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한글 시리즈 묵상

신비로운 여인 리스바의 중보(프롤로그 기록)

by GOTOKINGDOM 2026. 6. 29.

🌿 묵상 노트 인사

이 글은 성경 본문을 중심으로 기록한 묵상입니다.

먼저 성경 본문의 역사적·문법적 의미를 살피고, 히브리어와 헬라어 원어의 뜻,
그리고 성경 전체의 연결을 따라 성령의 임재 안에서 묵상한 내용을 함께 기록하였습니다.

본문이 직접 말하는 내용과 개인적인 묵상은 구분하여 기록하려고 노력하였으나
한 마음으로 동의되지 않는 부분도 있을 것이라는 점 인정합니다 

그러나 그 외 모든 묵상이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더욱 온전해지고,
함께 말씀을 사랑하는 성도들에게 작은 유익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아야의 딸 리스바가 굵은 베를 가져다가 자기를 위하여 반석 위에 펴고

곡식 베기 시작할때부터 하늘에서 비가 시체에 쏟아지기까지

그 시체에 낮에는 공중의 새가 앉지 못하게 하고 

밤에는 들짐승이 범하지 못하게 한지라 (삼하 21:10)

리스바가 아들들의 시체를 지키는 모습

 

오늘은 성경에서 비극적인 사건의 결말에 나오는 한 어머니의 애통함 속으로 들어가 본다 

묵상을 하면서 계속 확장되어지는 부분으로 인해 이번 묵상글은 시리즈로 기록될 것 같다 

성령이 인도하심 따라 몇회가 될지 모르지만 항상 그랬듯이 나의 묵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마음을 붙들기 위한 깊은 어두움 안으로 한발 한발 내어 딛고 있다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이 어두움 앞에 무엇이 나를 덮쳐올지 모르지만

오직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시며 지팡이와 막대기로 나를 안위하심을 믿기 때문이다 

 

본문 말씀은 자신이 지은 죄가 아닌 아비의 지은 죄로 인해 자식들이 죽어야 했고

그 고통을 고스라니 남겨진 한 여인에게 온몸으로 받아 죽지도 못하는 삶을 보게 한다

그러나 이 사건은 연좌제를 교훈하는 내용도, 죽은 자녀들을 애통해하는 어머니의 사랑도 아닌 거 같다

말씀 묵상은 성경을 토대로 하지만 각자 성령으로 받은 감동으로 말씀의 시각이 달라진다

오늘 묵상의 내용도 최근에 주신 말씀을 토대로 씨름하면서 깊은 마음의 고통이

이 여인의 애통함으로 침범하게 되었다

이 말씀을 묵상하고 내려진 결론은 역시 하나님의 신실하신 긍휼과 화평이었다 

 

 

 < 프롤로그 시작 >

오래전 영의 세계에서 보았던 장면이 최근 내 마음에 무거운 짐이 되어 있었다

내가 본 것을 짧게 설명하면 어둡고 삭막한 지하 공간이었다

희미한 불빛으로 낡고 작은 나무 테이블이 중앙에 있는 것이 보이고

사람들이 그 테이블을 지나가고 있었다

많지 않은 사람들이었지만 공간이 넓지 않아 그곳에서 무엇을 하는 것인지

사람들에 가려져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들은 줄을 서 있었고 그 줄은 점점 그 낡은 테이블 쪽으로 가고 있었다

나도 그 줄에 서 있었는데 어쩔 수 없이 계속 앞으로 그 줄을 따라가고 있다

 

어느 순간부터 이 사람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보이는 곳에 이르자 익숙한 장면을 보았다

그것은 이미 이전에 영의 세계에서 보여주신 사명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테이블에 가까이 갈수록 이전에 보여주신 사명과 달라진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먼저 그 사명의 장면을 설명하면 테이블은 말씀이 선포되는 곳이다 

마치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와 성전과 성벽을 완공한 후에 학사 에스라가 백성들에게

율법을 선포하기 위해 특별히 제작된 나무 강단과 같은 의미였다 

때에 학사 에스라가 특별히 지은 나무 강단에 서매....

