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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글 단편 묵상

말씀에 숨겨져 있는 "때(시기)"

by GOTOKINGDOM 2026. 7. 6.

이에 아야의 딸 리스바에게서 난 자 곧 사울의 두 아들 알모니와 므비보셋과

사울의 딸 메랍에게서 난 자 곧 므홀랏 사람 바실래의 아들 

아드리엘의 다섯 아들을 잡고 저희를 기브온 사람의 손에 붙이니

기브온 사람이 저희를 산위헤서 여호와 앞에 목매어 달매

저희 일곱 사람이 함께 죽으니 죽은 때는 곡식 베는 처음날

곧 보리 베기 시작하는 때더라 (삼하21:8-9)

이스라엘의 보리 추수는 첫째 달 아빕월(אָבִיב, Aviv)에 시작되고

포로기 이후에는 니산월(Nisan)이라는 이름을 사용했습니다.

대략 오늘날의 3월 말~4월에 해당합니다.

"아빕" 자체가 보리가 이삭을 낸 상태를 뜻하기 때문에

첫째 달의 이름이 곧 보리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아빕월 14일은 유월절

15~21일은 무교절 그리고 무교절 기간 중 

안식일 다음 날이 초실절입니다.

 

"너희의 곡물의 첫 이삭 한 단을 제사장에게 가져갈 것이요."

이 첫 이삭을 드리기 전에는 새 곡식을 먹을 수 없었습니다.

보리 추수는 니산월에 시작하여 약 6~7주 계속됩니다.

그 후 밀 추수가 이어지고, 7번 안식일 다음날이 칠칠절(오순절)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 리스바의 아들들과 메랍의 아들들이 죽은 날이 

보리 추수 시작할 때라고 했으니 바로 아빕월 절기 때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살펴볼 것은 다윗은 정치적 언약과 율법을 준수하여

기브온 사람들의 원한을 신원해 주는 일에 그들이 원하는 대로

7명의 생명을 내어 주었습니다.

그러나 율법에는 밤이 새도록 시체를 나무에 달아놓지 말아야 하며 

예수님도 다음날이 안식일이라 십자가에서 내려졌습니다.

"사람이 만일 죽을죄를 범하므로 네가 그를 죽여 나무에 달거든

그의 시체를 나무 위에 밤새도록 두지 말고 그날에 장사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을 더럽히지 말라.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음이니라."(신 21:22-23)

"이 날은 준비일이라 유대인들은 그 안식일이 큰 날이므로

그 안식일에는 시체들을 십자가에 두지 아니하려 하여..."(요 19:31)

 

그런데 다윗은 리스바의 아들들의 시체가 몇 날이 되도록 잊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뼈가 되어서야 장사되었으니까요

리스바는 아들들의 시체를 밤낮 지키고 있었지만 뼈가 되기까지 지킨 것입니다.

이는 시신이 오랫동안 노출된 상태였음을 보여 줍니다.

다윗은 사울과 요나단의 를 길르앗 야베스에서 가져오고,

처형된 사울의 자손 일곱 사람의 도 함께 거두어 장사합니다(삼하 21:12-14).

여기서 성경은 히브리어 "עֶצֶם (에쳄)", "뼈"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본문은 리스바의 행동을 매우 감동적으로 기록합니다.

흥미롭게도 그 모습을 본 뒤 다윗이 사울과 요나단의 뼈도 가져와

그 일곱의 뼈와 함께 고향 아비 집에 장사합니다.

성경은 그 후에야 하나님께서 그 땅의 기도를 들으셨다는 의미심장한 말씀으로 기록합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살펴볼 것은 리스바의 행동이 단지 모성애를 나타낸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리스바를 나타낼 때 성경은 의도적으로 "아야의 딸 리스바 사울의 첩"이라고 기록합니다.

오늘 본문이 아닌 다른 곳에 리스바의 이름이 등장하는 곳이 있습니다.

