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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글 단편 묵상

아브라함 자손(아브라함의 행사를 할것이어늘…)

by GOTOKINGDOM 2025. 12. 12.

 

 

 

 

 

 

아브라함은 강대한 나라가 되고 천하 만민은 그를 인하여 복을 받게 될 것이 아니냐
내가 그로 그 자식과 권속에게 명하여 여호와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하려고
그를 택하였나니 이는 나 여호와가 아브라함에게 대하여 말한 일을
이루려 함이니라(창18:18-19)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를 아끼지 아니하였으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창22:16-18)

 
도(길) — דֶּרֶךְ (데레크)

  • 기본 뜻: 길, 길의 방향, 행로, 방행, 삶의 방식, 행실
  • 성경적 의미:
    여호와의 “길”은 단순한 길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성품·방법을 따라 사는 삶의 방식을 의미합니다.

의 — צְדָקָה (체다카)

  • 어근: צדק (체데크)
  • 뜻: 의, 올바름, 정직함, 공평함
  • 의미: 단순히 도덕적인 의로움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바로 서 있는 상태,
    하나님의 성품을 드러내는 올바름을 말합니다.

공도 — מִשְׁפָּט (미쉬파트)

  • 뜻: 공의, 판단, 재판, 공평한 질서, 정의의 적용
  • 의미: 하나님의 기준에 따라 올바르게 판단하고 실행하는 것
    즉 “의(צדקה)”가 마음의 상태라면,
    “공도(משפט)”는 그 의를 실제 삶에 적용하여 행하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아브라함과의 언약을 이루시기 위해 여호와의 도,
의와 공도를 행하시도록 아브라함을 택했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니 당연히 아브라함의 자손이면 그렇게 행하여야 합니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굳게 믿었습니다
 
오늘 예수님이 믿는 유대인들을 책망하시는 말씀을 묵상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롬3:22) 말했습니다 
그러니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나에게 이 책망의 말씀을 하셨다고 생각합니다 
주님이 저를 판단할 것이 많으나...하시며 참으시는 것이 느껴져 마음이 너무 아프고
죄송할 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리이신 예수님의 말씀으로 자유함을 얻기 위해
먼저 책망의 말씀을 마음에 세겨봅니다
"내가 너희를 대하여 말하고 판단할 것이 많으나 
나를 보내 신이가 참되시매 내가 그에게 들은 그것을 세상에게 말하노라"(요8:26)
예수님은 자신의 감정으로 행하셨던 분이 아니셨습니다
예수님은 보혜사 성령님이 오신기전 아버지의 보내심을 받고 오신 성자 되십니다
그리고 육신으로 오시기 전에는 처음부터 말씀하셨던 성부이십니다 
성부, 성자, 성령 = 삼위일체이신 하나님이십니다
위 말씀은 성자 예수님이 삼위일체의 "한 위격"을 나타내시는 부분입니다
예수님도 우리에 대해 판단하실 말이 많이 있으심에도 보내신 아버지께서 참되시니
그분이 하신 말씀을 듣고 전하라고 하신 말씀만 하시겠다는 순종의 표시이며
삼위 하나님의 서로 다른 사역을 드러내기 위해 의도적이며 계시적인 구분입니다.
세 위격은 본질적으로 하나이시지만, 구원의 모든 과정에서 서로 다른 역할을 가지십니다.
 
오늘 주제에 벗어나지 않도록 그 역활을 간단히 제가 이해한 일부분만 정리하면
1. 아버지 안에서 – ‘원천’, ‘계획’, ‘부르심’의 영역으로 
   하나님의 선택계획부르심보호권위의 근원을 강조하십니다.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엡1:4)
    여기서 택하신 기원은 아버지의 뜻이며, 그 선택이 그리스도 안에서 실현됩니다.
    아버지는 뜻을 정하시고, 계획을 세우시고, 보내시며, 품으시는 분입니다.
모든 구원의 계획이 아버지에게서 흘러나온다는 진리를 드러냅니다.
 
