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네가 수고도 아니하였고 배양도 아니하였고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망한 이 박 넝쿨을 네가 아꼈거든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치 못하는 자가
십 이만 여명이요 육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아끼는 것이 어찌 합당치 아니하냐? (요나 4:10-11)

오늘은 요나서를 묵상해 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요나를 참 좋아합니다
왠지 나를 보는것 같거든요
요나는 분명 여호와 하나님을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명령이 있었음에도 불순종하고
풍랑 가운데에도 배에 있는 모든 자들은 원인을 모르는데
요나는 하나님이 이 일을 행하심을 알았고
배에서 자신을 바다에 던지면 이 재앙이 그칠 것이라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없었고
죽기를 구하여도 자신의 영혼이 하나님께 간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았고
감히 두려우신 하나님과 언행 쟁변도 할만큼 친밀한 관계임이 분명합니다
우리 중 누가 하나님 현존 앞에서 요나처럼 할 말 다할 수 있을까요?
요나를 보면 나를 보는것 같다고 한 것은 이렇게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라는 것이 아니라
철없이 분간 못하고 하나님께 투덜거리는 제 모습을 보는 것 같기 때문입니다
이런 저를 성령님이 요나에게 질문 하셨듯이 동일한 질문 앞에 세우십니다
오늘 본문 말씀 원문을 직역하면 이런 의미입니다
"너는 수고도, 재배도 하지않은 이 박넝쿨을 아꼈다"
"그런데 나는 내가 창조하고 기른 니느웨 사람과 짐승들을 아끼지 말아야 하겠느냐?"
하나님은 요나서에 질문으로 끝을 열어 놓으셨습니다
이는 오늘날 우리에게 동일하게 하시는 질문이기 때문입니다
먼저는 내가 아끼고 있는것과 하나님이 아끼시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대부분 내가 아끼는것은 내 가족, 물질, 건강 같은 단순하게 생각을 합니다
본문 내용으로 보면 가장 일반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부분임에 맞습니다
그러나 좀더 깊이 보시면 하나님 말씀은 요나가 자신이 수고도 배양하지도 않은 것을
아꼈다고 일침을 가하십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이 준비하신 것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요나가 원해서 하나님께 구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요나는 이미 자신을 위해 초막을 짓고 그늘에 앉아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요나가 지은 초막에 박 넝쿨을 더하여 주신 것입니다
물론 요나는 그 박 넝쿨 때문에 심히 기뻐하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또 벌레를 준비하사 박 넝쿨을 씹어 시들게 하였고
뿐만 아니라 요나 스스로 지은 초막도 뜨거운 동풍에 견디지 못했습니다
이런 이상한 일 왠지 하나님이 요나에게 주셨다가 다시 뺏아버리는 그런 느낌입니다
참 아이러니 하게도 하나님은 이런 작은 일로도 우리에게 큰 가르침을 주십니다
오늘 본문 말씀으로 요나의 마음 심보와 하나님의 인애하심이 얼마나 다른지
변명할 수 없는 진리의 말씀에 아멘! 하게 하십니다
그럼 오늘날 우리들은 요 나 같은 가르침 앞에 무엇을 회개하며 깨달아야 할까요?
