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목제 "זֶבַח שְׁלָמִים" (peace offering)
זֶבַח (zevaḥ) - 제사, 희생 제물 (sacrifice)
שְׁלָמִים (shelamim) - 평화, 완전함, 온전함, 샬롬(שָׁלוֹם shalom)에서 파생된 복수형
“zevaḥ shelamim”은 ‘평화의 희생제물’, 또는 ‘화목을 위한 희생제사’라는 뜻이 됩니다.
레위기 3장과 7장을 중심으로 보면, 화목제는 세 가지 목적으로 드려졌습니다
감사제 (thank offering) –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자발적 감사
서원제 (vow offering) – 하나님께 한 서원을 이행할 때
자원제 (freewill offering) – 특별한 계기 없이 기쁨으로 스스로 드릴 때
화목제는 하나님과의 좋은 관계 속에서 드리는 제사입니다.
그래서 다른 제사와 다르게 나눔의 기쁨이 있는 제사입니다
제물의 고기를 제사장과 드린 자가 함께 나누어 먹습니다.
이는 하나님과의 화평과 공동체적 기쁨을 상징합니다.
개인이 받은 하나님의 사랑을 공동체로 흘려보낼때 그 기쁜 과 감사는
확장되어지는 하나님의 원리가 담겨 있는 것입니다
ὅτι ἐν αὐτῷ κατοικεῖ πᾶν τὸ πλήρωμα τῆς θεότητος σωματικῶς
(호티 엔 아우토 카토이케이 판 토 플레로마 테스 테오테토스 소마티코스)
“그분 안에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고”
καὶ ἐστὲ ἐν αὐτῷ πεπληρωμένοι
(카이 에스테 엔 아우토 페플레로메노이)
“너희도 그 안에서 충만하게 되었으니”(골 2:9-10)
이는 그리스도와의 연합 속에서 신적인 생명과 은혜, 능력의 충만함을 누린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피는 하나님께 드려지고, 기름은 불살라져 향기로운 제사가 됩니다.
하나님께는 기름진 부분을 드리며, 나머지는 나누는 구조입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로 이루어졌음과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온전히 하나님의 기쁨이 드려질 수 있음을 잊지 않는 가난한 마음입니다
그래서 감사와 친교의 제사이며 슬픔이나 죄와 관련된 제사가 아닙니다.
화목제는 하나님과의 좋은 관계 속에서 드리는 제사인 것입니다.
화목제의 제물은 다른 제사와 다르게 암컷의 제물이 가능한 제사입니다
이 제사는 화목과 기쁨이 목적인 것처럼 모든 사람이 함께 참여할 수 있다는
하나님의 열방적인 구원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그의 제물이 소의 희생이면 수컷이나 암컷이나 흠 없는 것으로 여호와 앞에 드릴지니라"
(레위기 3:1)
"네가 만일 서원 제물이나 자원 제물로 여호와께 화목제를 드리려거든
소나 양이나 흠 없는 것으로 드려야 기쁘게 받으심이 될 것이요"
(레위기 22:21)
화목제의 제사 방법과 순서를 보겠습니다 (레위기 3장, 7:11–34 기준)
1. 제물 준비
- 제물은 소나 양, 염소 중에서 택하며
- 수컷이나 암컷 모두 가능하지만 반드시 흠 없는 것이어야 합니다 (레 3:1, 6, 12).
2. 제물을 가져오는 사람(예배자)이 직접 제물을 잡음
- 예배자는 회막 문 앞에서 여호와께 제물을 드리며,
- 자신의 손으로 제물의 머리에 안수한 뒤,
- 직접 제물을 잡습니다 (레 3:2, 8, 13).
- 개인의 헌신과 참여를 상징하며,
단순히 제사장에게 넘겨 대신하는 것이 아님을 보여줍니다.
3. 제사장이 피를 뿌림
- 예배자가 제물을 잡은 후,
- 제사장이 그 피를 취해 제단 사방에 뿌립니다
- 사방에 뿌림은 하나님과의 화목뿐 아니라 사람 사이의 평화와 교제를 의미합니다.
- 하나님의 임재 앞에 온 공동체가 함께 서고, 모든 방향에서 화해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속죄제는 오직 제사자와 하나님관계에 적용이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피로만 죄사함이 있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예수님이 이루시는 것입니다
속죄제의 피는 지성소까지 들어갑니다 제단 뿔에 바르고 나머지는 모두 제단 밑에 쏟음
그래서 속죄제는 각자가 하나님께 드려야 하는 것이며 그 속죄는 다른 사람에게
전가되지 않습니다
4. 제사장이 기름과 특정 부위를 불에 태움 (하나님께 올려드림)
- 화목제에서는 전부를 태우지 않고,
-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부분만 태웁니다
- 내장 주위 기름, 콩팥과 그 주변 기름, 간 위의 꺼풀 (레 3:3–5 등)
이는 하나님께 드리는 가장 좋은 부분, 내면(내장)을 드리는 헌신을 상징합니다.