2.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 ‘구원의 실제’, ‘중보’, ‘몸과 연합’의 영역으로
   이는 구원과 하나님의 모든 약속이 오직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통해서만 주어짐을 말합니다.
   그리스도는 어린양 속죄의 희생, 대제사장, 부활의 첫 열매, 우리의 중보자, 교회의 머리이십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고후5:17)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 의롭다 하심, 자녀 됨, 기업, 부활의 생명은 그리스도와의 연합에서 옵니다.
따라서 구원이 실제로 성취된 자리는 아들에게서 행하심을 드러냅니다.
 
3. 성령 안에서 – ‘적용’, ‘내주’, ‘능력’, ‘현재적 임재’의 영역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이루어진 구원을 우리의 삶 속에서 실제가 되게 하시는 분
   바로 성령이심을 보여줍니다.
   성령은 우리 안에 내주 하시고, 우리를 거듭나게 하시고, 하나님의 사랑을 부어주시고,
   말씀을 깨닫게 하시고, 기도하게 하시고, 우리의 연약함 가운데 탄식으로 간구하시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롬8:1-2)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해 친히 간구하시느니라"(롬8:26)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완성된 정죄 없음성령의 역사를 통해 우리 안에 실제가 됩니다.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유 20)
“성령 안에서 행하고” (갈 5:25)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을 누린다” (롬 14:17)
눈에 보이시는 육신의 몸으로 오신 성자께서 하늘 우편에 가신 후로는 우리와 함께 하시는 분은
성령님이라고 말합니다.
이는 구원이 현재적 경험으로 우리에게 적용되는 자리가 성령의 사역임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 묵상도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순종하는 행함이 이루어지는 결과로
의와 평강과 희락을 누리게 하시는 하루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믿는 유대인들에게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8:32)하시니
말씀을 들은 믿는 유대인들의 반응이 참 단순합니다
이는 아직 성령이 임하시지 않았기에 영으로 깨달음이 없어서 그런 것입니다 
"우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남의 종이 된 적이 없거늘..."(요8:33)
 
사람의 말에는 그 사람의 심리 상태를 보여줍니다
지금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남의 종이 된 적이 없다고 말하는 그 중심에는 남의 종은 
자유가 없는 신분이라는 유대인들의 심적 고정관념이 있는것입니다 
유대인들의 고통은 애굽에서의 오랜 종살이였고 또 바벨론의 나라 잃은 혼합된 정체성과 
예수님 당시에도 로마의 지배 아래 있던 민족이었습니다 
그 어느 민족보다 종 된 신분을 가장 잘 알고 있던 유대인들이었기에
예수님은 영적인 말씀을 하셨는데 유대인들은 육적 상황의 말씀으로 반응한것입니다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요8:34)
예수님은 육신의 상황을 말씀하심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가 죄인으로 죄의 종이라 아버지께 들은 것을 세상에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혈통적인 신분도 완전히 부정하지 않으셨습니다.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인 줄 나도 아노라”(요 8:37)
그들은 분명히 아브라함의 후손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오히려 다음 말씀을 하시기 위한 전제입니다.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면 아브라함의 행사를 할 것이거늘”(요 8:39)
단순히 혈통의 문제가 아니라 영적 믿음의 계보와 행위의 본질을 묻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이어서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다”(요 8:44)고 하심으로,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육신의 신분이 참된 정체성이 아니다는 사실을 드러내셨습니다.
유대인들은 아브라함이 자신들의 조상임을 믿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습니다
이것이 혈통적 육신에 속한 정체성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멈추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아브라함의 행사를 말씀하십니다
이는 곧 아브라함의 순종의 여정을 말하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혈통”에 근거해 자신들이 자동적으로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여겼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진 바 되었느니라”(롬4:3)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바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느니라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은 아니니라.”(약2:21-24)
예수님은 믿는 유대인들에게 행함으로 완전하게 되기를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찌니...."(요8:31-32)
자유케 되리라는 앞부분 말씀입니다
"말에 거하면" 이란 것은 말씀으로 사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참 제자의 길을 가는 것이며 진리를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 진리가 죄의 종으로 살던 우리를 죄에서 놓임 받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씀이 우리 안에 거하시면 진리로 자유를 얻도록 이끌어 가시는 것인데
그것이 진리 되신 성령으로  함께하시며 그 선한 일을 이루시며 역사하십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그 말씀을 믿어 자신들 안에 거하도록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예수님의 영적인 말씀을 알아듣지 못하는 것입니다
"내 말이 너희 속에 있을 곳이 없으므로 나를 죽이려 하는도다"(요8:37)
"어찌하여 내 말을 깨닫지 못하느냐 이는 내 말을 들을 줄 알지 못함이로다(요8:43)
 
