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지자 엘리사가 선지자의 생도 중 하나를 불러 이르되
너는 허리를 동이고 이 기름병을 손에 가지고 길르앗 라못으로 가라
거기 이르거든 님시의 손자 여호사밧의 아들 예후를 찾아 들어가서
그 형제 중에서 일어나게 하고 데리고 골방으로 들어가서
기름병을 가지고 그 머리에 부으며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네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을 삼노라 하셨느니라 하고
곧 문을 열고 도망하되 지체치 말찌니라. (열왕기하9:1-3)

오늘로 선지자에게 있는 은밀한 죄를 4편으로 결론 맺으려고 합니다.
앞에 연결된 1-3편까지는 따로 링크 올리지 않으니 제일 아래 목록에서 찾아
꼭 다시
그리고 묵상글 끝에 에필로그가 있습니다.
이 말씀이 제게 훈련과 교훈이 될 때 성령님께서 저의 삶에서 가르치시고
영적 나눔으로 지식과 지혜를 주시며 깨닫게 하신 부분들이 이 말씀들로 교훈하셨기에
짧게 영의 세계 체험을 올렸습니다.
사실 이전에 올린 글에 삭제된 부분을 복구해야 될지 성령님께 구하였으나
삭제된 글은 개인과 교회에 제가 주님의 선포하게 하신 말씀을 순종하지 못한 부분을 글로 남기며
혹시 이 글을 보게 되는 은혜가 주어진다면 이제라도 돌이키기를 바라서 올렸던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이미 지난 나의 불순종은 이제 돌이킬 수 없으며
이미 "네가 그 죄과를 치렀다" 하셨습니다
지금 "네가 그들이 돌이키기를 바라며 올렸다는 네 마음은 그들을 향한 사랑이 아니며
너에 대한 변명과 합리화일 뿐이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글을 그들이 본다 하여도 다시 돌이키지 않을 것이라" 하셨습니다.
성령으로 인도받는 삶은 이렇게 나의 숨은 마음의 생각과 뜻까지 살피시기에 숨길 수 없이
주님의 불꽃같은 눈앞에서 벌거벗은 자와 같이 다 드러내십니다.
정말 부끄럽고 민망한 나의 민낯을 들켜버린 심정이었고 그래서 다시 한번 이 묵상에 대해
나 자신을 점검해 볼 수 있었습니다.
묵상을 하면서도 이렇게 불쑥불쑥 드러나는 나의 조리된 본성이 나를 한없이 낙망하게 만들지만
그 와중에도 주님께서 저의 어깨를 감싸주시며 바울이 고백한 말씀으로 위로하셨습니다.
그래서 교훈하신 대로 앞에 삭제된 부분은 다시 복구하지 않고 그 대신 에필로그를 올리기로 한 것입니다.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전 15:10)
오늘 본문 말씀은 선지자로 부름 받은 자들이 하나님의 훈련 과정에서 있는 부분으로
아주 잘 나타나 있기에 지금 나누고 있는 선지자의 죄에 함께 예문으로 올렸습니다.
앞서 나눈 1-3 묵상 내용에서 어느 정도 이해하신 분들은 본문 내용도 이해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좀 더 이해를 돕기 위해 진행 중인 시리즈와 연결하여 묵상으로 나누겠습니다.
선지자는 하나님 입장에서 대언을 선포하는 하나님 사람입니다.
제사장은 백성들 입장에서 하나님 앞에 중재와 중보를 올리는 하나님 사람입니다.
이 특징을 보면 선지자는 백성들과 구별되어 하나님의 임재를 위해 골방에서 자신을 정결을 위해 보존합니다.
제사장은 백성들과 함께 하며 하나님께 나아가기 위해 은혜를 구하며 주의 법대로행함으로 임재를 기다립니다.
둘 다 비슷한 특징 같지만 이는 끝과 끝 차이가 납니다.
하늘로부터 오시는 말씀을 받아 땅으로 선포하는 자가 선지자이며
땅에서부터 하늘로 올려드리는 간구하는 자가 제사장입니다.
그래서 선지자의 사명자와 제사장의 역할이 중재자가 같지 않으면 항상 대립합니다.
그러나 두 사명자가 한 성령 안에서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화합하면 그 땅에 평화가 옵니다.
오늘날로 말을 하면 교회에 평화가 있다는 것입니다.