누군가 시켜서가 아닌 마음에서 울어 난 자발적인 헌신이라는 것입니다
5. 나머지 제물의 고기는 나눔
- 제물의 가슴과 오른쪽 뒷다리는 화목제를 주관한 제사장 몫입니다 (레 7:30–34).
- 나머지 고기는 제사를 드린 예배자가 자신과 가족, 이웃과 함께 먹습니다 (레 7:15–16).
- 이는 하나님과, 중보자와, 가족 공동체가 함께 참여하는 기쁨의 교제입니다.
- 단, 고기는 정해진 날 안에 먹어야 하며, 부정하게 되거나 오래 두면 안 됩니다 (레 7:17–21).
화목제의 고기는 2일 안에 다 먹어야 합니다
만약 세째날까지 남겨지면 반드시 불에 태우고 먹으면 죄가 됩니다
이는 자원하여 화목을 이루는 일에 더 많이 나누고 섞거나 부패되는 보이기 위한 행함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영적 의미가 있습니다
결국 화목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어진 하나님과의 화목을 예표 합니다
- 예수님은 우리와 하나님 사이의 화목제물이 되셨고 (롬 5:10, 고후 5:18–19),
- 우리는 그분의 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에 들어갑니다.
- 또한, 주님의 살과 피를 나누는 성찬 역시
화목제의 공동체 생활에 신약적 실현으로 볼 수 있습니다.
신약성경에서 화목을 뜻하는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헬라어: καταλλάσσω (카탈라소) - 화목하게 하다, 화해시키다
명사형: καταλλαγή (카탈라게) - 화목, 화해, 조정
우리가 하나님과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다면
(καταλλαγέντες τῷ θεῷ – 카탈라겐테스 토 테오)(롬 5:10)
이 단어는 관계의 회복, 원수 관계에서의 평화 뜻합니다.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또 오셔서 먼 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시고.....
이는 그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엡 2:14-18)
화목제는 그 자체가 기쁩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에서 형제들과의 하나 됨까지 이루시는 제사입니다
하나님과 막힌 담을 허시고 의문의 법으로 이방인이라 정죄하였던 모든 법조문을
예수님의 육체를 찢으심으로 모두 폐하셨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는 그리스도 안에서 모두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들을 그리스도인이라고 합니다
신약에 있어서 화목제의 예표로 예수님이 어떤 예를 보여 주셨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아마도 이 말씀을 이렇게 연결해서 들어 보신 적이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죽으심으로 화목제물의 최고의 사랑을 나누어 주셨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그전에 화목제물에 대한 사랑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또 그들 사이에 그중 누가 크냐 하는 다툼이 난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방인의 임금들은 저희를 주관하며 그 집권자들은 은인이라
칭함을 받으나 너희는 그렇지 않을지니 너희 중에 큰 자는 젊은 자와 같고
두목은 섬기는 자와 같을지니라 앉아서 먹는 자가 크냐 섬기는 자가 크냐
앉아 먹는 작가 아니냐 그러나 나는 섬기는 자로 너희 중에 있노라(눅22:24-27)
이 말씀은 마지막 만찬의 장소에서 있었던 일들입니다
이 모습을 다 알고 계셨던 예수님은 식사 자리에게 일어나셔서 다툼이 있던 제자들을
어떻게 화목시키시는지 보시겠습니다
저녁 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시고
이에 대야에 물을 담아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그 두르신 수건으로 씻기를 시작하여
중간 생략
저희 발을 씻기신 후에 옷을 입으시고 다시 앉아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을 너희가 아느냐
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종이 상전보다 크지 못하고
보냄을 받은 자가 보낸 자 보다 크지 못하니 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 내가 너희를 다 가리켜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의 택한 자들이 누구인지 앎이라(요 13:4-18)
(말씀이 길어서 중간에 생략을 했지만 모두 읽으시기를 권유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주인 되십니다 그럼 우리는 주님의 종이 되는 것이지요
그리고 사도를 원어로 보내심 받은 자라고 합니다
사도 ἀπόστολος (apostolos 아포스톨로스)
- ἀπό (apo) = ~로부터, 떨어져 στέλλω (stellō) = 보내다
- 합성어로서 "보냄을 받은 자", 즉 보냄 받은 사절, 파견자를 뜻합니다.
위 말씀에서 예수님은 주님의 종으로 또 사도로 택하신 자들이 있다고 하십니다
그러나 모두는 아니라고 하시는데 비단 가룟 유다만 가리켜서 말씀하심이 아닙니다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다 하십니다
무엇을 알아야 할까요?