요나는 니느웨 성이 40일 후에 무너진다고 하룻길만 행하며 외쳤습니다
그런데 생각지도 않은 회개가 온 성에서 터져 나왔습니다
급기야 니느웨 왕이 모든 백성들 뿐 아니라 짐승들까지 금식하며 베를 입고
악을 떠나 회개하며 여호와께 부르짖었습니다
그 회개에 하나님께서 뜻을 돌이키사 재앙을 내리지 않으셨습니다

그런데 요나가 그런 하나님의 뜻에 심히 싫어 노하여 여호와께 기도를 드립니다
기도라기보다 하나님께 하소연과 말댓구 같은 억지를 부리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여호와여 내가 고국에 있을 때에 이러하겠다고 말씀하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러므로 내가 빨리 다시스로 도망하였사오니" (요나4:2)
요나는 자신이 다시스로 도망간 이유를 하나님이 이렇게 행하실 줄 알고
그 뜻에 복종하지 않았다고 변명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며 하나님이 니느웨를 용서하시는 것이 싫다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요나는 물고기 뱃속에서 3일을 죽은 듯 지내었고 자신의 고통을 회개하며
하나님께 긍휼을 받아 다시 물고기 배에서 토해졌습니다

그렇게 죽다 살아나서도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지도 않았습니다
니느웨 성은 3일 길을 행하는 큰 성이었는데 고작 하룻길을 행하며 외쳤을 뿐입니다
그런데도 니느웨 성 십 이만 여명의 백성들이 회개를 한 것입니다
어떤 한 미친 사람이 하루동안 이 성은 무너질 것이라고 외쳤다고 온 성 사람들이
회개한다는 것이 하나님의 인도하심 아니고서야 말이 되지 않습니다
그런 강력한 회개의 부흥을 하나님의 사람 요나가 알지 못했을까요?
요나는 하나님을 아주 잘 알고 있는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사람 맞습니다
그러나 선지자 요나도 자신의 마음과 뜻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순종하기 싫은 마음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니느웨는 요나의 고국과 적국인 나라이기 때문이며
니느웨는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과 같이 악독이 가득한 나라였기 때문입니다
마땅히 누가 봐도 심판받아 멸망당할 악한 죄인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심판을 명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요나는 도망을 갔습니다
그 어디에도 하나님이 요나에게 니느웨에 가서 회개시키라는 말씀은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요나가 도망간 것은 정말 하나님의 성품과 의도를 간파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니느웨에 한번 더 기회를 주시려고 하신다는 것을 그 본심을 꿰뚫어 본 것입니다
누가 이렇게까지 하나님의 본심을 꿰뚫어 깨달을 수 있을까요?
아밋대 אֲמִתַּי (아밋타이)- אֱמֶת (에메트) = 진리, אמת 에서 나온 이름입니다.
요나 יוֹנָה (요나)- 비둘기, 평화의 소식을 상징합니다
아밋대는 요나의 아버지입니다
이름을 보고 알 수 있는 것은 요나는 평화의 소식을 전하는 진리의 아들입니다
이는 곧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수식어입니다
"내가 하나님 여호와의 하실 말씀을 들으리니
대저 그 백성, 그 성도에게 화평을 말씀하실 것이라"(시편85:8)
그런데 요나서에서는 이름의 뜻과 반대되는 모습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해 순종하여 오셨습니다
요나는 도망가다 물고기 먹이가 되어서 억지로 왔습니다
예수님은 정해진 때를 맞추어 사역하셨습니다
요나는 자신 마음대로 때를 하룻길로 정해 사역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십자가에 끌어온 자들을 향해 하나님께 용서하시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요나는 하나님의 용서에 화를 내며 성이 무너지기를 바랐습니다
그런데도 요나를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로 삼으심은 이 또한 사람에게 집중하는 것이 아닌
오직 그에게 역사하시는 하나님만 신뢰하고 집중되어야 한다는 숨은 의도입니다
오늘날로 보면 성령이 내주 하시고 또 그에게 순종하는 자들에게도
자신의 뜻과 생각으로 하나님의 뜻을 가로막고 대항하는 부분이 있다는 말입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예수님처럼 완전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이 임하셔도 인간은 여전히 가르침을 받아 순종하며 행하는 삶의 여정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잘 안다고 하여 하나님의 뜻을 변계 하여서는 안 됩니다
자신이 스스로 하나님의 일에 순종한다고 하여 하나님이 모든 부분 지지한다고 생각하면
하나님의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을 때에는 원망과 불평을 하게 됩니다
사역자가 그 길에서 회개하고 돌이키기보다 그 길을 순탄하게 열리도록 애쓰며 기도로 간구합니다
요나의 경우가 그런 것입니다
스스로 초막을 지어서 성이 어떻게 되는지 지켜보았습니다
그런 요나에게 박 넝쿨을 허락하심은 하나님께서 요나를 지지하시는 것 같습니다
사역을 할 때 형통하거나 부흥이 있으면 하나님께서 내 사역을 기뻐하시고
도우심을 느끼게 되어 더욱 열심히 충성을 합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 그 사역에 어려움이 오고 교회에 분란이 일어나면
"하나님 제가 어떻게 충성했는데 이런 결과를 주십니까?"