주께서 친히 세우신 반석 위에 세우신 교회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교회는 목회자가 3 중직이 있다고 주장하면서 평화가 깨어졌습니다.
주께서 교회를 세우시기 위해 목사에게 3 중직 형태로 성령께서 나타내시지만
이는 교회를 세우시기 위함이지 목사를 세우시기 위해 주신 것이 아닙니다.
목사 또한 교회를 위해 주신 것을 알아야 하며 이는 목사를 낮추는 것도 아닙니다.
교회를 위해 목사를 주께서 주셨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럼 선지자에게 하나님은 무엇을 시험하신 것일까요?
이는 열왕기상 13장 하나님의 사람과 늙은 선지자에게 모두 적용이 되며
오늘 본문에 엘리사가 보낸 선지자 생도에게도 동일하게 적용이 되었습니다.
전체 내용에 선지자에게 중점적으로 시험하시는 부분을 펼쳐놓으니
이해를 잘 못하시는 분들이 계셔서 결론을 먼저 말씀드립니다.
자신의 부르심과 보내심의 목적을 알고 자신을 본분을 지켜야 되는 것이 선지자입니다.
그러나 부르심과 보내심의 목적을 알기 위해서는 주신 말씀과 어디로 보내심을
알아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계속 성령님께 구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말씀을 전하였다 해도 하나님의 본심을 깨닫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에 그들에게 경고하심도 모두 사랑 안으로 품으시기 위함임을
주님 앞에 오래 앉아 그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교만하여 자신이 높임을 받고 자신의 이름을 나타내게 됩니다.
먼저 위에 본문에 선지자 생도가 보내심을 받은 사명은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처음 주신 사명중 하나였습니다.
1. 하사엘에게 기름 부어 아람 왕이 되게 하라.
2. 님시의 아들 예후에게 기름 부어 이스라엘 왕이 되게 하라.
3. 아벨므홀라 사밧의 아들 엘리사에게 기름 부어 너 대신 선지자가 되게 하라.
엘리야는 엘리사를 선지자로 세우고 후에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하사엘에게는 엘리사가 왕이 될 것을 알렸고 예후에게는 엘리사가
선지자 생도 중 한 명에게 명령했습니다.
그때 엘리사가 직접가도 될 것을 왜 선지자 생도를 보냈을까요?
그것이 본문 말씀에 "도망하되 지체치 말지니라"한 이유입니다.
묵상 앞편들에 여러 번 반복했지만 선지자는 사역을 하지도 않고 높임을 받지 않습니다.
엘리사는 그 시대 이미 알려진 선지자였습니다.
그리고 선지자 중에 왕과 가까이 왕래하기도 한 선지자 몇이 안 됩니다.
그러나 엘리사는 이스라엘 왕 요아스(여호아스)에게 이런 호칭으로 불렸습니다.
“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이여.”
물론 요람 왕 때는 엘리사가 좋은 관계는 아니었지만 이미 선지자로 유명했습니다.
그런 선지자가 예후에게 직접 기름 부으면 엘리사는 반드시 높임 받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합을 치기 위해 하나님께서 예후를 사용하셨고 그의 사대까지 왕좌를 약속하셨지만
예후 또한 피 흘린 값을 치러야 함을 호세야서에 기록이 되어있습니다.
“이스라엘의 피를 예후의 집에 갚으리라”(호 1:4)
예후는 하나님께서 명하신 아합 집안을 치는 일 곧 요람 왕뿐 아니라 이세벨,
아합의 아들들 70인과 바알 선지자들 그리고 이후 유다 왕족까지 피를 흘렸습니다.
호세아는 그 전체 사건을 “이스라엘의 피”라는 이름으로 압축하여 말합니다.
즉 예후의 피 흘린 값은 하나님께서 명하지 않으신 일까지 스스로 심판자가 된 것입니다.
열왕기하 9-10장을 보면 예후가 기름 부 음 받고 왕이 되고 또 죽기까지 엘리사가 살아 있었지만
어떤 활동도 없이 공백 상태로 기록이 없습니다.
엘리사는 하나님께서 아합 집안의 심판을 예후를 통해 행하심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엘리사가 하사엘이 아람 왕이 되어 행하게 될 악행을 하나님께서 다 보여주심같이
예후의 일도 다 보여주셨을 것입니다.
엘리사는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것을 다 보아 아는 선지자였습니다.
