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각 그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사사기 21:25)

오늘부터 사사기를 묵상하려고 합니다.
사사기는 율법을 받은 이스라엘이 육신의 지도자들이 모두 죽은 후에
하나님이 주신 약속의 땅에 들어가서 나라를 이루며 사는 삶을 기록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자손을 약속하셨고 또 땅을 약속하셨습니다.
그것이 사사기에는 육신의 언약은 모두 이루어졌습니다.
하지만 사사기 제일 끝 절은 "그들에게 왕이 없으므로 각각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다."로
끝이 납니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단 한분 예수 그리스도를 왕으로 정하셨습니다.
그러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왕이 되심을 원하지 않았다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것도 참으시고 백성들이 원하는 왕을 세워 주셨습니다.
그렇게 이 땅에 하나님 백성들에게도 왕과 땅과 백성을 이루는 이스라엘 나라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지만 룻기 배경도 사사 시대이며 사무엘은 마지막 사사였습니다.
앞으로 사사기를 나누게 되면 언제 끝이 날지 모르겠지만 시간적 여유를 가지고
이전보다 좀 더 깊이 있게 묵상을 해 보려고 합니다.
왜 갑자기 사사기를 묵상하게 되었는지 짧은 간증을 하자면 세상이 분명 말세 중에
더 말세라고 느끼게 되는데 주님께서는 왜 이리 세상을 그냥 두고 보실까?
하다가 역사는 반복되며 성경 역사 안에서 그 답을 찾아서 성령님께 여쭤보자 하고
기도를 드렸습니다.
"주님 제가 성경 어느 곳을 묵상하며 성령님과 함께 공부하기를 원하세요?"
그때 주신 감동이 "믿는 자들이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한다"였습니다.
그래서 사사기 말씀이 떠올라서 사사기를 묵상하며 답을 찾아보려고 한 것입니다.
저는 세상 탓을 했는데요
주님은 세상이 문제가 아니라 믿는 우리가 문제라 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세상에 비추이는 빛 그리고 변질되지 않도록 보존하는 소금의 역할을 우리가 하지 않아
만물이 탄식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 프롤로그-
지인에게 들은 소식이 9월 9일에 한국에서 엄청난 배도의 예배가 있을 거라는 소식입니다.
그런데 역사는 반복된다는 말이요 우연이 아닙니다.
9월 9일은 일본 압제 아래 한국이 일본 천황의 태양신 앞에 신사참배하였던 날입니다.
(1938년 9월 9일 = 장로교 총회가 신사참배를 공식적으로 결의한 날)
대다수 목사들이 우상 태양신에게 무릎 꿇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청년들은 학교에서 우상에게 참배를 하고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고 우리는 자유를 얻었지만,
이어서 9월 9일 북한에서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수립이 되었던 날입니다.
이 날이 김 ㅇㅅ 정권으로 태양신을 섬기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또 김 ㅈㅇ 정권으로 넘어가는 날도 9월 9일이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자유를 얻은 땅에서 9월 9일 에큐메니컬 세계 평화 대회가 열린다 고합니다
에큐메니컬을 주장하는 교회의 외침은 자신들이 복음주의라고 합니다
(NCCK, WCC, CCA, WEA, 카톨릭 등등 이들은 혼합 종교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열매는 다신주의 곧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만 구원이 있다는
성경 말씀을 범하여 모든 종교에 구원이 있고 같은 하나님이라고 주장할 뿐
그들이 외치는 평화는 모두 거짓 평화입니다.
성경 말씀을 위반하며 평화를 외친다면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가장 미워하시는
우상 숭배이며 배도인 것입니다.
참 평화는 오직 한분 예수 그리스도 왕이 임하시는 그날에 이루어집니다.
저는 외국에 살고 있는 이민자입니다.
요즘 들어 느헤미야가 생각이 많이 납니다.
그가 고국에 무너진 성전 소식을 들으며 탄식하며 기도를 드렸습니다.
저에게도 그런 애통함이 울컥울컥 일어날 때가 있는데요 하지만 느헤미야와 같은
민족애가 없음을 그방 깨닫게 되어 회개가 될 뿐입니다.
저도 고국에 가족들이 있습니다.
