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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글 시리즈 묵상

꿈 이야기-3.환란을 보았다(마지막 때 입문 테스트)

by GOTOKINGDOM 2025. 6.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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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보여주신 환란의 비젼들은 1년을 넘도록 체험한 것이다

때로는 꿈으로 때로는 기도 중에 환상으로 때로는 말씀 묵상 중에 이상으로 나타났다

그중에 가장 많은 것이 거대한 도시가 쓰나미에 삼켜지는 꿈이었다

늘 같은 꿈이며 점차적으로 그 상황 속에서 세부적으로 발생하는 일들에

대처해 나가는 여러 사람들의 모습들이 보였다

오늘은 그중 나에게 가장 아찔한 상황이었던 순간에 가슴을 조리며 

회개했던 한 부분을 나누어 본다 

쓰나미 사진

 

실제로도 그런 것인지 나는 잘 모른다

내가 본 재난의 징조는 처음에는 순식간에 임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 경험을 여러 차례 하다 보니 징조가 본능적으로 감지가 된다 

하늘에 검은 구름이 덮이고 무리를 지어 날아가는 새들 구석구석 평소에 보이지 않던

짐승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모습들 그리고 온 공간에 세미한 울림과 진동.......

 

데살로니가전서 5:4 
"형제들아 너희는 어둠에 있지 아니하매 그날이 도둑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아니하리니"

 

어느 날은 이런 징조를 본능적으로 먼저 감지가 되면서 시작되었다

남들보다 미리 달려 도망가기 시작했고 이제 더 이상 시간이 없을 것 같을 때

쓰나미에 쓸려 내려가지 않기 위해 나를 단단히 고정시킬 기둥을 찾았다

그러던 중에 길에서 부모를 잃었는지 혼자 울고 있는 아이가 있었다 

나는 그 아이를 보고 지나치려 했으나 함께 달리고 있던  딸이 그 아이를

도와주려고 그 아이를 챙기는 것이다

나는 딸에게 우리가 살기에도 힘겨운데 이 아이를 어떻게 챙기냐고 야단을 쳤다

쓰나미에 도망하는 사람들 사진

 

그러나 이미 우리도 쓰나미를 피하기는 늦은 것 같았다

캄캄하고 높이 거대한 쓰나미가 눈에 보이기 시작할 때 우리는 급히 주위를 둘러보고

몸을 묶을 만한 곳을 찾아 단단히 붙들었다

이제 곧 우리를 덮칠 쓰나미를 기다리며 마지막 될지도 모르는 숨을 마음껏 쉬며

준비를 하였을 때 울고 있던 그 아이가 바로 내 앞에 와 있는 것이었다 

나도 모르게 그 아이를 끓어 안는 순간 쓰나미가 우리를 덮쳤다

나는 그 아이 눈을 보며 눈으로 말을 했다

"아줌마 꼭 잡고 입 다물고 꾹 참고 있어"

 

조금만 참고 있으며 다시 쓰나미가 밀려 나간다 

그때는 물이 낮아져서 숨은 쉴 수가 있기 때문에 쓸려나가지 않기 위해 단단히 붙들고

있으면 살 수가 있었다

그 아이는 잘 참고 견디고 있었다

다시 쓰나미가 밀려나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때 나를 묶었던 끈이 끊어져 버렸다

순간 아이를 안고 있던 내 손은 옆에 있던 파이프 관을 잡고 한 손은 그 아이를 잡았다

점점 힘이 빠지며 힘겨워지고 나는 순간순간 이 아이를 포기할까

이러다 나까지 쓸려가겠어 더 이상 버티기가 힘들어 

나는 최선을 다했어..... 하며 나 자신과의 싸움이 끝을 달리고 있었다

 

나는 스스로 어쩔 수 없다는 핑계로 잡고 있던 손을 놓으려는 순간 그 아이 눈과 마주치게 되었다

그런데 그 아이 눈이 너무도 무덤덤한 것을 느꼈다

두려움이나 간절함의 눈길이 아닌 마치 내가 그럴 줄 알고 있었다는 듯이 받아들인 것처럼.....