그러니 예후의 심판과 함께 하지 않은 것이며 선지자 생도 또한 그와 함께 하지 않기 위해
기름 부은 후에 빨리 도망하라 명한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저의 생각이 아니라는 성경적인 증거는 예후와 함께한 또 다른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예레미야서에 하나님께 약속을 받게 되는 레갑 족속의 조상 레갑의 아들 여 호나 답입니다.
이는 예후가 아합 집안을 심판할 때 갑자기 등장하는데 예후에게 좋은 호감을 나타내며
예후와 함께 그 일에 동참합니다.
“예후가 거기서 떠나가다가 레갑의 아들 여 호나 답이 맞으러 오는 것을 만난 지라…
내 마음이 네 마음을 향하여 진실함과 같이 네 마음도 진실하냐 여 호나 답이 대답하되
그러하니이다 가로되 그러면 나와 손을 잡자…
가로되 나와 함께 가서 여호와를 위한 나의 열심을 보라.....”(왕하 10:15-17)
그러나 예후가 심판하는 후반기에 짧게 몇 절 등장 후 그는 기록에서 사라집니다.
그 후 등장하는 곳이 예레미아 35장입니다.
"너희가 너희 선조 여호나답의 명령을 준종하여 그 모든 훈계를 지키며
그가 너희에게 명한 것을 행하였도다 그러므로 나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 하나님이
이같이 말하노라 레갑의 아들 요호나답에게서 내 앞에 설 사람이 영영히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하나님은 끊임없이 선지자를 보내어 이스라엘에 경고했지만 지키지 않고 행하지도 않는 것을
레갑 족속과 비유하시며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레갑의 아들 여 호나 답이 자손들에게 무슨 이유로 그렇게 명한 것인지는 성경에 기록이 없습니다.
분명 예후에게 호감으로 함께 손을 잡았으니 왕의 측근으로 높은 지위에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여 호나 답은 자신의 후손들에게 교훈하여 명한 것은 미천한 신분으로 사는 것입니다.
- 포도주를 마시지 말라
-
집을 짓지 말라
-
씨를 뿌리지 말라
-
포도원을 소유하지 말라
-
장막에 거하라
이 말은 마치 이스라엘에 뿌리를 내리고 살지 말라는 소리와도 같습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세상에 마음을 두지 말라는 것과 같습니다.
한 가지씩 자세한 내용은 다음번 기회가 되면 나누기로 하고 오늘은 이 말씀이 본문이 아니니
전체적 의미만 나누겠습니다
여 호나 답은 자신이 왕과 함께 업적을 이루었으니 자손들에게 좋은 것으로 남길수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여호나답은 낮은 신분으로 살도록 명했고 지켜야 하는 조항을 내렸습니다.
그리고 후손들은 그 교훈을 지켜 하나님께 영원히 서게 될 약속을 받았습니다.
예후에게 호의적이며 함께 손을 잡았지만 여 호나 답은 예후의 열심히 여호와를 위함이 아닌
자신의 왕권과 업적 때문에 하나님 명령의 경계를 넘어 심판자가 되었음을 깨달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후에게 이스라엘 왕이 될 것을
선지자는 말씀을 전달하고, 왕은 그 말씀을 집행합니다.
그러나 예후는 명하신 일 외에도 자신의 열심히 하나님께서 명하시지 않은 살인까지 했습니다.
"유다 왕 아하시야의 형제들을 만나 묻되 너희는 누구냐 대답하되
우리는 아하시야의 형제라 이제 왕자들과 태후의 아들들에게 문안하러 내려가노라
가로되 사로잡으라 하매 곧 사로잡아 목자가 양털 깎는 집 웅덩이 곁에서 죽이니
42명이 하나도 남지 아니하였더라"(왕하 10:13-14)
예후는 북이스라엘 왕이 된다 하셨습니다.
유다 왕 아하시야 형제들 42명을 모두 무고히 살해한 것입니다.
이들은 하나님과 언약한 다윗의 자손들입니다.
이로 인해 남유다 다윗의 자손이 끊어질 위기까지 가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세벨의 딸 아달랴가 남유다 여왕이 되면서 남은 다윗의 자손을 모두 죽여버리고
아달랴가 유다를 6년 동안 다스렸습니다.