하고 자신의 의를 드러냅니다
"그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마7:22)
예수님은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사역을 가지고 와서 말한다고 하십니다
그러나 그들을 모른다 하시고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천국에 들어간다"하십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뜻을 알고도 행하지 않은 자이든 하나님의 뜻과 상관없이 행한 자이든
모두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요나같은 사람은 천국에 들어가지 못했을까요?
“주인의 뜻을 알고도 준비하지 아니하고 그 뜻대로 행하지 아니한 종은 많이 맞을 것이요”
알지 못하고 맞을 일을 행한 종은 적게 맞으리라 무릇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요구할 것이요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 할 것이니라”(눅 12:47-48)
그 사람이 하나님이 세우신 종이라면 주인이 책임지십니다
문제는 자칭 선지자와 거짓 선지자 같은 하나님이 세우시지 않은 종과
하나님이 세우셨지만 타락한 종은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 하실 것입니다
요나는 하나님이 니느웨 성에 자비를 베푸심에 심히 화가 났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하나 짚고 넘어갈 것은 요나의 상태와 니느웨의 상태가 동일한 "악"이라 말합니다
“요나가 심히 싫어하고 노하여”(요나 4:1)
רָעָה (라아)
“니느웨의 악독이 내 앞에 상달하였음이라”(요나 1:2)
רָעָה (라아)
성경은 요나서 마지막 4장 시작을 보면서 시작을 되돌아보게 하였습니다
처음 니느웨가 심판받아야 할 악독이 하나님 앞에 상달되었다고 하였습니다
그것을 선포하러 보낸 요나가 자신의 의로 판단했던 결과에서 하나님은
요나에게도 동일하게 그 악독함이 내면에 있다는 것을 드러내신 것입니다
오늘날도 동일합니다
먼저 신약에 예수님이 그 시대 가장 경건하고 거룩하다는 서기관, 바리새인, 사두게인들에게
이 말씀으로 경고하십니다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
요나가 밤낮 사흘을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 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을 땅속에 있으리라"(마 12:39-40)
이 말씀은 예수님이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다른 의미도 있습니다
먼저는 예수님이 표적으로 하신 말씀에는 부활에 대한 "살아나리라"에 대한
말씀은 안 하셨다는 것입니다
"인자도 밤낮 사흘을 땅속에 있으리라"
이 말씀 전후를 읽어보면 모두 내면에 있는 어떤 존재를 드러내시는 말씀에서
표적을 주시겠다는 부분입니다
악한 것은 속에서 나오는 것이며 강한 자를 더 강한 자가 결박할 수 있다는 말씀과
성령을 훼방하는 것과 성령을 거역하는 것에 대한 말씀과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가는 것과 또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
전보다 나중 형편이 더 심하게 된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 모든 말씀이 다 사람의 내면 상태를 드러내시는 것인데
사람 안에서 죄를 드러내시는 분은 오직 성령님이십니다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책망하십니다"(요 16:8)
성령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며 악독한 내면에 죄를 드러내시며 회개의 마음으로
이끄십니다
예수님이 표적으로 깨닫게 하심은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회개하였고
요나의 선포로 니느웨 사람들이 회개하였듯이
우리 안에 성령께서 임하시면 표적입니다
부활에 이르도록 회개로 이끄실 때 성령을 훼방하지 말고 거역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요나가 바알세불 즉 마귀의 세력 예표인 바다짐승에게 삼켜졌습니다
바다짐승은 강한 자이나 더 강한 자 하나님께서 결박하고 늑탈한 것을 토하게 하셨습니다
요나는 자신의 뜻으로 하나님의 뜻을 버리고 도망하였습니다
성령을 거역하였으나 물고기 뱃속에서 회개하여 다시 자비를 얻었습니다
그러나 완전히 자신의 뜻에서 돌이키지 않았습니다
니느웨에 자비를 베푸신 하나님께 완전히 항복하지 않은 것입니다
이는 귀신을 쫓으셨는데 온전히 돌이키지 않아 일곱 귀신 더 들어간 상황입니다
이렇게 말씀이 연결되는 이유는 하나님이 요나에게 처음 질문 하셨을 때에는
요나가 변명을 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두 번째 질문에는 그 속에 있는 악을 하나님께 다 드러냈기 때문입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의 성냄이 어찌 합당하냐?"