순간 이 눈빛을 어디선가 본 기억이 있었다

십자가의 은혜를 경험하게 하신 그때에 예수님의 눈빛과 동일한 깊은 공허함이었다

나는 정신을 차리고 다시 힘을 다해 그 아이 손을 꼭 잡았다 

엄청난 압력으로 빨아 당기는 느낌은 스홀의 소용돌이 같이 두려움이 가득했다 

 

어느덧 쓰나미는 끝이 났고 우리는 그곳에서 살아남았다

깊은 안도의 숨을 내어 쉬며 나는 꼭 잡고 있던 아이를 내려다보았다

그 순간 나는 숨이 멑어버리는줄 알았다 

분명 여자 아이였는데 그 아이가 바로 내 아들로 바뀌어 있었다

꿈에서 깨어 나는 너무도 소름 끼치는 순간이 전율로 온몸에 진동이 일어났다

내가 그때 이 아이를 포기했었다면 바로 내 아들을 포기한 것이었다

또 나의 민낱을 다 들어낸 그 순간의 사악함과 사랑 없음은 마지막 때의 현상으로 

바로 증명이 되어 버렸다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마24:23)

 

이 꿈으로 깨닫게 하신 주님의 말씀을 묵상하였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며 동시에 공의의 하나님이시다.

구원은 오직 은혜로 주어지지만,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의 믿음의 행위대로 보응하신다.

이 보응은 믿는 자에게는 상급의 기준이 되고, 믿지 않는 자에게는 심판의 기준이 된다.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롬 2:6)

이는 믿는 자뿐 아니라 믿지 않는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말씀이다.

로마서 초입 단계에서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라고 말씀하심은

단순히 믿음의 유무만을 보시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인간의 삶 전체를 공의로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성품을 드러낸 것이다.

 

하나님은 단지 믿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모두에게 동일한 형벌 행하시지 않으신다.

각 사람이 어떻게 살았는지를 기억하시고, 그 행위의 경중에 따라 의롭게 심판하신다.

마 11장에서 예수님은 회개하지 않은 고라신과 벳새다, 가버나움을 책망하시며,

하나님은 단지 행위의 결과만이 아니라, 그 사람의 양심, 빛의 정도, 받은 계시의 깊이까지

다 아시는 분이시며 그 모든 것을 따라 판단하고 형벌하시며 또 보응도 하신다.

 

하나님은 은혜를 믿는 자에게만 주신 것이 아니다

세상에는 믿지 않아도 선한 사람이 더 많이 있다

그 받은 은혜를 나누는 자들이 선한 양심을 가진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하지 아니하면 죄니라”(약 4:17)

 

그래서 믿지 않는 자도 자신이 가진 것을 나누며 사랑하는 사람이 많이 있다

그러나 많이 가졌는데도 더 욕심을 부리며 어려운 이웃을 돕지 않는 악한 자는

하나님 앞에서 더 큰 형벌로 공의롭게 심판받을 것이다.

그들에게도 형벌은 단순히 ‘지옥에 간다’는 한 가지 결과만 있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죄의 무게와 책임에 따라 차등적으로 주어질 것이다.

 

따라서 믿지 않는 자들도 동일한 지옥 형벌 안에서라도 그 형벌의 무게는

다를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또한 믿는 자로써 불신자의 가족을 위해 기도하기를 쉬지 말아야 할 것은 

의인에게 주시는 보응이 불신 가족 영혼 구원의 기회가 주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딤전 5:8)

“아내여 네가 남편을 구원할지 어찌 알겠느냐?
남편이여 네가 아내를 구원할지 어찌 알겠느냐?”
(고전 7:16)

 

누구 12장에서는 주인의 뜻을 알고도 행하지 않은 종은 많이 맞고, 알지 못하고 행한 자는 적게 맞는다.

이는 모든 받은 은혜가 클수록 책임도 크고, 들은 진리가 많을수록 회개의 기회 또한 무거운 것이다.

마 25: 31-46 심판의 실체를 더욱 분명히 보여준다.