이제 오늘의 가르침을 깊이 묵상해 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아브라함의 행사는 이 본문 말씀에서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그러나 내 말이 너희 안에 있을 곳이 없으므로 나를 죽이려 하는도다”(요 8:37)
그리고 이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면 아브라함의 행사를 할 것이거늘
이제 하나님께 들은 진리를 말하는 나를 죽이려 하는도다
아브라함은 그렇게 하지 아니하였느니라”(요 8:39–40)
 
아브라함의 행사란 모든 여정을 말하겠지만 요한복음 8장에서의 가르침에 집중합시다
• 간음한 여인을 끌고 와서 모세의 율법으로 시험하는 자들에게 진리로 증거 하심 
• 예수님이 자신을 증거 하심을 판단하는 바리새인을 율법으로 증거하심
• 진리의 말씀을 전하신 예수님이 떠나시면 유대인들이 율법으로 죄가운데 죽게 될 것임을 증거 하심
이후로 말씀이 자연스럽게 아브라함의 행사를 말하시며 끝으로 아브라함의 기쁨을 말씀하시고
결국 율법으로 돌로 치려는 유대인들을 피하여 가시는 내용입니다
 
먼저 간음한 여인은 율법에 돌로 치라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율법보다 진리로 그들을 판단하셨습니다
모든 자들이 죄의 종이니 간음한 여인만이 아니 너희 모두가 돌에 맞아 죽을 자라는 
그들의 죄성을 드러내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면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증거 하심으로 
그들은 율법으로 "네 스스로 증거 하니 참되지 않다"라고 판단했습니다
예수님은 "나와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함께 증거 하신다"라고 율법에 두 사람의 증거가
참되다는 기록을 증거 하셨습니다 
그러나 영적인 말씀을 그들은 육적인 말씀으로 듣기에 "네 아버지가 어디 있느냐"라고
눈에 보이는 아버지를 찾고 있습니다 
이렇게 율법을 들먹이는 유대인들에게 진리 되신 예수님이 떠나시면 율법 안에서
메시아를 찾고 기다리다가 율법이 죄를 깨닫게 하는 것임을 알게 되니(롬 3:20) 
진리를 알지 못하고 자신들의 죄로 죽어 예수님 계신 천국에 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내가 가리니 너희가 나를 찾다가 너희 죄 가운데 죽겠고 나의 가는 곳에는
너희가 오지 못하리라"(요 8:21)
 
이 모든 정황을 보았을 때 떠오르는 장면이 있습니다
창세기 18장에서 아브라함이 장막 문에 앉았다가 하나님의 사자가 맞은편에 섰는 것을 보고
아브라함은 최대의 존경과 성심으로 그들을 영접했습니다.
하지만 유대인들은 어떠했습니까?
하나님이 보내신 참 말씀, 즉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예수님을 죽이려 했습니다.
예수님은 이 대조를 들이대며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너희가 진짜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면, 아브라함처럼 할 것이다.
하지만 너희는 아브라함처럼 하고 있지 않다.”
이 말씀은 "혈통은 맞지만, 영적 실체는 아니다"라고 증거 하심입니다 
 
