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에 하나님의 사람이 여호와의 말씀으로 인하여 유다에서부터 벧엘에 이르니
마침 여로보암이 단 곁에 서서 분향하는지라
하나님의 사람이 단을 향하여 여호와의 말씀으로 외쳐 가로되
단아 단아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다윗의 집에 요시야라 이름하는 아들을 낳으리니
저가 네 위에 분향하는 산당 제사장을 네 위에 제사할 것이요
또 사람의 뼈를 네 위에 사르리라 하셨느니라 하고
그날에 저가 예조를 들어가로되 이는 여호와의 말씀하신 예조라
단이 갈라지며 그 위에 있는 재가 쏟아지리라 하매
여로보암 왕이 하나님의 사람의 벧엘에 있는 단을 향하여 외쳐 말함을 들을 때에
단에서 손을 펴며 저를 잡으라 하더라
저를 향하여 편 손이 말라 다시 거두지 못하며 하나님의 사람의 여호와의 말씀으로
보인 예조대로 단이 갈라지며 재가 단에서 쏟아진지라 (열왕기상 13:1-5)

<플롤로그>
사실 오늘 묵상은 2주 동안 성령님께 신음하며 완결했던 글입니다
그러나 어제 제가 짧은 꾀를 부려서 마귀가 틈을 타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완성된 글이 모두 삭제되고 말았습니다
여러 번 확인했고 삭제될까 저장한 후 다시 확인했는데도 이런 일이 생겨
속상해서 계속 주님만 찾았습니다
왜? 왜? 제가 꾀를 부리는 바람에 이런 일이.....
이전에는 마귀가 방해하면 오히려 흥분이 되어 더 열성적이었던 파이팅이 넘쳤던 때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지친 건지 아니면 열정이 사라진 것인지 긴 글을 다시 올리려니 힘이 듭니다
성령으로 기록했기에 제 육신의 기억으로 감당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마귀가 방해했다면 오히려 이 글을 반드시 올려야 한다는 것이기에 다시 또
성령님의 도우심을 간구합니다
오늘은 영들 분별함에 대한 부분을 묵상하려 합니다.
어떤 사람이 악한 영 그리고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영으로 사역하는 것을 분별함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은혜중 은혜인 것은 대부분 신앙인들이 영들 분별함이 없는다는 것입니다
영들 분별함이 누구에게나 있는 것이라면 이단이나 사이비 그리고 타락한 목자를
따를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선악을 분별하지 못하고 갈바를 알지 못하는 제각기 자기 길을 가는
길 잃은 양들에게 분노하시지만 연약한 그들을 한량없이 긍휼히 여기십니다
"이는 우리의 연약함이 주님의 강함 되심을 드러내는 지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는 영을 분별할 수 있다는 교만한 묵상을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저 또한 선악을 분별하지 못하고 갈바를 알지 못하여 내 마음대로 가다가
길을 잃기도 하는 미련한 양이기도 합니다
단지 부르심의 사명과 그 길을 인도하시는 성령님께 가르침을 받고 돌이켜서 회개하고
그 삶이 성경 말씀에 있다는 것을 확증하신 부분들을 나누려고 합니다
오늘 제목처럼 선지자의 사명받은 자만이 알 수 있는 은밀한 죄가 있는데
성령님께서 다루시는 부분 다른 말로 테스트를 받을 때통과하는 부분과
실패하는 부분에서 알게 되는 은밀한 죄를 토설하려고 합니다.
제가 알기로는 대부분 자신이 은밀한 죄 가운데 있는지도 깨닫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하나님의 부르심과 보내심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럼 저는 그것을 어떻게 알았을까요?