학사 에스라가 모든 백성 위에 서서 저희 목전에 책을 펴니...(느 8:4-5)

 

그 테이블 위에는 도지락이 두 개가 있었다

그것은 율법과 새법 또는 구약과 신약이라는 말씀의 양식이었다 

나는 이 동일한 사명을 시대에 따라 전해지는 모습을 본 것이다 

처음 이 사명자들을 보았을 때에는 세상에 빛이 있을 때의 모습이었다

주위는 낮이었고 사람 사람들로 웃음이 있는 곳에 이 말씀 양식들이 전해졌다

그러나 그 이라는 시대에도 곳곳에 숨어서 미혹하며 방해하는 자들이 있었다

 

그리고 또 한 번 이 사명자들의 시대는 온통 캄캄한 어두운 밤에 활동하였다

이전 낮의 사명자들의 시대에는 미혹과 방해자들이 숨어 있었지만

이번엔 밤의 사명자들이 숨어서 은밀히 말씀 양식을 전하고 있었고

세상은 온통 의 어두움과 삼키는 자들로 가득했다 

이에 따른 자세한 내용은 더 설명할 수 없다 

단지 내 마음의 씨름이 이 두 번째 본 밤의 사명자들의 모습에 있었기에 

그 부분만 조금 더 설명하고자 한다

 

길지 않은 줄이 점점 줄어들고 있을 때 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다

그런데 내 앞에 있던 사람이 자신에게 배당된 도시락(말씀 양식)을 가져가지 않고

그냥 통과해 버렸다

도시락을 가지지 않고도 통과되어 나가는 것을 보아 이 사명은 분명 강제가 아닌

자발적인 순종임을 알 수 있었다

그 순간 내 앞에 펼쳐진 모습은 앞에 사람이 가져가지 않은 도시락 두 개와

내게 배당되는 두 개가 합하여 4개가 되어 있었다

그때 순식간에 지나가는 내 머릿속 생각들이 내 마음속 혼란한 곳을 보게 하였다

 

첫째 - 앞사람을 불러서 도시락을 넘겨준다

둘째 - 아니, 사명은 강요되어선 안 돼 

          그래, 내가 앞사람 몫까지 감당하자

셋째 - 그런데 혹시 이것도 나의 의 아닐까

          앞사람에게 주님의 교훈이 있으신데 내가 중간에 방해자가 되는 거면

 

이 사건은 이렇게 미스터리 같이 내게 의문으로 남아있었다

그런데 최근에 묵상글을 쉬면서 다시 말하면 또 이 사명에 대한 낙담이 되어던것이다

늘 이 사명은 사람 수를 보지 않고 주님이 보이실 자들에게 보이신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꾸 내 노력과 시간과 열정들이 아깝다는 생각에 낙심에 빠지고 만다

그래서 이번에도 주위 영혼들이 잘못된 길에서 멈추지 않고 돌아서지 않으며

자신의 길이 옳다 주장하며 스스로 높은 곳에 서서 외치는 모습에 회의를 느꼈기 때문이다

 

그런 나를 성령께서 책망하시고 또 내가 서 있을 곳을 돌아보게 하셨다

그렇게 알게 되어 통곡하게 하신 것이 나도 내 앞에 사람과 같이 사명을 버리려고 했구나

한 명 두 명 그렇게 사명을 버리게 되면 그 말씀 양식은 2개가 4개가 되고

4개가 6개가 되고 그렇게 귀한 양식이 지하에 묻혀버리고 말 것이다

누군가는 해야 되는 사명이기에 어두운 세상에서도 한줄기 빛이 될 말씀 양식은

소망하고 바라는 자들에게 쉬지 않고 전해지고 있었다   < 프롤로그 끝 >

 

 

그렇게 성령으로 인도하신 말씀이 오늘 본문 말씀이다

아들 압살롬에게 역모를 당해 예루살렘 성에서 도망가게 되었던 다윗이 

다시 왕좌를 회복하고 승전가를 부르게 되는 중간에 생뚱맞게도 어울리지 않게

삽입되어 있는 한 장이다 

이 문장 처음 시작이 3년 기근이 계속되어 다윗이 여호와 앞에 지속적으로 

간구하는 끝에 여호와의 말씀을 듣게 된다

"이는 사울과 피를 흘린 그 집을 인함이니 저가 기브온 사람을 죽였고...

기브온 사람은 이스라엘 족속이 아니요 아모리 사람 중에 남은 자라...

사울이 이스라엘과 유다 족속을 위하여 열심히 있으므로 

저희를 죽이기를 꾀하였더라"(삼하21:1-2)

 

 קִנְאָה (qin’ah) 열심히

이 단어의 기본 뜻은: 열심, 헌신, 질투, 시기 (긍정과 부정 둘 다 가능)

즉, 상황에 따라 “헌신”도 되고 “질투”도 되는 단어이다.