유대인들이 혈통을 주장하자 예수님은 충격적인 영적 실체를 선언을 하십니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요 8:44)
왜 이렇게 강하게 말씀하셨을까요?
예수님은 ‘혈통’이 아니라 ‘행위’와 ‘본성’을 통해 누가 누구의 자녀인지를 판단하십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사자를 영접하였을 때 아들을 약속받았습니다
"기한이 이를 때에 내가 네게로 돌아오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창18:14)
이 말씀을 예수님이 "나의 때"라고 표현을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요8:56)
아브라함의 아들은 이삭입니다.  아브라함은 여호와께서 돌아오실 날이 그 약속이
이루어지는 아들을 받는 날입니다
그때를 기다리며 즐거워했고 정말 사라를 통해 아들을 주심을 보고 기뻐했던 것입니다
이삭은 곧 예수님을 예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메시아를 유대인들은 기다렸는데 오신 메시야를 기뻐하지 않았습니다
유대인들은 아브라함처럼 행하지 않았습니다 
 
여기에는 중요한 구속사적 메시지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 됨은 혈통이나 종교적 배경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진리를 사랑하고, 말씀을 받아들이고, 하나님이 보내신 아들을 영접하는지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하신 말씀의 핵심입니다.
예수님이 가신 후로 하나님은 성령님을 보내셨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가 사함 받았다는 것을 
그 당시 제자들도 모르고 그 누구도 몰랐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양처럼 곤욕 당하심"(사53:7)에 예언되었고
바울도 로마서 8:36에서 동일하게 말합니다.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 되며 도살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여러분 "도살할 양 같이"란 표현은 너무도 비관적인 표현입니다
이 말의 영적의미를 깨달아야 합니다 
구약에 대속죄일은 모든 죄를 사함 받는 회개의 절기입니다
그때 모든 믿는 자들의 행함은 양을 잡는 일입니다(힘껏 제물을 각자 준비함)
그러나 양을 잡을 때 없어서는 안 될 가장 중요한 행함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이 있고 없고의 차이로 내가 지금 도살을 행하고 있는지 회개를 행하고 있는지 판결이 됩니다 

 
그것은 바로 "안수" 입니다 구약 언어로는 "죄의 전가"라고 합니다
죄의 전가 없이 양을 잡는 것은 도살입니다 (먹기 위해 식용으로 잡는 것)
 
그러니 속죄를 위한 양은 흠이 없는 것을 가져와야 된다는 말씀도 그 "전가"라는 것이
상방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양의 흠 없음 곧 예수님의 흠 없으심이 죄인이 나에게 전가되고
죄인인 나의 모든 죄는 양에게 곧 예수님께 전가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누구도 그 원리를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예수님과 그리스도인들이 도살된 양처럼 여김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냥 죽인 거지요 그러니 "모두가 죄 가운데 죽는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렇게 어린양으로 죽으셨습니다 
지금도 이름도 빛도 없이 감사하며 순교한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 또한 도살한 양같이 취급당했지만 그들은 영광의 부활로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성찬을 하는 원리도 여기 있고 부활을 기념하는 것도 매우 중요한 믿음의 행함입니다
 
예수님의 살과 피를 기념하는 것은 어느 종교에서도 하지 않습니다
오직 그리스도가 우리 죄를 사하시려고 피 흘리시고 우리에게 참된 양식인 말씀으로
먹이신다는 것을 믿음으로 행하는 증거가 성찬입니다
예수님의 피와 살은 신분을 차별하여 주신 것이 아닙니다
그 어떤 이변으로 진리의 말씀을 외곡되이 영혼들을 혼미케 하여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죄가 사함 받았다는 증거는 사망을 깨트리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입니다
이것이 구약에는 대제사장이 대속죄의 안수한 염소의 피를 가지고 지성소로 들어가서
죽지 않고 살아서 다시 나와야 대속의 증거가 되었습니다
대제사장의 연약함(죄)가 있어도 백성들의 연약함(죄)가 온전히 전가되지 않으면
대제사장이 지성소에서 죽어서 나옵니다
그렇게 되면 그들의 죄를 사함 받지 못했다는 증거가 됩니다
 