바로 선지자의 한계? 선지자의 교만? 선지자의 연약함? 등이라고 해야 할까요
하늘 높이 올라갔다가 스올까지 떨어져 봤거든요
성경에 부자와 거지 나사로 말씀에 등장하는 음부에 어떤 사람들이 가는 것인지
저는 그곳에 가 보았습니다
제가 그곳을 경험하게 된 이유는 하나님이 주신 경고의 말씀을 받은 그대로
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그렇게 말한 것입니다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눅16:31)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자가 온전히 전하지 않아도 회개할 수 없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에게 듣지 않아도 회개할수 없다는 것입니다
즉 음부는 선지자가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은 사람이 죽으면 가는 곳인데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선지자가 그 경고를 하지 않는 다면 그 벌이 전하지 않은
파수꾼에게 있기 때문에 불순종하는 선지자들도 그곳에 있습니다
음부에서 고통하는 부자는 곧 자기만 배 불린 목자의 예표입니다
"주 여호와의 말씀에 자기만 먹이는 이스라엘 목자들은 화 있을진저
목자들이 양의 무리를 먹이는 것이 마땅치 아니하냐
너희가 그 연약한 자를 강하게 아니하며 병든 자를 고치지 아니하며
상한 자를 싸매어 주지 아니하며 쫓긴 자를 돌아오게 아니하며
잃어버린 자를 찾지 아니하고 다만 강포로 그것들을 다스렸도다"(겔 34:2-4)

부자는 날마다 호화로이 연락했고 거지 나사로는 떨어지는 부스러기라도 먹기를 바랐지만
부자는 약하고, 병들고, 상한 거지 나사로를 돌아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거지 나사로 같이 연약한 양들을 먹이는 것이 마땅하다 하십니다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전하라 하신 곳에 갔지만 그들이 저에 대한 칭찬의 말에
교만해져서 차마 경고의 말씀을 전할 수가 없었습니다
사람에게 인정받고 사람에게 미움을 받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레미야처럼 주님이 명하여 주신 말씀을 선포하므로 자신은 백성들과
고관들에게 미움을 받고 박해를 받는 것이 당연한 것이어야 했습니다
저는 그에 따르는 벌로 음부를 경험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지극히 연약함 가운데 음부에서 주님의 긍휼을 입었습니다
주님의 한량없으신 은혜를 저에게 주심을 아직도 잘 깨달을 수 없지만
그저 "주님의 은혜입니다"라고만 말할 수 없는 그 무언가가 있는 것이 분명했습니다
이렇게 저에게 주신 은혜처럼 성경에는 우리가 읽어서만 알 수 없는 부분들이
많이 기록되어 있고 또 설명되지 않는 사건들 기록도 많이 있습니다
기록되지 않은 말씀들을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순종할 때 음부에 다녀온 경험처럼
기록되지 않은 비하인드 스토리의 장면들을 하나씩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주님께서는 그것이 제게 주시는 은혜라고 하셨습니다"
그중 한 부분 이름 없는 선지자에게 있었던 의문의 사건들을 제가 경험한 것으로
묵상을 나누어 봅니다
이름 없는 하나님의 사람과 늙은 선지자의 말씀을 묵상하게 되면
그 안에 "미혹된 선지자"를 분별하는 숨겨진 힌트가 들어 있습니다
참고로 제가 거짓 선지자라 하지 않고 미혹된 선지자라 하는 것은 그들은 아직
돌이킬 수 있는 기회가 있는 존재이기에 그렇게 표현을 한 것입니다
계시록 2:20을 보면 주님은 자칭 선지자 이세벨에게도 회개할 기회를 주십니다
그러니 미혹된 선지자로 정죄하지 마시고 권하여 함께 회개하며 기도하십시오
성경에는 하나님의 사람이라 칭함 받은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사람"(אִישׁ הָאֱלֹהִים, 이쉬 하엘로 힘 man of God)
성경 전체에 9명뿐인데 그럼에도 이름이 기록되지 않은 사람도 2명 있습니다
그중에 하나님의 사람이 순종하고도 죽음에 이르는 사건이 있습니다
바로 북이스라엘 처음 왕 여로보암이 벧엘과 단에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었을 때입니다
본문 말씀에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남유다 사람이 북이스라엘로 갔습니다
성경에는 그의 이름은 말히지 않은 채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합니다
저도 하나님의 사람이란 말이 얼마나 좋은지 한동안 우리 아이들에게
"엄마는 하나님의 사람이야"하며 노래를 불렀던 날들이 있었습니다 ^^
그런데 왜 하나님은 남유다 사람을 북이스라엘로 보낸 것일까요?