"하나님이 요나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 박 넝쿨로 인하여 성냄이 어찌 합당하냐?
그가 대답하되 내가 성내어 죽기까지 할지라도 합당하니이다"
예수님이 표적을 구하는 악한 세대에게 경고하시고 싶으신 것이 이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경건으로 사람을 판단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람 속을 뒤집어 까보면 모두가 악하다는 말씀이겠지요
하나님과 친밀함을 가지고 하나님 뜻을 잘 안다고 하여 의인이 되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는 자 그것이 세상이나 교인들 눈에 악해 보인다 해도
내 생각과 뜻을 관찰시키려 하지 않고 하나님을 신뢰하며 행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때로는 사람들에게 비난을 받고 내 재산에 손해가 나고 건강에 비상 신호가
온다 해도 흔들리지 않는 반석 위에 서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가 고백한 것 같이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하나님은 신실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왜 당신을 구원하셔야 하나요?
하나님께서 왜 당신의 병을 고쳐주셔야 하나요?
하나님께서 왜 당신에게 재정을 부어주셔야 하나요?
하나님께서 왜 당신의 사역에 부흥을 주셔야 하나요?
하나님이 당신을 망하게 하신다면 당신은 하나님을 믿지 않고 떠나실 건가요?
표현이 좀 극단적입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행하여 주시는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아무런 조건 없이 그 정하신 뜻대로 우리에게 나타내십니다
우리가 무엇을 하여드려 그에 대한 보상으로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요나의 깊은 속마음을 드러내는 부분이 이것이었습니다
요나는 니느웨가 회개하는 것이 못마땅했습니다
그러나 요나는 니느웨 백성들의 그 회개를 믿지 않은 것일까요?
하나님의 명하심이 없었는데도 요나는 성에서 나와 동편 언덕에 성이 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고 스스로 지은 초막에 앉아 성읍이 어떻게 되는지 지켜보려 합니다
그곳에 하나님이 푸른 박 넝쿨로 덮어주시니 순종에 따른 보상같이 느껴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준비하신 벌레로 박 넝쿨을 다시 거두어 가셨습니다
요나는 이런 상황들로 인해 화가 나서 죽을 지경이었습니다
정말 "화딱지나 죽겠네" 였던 거지요
"내가 성내어 죽기까지 할지라도 합당하니이다" (요나4:9)

요나는 왜 화가 나 죽을 지경이었을까요?
마땅히 벌 받아 멸망당해야 할 이방 나라 니느웨에는 긍휼을 베프시고
평생 하나님을 섬긴 저에게 이렇게 행하심은 불의 하다 항소하는 것이겠지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늘 착각하는 부분입니다
불신자들이 형통한 것을 보고 그리스도인들이 박해를 받는 것은 불의해 보이는 것입니다
선지자 하박국도 1:13 이렇게 호소했습니다
“어찌하여 거짓된 자들을 방관하시며 악인이 자기보다 의로운 사람을 삼키는데도 잠잠하시나이까”
여기서 말하는 “자기보다 의로운 사람”도 절대적인 의인이 아니라
상대적으로 덜 악한 자라는 긴장 속 표현입니다.
