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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글 단편 묵상

사도 바울의 마지막 여정과 여자의 남은 자손의 여정

by GOTOKINGDOM 2025. 12. 3.

 

 

 

 

 

 

 

 

 

지난 묵상은 사도 요한을 생각하며 나누었던 묵상 시리즈였다

오늘은 사도 바울을 생각하며 사도행전 마지막 27-28장을 읽다 문득 떠오르는 말씀으로

성령님께 여쭈며 나누었던 지혜와 지식의 말씀을 묵상 글로 올려본다 

성경의 여러 부분을 찾아 오늘 묵상으로 주시는 깨달음을 그대로 올린 것이다

그래서 말씀에 순서가 왔다갔다 두서없이 기록되어 이해하기 좀 어려울 수 있겠지만

성경을 묵상하며 성령의 인도함 받는 자들은 모든 말씀 내용은 이해할 것이라 믿는다 

묵상 안에 개인의 깨달음 부분은 나와 견해가 같지 않은 분들의 마음도 인정한다

모든 말씀이 같은 믿음으로 인도하심이 아니라는 것은 하나님 섭리로 이루어진 것이다

그래서 모든 말씀을 사모하는 자들을 이끄시는 하나님을 나는 신뢰한다 

 

사도행전 28장은 난파에서 구원을 얻은 후 멜리데 섬에 이른 바울의 마지막 여정을 기록한다.

이 장에는 지명과 사람 이름, 행동 묘사가 매우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표면적으로 보면 아무 의미 없는 듯한 장면도 있으나, 모두가 영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

성령께서 누가의 기록을 통해 마지막 시대의 교회와 성도에게 주시는 상징적 언어가 곳곳에 배치되어 있다.

멜리데라는 지명은 그리스어로는 “탈출되지 않는 곳”이라는 의미를 가진 어원과 연결되어 있다.

난파로 바다에서 던져져 도달한 땅이었지만, 영적으로는 세상 풍랑에서 건짐을 받은 자들이

잠시 머물러 보호받는 과도기적 장소를 상징한다.

광야와 비슷한 개념이며, 계시록에서 여자가 양육받는 곳과도 연결되는 이미지를 준다.

 

멜리데에 도착하자 비와 추위가 있었다.

비는 심판의 기운을, 추위는 영적 무기력과 고난을 상징한다.

그러나 섬사람들이 "특별한 친절을 베풀었다"는 기록이 붙는다.

헬라어로 φιλανθρωπία (필란트로피아) 문자적으로는 사람을 향한 사랑을 말하지만

신약에서는 거의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을 나타내는 표현으로 사용된다.

세상이 심판과 혼란의 상태에 있을지라도 하나님은 자신의 사람에게 긍휼을 드러내신다.

그것이 계시록 12장의 여자에게 광야에 예비처를 준비해 주심과 같다

 

바울이 나무 한 단을 모았다고 기록된 부분 역시 우연한 묘사가 아니다.

φρύγανον (프뤼가논)
초목, 마른 나뭇가지, 떨기, 연약한 가지들 쉽게 타는 땔감을 뜻한다

계 8-9 나팔 재앙에서 나무와 풀과 과목에 대한 심판들이 나와있다

그것을 보면 나팔 재앙이 심판만을 뜻함이 아닌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임을 알아야 한다

나무는 히브리어에서 에츠라는 단어로 사람과 십자가와 왕권을 상징한다.

한 단이라는 표현은 묶음이라는 의미를 포함하는데, 이는 첫 열매 한 단을 말하지만

들림 받는 첫 열매 한단이 아닌 장차 불에 던져져 가려지는 남은 자의 한단이다

그 이유는 바울이 불에 던 지 나무 한단에서 독사가 나왔기 때문이며 이는 미혹된 종들

곧 사단의 유혹으로 눈멀고 귀가 먼 자들이 종말의 불 심판으로 깨어남을 의미한다 

(겔 20:47, 누구 23:31 “푸른 나무가 이같이 하거든 마른나무에는 어떻게 되리오”).