그것을 이해하기 위해 짧은 성경 내용을 보겠습니다
솔로몬이 여호와를 떠나고 여러 우상을 섬겨서 하나님이 솔로몬의 신복 여로보암에게
선지자 아히야를 통해 북이스라엘 왕이 될 것을 전하게 하셨습니다.
여로보암은 솔로몬이 그의 부지런함을 보고 요셉 족속의 감독으로 세웠던 큰 용사였습니다
그러나 여로보암에게 하나님이 나라를 찢어 주시고 왕으로 세우신다는 것을 알고
솔로몬이 여로보암을 죽이려고 해서 그가 애굽으로 도망가 있었습니다.
솔로몬이 죽고 그 아들 르호보암이 왕이 되었을 때 여로보암은 돌아왔고
이스라엘 회중과 함께 르호보암에게 왕의 부친 즉 솔로몬이 시킨 고역과 무거운 멍에를
가볍게 해 주면 당신을 왕으로 섬기겠다는 요구를 했습니다
결국 르호보암은 그 요구를 수락하지 않았고 하나님의 말씀처럼
나라가 나뉘어 여로보암이 북이스라엘 왕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여로보암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며 다윗과 같이 율례와
명령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가장 큰 죄가 절기 때마다 예루살렘으로 내려가는 백성들이 남유다 왕에게로
돌아갈까 늘 불안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여로보암은 북이스라엘의 시작과 끝 지점에 사람이 편하게 하나님께 제사를
지낼 수 있도록 금송아지 제단을 벧엘과 단에 세웠던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산당들을 지어 레위인이 아닌 일반인들로 제사장을 삼고
자신 임의대로 유다 절기와 비슷한 한 날을 임의로 정해 제사를 드렸습니다.
바로 유다에서 온 하나님의 사람은 그것에 대한 하나님의 경고의 말씀을 전하려고
우상 제단이 있는 벧엘에 온 것입니다.(왕상 11-12장 참조)
벧엘은 원래 "하나님의 집"이라는 뜻이며 야곱이 아비집을 떠나 도망갈 때
돌베개 하고 잠이 들었는데 하늘문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가 사닥다리로
오르랑 내리랑 하는 것을 본 하나님의 전이었습니다
"두렵도다 이곳이여 다른 것이 아니라 이는 하나님의 전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창 28:17)
그런데 여로보암 시대부터는 금송아지와 숫염소 우상의 중심지가 되었고
그것을 "여로보암의 죄"라고 역사에 기록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여로보암에게 다윗의 길을 행하면 동일한 복을 주실 것이라
약속하셨는데 여로보암은 하나님의 신실하신 언약을 믿지 않았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로보암과 북이스라엘을 단번에 심판하지 않으시고 부지런히 선지자를
보내시고 돌이키도록 기회를 반복하여 주셨습니다
그러나 북이스라엘 왕은 혈통과 언약이 아닌 반역으로 피바람에 쟁취되었습니다
그중 처음으로 보내진 선지자가 이름 없는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선포하고 먼 미래를 예언하였습니다
그리고 그가 하나님이 보내신 것에 대한 증거로 예조가 일어났습니다
"단이 갈라지고 재가 단 위에 쏟아졌습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앞으로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선지자들에 대해 백성들에게
분별하는 일반적인 방법을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혹시 심중에 이르기를 그 말이 여호와께서 이르신 말씀인지 우리가 어떻게 알리요 하리라
만일 선지자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한 일에 증험도 없고 성취함도 없으면
이는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것이 아니요…”(신 18:21-22)
벧엘에 외치는 이름 없는 선지자는 분명 하나님이 보내신 증험함이 예조로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그가 선포한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된 것은 300년이 지난 후 북이스라엘은
이미 앗수르에 의해 멸망된 후였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성경을 한눈에 보고 그 성취하심을 확인했습니다
이 말씀을 보아도 하나님은 오래 참고 기다리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시대 북이스라엘 백성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그 선지자의 선포한
하나님의 경고의 말씀이 거짓이었다 생각했을 것입니다
결국 백성들은 그 선지자의 선포한 하나님의 경고를 잊어버렸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날과 시를 말씀해 주시지 않았습니다
마치 예수님이 마지막 징조를 말씀하심과 같습니다
그러니 이름 없는 하나님의 사람이 외친 예언이 300년 후에 이루어진 것 같이
예수님의 말씀도 2000년이 더 지났지만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이키는 기회를 주시기 위해 오래 참으시는 은혜의 시간입니다
그런데 남유다에서 온 하나님의 사람은 사명을 감당하고도 왜 죽은 것일까요?