바로 누가 크신 분이신지 바로 알라는 말씀이십니다
우리는 보통 주님의 종 또는 주님이 보내 신자를 섬깁니다
아닙니다 섬기는 자도 섬김을 받는 자도 모두 알지 못하고 행하는 자들입니다
고넬료 집에 보내진 자 베드로도 자신이 높임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또한 고넬료도 베드로에게 절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있는 것이라 하였고 베드로에게는 오셨으니 잘하였다는
겸손과 경의를 표한 것입니다
내가 곧 당신에게 사람을 보내었더니 오셨으니 잘하였나이다
이제 우리는 주께서 당신에게 명하신 모든 것을 듣고자 하여
다 하나님 앞에 있나이다 베드로가 입을 열어 가로되 내가 참으로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취하지 아니하시고 각 나라 중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받으시는 줄 깨달았도다
만유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화평의 복음을 전하사... (행 10:33-36)
베드로가 무엇이라 하였습니까?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베드로는 고넬료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합니다
그런데 고넬료가 하나님을 경외하는지 의를 행하는지 어떻게 알았을까요?
저희가 대답하되 백 부장 고넬료는 의인이요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라
유대 온 족속이 칭찬하더니 저가 거룩한 천사의 지시를 받아
너를 그 집으로 청하여 말을 들으려 하느니라(행 10:22)
나흘 전 이맘때까지 내 집에서 제 구 시 기도를 하는데 홀연히 한 사람이
빛난 옷을 입고 내 앞에 서서 말하되 고넬료야 하나님이 네 기도를 들으시고
네 구제를 기억하셨으니...(행 10:30-31)
고넬료가 무엇을 하였습니까?
자기 집에서 늘 하던 기도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또한 그가 구제를 하는 사람으로 온 족속이 다 알아 칭찬을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바로 의를 행하는 자입니다 그를 모두 의인이라고 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인정하는 하나님 말씀을 행하는 자인 것입니다
이렇게 의를 행하는 자는 하루아침에 의인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늘 함께 보며 한결같이 행하며 변함이 없이 순전한 사람입니다
한번 왕창 구제하며 사진 몇 장 찍어서 기념하는 그런 사람들이 아닌 것입니다
당신이 행하고 있는 "의"는 이렇게 고넬료처럼 "모두가 인정하는 의인" 맞습니까?
하물며 고넬료는 너무도 겸손합니다
고넬료가 보낸 사람도 베드로에게 너를.... 편하게 말을 하는데
고넬료는 베드로에게 맞아 절을 하고.... 오셨으니 잘하였나이다.... 당신.... 있나이다
이렇게 높여 베드로를 대하고 있습니다
백부장인 고넬료의 이런 겸손의 행함에 베드로는 바로 알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이런 사람이 주님의 화평을 전하는 자 화목제를 드리는 자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더 연결되는 것은 화목제 제물로 드리는 짐승이 암컷과 수컷을
가리지 않고 흠 없는 것을 드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른 제사에 드리는 제물은 모두 수컷으로 드려집니다
그것이 바로 유대인과 이방인을 구별하지 않는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않으신다는
베드로의 말과 연결이 됩니다
이스라엘이 언약궤를 빼앗겠던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는 하나님을 섬기는 종이 하나님의 영광을 힘입어 자신이 높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를 택하여 나의 제사장을 삼아 그로 내 단에 올라 분향하며 내 앞에서 에봇을 입게
하지 아니하였느냐 이스라엘 자손의 드리는 모든 화제를 내가 네 조상의 집에
주지 아니하였느냐 너희는 어찌하여 내가 나의 처소에서 명한 나의 제물과 예물을
밟으며 네 아들들을 나보다 더 중히 여겨 내 백성 이스라엘의 드리는 가장 좋은 것으로
스스로 살찌게 하느냐(삼상 2:28-29)
이런 망령된 행실로 인해 하나님은 엘리의 두 아들을 죽이시기로 정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자신을 섬기는 제사장을 징계하시는 방법은 그들에게서 떠나시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에게 가장 두렵고 강경한 징벌은 질병도 가뭄도 전쟁도 아닙니다
아담이 죄를 범하였을 때 에덴에서 쫓겨난 것처럼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떠나는 것이
가장 두려운 형벌이었습니다
그러니 엘리의 두 아들의 형벌로 이스라엘의 영광이 떠나는 것이었습니다
너희 블레셋 사람들아 강하게 되며 대장부가 되어라 너희가 히브리 사람의 종이 되었던 것 같이
말고 대장부 같이 되어 싸우라 하고 블레셋 사람이 쳤더니 이스라엘이 패하여
각기 장막으로 도망하였고 살육이 심히 켜서 이스라엘 보병의 엎드러진 자가 삼만이었으며
하나님의 궤는 빼앗겼고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죽임을 당하였더라(삼상 4:9-11)
- 언약궤가 블레셋에게 빼앗겼고
- 엘리 제사장과 그의 두 아들이 죽었으며
- 이 모든 재앙 속에서 여인이 낳은 아이에게 “이가봇”이라는 이름을 지어,
하나님의 임재와 영광이 이스라엘을 떠났다는 절망이 선포되었습니다.