사울은 이스라엘과 유다 족속을 향한 열심에서 기브온 사람들을 죽이게 되었다

열심히라는 단어가 부정적으로 사용된 결과이다

왜냐하면 여호수아 시대에 기브온 사람들과 맺은 언약을 깨뜨렸기 때문이다(수 9장)

그 결과 다윗 시대에 3년 동안 기근이 들었다

 

여기서 한 가지 살펴볼 것은 한 사람의 잘못된 판단으로 행하여진 결과에

무고한 사람들에게 연대 책임이 지어진다는 것이다

마치 영의 세계에 사명자들을 보았을 때 한 사람이 자기 사명을 버리게 되면

다른 사람에게 더 많은 무게감이 지워지는 듯한 모습과 비슷하다

사울의 열심히 기브온 사람들이 죽게 되었지만 그에 따른 기근이라는 고난은

이스라엘 모두가 받게 되었다 

 

그럼 하나님이 기브온 사람들 편을 들어주신 것일까?

사람의 눈으로 보게 되면 마치 한 명의 죄로 인해 연대 책임이 물어지는 것 같아 보이지만

"어떤 길은 사람이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 (잠언 14:12)

이 생뚱맞게 끼워져 있는 말씀은 승전가를 부르기 전에 자칫 교만으로 실족하게 되는 부분을

하나님이 깨닫게 해 주시기 위함이다

그것이 바로 언약의 중요성이요 그것이 계시록에 마지막 언약이 깨어지는 부분과 연결된다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때 멸망이 홀연히 온다" 하신 말씀처럼

다니엘 9:27 한 이레 동안 언약을 굳게 정하지만 그 이레 절반에 깨어지고

계시록 11, 12,13 장에는 42달, 1260일, 한때 두때 반때로 한 이레의 언약을 암시하고 있다

 

오늘은 마지막 언약인 한 이레까지 나누지는 못할 거 같다

삼하 21장 한 장에는 수많은 예언적 메시지가 숨겨져 있고 어느 것 하나도 

그냥 흘려보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묵상의 결론이 오늘 먼저 나누어질 거 같다 

사울 왕은 평생을 자신의 왕좌를 지키기 위해 사람을 인식하며 살았다

그러나 다윗 왕은 평생을 여호와의 얼굴을 구하며 그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았다 

그리고 사울은 기브온 사람들과 하나님 앞에 언약한 관계를 지키지 않았고

다윗은 요나단과 하나님 앞에서 자손들에 대한 언약한 관계를 지켰다

"다윗과 사울의 아들 요나단 사이에 서로 여호와를 가리켜 맹세한 것이 있으므로

왕이 사울의 손자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은 아끼고"(삼하 21:7)

 

그러나 이 모든 언약에 대한 내용이 전부는 아니다

한 여인이 등장하므로 하나님은 언약 안에 있는 왕과 백성들이 화합하여

하나님 마음을 알게 될 때에 그 땅을 회복시키심을 가르치신 것이다 

그것을 좀 더 자세히 묵상해 보자 

 

다윗은 자신의 언약을 지키기 위해 기브온 사람들이 요구한 사울의 자손들 7명 중에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은 넘겨주지 않았다 

말씀에 관심이 가는 부분이 있다

"우리를 학살하였고 또 우리를 멸하여 이스라엘 경내에 머물지 못하게 하려고

모해한 사람의 자손 일곱을 내어 주소서 여호와의 빼신(택하신-원어) 사울의

고을 기브아에서 우리가 저희를 여호와 앞에서 목매어 달겠나이다 

왕이 가로되 내가 내어 주리라 하니라"(삼하 21:5-6)

 

사울이 기브아 사람들을 이스라엘 경내에 머물지 못하게 모해했다고 한다 

그런데 왜 일곱 사람일까?

기브아 사람들은 학살과 멸절당하던 핍박을 호소하고 있다 

원수의 자손을 그들 고향에서 본보기로 여호와 앞에 언약을 깨트린 대가로

목매어 달아 놓겠다는 말이다

그런데 다윗이 언약을 깨트린 대가를 치르듯이 그들을 목매어 달도록 내어준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었을까?

시편 15 편에 다윗이 여호와의 장막과 성산에 거할 자에 대한 시가 있다

시편 15:4 נִשְׁבַּע לְהָרַע וְלֹא יָמִר
(nishba le-hara' velo yamir)

직역하면,

"자기에게 손해가 되도록 맹세했을지라도 그것을 바꾸지 않는다."