그것을 묵상하면 오늘날 시대에 있는 현상들과 함께 무엇을 경고하셨는지
깨달을 수 있습니다
"이는 여호와의 하신 말씀을 어긴 하나님의 사람이로다"(왕상 13:26)
하나님의 사람이 죽은 이유는 단순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이면서 하나님 하신 말씀을 따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럼 하나님이 선지자에게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떡도 먹지 말고 물도 마시지 말며 왔던 길로 도로 가지도 말라"(왕상 13:9)
이름 없는 하나님의 사람에게 하나님은 사명을 주시면서 자신이 지켜야 할
명령도 함께 주셨습니다.
그 명령은 악법이 아니요 그를 살리는 생명의 법이었습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하나님의 사람은 높은 세상 권력에는 굴하지 않고
사명도 감당하며 주신 명령에도 순종했습니다
그런데 힘없는 한 늙은이의 말에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그것이 바로 "나도 그대와 같은 선지자라" 이 말에 속았습니다
늙은이는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지 않았는데 거짓으로 여호와의 말씀이라 속였습니다.
"천사가 여호와의 말씀으로 내게 이르기를 그를 네 집으로 데리고 돌아가서
그에게 떡을 먹이고 물을 마시우라 하였느니라 하니 이는 그 사람을 속임이라"(왕상 13:18)
늙은 선지자는 하나님이 경고하신 말씀을 그대로 사용하여 속였습니다
돌아가지 말라 하셨는데 자기 집으로 돌아가서 떡도 먹지 마라 하셨는데 떡을 먹이라
물도 마시지 마라 하셨는데 물을 마시우라 이렇게 정확하게 늙은 선지자는 미혹했습니다
그런데 여로보암은 하나님이 선지자에게 명령하신 말씀대로 사용하지도 않았습니다
"왕이 하나님의 사람에게 이르되 나와 함께 집에 가서 몸을 쉬라
내가 네게 예물을 주리라"(왕상 13:8)
일단 하나님의 사람이 벧엘 제단 앞에 있으니 돌아가는 것도 아닙니다
떡도 물도 먹고 마시라는 내용은 없이 몸을 쉬어라 예물을 주겠다 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왕의 유혹에는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이 "늙은 선지자의 미혹을 경고"한 것입니다
오늘 묵상은 여기까지 나누겠습니다
다음 묵상을 이어서 하나님의 사람이 왜 늙은 선지자에게 속았을까?
또 늙은 선지자는 왜 속였을까?
그리고 이 말씀으로 하나님이 깨닫기 원하시는 뜻은 무엇인지
하나하나 이어서 글을 올리겠습니다
할렐루야~
'🇰🇷 한글 시리즈 묵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 (결론)하나님과 친밀한 관계 다시 회복되는 다윗의 장막 (0) | 2025.12.22 |
|---|---|
| (본론)하나님과 친밀한 관계(어린 양으로 죽으신 이유) (5) | 2025.12.20 |
| (서론)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는 노력으로 도달하는 위치가 아니다 (0) | 2025.12.16 |
| 4.여자의 남은 자손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 (9) | 2025.11.29 |
| 3.해산하는 여자가 아들을 낳으니(좁은 문을 통과) (1) | 2025.11.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