“이 아이의 이름을 이가봇이라 하였으니, 하나님의 궤를 빼앗겼고, 시아버지와 남편이 죽었기 때문이라.
또 이르기를 ‘하나님의 영광이 이스라엘에서 떠났다’ 하였더라.”(삼상 4:21-22)
이가봇 אִי־כָבוֹד (ʾî-kāḇôḏ, 이-카보드)
- אִי (ʾî) “없다”, “아니다”를 뜻하는 부정 접두어
- כָבוֹד (kāḇôḏ, 카보드) “영광”, “존귀”, “무게감” (하나님의 임재나 위엄을 가리킴)
“이가봇”의 뜻은 “영광이 없다” “영광이 떠났다”입니다.
엘리의 두 아들 중에 비느하스의 아내가 남편의 죽음 소식을 듣고 갑자기 해산을 합니다
그때 태어난 아이를 이가봇이라 이름 하였습니다
“이가봇”은 단순히 한 아이의 이름이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 없이 종교만 남을 때
얼마나 공허하고 무력한 지를 보여주는 상징입니다.
• 하나님의 언약을 형식적으로 다루면,
•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죄에 관대하면,
결국 “이가봇” – 영광이 떠난 상태가 됩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이 떠나 계신 자리에 하나님의 아들이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과의 화목을 전하시고 다시 하나님의 영광이 임하시계 하셨습니다
그분이 임마누엘로 오신 예수님이 십니다
임마누엘 (עִמָּנוּ אֵל, ʿimmānû ʾēl, 임마누엘)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 עִמָּנוּ (ʿimmānû) = 우리와 함께
- אֵל (ʾēl) = 하나님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거하시며, 동행하시고 구원하신다는 약속입니다
이사야 7:14 , 마태복음 1:23 기록에 증거 되신 분이시며
구원, 회복, 하나님의 임재, 예수 그리스도를 예언된 말씀입니다
이제는 그 화목하게 하는 믿음의 분량을 우리에게 맡기셨습니다
당신이 계신 그곳에 당신은 화목하게 하는 직책으로 계신 것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났나니, 저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저희의 죄를 저희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고후 5:18-20)
하나님이 우리의 죄를 우리가 담당하도록 원하지 않으십니다
그것은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으로만 생각하고 감사합니다로 끝나면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죄에 대한 진노를 그 누구 감당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진노는 택하신 자들도 견디기 힘든 상상도 못 할 분노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날들을 감하지 아니하였더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나
그러나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그 날들을 감하시리라.”(마24:22)
당신이 택함 받은 사람이라면 지금 당신이 하고 있는 일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과의 깊고 넓고 높으신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자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심판하시는 분이심을 전하는 것보다
하나님의 부요하심을 전하는 것보다
하나님의 치료하심을 전하는 것보다
오해하지 마세요!
심판, 부요, 치료 등을 무시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전함은 하나님 되심을 전하지 않아도 모두 환란을 당하면 다 알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아버지 하나님 되심을 알기를 가장 원하시고 계십니다
아담을 지으시고 하나님은 그를 일군으로 부린 것이 아니었습니다
동산을 함께 거니시고 하나님이 아담을 위해 심으신 모든 나무 과실을 함께 드시며
모든 짐승들을 하나하나 불러서 아담에게 이끄시며 그들에게 이름을 지어 주라 하셨습니다
그렇게 명령하시고 내가 다녀올 때까지 일 다 해놔야 해!
하시고 떠나신 것이 아니라 함께 하시며 뿌듯하게 지켜보셨다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어떻게 이름을 짓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이르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일컫는 바가 곧 그 이름이라(창 2:19)
아마도 아담은 자신의 평생이 흑암 속 삶이었을 것입니다
어떻게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며 살았던 그 시간을 단절하고 살 수 있었을까요
아담은 930년을 살았습니다
그 오랜 시간 동안 삶이 축복이었을까요
지금의 우리는 하나님을 뵙지 못하고 믿음으로만 하나님을 바라보고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담은 아니었습니다
직접 동산에 하나님과 함께 거닐며 함께 먹으며 함께 대화하며 지낸 시간들이었으니까요
분명 빨리 죽어 하나님 아버지께로 가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것을 어떻게 아냐고요?
바로 예수님이 그러셨거든요 예수님은 아버지께 가는 것이 가장 큰 기쁨이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당연한 마음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갔다가 너희에게로 온다 하는 말을 너희가 들었나니
나를 사랑하였더면 나의 아버지께로 감을 기뻐하였으리라
아버지는 나보다 크심이니라(요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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