이 원리가 동일하게 예수님의 부활에 적용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예수님의 부활하심을 목격한 자들은 지극히 소수인
제자들의 무리들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유대인들은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믿지 않습니다
그것이 바울이 말하기를 이방인의 구원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 비밀은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완악하게 된 것이라"(롬11:25)
 
우리가 그 비밀을 받은 이방인 그리스도인입니다
우리도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고 있습니다
그러니 그 믿음으로 행하는 것이 바로 부활절을 기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 제가 말하고 있는 부분을 이해 못 하시는 분들도 많이 계실 것입니다
성찬 안 하는 교회도 있나?
부활절 기념 않하는 교회가 있어? 하시면서요
행하고 계시다면 그 의미를 바로 새겨 알고 행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행하지 않고 있다면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세상에는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믿지 않는 자가 태반이고
오직 예수를 믿어야 구원을 받는다는 진리를 부인하는 자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들과 믿는 우리의 차이 곧 보이는 행함이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만이 행할 수 있는 그것으로 구별됩니다
 
불교나 이슬람이나 다른 종교에서 성찬 합니까? 부활절 지키나요? 성탄절 기념하냐고요?
혹여 누군가는 가톨릭은 다 하는데 그들이 그리스도인이냐? 하고 물으신다면
네 가톨릭에도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믿는다면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믿는다면 마리아를 숭배하는 것을 회개해야 할 부분이지 구원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점점 타락의 길을 가는 적그리스도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지만 
유대인 중에도 회개하고 그리스도인이 되는 사람이 있듯이 가톨릭에도 동일하게
구원의 길은 열려 있습니다 
 
이것에 대한 결론은 이렇습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믿음의 행함인 성찬, 부활절, 성탄절 등등을 그리스도인이 행하지 않는데
이 세상 누가 예수의 존재를 듣고, 믿으며 보고 행할 수 있겠습니까?
당신은 그리스도인 맞습니까?
어떻게 증명하겠습니까?
만일 오늘날 초대 교회 핍박처럼 그리스도인들을 잡아갈 때 당신의 무엇을 보고
그리스도인이라 하겠습니까?
초대 교회는 예수를 그리스도라 찬양했고 날마다 모여 떡을 떼었다는 것은 성찬을 했다는 것이며
부활이 소망으로 삼고 인내하고 견뎌왔습니다 
어린아이부터 여인과 노인에 이르기까지 모두 처참한 죽음으로 임하였던 것은 
그들이 유대인이라 죽은 것이 아닙니다
예수가 부활하신 그리스도이심을 믿었고 그리스도의 행사를 하였기 때문에 죽은 것입니다 
 
그 어떤 궤변에 속지 마십시오 
지금 순교가 준비되어 있지 않는데 어떻게 환란 때에 나는 그리스도인이라 말하겠습니까
우리는 모두 연약한 자들입니다
성령의 증거 없이 순교도 부활도 휴거도 없습니다 
오직 당신이 그리스도의 사람이 맞는지 성령이 증거 하실 것입니다 
성령이 당신 안에 안 계시다면 당신은 버리 운자입니다
그러나 우리 주 예수께서 아버지께서 주신자는 하나도 잃지 않는다고 선언하셨습니다
당신이 성령 없이 버리운 자라면 아버지 없는 고아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나는 당신과 함께하시는 성령으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고전 3:16-17)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 도적질 하는 자는 다시 도적질 하지 말고 돌이켜
빈궁한 자에게 구제할 것이 있기 위하여 제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속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엡 4:27-30)
"자녀들아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또 저희를 이기었나니
이는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이보다 크심이라(요일 4:4)
 
묵상글이 제가 의도한 대로 가지 않았습니다
성령의 이끄심 대로 순종하였는데 저도 깨닫지 못한 부분들을 열어주시니 감사할 뿐입니다
본문으로 다시 돌아가 묵상을 마무리하겠습니다 
구약에서 아브라함이 보여준 대표적인 사건 중 하나는 창세기 18장에서 나타납니다
하나님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심판하시기 위해 두 천사와 함께 오셨을 때,
아브라함은 그들을 알아보고 달려가 영접하였습니다.
히브리어로 ‘영접하다’는 단어는 “카라(קָרָה, 만나다·부닥치다)”라는 의미를 가지며,
그는 단순히 손님을 대접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알아챈 믿음의 행함을 말합니다.
아브라함의 장막은 하나님의 임재가 머무는 장소가 되었고,
그 자리에서 그는 소돔의 심판 앞에 중보자로 서게 되었습니다.
 