"사울의 집과 다윗의 집 사이에 전쟁이 있는 동안에 

아브넬이 사울의 집에서 점점 권세를 잡으니라

사울에게 첩이 있었으니 이름은 리스바요 아야의 딸이더라

이스보셋이 아브넬에게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내 아버지의 첩을 통간하였느냐"(삼하 3:6-7)

 

מַדּוּעַ בָּאתָה אֶל־פִּילֶגֶשׁ אָבִי

madduaʿ bā'tā ʾel-pîlegeš ʾāḇî

직역하면 "왜 네가 내 아버지의 첩에게 들어갔느냐?"

"~에게 들어가다(בוא אל)" 라는 사람에게 표현이 되면

성경에서는 관용적으로 "성관계를 가지다" 를 의미하는 경우가 매우 많습니다.

그래서 "통간하였느냐"로 번역이 된 것입니다 

 

그러나 이 문장에서는 간음이나 강간을 뜻하며 죄를 묻는 것이 아닙니다

고대 이스라엘과 주변 문화에서는 죽은 왕의 후궁은 왕가에 속한 존재로 여겨졌습니다.

새 왕이 되려는 사람이 전 왕의 후궁을 취하는 것은 왕권을 주장하는 상징적 행위로 받아들였습니다.

압살롬이 다윗의 첩 10명을 동침했던 사건과 솔로몬(다윗 아들)이 왕이 되었을 때

밧세바(다윗의 아내)에게 아도니야(다윗 아들)가 다윗의 마지막 여인 수넴 여인 아비삭을

요구한 사건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왕권에 대한 언유적인 음모임을 알수 있습니다

"어찌하여 아도니야를 위하여 수넴 여자 아비삭을 구하시나이까

저는 나의 형이오니 저를 위하여 왕위도 구하옵소서"(왕상 2:22)

 

그래서 이스보셋이 문제 삼은 것은 "네가 왜 내 아버지의 첩에게 들어갔느냐?"

즉, "네가 왕권을 노리는 것이냐?"라는 뜻으로 볼 수 있습니다.

아브넬은 자신이 직접 왕이 되지는 않았지만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을 

자신이 직접 왕으로 세웠고 오히려 그 위에서 권세를 부리려 했습니다

사울과 다윗의 집안싸움이 있는 동안 자신의 세력을 키워갔던 것입니다

"사울의 집과 다윗의 집 사이에 전쟁이 있는 동안에 아브넬이 

사울의 집에서 점점 권세를 잡으니라"(삼하 3:6)

 

이 사건을 보면 오늘날 교회에 교훈이 있습니다

교회가 영적 싸움이 있을 때 뒤에서 속임과 미혹으로 주님의 양 떼들이 

삼킴을 당하는데도 자신의 싸움 때문에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교회인들은 물질과 시간을 드려 섬기고 있는데도 정작 하나님 나라보다

교회 지도자들을 섬기는 일에 상처받아 교회를 떠나고 있는데

그것을 "대의를 위해 어쩔 수 없는 희생"이라고 합니다

"사람들이 너희를 출회할 뿐 아니라 때가 이르면 무릇 너희를 죽이는 자가 생각하기를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예라 하리라 저희가 이런 일을 할 것은

아버지와 나를 알지 못함이라"(요 16:2-3)

 

이 말씀은 하나님을 섬기는 자 즉 믿는 자들에게 하시는 것입니다

성도들을 교회에서 쫓아내고 죽이는데 내어 주는 자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가지고

성도들을 박해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아버지와 아들 예수님을 알지 못하는 자 곧 하나님의 본심을 알지 못하는 자들입니다

양들을 아끼지 아니하여 흩어지게 하며, 지도자들을 미혹하고 이간질합니다

마지막 때는 교회가 이런 모습으로 흔들립니다 

이런 일이 있으면 실족하지 않게 하시려고 성령님이 증거 하시고 

모든 말씀이 생각나게 하실 것이라 예수님은 우리들에게 일러 주셨습니다

요한복은 15-16장에 자세히 말씀하셨으니 꼭 읽고 묵상하십시오

주님의 일은 주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심 같이 교회 양들을 위해

대신 죽는 것이 마땅하다 생각하는 자들이 주님의 제자들입니다 

 