완전한 의인이 아니라 하박국이나 이스라엘도 바벨론과 같은 심판 가운데 있습니다.
그래서 2장으로 가면 하나님은 양쪽 모두를 심판하심으로 의인을 정의하십니다.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의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니라
그러나 의인은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하박국 2:4)
이건 “누가 더 의롭냐”의 문제가 아니라 모두 심판 아래 있지만
하나님을 의뢰하는 자만 산다는 선언입니다.
하박국 2:8 보시면 하나님은 네가 이렇게 했으니 또 남은 민족이 네게 똑같이 한다는
말씀으로 모든 민족을 죄아래 이끄심을 볼 수 있습니다
의인은 없나니... 오직 믿음으로 의롭게 되나니....
로마서에 말씀처럼 하나님은 오직 믿음 안에서 역사하십니다
믿음의 자녀를 얻기 위해 악한 자를 들어 사용하시고 그 악한 자 또한 심판하시며
회개의 기회를 허락하십니다
요나는 니느웨 심판을 선포하며 자신의 악함을 하나님께서 드러내시며
회개의 기회를 얻은 것이고 니느웨는 요나의 선포를 통해 회개의 기회를 받은 것입니다
큰 악인과 큰 의인은 없습니다
예수 믿는 자는 의인 불신자 악인뿐입니다
믿는 자로써 참 부끄럽습니다
세상에는 불신자들이 저보다 훨씬 많이 선하니까요
하나님은 요나의 심술보를 터트리심으로 자신의 의와 옳다 함을 보게 하십니다
그러나 신실하신 하나님은 그런 요나에게도 책망하시거나 벌을 내리지 않으십니다
아들과 같이 친밀한 관계인 요나를 스스로 돌아보게 하시는 것입니다
요나는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 그리고 오래 참으심으로 인애가 크시다고
하나님의 성품을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율법에 기본 가르침으로 출애굽기 34장에 기록된 말씀입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전통 신학적 가르침입니다
“여호와께서 그의 앞으로 지나시며 선포하시되
여호와라 여호와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 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라”(출 34:6)
요나의 내면의 모습은 탕자의 비유에서 큰 아들 마음 같습니다
큰 아들은 아버지께 배은망덕하였던 동생이 모든 것을 잃고 거지가 되어 돌아왔음에도
여전히 사랑으로 맞으시는 아버지가 못마땅하고 억울하기까지 합니다
"내가 여러 해 아버지를 섬겨 명을 어김이 없거늘 내게 염소 새끼라도 주어
나와 내 벗으로 즐기게 하신 일이 없더니"(눅15:29)

큰 아들은 아버지 곁에서 탕자같이 살았습니다
탕자의 비유에서는 하나님의 사랑의 성품이 온전히 드러납니다
큰 아들도 작은 아들도 모두 아버지 마음을 알지 못했습니다
아버지는 큰 아들에게도 작은 아들에게도 화를 내지 않으셨습니다
"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았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어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눅 15:32)
하나님의 마음은 우리가 함께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입니다
요나도 니느웨도 오늘날 우리들도 모두 하나님 앞에서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오늘 묵상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요나는 자신에게 속해있는 박넝쿨을 이방인 니느웨 사람 십 이만 여명보다 아꼈고
기뻐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방 나라 니느웨는 악하다고 판단했고 심판받기에 마땅하다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요나를 물고기 먹이로 주시면서까지 니느웨 사람들을 아끼셨습니다
오늘 나를 돌아봅니다
내 의와 생각으로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거나 "하나님도 나와 같은 생각이실 거야" 하는
착각을 하고 있지 않은지 돌아봅시다
내게 속한 것을 아끼고 내게 속하지 않은 것을 하나님이 사랑하시면
심히 싫어하고 화가 나지 않습니까?