 

불기운 때문에 뱀이 나왔다는 말에서 불은 성령의 임재이고 말씀의 빛이다.

성령의 불이 가까워질 때 교회에 숨어 있던 영적 뱀이 드러난다.

불 πῦρ (퓌르)과 계시록적 상징이며

  • 정결·성령
    사도행전 2장의 불 같은 혀로 기록되었으며 말씀의 정화를 나타낸다 
  • 심판
    계 8–9장의 나팔 심판, 계 16장의 대접 심판, 계 20장의 불못 심판을 나타낸다

 

독사는 헬라어로 ἔχιδνα (에키드나) 단어인데 침례 요한과 예수님이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을 향해

독사의 새끼라고 꾸짖을 때 사용한 동일한 단어다.

이 단어는 단순한 뱀이 아니라 물리면 죽음에 이르는 독이 가득한
사탄의 세력, 종말에 드러나는 거짓 선지자, 종교적 미혹 세력을 상징한다.

그러므로 이 사건은 단순한 자연 현상이 아니라 바울의 사명에 붙어 대적하려는 종교적 영,

거짓된 영의 노출과 분리의 장면이다.

 

이 독사가 바울의 손을 물었다는 표현은 χειρ (케르) 권세, 사역, 능력을 대적하는 행동이다.

성령의 권세의 손을 물려고 한 것은 사역을 끊으려는 공격이었다.

그러나 바울은 뱀을 불에 떨어 버렸다.

헬라어로 ἀποτινάσσω (아포티나쏘) 강하게 털어 완전히 분리해 내는 의미를 가지며,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발의 먼지를 털라" 하신 말씀에서 동일하게 사용된다.

이것은 사단의 거짓과 미혹을 단호하게 거부하는 마지막 시대 교회가 취해야 할

영적 분리의 행동이기도 하지만 성령의 사역 기간 동안은 사단의 대적이 통하지 않는 기간이라는

영적 메시지가 담겨 있다 

그것이 두 증인이 1260일 권세를 받아 증거를 마칠 때가 정해진 목적이다 

잠시 사단을 묶어 두시고 남은 성도들에게 회개를 촉구할 때가 마지막 기회가 될 것이다

 


"뱀이 바울의 손에 달림" 단순한 사고가 아니라 영적 공격을 의미한다.

독사라는 표현은 마지막 때  사탄의 특징을 가진 악한 영들의 속임을 가리킨다.

손은 성경에서 사명과 영적 권세를 상징한다.

마지막 때 뱀은 하와에게 했던 것처럼 미혹의 말을 물처럼 쏟아 여자의 사명을 끊으려 한다.

바울의 손에 그 짐승이 손에 달림을 보고 토인들은 바울이 죽을 것이라 생각하고

기다렸으나 아무 부종과 상함이 없었다고 기록한 부분은

하나님 나라의 권세를 드러내기 위한 장면이다.

이는 마치 모세가 광야에서 놋뱀을 든 것과 같은 현상이다

놋뱀은 죄를 대신 담당한 그리스도의 그림자이지만, 사탄은 나무에 달려 조롱을 받아야 할 원수였다. 

바울이 뱀을 떨어뜨린 것은 마지막 때 원수의 권세가 말씀과 성령의 불 앞에서 무력화되는 것을 예 표한다.

 

놋뱀은 곧 십자가 예수님을 상징하는데 그것을 본 자들은 나음을 입었다

바울의 손에 메어달린 짐승을 본 자들은 바울이 죽지 않음을 보고 신이라 하였으나

바울이 보블리오의 부친을 안수하여 낫게 하매 모두 나음에 참여하게 된다

이것이 광야 불뱀에 물린 자들이 나음을 입는 원리였다 

나무에 달린 놋뱀을 본 자가 나음을 입을 것이다 

 

두 증인이 죽임을 당한 후에 세상 사람들은 기뻤다고 한다 

그러나 남은 성도들은 그들이 어떻게 되나 지켜보았을 때 다시 살아나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감을 보고

모두 하나님께 영광을 올렸다고 되어 있다 

또 짐승의 환난 가운데 사람들이 종기가 나며 독한 악창이 생기는 황충 재앙이 있다

하나님의 인 맞은 자에게는 그 재앙이 미치지 못하도록 명하신다.

