제로 헌신한 것으로 보아도
구속의 역사에 아무런 해가 되지 않습니다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 않고 뭔가 더 심비로운 것을 깨달은 것과 같이 비밀히 나누는 것은
성경적이지 못합니다
물론 네로 박해로 도미티아 핍박으로 동굴과 숲 속과 광야로 도망 다니는 환란의 시기라면
이해가 됩니다 그것이 믿음의 장 히 11장에 수많은 증인들입니다
엘리야와 바알 선지자의 대결에 행하는 번제도 동일한 일입니다
바알 선지자들을 보십시오
아침부터 낮까지 그들의 신을 불렀으나 아무런 응답이 없자 큰소리치며
피가 흐르기까지 칼과 창으로 자신의 몸을 상하게 자해했습니다
그러나 엘리야가 백성들을 가까이 부르며 무너진 여호와의 단을
수축하는데 동참시킵니다
여러분 그 백성들이 죄가 없었나요?
엘리야가 너희가 어느 때까지 바알과 하나님 사이에서 머뭇거리겠냐고
호통을 첬으나 그들이 하나님 편으로 서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그 백성들의 번제를 하나님은 응답하신 것입니다
엘리야가 뭐라고 기도드렸습니까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이스라엘 중에서 하나님이 되심과 내가 주의 종이 됨과
내가 주의 말씀대로 이 모든 일을 행하는 것을 오늘날 알게 하옵소서
여호와여 내게 응답하소서 이 백성으로 주 여호와는 하나님이신 것과
주는 저희의 마음으로 돌이키게 하시는 것을 알게 하옵소서(왕상 18:36-37)
이 기도에 하나님은 바로 불로 응답 하셨습니다어디 한 구절 죄를 사해 달라는 말이 있습니까죄와 상관없이 전적인 헌신입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예를 더 살펴보기 원합니다히스기야가 선한 왕으로 여호와 보시기에 기쁘셨습니다그러나 히스기야가 죄가 없었습니까하나님의 전에 있는 금과 기명을 다 앗수르에 조공으로 바쳤던 왕입니다성전 벽과 기둥의 금을 다 벗겨서 보냈습니다 또 죽음을 면하고 생명을 15년 연장받은 후에 바벨로 사자들에게내탕고를 모두 보이며 자랑했습니다히스기야가 왜 그랬을까요바로 자신의 연약함에 속한 마음의 교만 때문입니다그런 히스기야가 성전을 정화하고 나라와 성소와 유다를 정결하게 위해번제와 속죄제를 드렸습니다 유월절을 드릴 때에 제사장도 백성들도 정결 예식으로 준비되지 않았음에도하나님은 그 제사를 기쁘게 받으셨습니다
그런데 제사장이 부족하여 그 모든 번제 짐승의 가죽을 능히 벗기지 못하는 고로
그 형제 레위 사람이 그 일을 마치기까지 돕고 다른 제사장의 성결케 하기까지
기다렸으니 이는 레위 사람의 성결케 함이 제사장들보다 성심이 있었음이라(대하 29:34)
많은 무리는 자기를 깨끗게 하지 아니하고 유월절 양을 먹어 기록한 규례에 어긴지라
히스기야가 위하여 기도하여 가로되 선하신 여호와여 사하옵소서
결심하고 하나님 곧 그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를 구하는 아무 사람이든지
비록 성소의 결례대로 스스로 깨끗케 못하였을지라도 사하옵소서 하였더니
여호와께서 히스기야의 기도를 들으시고 백성을 고치셨더라(대하 30:18-20)
이 말씀을 보면 여호와께서 정하신 규례나 절차들을 전혀 지키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은 모든 것을 다 사하여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중심을 보신다고 하셨습니다
죄를 범하고 범하지 않고 보다 그 마음이 어떡한지 더 중요시하시는 분이십니다
물론 죄를 안 지어야 합니다 그러나 연약한 인간은 또 죄를 범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 죄로 얼마나 애통해하는 마음인지 그 중심을 보고 계십니다
또 곁모습은 경건하고 거룩한 삶의 모습이 보일지라도 그 마음의 교만을
하나님은 다 알고 계십니다
우리가 악한 영들과 싸우며 죄에 대해 피 흘리기까지 대항하는 것은
복음을 지키기 위한 믿음 때문입니다
복음 때문에 받는 핍박 때문에 흘리는 피인 것이지 나의 육신의 죄와 세상 정욕 때문에
흘리는 피가 아닌 것입니다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고 진리를 떠나 허탄한 이야기로 돌이키리라”(딤후 4:3–4)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성경에 기록된 대로 받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귀가 가려워서(늘 듣던 말씀이라 시시해진 것입니다)
자기 사욕을 따라(고급진 수준으로 자신을 스스로 높인 것입니다)
스승을 많이 두고(신비로운 체험이나 신학적 고급 지식을 가르치는 선생을 말합니다)
진리를 떠나 허탄한 이야기(성경에 기록된 말씀보다 신비로운 체험이나 영적 존재를 보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지금 당신에게 일어나고 있는 일들입니다
다른 사람 핑계할 수 없습니다
모두 당신의 마음의 교만으로 선택한 당신 때문입니다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귀신을 쫓아내며…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너희에게 밝히 말하되,
나는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 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마 7:22-23)
정말 두렵고 떨리는 말씀이다
일단 내가 선지자 노릇을 하고 있는지.....