내가 그들보다 조금 더 의인이라 생각되어 그들의 형통함에 질투가 나지 않습니까?
불신자를 마음으로 악인이라 구원받지 못할 자로 정죄하지 않았습니까?
오늘 묵상은 요나서를 질문으로 끝을 열어두신 하나님의 뜻을 받아
저도 질문으로 묵상글을 열어 놓습니다
마음으로 답을 달아보시기 바랍니다
묵상글이 길었지만 함께 위로하고 힘을 얻기 위해 시편 73편을 나눕니다
할렐루야~
시편 73편 아삽의 시
하나님이 참으로 이스라엘 중 마음이 정결한 자에게 선을 행하시나
나는 거의 넘어질 뻔하였고 나의 걸음이 미끄러질 뻔하였으니
이는 내가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오만한 자를 질투하였음이로다
그들은 죽을 때에도 고통이 없고 그 힘이 강건하며
사람들이 당하는 고난이 그들에게는 없고 사람들이 당하는 재앙도 그들에게는 없나니
그러므로 교만이 그들의 목걸이요 강포가 그들의 옷이며
살찜으로 그들의 눈이 솟아나며 그들의 소득은 마음의 소원보다 많으며
그들은 능욕하며 악하게 압제하여 말하며 거만히 말하며
그들의 입은 하늘에 두고 그들의 혀는 땅에 두루 다니도다
그러므로 그의 백성이 이리로 돌아와서 많은 물을 다 마시듯 하며
그들은 말하기를 하나님이 어찌 알랴 지존자에게 지식이 있으랴 하는도다
볼지어다 이들은 악인들이라도 항상 평안하고 재물은 더욱 불어나도다
내가 내 마음을 깨끗하게 하며 내 손을 씻어 무죄하다 한 것이 실로 헛되도다
나는 종일 재난을 당하며 아침마다 징벌을 받았도다
내가 만일 스스로 이르기를 내가 이렇게 말하리라 하였더라면
주의 아들들의 세대에 대하여 속임을 행하였으리이다
내가 어찌하여 이를 알까 하여 생각한즉 그것이 내게 심히 괴로웠더니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그들의 종말을 내가 깨달았나이다
주께서 참으로 그들을 미끄러운 곳에 두시며 파멸에 던지시나이다
그들이 어찌하여 그리 갑자기 황폐되었는가 놀랄 정도로 그들은 전멸하였나이다
주여 사람이 깬 후에는 꿈을 무시함 같이
주께서 깨신 후에는 그들의 형상을 멸시하시리이다
내 마음이 산란하며 내 양심이 찔렸나이다
내가 이같이 우매 무지하니 주의 앞에 짐승이오나
내가 항상 주와 함께 하니 주께서 내 오른손을 붙드셨나이다
주의 교훈으로 나를 인도하시고 후에는 영광으로 나를 영접하시리니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 밖에 내가 사모할 이 없나이다
내 육체와 마음은 쇠약하나 하나님은 내 마음의 반석이시요 영원한 분깃이시라
무릇 주를 멀리하는 자는 망하리니
음녀 같이 주를 떠난 자를 주께서 다 멸하셨나이다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내가 주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아 주의 모든 행적을 전파하리이다
'🇰🇷 한글 단편 묵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사람 앞에서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은.... (4) | 2026.04.19 |
|---|---|
| 천사의 손에 이끌려 나와도 구원받지 못함은 (13) | 2026.04.10 |
| 말씀의 떡을 먹고 성장하는 자는 포도주 소망까지 바라본다 (1) | 2026.04.04 |
| 내 백성아, 그 일을 추억하라 그리하면 여호와의 행한 일을 알리라 (0) | 2026.03.02 |
| 네 이름이 무엇이냐 ( 속이는 자 야곱입니다 ) (3) | 2026.02.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