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부터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모세 성막과 솔로몬 성전을 통한 하나님의 의도와
우리에게 열어 주시는 또 하나 신비의 장막을 묵상해 보려고 합니다
에베소서 2:20-22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
그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제게 영감을 주시며 이끄시는 분은 성령님이시며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영으로
말씀 안에 머물 때에 그 지혜의 풍성함으로 채워주심에 영광과 감사를 올려드립니다
날마다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해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간다는데
함께라는 것이 기쁨과 설렘을 줍니다

회중 예배 가운데 의도적으로 성령님은 나의 생각을 주관하실 때가 있습니다
육신은 그 회중 자리에 있는데도 그 배움의 현장에서 직접 설명하시고 보여주실 때가 있는데
뭔가 신비롭고 차원적인 수준으로 혼미함을 드리려는것이 아닙니다
이 상황을 설명하려고 하는 것이니 미리 섵불리 판단하지 마시고 함께 성령의 인도하심에
말씀을 생각하면서 동참하시면 좋겠습니다
육신으로 보이는 몸은 예배 장소에 앉아 있지만 성령님이 저를 설교 말씀 주제 안으로
데리고 가셨습니다
그 공간에서 육과 영의 나누어짐을 두 영역 안에서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참고로 영적 체험을 몇가지 간단히 설명드립니다
몸에서 영이 분리되어 한 영역 안에서만 활동하게 되면 몸은 잠시 잠들어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입신"이라고 말을 합니다
그런데 사실 입신이란 용어는 성경에 없습니다
입신은 한자로 "入神 - 신의 상태에 들어간다" 라는 뜻입니다.
이 용어는 불교, 도교, 무속, 신비주의 전통에서 의식 상태의 변화, 황홀경, 트랜스 상태를
설명하기 위해 사용되던 말입니다.
그러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경험을 간증하는 것을 들었기에 부인하지는 않습니다
성경의 표현으로는 다니엘이 계시를 받을 때 힘이 빠져 얼굴을 땅에 대고 쓰러집니다.
에스겔은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엎드러집니다.
요한은 계시록 1장에서 죽은 자 같이 되었다고 기록을 합니다
저는 사람들 가운데서 입신을 한 경험은 없지만 내가 경험하지 않았다고 다른 사람들의
경험을 부인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강권적인 임재가 임하시면 받는 그릇이 감당이 되지 않을 때 육신의 몸이 잠자듯이
혼절하는 것인데 이것은 매우 조심스러운 부분입니다
무당들도 신내림을 받을 때 이와 같은 현상(입신)이 있기 때문입니다
제 경험은 예배가운데 두 영역 안에 모두 공존하는 경우를 "환상"이라고 합니다
환상은 주님과 대화를 주고받으며 질문도하고 답도 듣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영화 속의 모습 같습니다
그것이 성경에는 고넬료와 베드로에게 일어난 사건으로 잘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환상은 주로 현재 상황이나 가까운 미래 상황을 보여주실 때이며
대부분 가르침이 영이돌아와서도 기억을 합니다
그래서 성경 말씀이면 그 시대 현장에서 바로 보고 배우기 때문에 대화의 톤이나
느끼는 감정이 깨달아집니다
예를 들어 성경 글자에는 비아냥 거리며 하는 톤을 느낄 수 없습니다
또 농담으로 하는 감정을 깨달을 수 없습니다 성경이 "글자' 이니까요
그러나 현장에서는 보고 듣고 느낌은 성령으로 알게 됩니다
그래서 나도 보고 들은 것을 표현할 때 답답함을 느낍니다
어떻게 해야 내가 보고 들은 것을 그대로 전달을 할 수 있을까?
