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현재 1-4편으로 이어지는 시리즈 묵상글입니다
저가 내게 말하기를 네가 많은 백성과 나라와 방언과 임금에게
다시 예언하여야 하리라 (계 10:11)

오늘은 사도 요한이 계시를 기록할 때의 마음을 공감해 보았다
모든 제자들이 순교하여 주님과 함께 있을 것인데 자신만 홀로 남아 외롭고 공허한 시간을 보냈을
사도 요한을 생각하면 마음이 먹먹해지고 조금 두려운 생각도 하게 된다
한국의 옛 조상들도 나라의 역적이나 고위 관리들이 죄를 지어 벌을 받을 때 귀양이라는 벌이 있다
그들은 유배지에서 홀로 지내다 결국 죽든지 사약을 받기도 했었다
사도 요한은 끓는 기름 가마에서 살아 나왔다고 한다
물론 사도 요한이 세상 죄로 인한 형벌이 아니요 믿음 때문에 받은 형벌이었다
끓는 기름 가마에 들어갈 때 사도 요한은 어떻게 마지막 기도를 드렸을까?
"주여 이제 나의 갈길을 마치고 주님께로 불러주시니 감사합니다"라고 했을까?
그런데 죽지 않고 다시 살아나고 말았다 (부활한 것이 아님)
그때 사도 요한은 알았을 것이다 내게 아직 사명이 남은 것이구나.....
그렇게 사도 요한은 먼저 남은 자의 삶을 보여준다
그의 계명은 이것이니 곧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가 우리에게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할 것이니라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자는 주안에 거하고 주는 저 안에 거하시나니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우리가 아느니라(요일 3:23-24)
사도 요한은 밧모섬에서 예수님의 계시를 받아 서신으로 기록을 하였다
이는 요한이 스스로 기록을 한 것이 아니라 성령게 감동으로 영의 소리를 듣고 보았다
그때 주께서 "너 보는 것을 책에 써서... 교회에 보내라"하셨기 때문이다
주님은 나에게도 "기록하라", "기록된 것을 찾으라"라는 방식으로 음성을 주신다
이는 환상을 보게 되면 이해되지 않는 장면과 대화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때는 질문하고 답하고 하는 것으로 나를 이해시키지 않으시고 기록으로 남기게 하신다
그리고 기록된 성경 말씀 안에서 찾으라고 말씀해 주신다
정확한 말씀 구절을 주실 때도 있지만 대부분 그 말씀을 들고 기도자리에 있을 때
주안에서 성령으로 그 환상을 깨닫게 하신다
그렇다 해도 모든 본 것을 다 깨닫거나 이해하지는 못한다
왜냐하면 실제 일어날 일들일 지라도 내 생전에 보고 경험한 일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도 요한도 계시록에 본 모든 환상을 다 이해하지는 못했다
그저 그때 성령으로 말미암아 깨닫는 것을 기록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도 요한도 천사에게 묻기도 하고 또 천사에게 경배를 하려고 하기도 하고
음녀와 짐승의 일들을 보고 "기이히 여기고 크게 기이히 여기니"(계 17장) 언급을 한다
이는 사도 요한도 자신이 본 것을 다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마지막 계시를 본 다니엘도 동일한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했음을 알 수 있다
보이고 들은 것을 다 이해하지 못했기에 천사에게 여러 번 물어보지만 결국 봉함되는 계시다
"내가 듣고도 깨닫지 못한지라", "이 말은 마지막 때까지 간수하고 봉함할 것임이니라"(단 12장)
이 다니엘의 계시를 사도 요한이 받아 일부를 열어 기록되었지만 요한도 봉함한 계시가 있다
"일곱 우뢰가 발할 때에 내가 기록하려고 하다가 곧 들으니 하늘에서 소리 나서
말하기를 일곱 우뢰가 발한 것을 인봉하고 기록하지 말라"(계 10:4)
다니엘의 인봉 된 계시가 사도 요한에게 열려 졌듯이 일곱 우뢰의 인봉된 계시를
주님은 또 누군가에게 열어 주고 계실 것이다
이제 앞서 묵상한 1-3에 이어서 짐승의 등장과 그 시스템을 조금 살펴보려 한다
앞서 나눈 묵상에 올렸듯이 두 증인이 들림 받은 후에도 이 땅에 남은 자손들이 있다
두 증인이 떠난 후 땅에 남겨져 스스로 믿음을 지켜야 하는 자들이다.