바울이 독에 상하지 않은 것은 단순한 기적이 아니라 계시록적 보호의 예표다.

 

또 한 가지 그 섬에 버블리오라는 사람의 밭이 있었다고 기록한다.

Πόπλιος (포플리오스) 라틴어로는 귀인이라는 뜻이며 “섬의 πρῶτος(가장 높은 자)”라고

소개를 하고 있으니 히브리적 관점에는 רֹאשׁ rosh (로쉬) 머리, 우두머리, 지도자를 의미한다

그런데 성경은 그가 가진 토지를 굳이 언급해 놓았다.

 

אֲדָמָה (아다마) 토지, 흙, 땅, 경작지, 붉은 흙 사람이 땅에서 지어졌다는 의미

어근은 אָדֹם (아돔) 붉다 즉 “아다마”는 “붉은 흙”이라는 기본 이미지에서 나온다.

 아담 אדם (사람) — ‘흙(아다마)’에서 지어진 존재
 아돔 אדֹם (붉음) — 흙의 색
 아다마 אֲדָמָה (땅) — 붉은 흙, 생명의 터전

 

바울이 도착해 쉼을 얻은 장소가 섬 우두머리의 토지였다는 사실은 혼란의 시대에도

하나님의 사람에게 예비된 ‘자리’가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기록이다.

앞서 나누었던 시리즈 묵상 중에 광야 예비처에 보호받는 두 무리 여자의 예를 들었던 것 중에

한 무리는 사렙다 과부에 속하는 완전히 가난한 심령은 엘리야의 영성 안에 속한 자이며

다른 한 무리는 나아만 장군의 낮아진 자에 속하는 엘리사의 영성 안에 속한다고 나누었다

지금 나누고 있는 섬 우두머리의 토지에 속하는 예비처의 예표로서 바로 나아만 장군 곧

엘리사의 영성에 속한 때가 이때의 사도 바울의 영성과 연관되었음을 알 수 있다 

 

여자가 광야에서 예비된 곳에 양육받는다는 계시록의 언어가 여기에도 반영된다.

버블리오의 아버지가 열병과 이질로 누워 있었다는 기록 역시 의미를 가진다.

열병은 불로 타는 것처럼 번지는 열의 상태를 말하며 헬라어로는 πυρετός (퓌레토스)다.

이질은 δυσεντερία (뒤센테리아)며 내장, 창자 곧 몸 깊은 곳 내면의  상한 상태를 의미한다.

이는 마지막 시대의 교회 안에 있는 거짓 열심과 내면의 부패를 상징한다.

이때가 뱀이 그 입에 물을 강 같이 토하여 여자를 핍박할 때 땅이 입을 벌려 여자를 돕는다는 것과

버블리오의 땅이 있다는 말과 연결이 된다 

 

교회의 예표인 여자들의 존재로 인해 땅된 존재들이 정결함을 입기 시작할 때 그 땅 존재들이

여자를 돕는다는 내용인 것이다 

계시록 12장에서 여자가 도망할 때 뱀이 입에서 물을 토하여 여자를 물로 휩쓸어 가려는 장면이

미혹과 거짓, 교리와 혼합의 홍수가 교회를 삼키려는 것과 동일하다.

바울이 안수하고 고쳤다는 말은 성령의 권세가 회복과 정결함을 가져오는 이미지를 담고 있다.

이것이 바로 이방인 나아만이 일곱 번 요단에서 씻음 받고 정결함을 얻은 이미지와 동일하다

이 사건 이후 섬의 다른 병든 사람들이 모두 와서 나음을 입었다는 말은 하나의 가정의 회복이

공동체 전체의 회복으로 확장된다는 원리를 보여 준다.

 

사람들이 바울을 귀히 여기고 떠날 때 쓸 것을 준비해 주었다는 기록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사자를 부족함 없이 채우신다는 뜻이다.