예후가 하나님의 명령을 한참 넘어 선 결과이며 예후 또한 여로보암의 죄 곧 금송아지
우상 섬기는 일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예후가 이와 같이 이스라엘 중에서 바알을 멸하였으나 이스라엘로 범죄케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 곧 벧엘과 단에 있는 금송아지를 섬기는 죄에서는
떠나지 아니하였더라"(왕하 10:28-29)
열왕기상 13장에 하나님의 사람에게 명하신 하나님의 말씀은 매우 구체적입니다.
인간은 종종 그 말씀에 자신의 열심을 더합니다.
예후의 이야기는 바로 그 위험을 보여 주는 대표적인 사례처럼 보입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따라 순종하는 모든 집행자들의 모습을 보면 그 열매가 선한 열매인지
악한 열매인지 우리는 충분히 영적감동이 주어집니다.
쉽게 말해 성령님께서 우리 심령에 혼란과 갈등으로 나타나 보인다는 것입니다.
처음엔 옳다 생각하여 함께 손을 잡고 동참했으나 집행 과정에서 이건 뭔가 아닌 거 같다
생각되는 부분들이 성령께서 흔드시기 때문에 일어나는 감정입니다.
그때 끊임없이 주님 앞에 신음하며 분별을 구하셔야 합니다.
대부분 자신의 유익이나 익숙함때문에 중간에서 머뭇거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시는 마음대로 순종하는 것은 당신의 선택과 결정으로 결과가 따라옵니다.
여 호나 답은 예후의 심판과정에서 그것을 깨달았을 것입니다.
"이스라엘 피값"은 아합이 이스르엘 사람 나봇의 포도원을 탐하여 이세벨의 계략으로
무고한 피를 흘림으로 시작된 심판입니다.

이스르엘 피값은 단순한 죄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한 지도자가 하나님 백성의 언약에 충실한 것을 빼앗으려는 탐심에서 시작되며 그것에
음녀의 예표 이세벨이 무고한 장로 즉 귀인들을 끌어드려 그 죄에 함께 동참시킵니다.
이것은 계시록 2장 두아디라 교회에 주신 경고에도 그대로 나타납니다.
이세벨을 용납하는 지도자로 인해 이세벨이 주님의 종들을 꾀어 죄에 동참하게 합니다.
미혹으로 역사하는 영은 그렇게 활동하지만 마음을 지키는 자는 그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내가 존경하고 사랑하는 사람이라도 그 안에 역사하는 영이 하나님의 영이 아니라면
그의 사역에 함께하면 그 사람의 심판에 함께 들어갑니다.
예후가 앞서 아합 집안을 심판한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명령이며 선한 일이라 하더라도
그 후에 자신의 의료 행한 일들은 자신도 심판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 호나 답은 그것을 알았기에 예후에게서 떠났을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잘못된 판단으로 한때 예후와 함께하였던 것에 대한 회개로 자신의 후손들에게
그러한 교훈을 내린 것일 것입니다.
이는 성경에 기록이 되지 않았기에 내가 옳다 단정 짓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저 또한 이러한 시험과 결단을 성령님의 교훈으로 체험하고 깨달았기에 나누는 것입니다.
앞에 올린 글에도 말했듯이 선지자의 사명에는 사역을 하지 않습니다.
구약에는 선지자는 광야나 높은 산지에서 수도사 같이 자신의 영과 혼과 육을 구별했습니다.
열왕기상 13장에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의 명령을 어겼기 때문에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하나님의 명령을 어겨 벌을 받은 것이라기보다하나님께서 오늘날
우리에게 속임에 빠지지 말라고 알려주신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늙은 선지자도 하나님의 사람을 속인 것인 거짓 선지자라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아합 시대에 모든 선지자 입에 거짓말하는 영이 있어도 그들은 거짓이라 생각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모두가 한 영에 감동되어 같은 말을 했으니까요.
그러나 늙은 선지자의 행동들과 성령의 말씀이 임한 것을 보면 그는 하나님의 사람에게
악을 행하려 한 것이 아니라 단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온 선지자를 영접하고 싶은 것 같습니다.
한때 성령의 역사로 큰 사역을 하던 목회자들이 늙어서 성령의 일이 나타나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 영혼을 사랑하시기에 남은 시간 교재하시려고 기회를 주시는
것이라 생각하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대부분 큰 목회를 하신 원로 목사님들은 젊은 목사님들이 자신을 뛰어넘는
사역으로 유명해지면 질투를 합니다.