하지만 답은 없습니다
그 누구도 천국의 언어 곧 성령의 언어를 온전히 전할 육신의 언어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더러는 그것을 표현해 보겠다며 가장법을 사용하기에 미혹이 되는 것입니다
본 것 들은 것 다 당신이 전하지 않아도 성령님이 일하실 것을 신뢰하시면 됩니다
그리고 주로 먼 미래를 보여주시는 것은 "이상"이라고 하는데 육체가 깨어나면
기억을 잊어버리는 것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이 계시를 받을 때처럼 주로 "기록하라"말씀을 자주 하십니다
주로 다니엘서에 기록된 오랜 후에 있을 일을 보여주심이 주로 이상으로 이해됩니다
저도 이상을 몇 번 보여주셨는데 세상에 전할 말씀이 지극히 부족합니다
왜냐하면 정말 먼 미래 같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주님이 이제 곧 오실 것 같은데 제게 보여 주신 것은 현재 없는 현상들입니다
먼 미래의 일이라고 하시면 정말 슬프거든요 ㅜ.ㅜ
꿈, 환상, 이상과 계시 같은 성경에 나오는 말씀들을 잘 풀어놓으신 분들이 많습니다
저는 제게 경험되고 성령이 가르쳐 주신 부분만 지극히 조금 알 뿐입니다
혹시 자신의 경험이 이해되지 않는 것이 있다면 그런 영상들을 참고하시면 됩니다
단! 꼭 알아야 될 때 기도하시고 선하신 주님 뜻대로 이끄시기를 믿음으로 구하십시오
제 경험을 짧은 부분 나누었지만 저도 정답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드립니다
사실 자신의 중심이 거룩함을 유지하고 있다면 환상과 이상은 대부분 선명하게 깨닫습니다
성령이 가르치셨기에 따로 사람에게 배울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중심에 온전히 성령님께 복종하지 못하는 연약함이 있기에 보여주신 내용들을
나의 주관에 맞도록 나에게 유익됨으로 해석하는 경우가 많이 있어 예언에 오류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그럼 묵상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회중 예배 중에 설교 말씀이 성전 된 존재 그리고 하늘 된 존재에 대한 대조적이면서도
순차적인 단계에 이르는 부분적 말씀이었는데 솔로몬 성전과 모세 성전의 단계와
하늘과 땅의 단계를 영적 존재로 이해한 부분들이었습니다
오래전부터 이 부분을 성령님께 계속 여쭈며 지혜를 구했던 말씀이라 예배 중에
별다른 기도 없이도 영의 문이 열렸습니다

일단 설교의 내용은 접어두고 중점은 이것입니다
성막과 성전에는 3단계가 있는데 뜰, 성소, 지성소입니다
뜰에 머무는 자는 율법에 속한 자로 결국은 계시록 11:2 성전 밖 마당은 42달 짓밟힘을 받는
존재들로 연결이 됩니다
그다음은 성소 안에 들어가는 자들인데 이들은 제사장들입니다
등불, 떡상, 금향로까지 매일 점검하고 자신의 내면의 죄와 싸우는 자들입니다
하나하나 기물들에 속한 의미는 설명하지 않겠습니다
그다음이 대제사장만 들어갈 수 있는 지성소에 들어가는 존재를 완전한 자, 합당한 자,
아들이 된 존재로 잘 설명을 하셨습니다
저는 이 설교에 대한 가타부타 평가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설교를 전체 듣지 않고 제가 하는 부분적 메시지로 판단한다는 것은 오산입니다
단지 저는 그 길에서 다른 길도 있음을 성령님이 보여주셨고 또 그 길을 가고 있는 자들이
있음을 알고 보았기에 증거 하는 것입니다
성전의 단계는 사람이 하나님께 다가가는 방식으로 로마서에 잘 기록이 되었고
직접 찾아오심은 하나님이 사람에게 다가오시는 방식으로 에베소서에 잘 기록합니다.
이 두 방식은 경쟁 관계가 아니라 서로 다른 방향입니다.
교회에 문제는 언제 생기느냐 하면 성전의 모형을
“반드시 거쳐야만 하는 영적 계급도”로 접근할 때입니다.
그 순간 지성소는 친밀함의 자리가 아니라 믿는 자의 고행과 성화로 도달해야 할
위치가 되어버리고 은혜는 사라지며 거짓된 겸손을 가장한 우월감이 들어갑니다.