 

다시 본문으로 돌아가서 

니산월(1월, 3~4월): 유월절, 무교절, 초실절 → 보리 추수 시작

이야르월(2월): 두 번째 유월절 → 첫 유월절을 지키지 못한 자들

시완월(3월, 5~6월): 칠칠절(오순절) → 밀 추수 무렵

 

이스라엘에서는 보통 유월절부터 초가을까지는 건기가 이어지고,

이른 비는 대개 티쉬리월(7월, 9~10월) 무렵부터 시작됩니다.

늦은 비는 다음 해 니산월 직전(3~4월)에 내립니다.

그래서 사무엘하 21:10의 "하늘에서 비가 시체 위에 쏟아질 때까지"라는 표현은

보리 추수 시작 니산월이 지나고  가을에 우기가 시작되는 티쉬리월 이른 비로 이해됩니다.

  • 보리 추수 시작(니산월, 3~4월)
  • 가을 첫비(티쉬리월, 9~10월)

이 기간은 대략 5~6개월, 즉 반년 정도가 됩니다.

삼하 21:1 시작이 다윗 시대에 3년 기근을 지내고 있다는 것을 보면

비가 내려지기 반년을 합하여 3년 반 또는 1260일이 됩니다 

어디서 많이 본 기간 아닌가요?

바로 두 증인이 사역하였던 비가 내리지 않도록 하고

많은 권세로 일하게 되는 기간과 동일합니다 

 

그래서 오늘 묵상 차원에서는 계시록까지 가지 않고 시기 곧 때에 관한 것과

이때에 우리 연약한 양들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리스바의 애통함과 사랑이 다윗의 마음을 움직였듯이 오늘날 교회에 양무리는 

자신의 열심히 죄 아래 대가를 치르게 되는 지도자들을 위해 애통하며 중보 해야 합니다

다윗도 그 사건을 통해 무엇인가를 배우게 된 자의 예표인 것이지

다윗 자체가 우리가 믿고 따라야 하는 메시아로 제시하지 않습니다.

오늘날 지도자들이 선 향하는 "다윗 같은 존재가 되어 모든 판단을 해야 한다"가 아니라, 

"다윗조차 하나님께 배우고 교정받는 왕이었다"는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다윗의 자손으로 오신 언약을 이루시는  메시아는 예수님입니다.

다윗은 믿음의 사람이지만 여전히 배우고, 때로는 잘못 판단하며,

하나님의 교훈을 받아야 하는 왕이었습니다.

그렇게 신실하신 여호와를 죽는 날까지 의지한 왕이 다윗이었지 

다윗 자체가 완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반면 사울 왕은 그에 못 미쳤을 뿐이지 구원받지 못한 왕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한 대비 속에서 사무엘하 19–21장은 단순히 다윗의 성공담이 아니라, 

왕권이 회복될 때 자칫 교만이나 평안하다 나태해질 때 악한 영들은 쉬지 않고 일하며

미혹과 거짓으로 말씀의 기근이 오게 되는 시기와 때를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이는 오늘날 교회의 지도자와 성도 모두에게도 자신을 하나님의 말씀 앞에 계속 비추어 보고

세미한 음성으로 생각나게 하시는 성령님을 구해야 합니다 

권세를 가진 자보다 눈물로 중보 하는 자들, 세상의 힘보다 하나님의 긍휼을 의지하는 자들, 

끝까지 자리를 지키는 신부 된 교회 말이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판단과 희생으로 구원을 완성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권세를 가진 지도자보다 눈물로 중보하는 연약한 자들,

세상의 힘보다 하나님의 긍휼을 의지하는 자들,

끝까지 신실한 증언과 애통하는 중보와 회개하는 백성을 하나로 모으셔서

마침내 친히 그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왕으로 나타나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