자신의 교단에서 배척을 하시든지 아니면 자신 밑에서 섬기도록 유도합니다.
원로 목사님들은 지난 세월 주님의 일로 많이 수고하셨습니다.
이제 편히 쉬시면서 주님과 더 가까이 사랑에 빠지도록 평안을 누렸으면 좋겠습니다.
늙은 선지자가 그런 마음 아니었을까 생각이 듭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지 않고 시대를 분별하지 못하는 답답한 마음에
어떻게든 하나님의 사람을 영접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같은 선지자라 해도 미혹되지 말고 각자에게 주신 사명대로만 순종하면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희미해졌다 해도 말씀을 붙들고 진실하게 살면 될 것입니다.
구약에서도 선지자는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 미친 자 같아 보였습니다.
세상이 과히 받지 못할 말들을 들으며 자신이 본 것을 말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세상에 속한 사람들이 어떻게 그 이상한 말들을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엘리야도 우리와 같은 성정의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선지자라고 매일 거룩하고 신령한 삶을 살았을까요
오늘날 선지자 사명을 받은 자도 엘리야 같이 홀로 남겨진 것이 아닙니다.
함께 소속된 교회가 있다면 서로 사랑하라 하신 말씀대로 삶을 살며
마음을 세상에 빼앗기지 않고 항상 거룩하게 주님 앞에 드리면 됩니다.
당신은 하나님이 당신에게 직접 하신 말씀을 신뢰합니까?
아니면 나보다 더 신령하고 충만해 보이는 지도자의 말을 더 신뢰합니까?
그 어떤 은사로 이적을 크게 행하는 사람이 말할지라도 당신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말씀
곧 직접 받은 명령보다 앞세워서는 안 됩니다.
모두가 죽지 않고 살 수 있는 넓은 길로 갈지라도 하나님이 당신에게 죽을 수 있는
좁은 길을 가라 하시면 그 말씀에 순종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늙은 선지자에게 속았습니다.
하나님이 자신에게 직접 명령하신 말씀보다 늙은 선지자의 말을 의심 없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럼 하나님의 사람에게도 발람처럼 그 마음에 패역한 생각이 있었다 볼 수도 있습니다.
같은 선지자 사명의 길에서 영접하는 사람에게 인정받기를 원한 것은 아닐까요?
그렇게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사람이 올 때는 없었던 나귀를 타고 갑니다.
올때는 걸어왔겠지요
그러니 갈 때도 힘들어 지쳐 상수리나무 아래 쉬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가는 길에 늙은 선지자에게 대접을 받고 나귀도 받아 가는 길이 편리해졌습니다.
오늘날도 동일합니다.
많은 선지자들이 미디어를 통해 마지막 때를 선포하며 하나님의 엄중하신 말씀을
대언하며 경고를 합니다.
하지만 성경에 모든 선지자들이 자신의 발로 걸으며 몸으로 순종하였던
그 사명을 지금은 컴퓨터 앞에서 감당하면서 후원금을 유도하고 있습니다.
예수님 말씀처럼 우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야 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럼에도 물질이 필요한 것은 그들이 사역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모든 사역이 잘못되고 하나님의 뜻이 아니시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선지자는 사역을 하지 않는다는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처음엔 부르심을 따라 선지자 사명을 잘 감당하다가 자신을 따르고 높이는
사람들이 생기면 그 사람들 때문에 점점 미혹되어 갑니다.
10년 전부터 저와 같은 짧은 시간 사명을 받은 자들을 저도 유튜브를 통해 보았습니다.
그들은 특별하지 않았고 어느 날 갑자기 주님의 방문을 받아 이 시대 경고를 받고
눈물로 주님 앞에 머물며 중보 기도하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점점 알려지게 되고 사람들의 높임을 받으며 영접받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처음엔 저도 그것이 당연하다 생각했고 나 또한 그렇게 되기 위해 훈련 중이시다 믿었습니다.
그런데 아니었습니다.
번번이 성령께서는 저의 앞을 막으셨습니다.
"사람에게 높임 받지 말라, 인정받으려 하지 말라, 그들의 사역에 동참하지 말라,
네 이름을 알리려 하지 말라 그리고 사람의 종이 되지 말라" 한결같이 동일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저라고 특별했겠습니까?
저도 사람이 인정해 주면 좋았고, 하나님의 사람이라 높여주면 그런가 했고,
큰 일할 사람 큰 그릇이라 하면 뿌듯했습니다.