이제 막 믿음의 불이 붙어 열심히 시작된 가족들의 안전과 믿음의 경주가 염려되고
이제 막 태어난 조카 손녀가 앞으로 자신의 성적 정체성을 어떻게 주장하게 될까 걱정이 되어
고국의 현재 상황들이 안타깝기만 합니다.
이렇게 민족애가 없는 저에게도 이런 애통함을 주시는 것을 보면 주님께서
느헤미야를 통해 성벽을 쌓는 일에 조금이나마 동참하기를 원하시는 것 같습니다.
고국을 위해 애통하며 기도할 수 있는 마음을 더욱 부어주시기를 간구합니다.
그럼 본격적인 묵상으로 들어갑니다.
먼저 서론으로 사사기 뜻이 무엇인지 원어로 살펴보겠습니다.
구약에 사사는 재판관이라는 뜻입니다.
히브리어שֹׁפֵט 쇼페트(Shofet) - 재판관, 사사, 판결하는 자, 다스리는 자이며
동사 שָׁפַט(샤파트)에서 나왔습니다.
기본 뜻은 재판하다, 판단하다, 다스리다, 통치하다, 변호하다, 구원하다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샤파트가 단순히 “죄를 판결하다”만이 아니라 “억울한 자를 위해 정의를 세우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통치하다”라는 하나님이 세우신 자들인 것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세우신 사사 기드온, 바락, 입다, 삼손 등이며
세상의 재판관과는 다름이 많은 모습들로 나타납니다.
사사의 역할을 히브리어 글자 하나하나 파자로 의미를 풀어보면 더욱 선명해집니다.
히브리어는 원래 그림문자적 의미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각 글자의 상징을 살펴보면
단어가 말하고자 하는 의미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습니다.
שפט = 신 + 페 + 테트
ש 신(Shin)
고대 그림: 이빨, 불꽃
의미: 불 심판, 하나님의 거룩함 소멸과 정결
영적 의미: 하나님의 임재를 불로 나타내시며 정결하게 하는 심판
פ 페(Pe)
고대 그림: 입
의미: 말 선포 명령, 권위 있는 발언
영적 의미: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입 판결을 선언하는 권위
ט 테트(Tet)
고대 그림: 둘러싸인 뱀 또는 태
의미: 감추어진 내면, 잠재된 생명
영적 의미: 겉이 아니라 속을 판단함, 숨겨진 것을 드러냄, 선과 악을 분별
사사(재판관)שֹׁפֵט 쇼페트(Shofet)는"하나님의 임재로 말씀이 입을 통해 선포되어
사람의 숨은 의도를 드러내고 정결하게 세우는 자"라는 영적 의미를 갖습니다.
사사기의 전체 묵상 의미들은 역사가 반복되듯이 계속 진행되고 있음을 암시합니다.
차차 나누게 되겠지만 사사기에는 "오늘날까지...."라는 표현을 7번을 사용하면서
저자의 의도가 완전수 7을 사용하여 천지창조 7일에 안식하신 하나님께서
아직도 구원의 완성에는 "하나님의 일하심이 진행 중"임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사사기 끝은 그들에게 왕이 없으므로...이지만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닙니다.
"여호수아가 죽은 후에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묻자와 가로되
우리 중 누가 먼저 올라가서 가나안 사람과 싸우리이까?"(삿 1:1)
여호수아가 죽은 후에 그들은 한동안 하나님을 의지했습니다.
모세도 죽고 아론도 죽고 여호수아도 죽었습니다.
그런 가운데 하나님은 누구를 특정해서 지도자를 세우지 않으셨습니다.
그때는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물으며 또 여호와께서는 그들에게
대답도 하셨습니다.
어떤 형상으로 임하시고 답변을 하셨지는 성경으로는 알 수 없지만
성령으로 가능하였음을 우리는 이해될 것입니다.
"유다가 올라갈지니라 보라 내가 이 땅을 그 손에 붙였노라"(삿1:2)
יְהוּדָה יַעֲלֶה
예후다 야알레
יְהוּדָה 예후다 - 찬양, 감사, 여호와를 찬송함
יַעֲלֶה 야알레 어근은 עלה 알라 - 올라가다, 높아지다
하나님께서 누가 먼저 싸울까요 묻는 백성들에게 “찬양을 올릴지어다.”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것은 이미 승리한 싸움이기 때문입니다.
"보라 내가 이 땅을 그 손에 붙였노라"
이미 주신 땅이니 받은 것에 감사 찬양을 올려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유다가 싸우기도 전에 이미 승리의 길을 열어 놓으셨습니다.