이들은 자신의 길을 확신하며 그 길만이 옳은 길이 다하며 다른 메시지를 거짓되고
오염된 홍수의 말씀으로 여기며 눈과 귀를 막아 우물 안 개구리같이 살아갑니다
이들은 늘 자신들이 새로운 것을 깨달음 받은 특별한 존재로 믿고 흔들어 대는
관계들을 단절시키며 분열을 일으킵니다
더 나아가면 이단의 결과인 극단 주의에 빠지게 됩니다
예를 들면 신 ㅊ ㅈ 와 다 ㅁ 선 ㄱ ㅎ 들입니다
성경을 지식에 의존하여 새로움을 발견하기에 집중을 하게 되고
신비로운 현상들에 집중하여 거짓된 은사와 체험 중심에 빠져 듭니다
물론 모두가 그렇다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성경을 더 깊이 연구하고 상고하여 하나님을 더 알아가기에 유익합니다
그러나 말씀 많이 배우고 암기하는 것보다 한 말씀이라도 먼저 순종함이 먼저입니다
그러니 말씀만 지식으로 가득 찬 대두가 되지 않도록 몸의 순종으로 성장해야 합니다
성경에서 지성소에 가장 가까웠던 사람들은 스스로를 옳다 하며 완전한 자로
완성되었다고 말한 적이 없습니다.
모세는“주여, 보여 달라”고 늘 엎드린 자입니다.
다윗은“나는 벌레요 사람이 아니라”고 자신의 비천함을 알게 됩니다.
이사야는“화로다 나여”라고 자신의 부정함을 발견합니다.
하늘의 존재로 자신이 완성된 자처럼 아니 완성될 수 있는 자처럼 말하는 순간,
성령의 언어가 아닌 바벨의 언어입니다.
성경은 언제나 이렇게 말합니다.
“낮아진 자에게 임재가 머문다.” 그래서 교회와 성전의 가르침은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을 가두기 위한 체계가 아니라 사람을 보호하기 위한 울타리입니다.
하나님은 울타리 안에서도 일하시고 울타리 밖에서도 일하시며 울타리를 뛰어넘어
가장 낮은 곳으로 내려오셨습니다.
성막과 성전은 하나님께 올라가는 길을 가르치지만
하나님은 언제나 사람이 있는 낮은 자리로 먼저 내려오십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거하시매" 헬라어로 σκηνόω (스케노오)는 명사 σκηνή (스케네, 장막)에서 나온 동사입니다.
지성소로 올라간 사람이 하늘의 존재가 되는 것이 아니라
하늘의 하나님이 이 땅에 사람 가운데 먼저 내려오셔서 장막을 치셨습니다.
하나님은 법을 세우시고 원칙을 따르며 일을 진행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의 모든 섭리는 아닙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십니다
그래서 모든 주권을 행사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일론머스크처럼 사람을 로봇으로 만들지 않으셨습니다
인간에게 사랑의 관계를 원하시고 자유의지를 주셔서 창조하셨습니다
원칙을 중요시 여기시며 공의로 심판하시지만 또한 반전으로 역사하시고 은혜와 긍휼을
한량없이 베푸시는 하나님의 성품이십니다
베드로가 예수님께 "형제의 죄를 몇 번까지 용서할까요?" 물었을 때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하심은 바로 하나님이 우리를 그렇게 용서하고 계심입니다
날이 점점 가면 갈수록 마음이 가벼워지는 느낌이 듭니다
나의 무거운 짐들이 우리 주님께 많이 넘겨진 거 갔습니다
저는 오늘 서론을 이렇게 짧게 끝내려고 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더 친밀하게 느껴질 때 은혜의 풍성함이 더 깨달아집니다
그래서 친밀한 관계는 높이 오르는 길보다 넓혀가는 것이 더 빠른 길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내 안에 하나님 사랑의 성품으로 확장되고 넓혀져서 더 이상 공간이 없으면 빵! 하고 터져서
내 주위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 사랑의 성품이 파편으로 박히지 않을까요? ㅎㅎ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 1:14)
예수님은 오실 때 은혜와 진리를 충만하게 가지고 오셨습니다
그것을 우리에게 모두 주시고 가셨습니다
그 누구에게도 부족하지 않을 만큼 충만하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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