다윗은 자신이 요나단과 언약한 것은 지키고 사울이 언약을 깬 것에는 대가를 치르도록 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일곱 명의 목이 메어 달렸음에도 비는 내리지 않았다

대가를 치르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셨다면 그들이 죽임을 당했을 때 절묘하게 

비가 쏟아졌어야 한다 그런데 비는 내리지 않았고 모두가 그 사건을 잊어가고 있었지만 한 여인은 비가 내리도록 그곳을 떠날 수가 없었다 

아야의 딸 리스바가 굵은 베를 가져다가 자기를 위하여 반석 위에 펴고

곡식 베기 시작할 때부터 하늘에서 비가 시체에 쏟아지기까지

그 시체에 낮에는 공중의 새가 앉지 못하게 하고 

밤에는 들짐승이 범하지 못하게 한지라 (삼하 21:10)

 

두 아들의 어머니 리스바는 낮밤 자녀들의 시체를 지키고 있었다

낮에는 새가 앉지 못하도록 밤에는 들짐승이 먹지 못하도록 두려움을 뒤로한 채비가 오기까지 그곳을 떠날 수가 없었다자신의 남편 사울의 죄로 인해 기브온 사람들의 원한이 하나님께 상달되어 이 땅에 기근이 왔으니 대가로 아들들이 죽임을 당했다그러니 그 원한을 풀어주시는 하나님의 증거는 기근을 끝내는 비가 내려야 하는 것이다

 

리스바의 마음은 어땠을까?비가 내려야 하는데...내 아들들이 죽어 대가를 치렀는데 왜 비가 오지 않지?괜히 억울하게 내 아들들만 죽임을 당하고 비가 오지 않는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닐까?아무도 자신의 아들들의 시체가 목매달려 있는 것에 관심이 없지만 혼자서 반석 위 앉아서 아들들의 시체를 지키며 수없이 많은 질문을 하나님께 하지 않았을까?

 

이렇게 시간이 흐르는 동안 이 여인의 행한 일이 다윗에게 들리매그제야 다윗이 하나님의 뜻을 깨달은 것 같다사울왕과 요나단이 죽어서도 고향에 돌아오지 못한 것이다

"다윗이 가서 사울의 뼈와 그 아들 요나단의 뼈를 길르앗 야벳스 사람에게서 취하니

이는 전에 블레셋 사람이 사울을 길보아에서 죽여 벳산 거리에 매어 단 것을'

저희가 가만히 가져온 것이라"(삼하 21:12)

 

사울은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죽임을 당하고 그 시체가 조상의 묘에 장사되지 못했다

우리는 성경을 보며 항상 사울과 다윗을 비교하며 나쁜 예화로 사울을 언급하였다그러나 기브온 사람들이 말한 것과 같이 여호와께서 택하신 이스라엘 1대 왕 사울이다하나님이 처음 이스라엘 왕으로 세우신 사울의 뼈와 그 의로왔던 요나단의 뼈가 고향에 아비집에 장사되지 못한 것이 아픈 마음 아니셨을까?

 

놀랍게도 다윗이 그 뼈를 가지고 와서 리스바가 지키던 시체가 뼈가 되었어야함께 옮겨져 베냐민 땅 셀라에서 그 아비 흠집의 묘에 장사되었다그것을 성경에는 이렇게 기록이 되었다

"그 아비 기스의 묘에 장사하되 모두 왕의 명대로 좇아 행하니라

그 후에야 하나님이 그 땅을 위하여 기도를 들으시니라"(삼하 21:14)

이 말씀을 보고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나?

하나님은 이 사건을 통해 누구에게 무엇을 교훈하셨나?

하나님은 다윗이 의로운 일을 하시기 원하셨던 것이 아닐까?

언약을 깨트린 사울 때문에 기브온 사람들의 호소를 들으셨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울의 자손 일곱을 목매어 죽이도록 내어주라 하시지 않았다

또 대가를 치르면 비를 내릴 것이라고 말씀하지도 않으셨다

이는 다윗이 왕인까닭에 정치적이며 율법 안에서 결정한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본심은 그렇지 않으셨던 것 아닐까?

다윗이 사울을 용서하고 그 아비집으로 돌아오도록 선을 행하심을 바라셨던 건 아닐까?

 

오늘 묵상은 이것으로 마무리를 하려고 한다

묵상이 성경에 기록으로 남겨지지 않은 부분을 정리하려 하니

개인적인 견해와 영감으로 깨달은 부분을 확정하지 않으려고 하니

질문 형태로 마무리가 되었다 

내 주장으로 치우치지 않으려 조심하다 보니 사실 좀 어색하게 되어 버렸다 

앞으로 계속 이렇게 나가게 될지 아님 깔끔하게 내 색깔을 분명하게 

표현을 할지 좀 더 기도해 보고 진행하도록 해야겠다 

 

주님, 많은 것을 보여주시고 깨닫게 하시니 마음이 무겁습니다

그러나 그 무게가 불순종의 무게에 비할 수 없습니다

내게 맡겨주신 사명이 다른 이들에게 짐이 되지 않도록

제가 지켜야 할 자리에 반석 되셔서 저를 붙들어 세워 주소서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