"여호와께서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을 그들의 손에 붙이신지라"(삿1:4)
하나님은 백성들과 전쟁에서 한번도 떠나 계시지 않으시고 함께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결국 하나님을 완전히 믿는 것에는 이르지 못했습니다.
"여호와께서 유다와 함께 하신 고로 그가 산지 거민을 쫓아내었으나
골짜기의 거민들은 철병거가 있으므로 그들을 쫓아내지 못하였으며"(삿1:19)
누가 문제입니까?
하나님께서 철병거를 무서워하실까요?
하나님이 분명 유다와 함께 하신 고로 산지 거민을 쫓아낼수 있었습니다.
철병거를 가진 거민들도 하나님이 함께하셨으니 당연히 쫓아내야 맞습니다.
그런데 산지 거민은 쫓아냈는데 골짜기 거민은 철병거를 가져서 쫓아내지 못했다면
그들은 여호와께서 그 철병거보다 보족하다 생각한 것입니다.
또한 산지 거민은 철병거가 없었기에 자신들의 힘으로 쫓아낼 수 있었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하나님은 이들의 생각과 싸움에 더 이상 관여하지 않으십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분배된 기업에서 그 땅 거민을 쫓아내지 못하고 남겨둔 열국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들을 시험하시는 데 사용하실 것입니다.
"남겨두신 이 열국으로 이스라엘을 시험하사 여호와께서 모세로 그들의 열조에게
명하신 명령들을 청종하나 알고자 하셨더라."(삿3:4)
어느 시대이든 가장 부요하고 세상에 거짓 평화가 있을때 종교는 타락했고
우상도 가장 많이 드러나는 시대였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으로 지혜를 얻은 솔로몬 시대에도 그랬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지혜와 부요함으로 온 세상을 살리는것이 아닌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예루살렘에서 섬겼습니다.
오늘날도 그와 동일합니다.
눈에 보이는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그 시간이 오래지 않아 이스라엘 자손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배반하여 우상을 섬기며
결국 여호와를 버렸습니다.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고 바알과 아스다롯을 섬겼으므로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사 노략하는 자의 손에 붙여 그들로 노략을 당케하시며...."(삿2:13-14)
그렇게 여호와께 범죄 하여 백성들의 마음이 떠나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벌하시는 시험을 하시고
또 백성들이 고통가운데 부르짖으면 사사를 세우사 대적의 압박에서 구원하셨습니다.
사사 시대는 그렇게 하나님이 주셔서 들어간 약속의 땅에서 백성들을 시험하시며
훈련하셨습니다.
그렇게 끝없이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를 버리고 우상을 섬기게 되고 하나님은 진노하시지만
늘 긍휼을 베푸시며 사사를 세우셔서 백성들을 구원하심이 반복되었습니다.
사사기 첫 사사가 세워지기까지 이스라엘 자손들은 하나님이 주신 땅에서 80년을
구산 리사다임 즉 그들의 대적을 섬겼습니다.
오늘은 사사기 묵상 서론으로 여기까지 나누겠습니다.
앞으로 첫 사사 웃니엘부터 시작해서 세상 재판관과 너무도 다른 하나님이 세우신 사사는
어떻게 하나님의 영광을 드리내며 백성들을 구원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묵상 글을 함께 나누며 이미 알고 계셨던지 아니면 새로운 것을 알게 되셨더라도
한번 읽고 끝내지 마시고 느낀 내용들을 가지고 성령님께 꼭 여쭤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저도 요즘 제가 올린 글이지만 거듭해서 다시 읽고 있습니다.
늘 놀라운 것은 내가 묵상해서 올린 글이기에 모두 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아니었습니다.
기억이 나지 않는 것도 많지만 기억이 나는 것도 그때 주신 감동과 또 다른 은혜로
깨달아질 때가 너무 많습니다.
정말 섰다고 생각하면 넘어질까 두려워해야 합니다.
저는 요즘 매일을 그렇게 거룩한 두려움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것이 살아있는 거 같아 깊은 감사가 절로 입술을 통해 고백이 되고 있습니다.
그럼 이 글을 함께 읽고 묵상하시는 모든 형제와 자매님들이 동일하게
성령님의 충만함이 임하시기를 축복드립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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