그래서 그들과 나라와 족속을 다니며 주님을 증거 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그럴 때마다 내 속마음을 다 보이시며 그리스도의 마음과 다른 내면을
훈계하시고 성령께서 가르치셨습니다.
성령께서 모든 상황 가운데 나타내시며 "너는 그들과 다르다" 하셨고 물론 그들이
틀렸다고 말씀하시지도 않으셨습니다.
매번 상황마다 "그들을 위해 네 자식 기도 하듯이 기도하라" 명하셨습니다.
목사들이 삼중직임이 있다고 신학으로 말합니다.
그러나 목사와 선지자와 제사장은 엄연히 구분되어 있습니다.
모두 주님의 나라와 백성을 위해 세워진 것이지 그들이 주체가 아닙니다.
“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엡 4:11-12)
그러니 모두가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화합하지 않으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성경 안에서 이것이 이루어진 시대는 모세와 다윗 시대였습니다.
모세는 광야 1세대 대표 지도자입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제사장 아론을 세우셨고 모세의 누이 미리암을 선지자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다윗 시대에도 제사장 사독과 아히멜렉을 세웠고 선지자로 나단과 갓이 있었습니다.
이 두 시대는 지도자와 제사장과 선지자가 각자 자신의 본분에 충실했습니다.
요즘은 그런 말을 많이 쓰지 않는 거 같은데 "직통계시"라는 말이 있습니다.
구약과 신약에서도 성령의 임재로 계시를 받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오늘날은 없을까요?
저는 있다고 봅니다. 그러나 계시받은 자가 그것을 먼저 잘 듣고 분별해야 합니다.
분명 하나님께서 전하라 하시든지 기록하라 하시든지 말씀하시며 또 듣는 자가
이해하지 못하였든지 내 생각과 다르다면 반복해서 여쭤보아야 합니다.
그것을 다니엘이 잘하였고 듣는 것으로 끝이 아닌 분별을 위해 생각하라 했습니다.
다니엘도 천사가 보인 이상을 깨닫지 못했고(단 8:27), 분명히 깨달은 이상도 있고(단 10:1),
반복해서 물었으나 끝까지 깨닫지 못한 채 봉함된 부분도 있습니다.(단 12:8-9)
그렇게 하나님이 선지자에게 말씀을 주시면 그에 따른 명하신 부분을 정확히 알아
전하라 하시면 전해야 하고 봉함하라 하시면 입을 다물면 됩니다.
굳이 이해되지 않고 깨닫지 못한 부분을 해석할 필요가 없습니다.
모든 말씀은 때가 되면 풀릴 것입니다.
굳이 자신에게 주신 사명도 아닌데 그것을 풀겠다고 죄를 쌓을 필요가 있을까요?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너희에게 예언하는 선지자들의 말을 듣지 말라
그들은 너희에게 헛된 것을 가르치나니 그들이 말한 묵시는 자기 마음으로 말미암은 것이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온 것이 아니니라.”(렘 23:16)
< 에필로그 >
7년 전부터 새벽에 교회 가서 기도하는 시간이 너무 좋았습니다.
코 0나 이후 꿈에서 본 상황에 애통함으로 기도하는 중에 성령님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를 위해 네 자식 기도하듯 애통하게 기도하라"
저는 그때 꿈에서 본 사람이 있었는데 그의 행동으로 인해 분노가 가득 차 있었습니다.
저는 그 사람을 정죄하며 심판하는 것이 당연하다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성령께서는 저의 그런 마음과 그 사람의 마음이 다르지 않다고 이해시키셨습니다.
저 또한 악한 마음이었고 그를 정죄할 자격도 없었습니다.
그때부터 새벽 기도를 가기 시작했는데 그 시간 저에게 부어주시는 은혜가 너무도 행복했습니다.
영의 문이 열리며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빛으로 인도하시는 주님이 더욱 선명하게 보였습니다.
아무도 없는 교회 안에서 마음껏 아버지 하나님의 품에 안겨 어린아이 같이 노래하며
열방을 위해 장성한 자 같이 선포하며 외치는 기도로 주위에 마귀들이 소리 지르며 떠나가고
내가 기도하고 있는 동안 교회에 보호막이 하나둘씩 겹겹으로 덮이고 기도가 하늘을 뚫고
연기 기둥으로 상달되어 올라가는 것이 보였습니다.
