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한글 단편 묵상

천사의 손에 이끌려 나와도 구원받지 못함은

by GOTOKINGDOM 2026. 4. 10.

 

그날에 만일 사람이 지붕 위에 이고 그 세간이 집 안에 있으면 

그것을 가지러 내려오지 말 것이요 

밭에 있는 자도 이와 같이 뒤로 돌이키지 말것이니라

롯의 처를 생각하라

무릇 자기 목숨을 보존하고자 하는 자는 잃을 것이요

잃는 자는 살리리라(눅 17:31-33)

 

오늘은 우리가 잘 알고 있던 말씀의 착각을 깊이 묵상해 봅니다

본문 말씀은 그리스도인으로 살면서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마음 다짐 같은 말씀입니다

저 역시 항상 마음에 품고 살았었는데 이 말씀을 미묘하게 내가 원하는 뜻대로 생각하여

믿음으로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것이 바로 본문 마지막 단어입니다

"살리리라"

헬라어 원문은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ὃς δ’ ἂν ἀπολέσῃ ζωογονήσει αὐτήν

핵심 동사 ζωογονήσει (조오고네세이)

이 단어는 ζωογονέω (zoogoneō) 의 미래형입니다.

단어를 풀면

ζωή = 생명 + γονέω = 낳다, 발생시키다

합쳐서 뜻은

“생명을 다시 낳다”
“죽은 것을 살아나게 하다”
“생명을 새롭게 일으키다”
등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살아있는 것을 “유지한다”가 아니라

죽은 상태에서 다시 생명을 일으킨다는 의미가 강합니다.

 

그리고  형태가 미래형 "살리리라 ζωογονήσει"
즉 이 말씀은 현재 생존이 아니라 자기 생명을 잃는 자는
하나님이 다시 살려낼 것이라는 부활의 종말적 의미입니다.

 

마태복음 24:37–39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누가복음 17:28–30
“또 롯의 때와 같으리니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사고팔고 심고 집을 짓더니

롯이 소돔에서 나가던 날에 불과 유황이 하늘로부터 비처럼 내려…

인자가 나타나는 날에도 이러하리라”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노아의 때, 롯의 때”는 단순히 사람들이 죄를 지었다는 차원을 넘어서, 

어떤 ‘상태’로 살고 있었는가를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핵심은 “일상” 자체가 아니라, 하나님 없이 흘러가는 일상입니다.

먼저 해당 말씀을 보면 흐름이 분명해집니다.

예수님의 초점은 “먹고 마시는 행위” 자체가 아닙니다.
결혼하거나, 장사하고, 집 짓는 것도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경고가 주어지고 있음에도 전혀 의식하지 못한 채
일상에 완전히 잠겨 있는 상태

 

성경은 그 시대를 이미 이렇게 설명합니다.

창세기 6:5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하고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또 롯의 시대는 소돔과 고모라의 타락으로 가득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들의 죄 목록을 길게 말하지 않으시고
의도적으로 “일상”을 강조하십니다.

왜냐하면 마지막 때의 위험은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죄보다 더 깊은 곳에 있기 때문입니다.

 

겉으로는 평범합니다
정상적인 삶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하나님에 대한 감각이 완전히 마비된 상태입니다

노아는 의를 전하며 방주를 짓고 있었습니다
롯은 급박한 상황에 가까운 사위들에게 경고를 했었습니다

즉, 그 시대에도 심판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하나님의 긍휼히 계속 주어지고 있었는데도

사람들은 “지금이 어떤 때인지” 전혀 인식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강조하신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깨닫지 못하였다”

이것이 핵심입니다

그래서 이어지는 명령이 나옵니다

 

마태복음 24:42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알지 못함이니라”

여기서 “깨어 있음”은 잠을 안 자는 것이 아니라

영적으로 현실을 인식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정리하면 예수님의 초점은 분명합니다

일상을 살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일상 속에서 “때를 분별하지 못하는 상태”를 경고하신 것입니다