귀신을 쫓아내고 있는지......
많은 권능으로 행하고 있는지.....
먼저 점검해 본다
일반 성도라면 어느 정도 행하고 있지만 주님 앞에 서서 이렇게 자랑할 만큼은 아닐 것이다
그럼 대부분 사역자나 목회자들 위주로 주신 말씀일 것이다
모든 목회자들이 이 말씀을 볼 때마다 정말 두렵고 떨리지 않을까 한다
거룩한 두려움은 우리 영혼에 유익일 것이다
그 누구도 주님 앞에 서서 이런 말도 하지 말기를 원하며 또 주님깨 이런 말씀을
듣는 일도 없기를 바란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빌 2:13)
우리를 의의 길로 인도하시고 성장시키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안에 행하신다고 하시잖아요 그런데 우리 안에 성령이 안 계시고 마귀가 있다고요?
우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신다고 하시잖아요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다 하나님의 역사 안에 있는 일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무엇을 두려워해야 할까요
우리 아버지 하나님께서 우리를 아버지 집으로 인도하시는데 실수하실까요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요일 5:4)
당신이 아무리 금욕주의라도 피 흘리기까지 그 증거가 나타나도
귀신을 쫓을때마다 귀신이 발악을 해도 늘 같은 현상이라면
다시 한번 주님 앞에 잠잠히 긍휼을 바라며 기다리세요
주님이 만나 주실 때까지 인내하며 가난한 자의 마음으로 기다리세요
히브리인들이 말하는 가난한 자는 며칠을 굶어 눈에 보이는 것이 없을 상태라고 합니다
그렇게 주님의 말씀이 갈급한 상태를 표현하는 것이겠지요
예전에 유명했던 한 여성 주교 박 모 씨가 생각이 납니다
그도 처음엔 성령으로 사역을 했다지요
그러나 점점 사악한 악령의 힘을 빌어 자신의 사역을 키워나갔습니다
맨 손으로 암 덩어리를 꺼내고 앉은뱅이를 그 자리에서 일으키고
폐병 환자 등을 피가 나도록 손바닥으로 때려서 피를 다 토해내게 했지요
정말 놀랍도록 귀이한 현상들로 치료되는 것을 영상으로 본 것이 기억이 납니다
그러나 온전한 그리스도인들은 그것이 사이비라 분별을 하고 판단했습니다
그런데 그때 치료를 받은 사람과 많은 이적을 체험한 그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을 할까요
또 신천지도 그렇습니다 그들이 섬기고 있는 그 사람 신도 그들은 진짜로 보는 것입니다
깨어나십시오
우리는 더 이상 선지자가 필요 없고 선생도 필요 없고 이적이나 기사도 필요 없습니다
이미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 이루셨습니다
이제 곧 주님 오 실 텐데 병 좀 들어 있음 어떻습니까
가난하여 돈이 없어 맛있는 것 못 먹으면 어떻습니까
우리 주님 곧 오십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주신 참 진리 안에서 성령으로 인도받는 삶 안에서
다른 곳에 마음 빼앗기지 마시고 성도 간에 사랑으로 서로 섬기며
그들 안에 계신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기쁘게 헌신하시면 됩니다
그것이 그리스도를 만난 자의 온전한 삶입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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