천사의 노랫소리 화합하여 올려지는 영의 노래에 만물이 아멘! 아멘! 하며 함께 했고
감사의 눈물, 기쁨의 눈물, 감격의 눈물, 통곡의 눈물 등등 그때 흘린 눈물을 모았다면
몇 통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 시간을 보내며 행복해할 때 아버지 하나님께서 저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에게 무엇을 줄꼬?"
이 말씀은 솔로몬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저는 오래전부터 하나님께서 저에게 물으시면 어떻게 대답하지? 하고 고민했지만
그때 생각지도 못한 말이 나왔습니다.
"아버지 저에게 만약 주실 상급이 있다면 상급 대신에 저에게 속한 사람 모두에게
한 번씩 더 기회를 주세요"
이 말은 나와 주님만 알 수 있는 내용입니다.
주께서 나를 포함한 내게 속한 사람들의 죽음의 모습을 보여 주신적이 있습니다.
그때 죽음이 끝이 아닌 천국과 지옥으로 최종 심판을 받게 되는데 정말 안타깝게
천국을 놓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살았을 때 한 번씩 더 기회를 주시라고 청한 것입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 깊이 고민하시는 듯하셨지만 그것이 응답되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명하신 일들이 선하게 순종하였을 때 그것에 대한 기억을 지우셨습니다.
그래야 온전한 상급이 될 수 있으니까요
내가 순종하였을 때 어떤 사람에게 한 번씩 더 기회가 갔는지는 자세히 모르지만
일단 가장 가까운 사람들부터 한 명씩 변해갔습니다.
그것을 저는 성령께서 하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저가 구하지 않은 것을 더하여 주셨는데 그것이 솔로몬이 받은 부요함은
아니었고 ㅎㅎ; 솔로몬이 구한 "듣는 마음"이었습니다.
저는 말을 아주 잘합니다.
그런데도 주님은 저를 설교하는 자나 말씀 가르치는 선생으로 사용하지 않으셨습니다.
언제나 앞서 말하기를 좋아했고 듣다 보면 그 답을 내가 아는데 하고 끼어들어
상대방 말을 끊고 말할 때가 많았습니다.
그런 저에게 상대방의 말을 듣게 하셨는데 귀로 듣는 것이 아닌 마음으로 듣는 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처음엔 그 마음이 저의 마음인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시행착오를 거듭해 가며 깨닫게 된 것이 내 마음이 아닌 그리스도의 마음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성경에 "새 마음"을 주신다는 말씀의 뜻을 깨달았습니다.
아무리 지루하고 반복되는 말이라도 상대방이 끝까지 말하도록 존중했고
말하는 중간에 절대 끼어들지 않고 집중해서 상대방의 말을 들었습니다.
신기하게도 이전에는 상대방이 말하기 전에 이미 답을 정해있던 내 모습이
끝까지 듣고 보니 내 답이 바뀌어 있었습니다.
그렇게 훈련되어 듣게 된 결론은 너무도 평범한 감사였습니다.
"모두가 자신이 더 잘 안다고 나를 가르치려고 답만 하는데 당신은 나의 말을 끝까지
들어줘서 감사합니다. 사실 답을 몰라서 말하는 것이 아니니까요."
그 사람의 말을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왜냐하면 이전에 저 또한 잘 아는 척 교훈하고 가르치며 답을 주었다 생각했었으니까요
그러나 그들은 자신의 문제를 알고 있었고 그냥 하소연 같이 풀어버리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후로 어떤 목사님 설교도 끝까지 듣고 기도하지 않고는 판단과 분별을 하지 않습니다.
가끔 듣기 너무 힘든 설교가 있을 때면 들으면서 성령님을 계속 찾고 구합니다.
그럼 설교 말미에 내가 듣고 깨달아야 하는 말씀이 들립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제 사명에는 반드시 "듣는 마음"이 중요하다 하셨습니다.
그런데 요즘 이런 생각이 들어 기도드렸습니다.
"주님, 들으려면 사람들과 관계해야 하는데 요즘 제 주위에 사람들이 없어요"
이전 교회를 나오고 새 교회를 다니며 간간이 있는 프로그램에 참석을 하고 있지만
그들은 아직 세상이 마지막 때이며 주님 곧 오신다는 긴박함을 느끼지 않는 거 같아서입니다.