인자가 모든 민족을 모아 양과 염소로 나누어 심판할 때, 양은 긍휼과 사랑으로 어려운 이들을 돌보고 섬긴 자들

염소는 그 반대로 이웃의 고통에 무관심했던 자들이다.

 

이때 양에게는 “내 아버지께 복 받은 자 들아…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하시며 상급을 주시고, 염소에게는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지 아니하였고”

하시며 영원한 형벌을 선고하신다.

이 비유는 단순한 행위의 구분이 아니라,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온 사랑과 자비가

실제 삶의 행위로 드러난 결과에 대한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임을 보여준다.

 

요한계시록 20장의 백보좌 심판에서도,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지 않은 자들은

둘째 사망 곧 불못에 던져지지만, 그 심판의 기준은 '자기 행위를 따라'였다.

이는 영원한 형벌이 동일하지 않으며, 하나님의 공의가 그 안에서도 완전히 드러난다

요한계시록 22:12는 믿는 자에게 주어질 상급을 말씀하신다.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

 

구속받은 자들은 더 나은 부활을 사모하며 주님을 위하여 충성하고 헌신한 삶을 살게 된다.

그 삶 속에 담긴 순종, 희생, 섬김, 기도, 인내는 주님 앞에서 결코 헛되지 않으며,

면류관과 상속, 기업이라는 놀라운 보상으로 되돌아오게 된다.

하나님은 사랑으로 우리를 구원하시되, 그 사랑 안에서 의인이 행한 모든 것을 기억하시며,

불신자에게는 그 악한 행위대로 모든 것을 기억하고 계신다

신자에게는 그 믿음의 수고대로. 우리는 주님 앞에 나아갈 날을 기억하며,

구원의 은혜 위에 더욱 성실히, 두렵고 떨림으로 살아가야 할 것이다.

 

내가 받은 꿈의 깨달음은 이렇다

환란 때에 자신이 행한 선행으로 믿는 자이든 믿지 않는 자이든 하나님이 그에 상당한 

은혜를 주신다는 것이다

그것이 심판 중에 라도 긍휼을 베푸시는 마지막 테스트이다

여호와여 내가 주께 대한 소문을 듣고 놀랐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케 하옵소서

이 수년 내에 나타내 시옵소서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옵소서(합 3:2)

 

환란 가운데 믿지 않는 자라도 주님의 형제 중 지극히 작은 자에게

도움을 준 사람은 반드시 심판 때에 주님은 기억하시고 보응하실 것이다

나는 불신자는 아니다 그러나 그때 상황을 내게 적용하셨다

내게 주어진 선행의 기회가 그 어린 여자아이를 구하는 것이었다

내가 그 아이를 끝까지 외면했다면 심판대에서 더 많은 형벌을 받게 될 것이지만

그 아이를 구했다면 그에 대한 내게 합당한 보응이 주어진다

그것이 더 극대화하시기 위해 나의 소중한 아들과 비교하신 것이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신 새 계명은 하나님 사랑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요

이웃을  제 자신같이 사랑하라 하셨다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요 15:13)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요일 3:16)

자녀들은 나 자신과도 같은 존재들이다

무엇과 내 자녀들을 바꿀 수가 있겠는가......

 

그런데 우리가 참 사랑을 하게 될 때에 형제를 위해 목숨을 버릴 수 있다고 하신다  

 

바꿔서 말하면 형제를 위해 내 목숨을 버릴 수 있는 것이 참 사랑이 되는 것이다 

예수님이 나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버리신 것을 믿는 다면 나 또한 예수님의 형제로써

그분이 사랑하시는 그 어린 여자 아이를 위해 목숨을 버릴 수 있어야 했다 

만약 내 아들이 누군가의 손에서 놓아졌다면 내가 그를 이해할 수 있었을까?

분명 원망하고 비난했을 것이다

 

주님, 부족하고 어리석은 저를 용서하소서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극렬한 풀무불 같은 날이 이르리니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는 다 초개 같을 것이라

그 이르는 날이 그들을 살라 그 뿌리와 가지를 남기지 아니할 것이로되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발하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

또 너희가 악인을 밟을 것이니 그들이 나의 정한 날에

너희 발바닥 밑에 재와 같으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말 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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