마지막 길을 걸을 때 하나님은 필요한 모든 것을 채우시며, 이 공급은 사람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이때에도 게하시 같은 미련한 종들이 있어 때를 분별 못하는 자들이 심판을 받게 되는 

두 가지 현상들이 일어나게 된다 

"지금이 어찌 은을 받으며 옷을 받으며 감람원이나 포도원이나 양이나 소나 남종이나 여종을 받을 때냐

그러므로 나아만의 문둥병이 네게 들어 네 자손에게 미쳐 영원토록 이르리라"(왕하5:26-27)

 

누가의 기록은 이 모든 작은 사건들이 우연이 아니라 주의 사자가 마지막 여정을 걸어갈 때

하나님이 어떻게 예비하시고 드러내시며 보호하시는지를 보여 주기 위해 남겨 둔 것이다.

사도행전 28장은 단순한 여행기가 아니라 마지막 시대 교회의 정결함을 받는 그림자이다.

바다는 세상이며 난파는 모든 흔들림 가운데 살아남는 성도들의 여정이다.

멜리데는 양육의 예비처이고 뱀은 핍박으로 드러난 미혹의 영이며 불은 말씀과 성령의 권능이다

이렇게 마지막 때 두 증인의 사역으로 확정되는 것이다 

손은 사명이며 떨어 버림은 분리의 권세이고 토지는 예비된 기업이다.

열병과 이질은 타락한 열심과 오염된 내면으로 인해 미혹된 자들에게 나타나는 현상이며

치유는 가정과 열방의 마지막 추수의 회복이다.

이 장은 종말의 큰 그림을 작은 사건 속에 감추어 놓은 하나의 예언적 기록이며,

성령의 인도하심 아래 걸어가는 자들이 어떤 보호와 정결함과 분리를 경험하게 되는지

보여 주는 상징적 종결이다.

 

사도행전 28장에서 멜리데 섬에 도착했을 때 비가 내렸다는 기록은 심판의 비가 아니라

마지막 시대 성령의 늦은 비를 상징한다.

거센 바다에서 난파라는 환란을 지나왔으나 그 후에 비가 내린 것이다.

늦은 비는 고난을 통과한 무리에게 내리는 회복과 정결의 비이며, 난파의 흔들림 속에서도

하나님이 택하신 사람에게 부어지는 마지막 성령의 은혜다.

그러나 이 비는 성경에서 말하는 이른 비와 늦은 비 둘 다의 성격을 갖는다.

이른 비처럼 보호하시는 은혜이면서도 늦은 비처럼 추수를 위한 성령의 재부어짐을 포함한다.
특히 호세아의 예언이 말하듯 늦은 비는 전과 같이, 즉 초대교회의 성령의 권능과 동일한 방식으로

마지막 시대의 성도들에게 이 늦은 비가 임함으로 두 증인과 남은 무리가 일어난다.

 

추위라는 말은 영적 무기력이나 환경적 억압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예수께서 경고하신 말씀이 있다.

너희의 도피하는 일이 겨울에 일어나지 않도록 기도하라고 하셨다.

겨울은 영적으로 가장 길고 차갑고 메말라 있는 때를 상징한다.

말씀의 빛이 적고 기도와 사랑이 식어 있는 계절이다.

겨울은 마지막 시대의 극심한 핍박과 환경적 어려움을 예표하며, 성도들에게 큰 고통이 되는 때다.

예수님은 그런 때를 기도하여 보호받기를 일러주신 것이다 

사도행전 28장의 추위는 바로 이 겨울의 이미지와 깊이 연결된다.

바다는 늘 세상의 혼란과 격변을 상징해 왔고, 난파는 세상의 종말적 요동 속에서 성도들이

당하게 될 시험과 흔들림을 보여 준다.

 

그러나 난파는 멸망이 아니라 하나님이 예비하신 곳으로 옮겨지는 과정이었다.

난파 후 살아남은 자들이 땅에 발을 딛자마자 추위를 맞이한 것은 마지막 시대에 보호받은 무리라도

완전한 쉼에 들어가기 전 반드시 겨울 같은 환경을 지나야 함을 상징한다.