이들에게 다시 주님 오실 길을 예비하며 맞을 준비를 시키려 하니
제가 너무 부족하고 교인들이 많아 얼굴도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또 마음만 앞서고 있네요.
역시 제게는 이전 교회 적은 무리들과 함께 했었어야 한 것인가요?
그러다 깜박하고 잠이 들었는데 꿈을 꾸었습니다.
깨어나니 꿈을 꾼 거 같긴 한데 아무것도 생각이 나지 않고 불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바로 엎드려 기도드렸습니다.
성령께서 꿈의 부분을 보여주셨고 다시 생각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익숙한 교회 안에 사람들이 빈자리 없이 꽉 차게 앉아 있었습니다.
그때 저 혼자 서 있어 자리를 찾지 못했는데 꿈속에서 느낀 감정은 수치였습니다.
그 교회가 제가 생각했던 모습과 달리 자리도 없이 꽉 차 있었고 나를 환영한다든지
자리를 만들어 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때 저는 당연하다 생각하고 그들이 옳았구나.... 여기며 쥐구멍에라도 들어가도 싶은 심정으로
나는 이곳에 있을 자격이 없다 생각되어 급히 나가려고 했습니다.
그때 지나치는 사람 몇 명이 나를 알아보고 반가워하며 없는 자리에 끼어 앉히려 했지만
저는 이곳에 앉을 자격 없다며 뿌리치고 나가는 길만 찾았습니다.
그러다 어떤 분들 앞에 서게 되었는데 그곳에 앉아 있는 사람들은 모두 저를 보지 못하는 듯했고
그래서 그들의 눈을 보았는데 동공이 멈추어 있는 상태였습니다.
마치 로봇 같이 표정 없이 곧게 앉아 있었습니다.
그때 성령께서 깨닫게 하신 것이 마지막에 부흥은 남겨진 자들이 모인 교회이며
"대부분 보지 못하는 눈과 듣지 못하는 귀를 가졌다
그러나 그중에 극히 작은 무리가 흰옷을 입을 것이다"
그것을 깨닫고 너무도 마음이 아팠습니다.
무슨 이유로 그들의 눈과 귀가 가려졌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왜냐하면 눈으로 보기에 귀로 듣기에는 그들은 "주여 주여" 하며 열심 있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보여주신 교회가 그런 교회가 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단지 마지막 남겨진 교회는 죽은 교회이며 그중 적은 수가 흰옷을 입게 된다는 것입니다.
주께서 영의 세계와 이상으로 또는 꿈으로 보여주신 등장인물들은 보인 것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저에게 이해를 돕기 위해 익숙한 모습과 장면으로 양육하시기 때문입니다.
전에는 저도 보이는 대로 말했습니다.
그러나 저의 실수처럼 많은 사람이 그것으로 실수를 합니다.
이렇게 오늘 시리즈 총 4편으로 마무리를 하겠습니다.
4편으로 끝을 내려하니 오늘 묵상 글은 길어졌습니다.
지루하셨다면 조금씩 여러번 반복해서 읽으시면 좋겠습니다.
중간 중간 꼭 보셔야 하는 부분들을 못보실까 염려되어 그런것입니다.
"너희 하나님이 가라사대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이사야 40:1)
주님께서 내 백성을 위로하라 말씀을 주셨는데요
제가 무슨 말로 주님의 백성들을 위로할 수 있겠어요
사실 저도 주님의 위로 간절히 원하고 있거든요
그래서 감동의 찬양을 나누며 함께 주님의 위로를 받기 원합니다.
가만히 눈을 감고 주께서 내게 말씀하신다 생각하며 들어보세요.
사실 지난 주일 새로 등록한 교회에서 불렀던 찬양인데요
성령의 임하심을 강하게 느꼈습니다.
주위를 둘러보니 목사님은 성령의 임재로 이미 다리에 힘이 풀리셔서 자리에 앉아
울고 계셨고요 주위에 많은 성도님들이 눈물을 흘리며 찬양을 하지 못하고 있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저는 그 모습들을 보며 또 감동을 받아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올려드렸습니다.
주께서 나를 안 다하시니 그것보다 귀한 위로가 있을까요
주님 홀로 영광 받기에 합당하십니다.
할렐루야~
https://www.youtube.com/watch?v=hSdU0ydob0Q&list=RDhSdU0ydob0Q&start_radio=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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