 

먹고 마시고
일하고
결혼하고
집을 짓는 그 모든 가운데에서도

지금이 어떤 때인지 현 상황에 벌어지고 있는 

전쟁, 기근(흔들리는 경제), 재난, 질병등을 보며 
하나님이 무엇을 말씀하고 계신지
이 새대 수많은 거짓 선지자들의 출현을 보며

내가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

이것을 전혀 의식하지 못하는 상태라면

그것이 바로
노아의 때와 롯의 때의 본질입니다

 

누가복음 17:32
“롯의 처를 기억하라”

롯의 아내는 심판을 몰라서가 아니라

마음이 여전히 그 삶에 붙들려 있었기 때문에 뒤를 돌아본 것입니다

이 말씀이 너무도 두려운 것은 

롯의 가정이 모두 구원의 대상자였다는 것입니다

롯이 그 성에서 지체하였습니다 

그때에 여호와의 은혜가 더하심으로 천사가 그들 모두의 손을 잡고 끌고 나왔습니다

롯의 아내도 분명 천사의 손에 붙들려 나왔습니다

우리 가정에도 믿음이 연약하여 롯의 아내와 같이 그렇게 될 수 있습니다 

창세기 18:16

그러나 롯이 지체하매 그 사람들이 롯의 손과 그 아내의 손과 두 딸의 손을 잡아 인도하여

성 밖에 두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인자를 더하심 이더라

 

결국 예수님의 경고는 이것입니다

"겉으로는 평범한 삶을 살면서도
속으로는 하나님과 완전히 분리된 상태가 될 수 있다

그리고 그 상태가 지속되면 결정적인 순간에도
아무것도 깨닫지 못한 채 지나가게 된다"

그래서 “깨어 있으라”는 말씀은 긴장하라는 말이 아니라
매 순간 하나님 앞에서 살아 있으라는 뜻입니다

일상을 버리라는 것이 아니라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라는 것입니다

 

잠언 3:5–6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이 말씀에서 “인정하라”는 표현은 히브리어로
“יָדַע (야다)”인데, 단순히 아는 것이 아니라

관계적으로 알고 삶 속에서 하나님을 의식하고
모든 선택과 방향 속에서 하나님을 중심에 두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이 말씀은 단순히 “하나님이 계신 걸 인정해라”가 아니라

삶의 모든 영역에서 결정, 판단, 계획, 일상 속에서

“항상 하나님을 중심에 두라”는 뜻입니다.

 

우리에게 성령님을 보내주셨습니다

그 어떤 실존보다 더 실존하시는 하나님이 우리 안에 주인으로 오셨습니다

그러나 주인의 뜻이 아닌 내 임의대로 산다면 그분은 나의 앞길을 지도하지 않으십니다 

아니 지도하실 찌라도 우리가 알아듣지 못할 것입니다 

깨어 있다는 거은 실존하신 성령님을 인격적으로 관계하며

모든 순간 일상에 존중하며 대화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일상 속에서
하나님의 시간, 하나님의 신호를 분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나를 중심으로 행하심이 아닙니다

내게 유익이 없을지라도 주의 뜻이 이루어져야 하며

내 가정에 환란이 올지라도 하나님의 시간은 그때를 진행하실 것입니다 

그 가운데 우리가 살길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곧 예수님이 말씀하신 하나 됨입니다

요한복음 17:14-15

내가 아버지의 말씀을 저희에게 주었사오매 세상이 저희를 미워하였사오니

이는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저희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을 인함이니이다

내가 비옵는 것은 저희를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오직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 

 

예수님은 사랑하시는 제자들을 위해 마지막 간구하심이 

이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심이 아니었습니다

세상에 속하지 않고 악에 빠지지 않도록 그리스도 안에서 보전해 달라는 간구였습니다

세상에 속하지 않고 그리스도 안에 속해있어야 합니다

또 환란이 없지 않습니다 

그 상황 가운데에서도 그리스도 안에서 보전될 수 있도록 깨어있어야 합니다 

 