그러나 그들은 추위를 당하고 있지만, 섬사람들이 불을 피워 그들을 따뜻하게 해 주었다.
이 장면은 마지막 시대에도 하나님께서 예비해 두신 사람들이 있고,

그들을 통해 보호와 위로가 주어진다는 것을 말해 준다.

여자가 광야에서 예비된 곳에서 양육받는다는 말씀과 동일한 흐름이다.

도피가 겨울일 수 있지만 하나님은 그 안에 불과 보호를 준비해 두시며 사도 바울이 성령의 권능으로

그곳에 숨어 미혹하던 뱀을 불에 던짐 같이 광야 예비처에서도 성령의 권능으로 양육될 것이다

 

마지막 늦은 비는 종종 겨울철에 내리는 갑작스러운 폭우처럼 이른 예상 밖에 임할 수 있다.

성경은 늦은 비가 어떤 계절에 내릴지 구체적으로 제한하지 않지만,

추수 전이라는 원칙만을 분명히 한다.

그러므로 겨울에 내리는 비라 해도 늦은 비의 성격을 잃지 않는다.

오히려 겨울에 비가 내린다는 이미지는 상식과 자연을 넘어서는 초자연적 성령의 부으심,

즉 마지막 때의 특별한 성령의 역사를 더 강하게 암시한다.

 

성경에서 비는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부어주심, 그리고 마지막 때의 회복을 상징한다. 

호세아는 이른 비와 늦은 비가 전과 같이 내려질 것이라 예언했다. 

이른 비는 씨를 심을 때 내리는 비로 복음의 시작과 초기 교회의 성령의 부으심을 의미한다. 

늦은 비는 추수 때 내리는 비로 마지막 시대의 성령의 강한 역사, 즉 마지막 증인과 남은 무리를 일으키는 

성령의 비를 의미하며 성령의 늦은비는 반드시 추수 직전에 온다. 

이는 재림 직전의 마지막 성령의 역사이며, 요엘이 예언한 만민에게 부어지는 성령의 완결이다.

 

이 모든 구조는 사도행전 28장의 마지막 여정이 단순한 여행 기록이 아니라

마지막 시대의 구속사적 흐름을 담은 예언적 장면임을 다시 보여 주며 확정해 주심이다.

토인들이 살아남은 자들에게 불을 피워 영접하고 바울이 그들 가운데 나무 한 단을 모았다.

나무는 성경 전체에서 생명과 십자가와 하나님의 도구를 상징한다.

불은 하나님의 임재와 정결케 하는 영을 나타내며, 불기운으로 인해 숨어 있던 뱀이 튀어나왔다는 것은

가장 중요한 영적 원리를 보여 준다.

빛과 불 앞에서는 숨겨진 악이 더 이상 머무르지 못하고 드러나게 될 것이다.

성령의 불은 하나님의 백성들은 정결케 하시지만 악한 영들은 소멸하는 심판의 불이 되는 것이다

마지막 시대 성령의 불과 말씀의 빛으로 교회 안에 감추어져 있던 미혹과 교리가 폭로될 것이다.

 

난파라는 공동체 안에서 굶주림, 거센 세상 파도에 흔들림, 그 환란에서 구원받았으나

추위라는 환난의 그림자 가운데 소낙비처럼 내려지는 말씀의 양식을 맞으며,

불이라는 정결케 하시는 성령의 권능 안에서 죽음과 대항하여 싸울 때 초자연 적인 보호와 생명력으로

뱀의 미혹을 드러냄과 심판, 남은 자의 치료와 회복이라는 전개는 두 증인과 마지막 남은 무리의

여정을 그려내는 영원한 복음 전파의 그림이다.
성령의 비는 반드시 이 무리를 준비시키기 위해 다시 부어지고, 겨울 같은 시대의 추위 속에서도

불은 하나님이 예비한 손길을 통해 꺼지지 않고 타오른다.
그리고 이 여정의 끝에는 로마, 즉 땅 끝까지 복음이 완성되는

예수 그리스도의 푯대가 기다리고 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