소돔 성 안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펼쳐집니다.
롯 역시 두 천사를 보고 영접하였습니다.
롯에게도 같은 ‘카라’(קָרָה 만나게 된 사건)이 동일하게 믿음의 행함입니다.
아브라함의 조카였던 그는 아브라함이 보였던 믿음의 태도를 배우고 이어받아,
심판을 향해 움직이는 하나님의 사자들을 자신의 집으로 들이는 예수님의 말씀처럼
아브라함의 행사를 하는 자손인 것입니다 
 
그러나 소돔 사람들은 정반대의 태도를 보였습니다.
그들은 사자들을 해하려 하고 욕보이려 했습니다.
히브리어로 ‘해하려 하다’는 רָעָה(라아), ‘악하게 대하다’'나쁘게 하다'라는 뜻을 가진 동사이며,
이들이 보인 반응의 본질은 하나님의 임재를 적대하는 영적 싸움입니다.
이 대비를 예수님은 요한복음 8장에서 그대로 가져오신 것입니다.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면 아브라함처럼 나를 영접했을 것이다.”
예수님은 ‘천사들’보다 더 크신 분,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은 죄에서 건지시기 위해 오셨지만(요 8:32),
유대인 지도자들은 소돔 사람들처럼 예수님을 죽이려 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결국 “너희가 누구의 자손이냐는 혈통이 아니라,
너희가 어떤 반응을 보이느냐로 드러난다”라는 영적 선언이었습니다.
이 패턴은 요한계시록에서도 다시 반복됩니다.
계시록 11장에서 두 증인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들로 등장하며,
심판을 예언하지만 세상은 그들을 거부하고 죽이게 됩니다.
 
요한계시록 11:8은 그들의 시체가 놓일 장소를 이렇게 말합니다.
“그 성은 영적으로 하면 소돔이요 애굽이라 곧 저희 주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이라.”
‘영적으로’라는 표현은 그 장소의 실명이 아니라 영적 본질을 드러내는 시각입니다.
주님께서 죽임을 당하신 예루살렘이지만, 그 도시는 이미 영적으로는 소돔처럼 되었고,
하나님의 사자를 거부하고 죽이는 패턴이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구약의 소돔, 복음서의 예루살렘, 그리고 계시록의 마지막 시대까지 흐름은
동일한 패턴으로 믿음으로 증거 하는 행함으로 분명히 정체성이 드러납니다.
하나님이 보내신 그 증인들이 올 때, 영접하는 자와 대적하는 자의 길이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아브라함과 롯은 하나님의 사자를 알아보는 눈과 마음을 가지고 있었고,
그 영접을 통해 하나님의 구원 역사가 그 가정 안에 드러났습니다.
반대로 소돔 사람들과 예수님을 죽이려 했던 유대 지도자들,
그리고 두 증인을 죽이는 마지막 시대의 세상은 동일한 영적 계보 아래 있습니다.
모두 자신의 죄 가운데 죽고 예수님이 계신 곳에는 가지 못할 것입니다 
 
마지막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하나님께서 보내시는 말씀과 책망과 위로와 증거들을
어떻게 맞이하는가를 통해, 우리 안에 어떤 영적 계보가 흐르고 있는지를 드러내게 됩니다.
그것이 성령이 우리 안에 거시며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장막에서처럼, 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발걸음이 머무시는 장소가 되길 바라며,
마지막 때에도 두 증인을 죽이려고 달려드는 세상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보내시는 모든 말씀을 영접하는 믿음의 자손으로 행하며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심에 깨어 귀를 기울이기를 축복합니다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 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계 2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