요한복음 17:23
“곧 내가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서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 같이 저희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

이 말씀을 풀어보면

아버지 → 예수님 안에 계심
예수님 → 우리 안에 계심

그래서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생명이 우리 안에 흐르게 되는 구조입니다

이것이 “하나 됨”의 본질입니다

하나님의 생명이 같은 근원으로 흐르는 상태입니다

 

그래서 아버지와 아들과 내가 하나가 된 상태

이것이 때와 기한을 알 수 없지만 또 알수 있는 역설적인 관계성입니다

아버지의 영이신 성령님이 우리의 주가 되신다면 그분이 하시는 일을 모를 수가 있을까요?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

“형제들아 너희는 어둠에 있지 아니하매
그날이 도둑 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
성령으로 우리 안에 거하시며 주님이 되셨으니

모든 일상을 주님의 뜻을 여쭈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무엇을 먹으며 무엇을 마실지라도 함께하신다 하신 말씀을 신뢰하며 사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7장의 흐름과  마태복음 24장은
둘 다 “그날”, “인자의 나타남”이라는 명백한 종말적 문맥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을 마지막 때와 계시록 말씀과 연결하는 것은 깨어 있는 분별함입니다

요한계시록 22:12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

요한계시록 3:3
“깨어 있으라… 만일 깨어 있지 아니하면 내가 도둑 같이 이르리니…”

여기서도 기준은 동일합니다

겉이 아니라 각 사람의 실제 상태

특정 날짜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날을 안다고 해도

일상에서 주와 동행하며 관계가 없었다면 그날에 주께서 “상태”를 보고

"내가 너를 모른다 따나 가라"로 갚아주실 것입니다

 

노아의 때, 롯의 때 일상 속에서 일어날 일들을 

두 사람/두 여자/두 남자
동일한 환경 속에서 분리가 되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마지막 때는 반드시 데려가심과 남겨진 자로 나누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남겨진 자도 절망의 대상자가 아닙니다 

요한계시록 11장의 두 증인처럼
어두움 속에서도 하나님은 반드시 증거자를 두십니다

두 천사에 의해 이끌러 나왔지만 뒤를 돌아보고 소금 기둥이 되어버린

롯의 아내처럼 되지 말라는 말씀은 남겨진 자에게 주시는 경고입니다 

 

그 상황가운데 살고자 돈이나 식품이나 챙겨서 도망가려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롯의 아내처럼 뒤를 돌아보는 내 중심을 드러내는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그날은 죽기를 구하는 것이 더 지혜일 수 있습니다 

환란날을 준비하느라 재산을 모으고 땅을 사고 집을 지어서 

언제까지 짐승의 체계에 발각되지 않고 견딜 수 있을까요?

환란에서 내가 살기 위해 내 자녀들을 살리기 위해 당신은 악을 행할 것입니다

내 자녀를 위해 남의 자녀들은 죽는데 내버려 둘 것입니다 

그렇게 살아서 환란을 통과한들 주님 앞에서 자랑하겠습니까?

 

아모스 5:18–20

화 있을진저 여호와의 날을 사모하는 자 들아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날을 사모하느냐
그날은 어둠이요 빛이 아니라

마치 사람이 사자를 피하다가 곰을 만나거나
혹 집에 들어가서 손을 벽에 대었다가 뱀에게 물림 같도다

여호와의 날이 어찌 어둠이 아니며 빛이 아니겠느냐
캄캄하여 빛남이 없지 아니하겠느냐”


사람들은 “그날”을 구원과 평안으로 기대하지만,
회개하지 않은 자에게는
그날이 평안이 아니라 심판의 어둠이라는 경고입니다.

그날이 당신에게 빛으로 임하실지 캄캄한 어두움으로 두려운 날이 될지는 

지금 당신의 상태로 결정될 것입니다  

할렐루야~

 

"가라사대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를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받을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고후 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