사도 바울이 언급한 "지금 막는 자가 있어 그중에서 옮길 때까지"라고 말을 하며
그 막는 자가 옮겨지면 "불법한 자가 나타난다"(살후 2:6-12) 기록되어 있다
그들은 예수님의 나타나심으로 멸절되는 존재들이다
"주 예수께서 그 입의 기운으로 저를 죽이고"(살후 2:8)
"그의 입에서 이한 검이 나오니 그것으로 만국을 치겠고"(계 19:15)
그러나 예수님이 나타나시기 전에는 그들이 많은 사람들을 거짓 이적과 능력으로
유혹하여 진리가 아닌 거짓을 믿게 되는 미혹에 빠지게 만든다
이는 하나님이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와 타협하고 좋아하는 이들을
심판하시려고 역사하신 것이다(살후 2:12)
성령의 강권적 역사는 끝나고, 그때는 “성도의 인내”로 버텨야 하는 시대가 열린다.
엘리야 시대에 사렙다 과부가 굶주림에도 아들을 세상에 팔지 않고 함께 죽기를 결단한 것같이
엘리사 때에도 선지자 생도의 과부가 두 자녀를 채주에게(매매하는 표) 넘겨주지 않으려고 은혜를 구한다
그 과부의 남편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라고 그녀가 말을 했다
이는 환란에 남겨진 여자와 자손들에게는 이미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의 가장(하나님 양자)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짐승의 표가 시행되고, 경제적·사회적 강압이 극심해지는 그때,
말씀에 순종하고 표를 거부하는 자들은 생명을 잃는 길을 택해야 한다.
은혜는 모든 사람에게 머물지 않고 지극히 소수의 남은 자들에게 주어질 것이다.
두 증인의 모방을 하는 두 짐승은 바다에서 올라오는 첫째 짐승과
땅에서 올라오는 둘째 짐승이 있다.
첫째 짐승을 정치적 권세로, 둘째 짐승을 종교적 권세로 이해하지만,
때로는 이 두 존재의 역할을 서로 뒤바꾸어 해석하기도 한다.
그러나 순서를 뒤바꾸면 실제로 나타나는 징조를 잘못 해석하게 되고,
마지막 때 미혹의 본질을 놓칠 수 있다.
나는 첫째 짐승이 정치계에서 먼저 등장하는 것이 성경의 흐름과 실제 세상의 징조와
더 일치한다고 보며 정치적 세력이 먼저 세워질 때 세상은 아직 그를 적그리스도로 알아보지 못하며,
오히려 그 권세와 능력에 매혹되어 따른다.
이후 종교적 권세가 뒤따라 등장하여 그 정치적 힘을 더욱 정당화하며 세상
사람들의 마음을 확고히 붙잡아 버린다. 이것이 계시록에서 말하는 두 짐승의 연합이다.
기존에 있는 해석은 두 번째 짐승이 바티칸 교황이라고 말을 한다
나도 이전에는 그것이 맞다고 생각을 했다
그러나 첫 번째 짐승이 바다에서 올라온 것 같이 땅에서 올라오는 짐승도 새로운 등장으로
보아야 하는 시각을 다시 접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이전에는 로마 가톨릭이 개신교를 핍박하여 죽였지만 현재는 교회도 통합으로
변질된 단체가 세워졌기 때문이다
그것을 카톨릭 교황이 주관한다고 하지만 교회의 권력도 지금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땅에서 올라오는 짐승은 새로운 통합된 종교 지도자일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여기서 끝이 아니다. 첫째 짐승에게서 다시 또 하나의 존재가 나타난다.
사람들은 그 첫째 짐승의 ‘우상’이 만들어지고, 그 우상이 살아서 말하고 행동하며
사람들을 죽이기까지 한다
계시록의 묘사를 그대로 보면, 실제로 666을 시행하고 사람을 죽이는 존재는
사람이 아니라 그 ‘아바타적 존재’이다.
둘째 짐승의 지시를 받아 움직이는 이 존재는 영혼이 없는 도구이며,
지시자가 멈추면 멈출 수밖에 없는 존재이다.
그래서 세상은 눈앞에 보이는 우상이 두려운 적그리스도로 생각하지만,
실제 명령자는 둘째 짐승이며 첫째 짐승을 위해 순동 한다
이것이 마지막 시대의 큰 미혹이다.
사람들은 “적그리스도가 성전에 서서 자신을 하나님이라 선언할 때 환란 시작”이다
아직 때가 이르지 않았다 늦추지만, 이미 그 배후에서 작동하는 정체와 도구들은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명령하고 수행하고 있다.
계시록에서 마지막 심판이 임할 때 불못으로 들어가는 존재는 첫째 짐승과 둘째 짐승이다.
그러나 그들이 사용했던 도구, 즉 첫째 짐승의 아바타적 존재는 심판받았다는 말이 없다.
영혼이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도구이기 때문에 지시가 끊기면 멈추고,
마지막에는 그냥 폐기되고 태워질 뿐이다.
에스겔 39장에 보면 곡과의 전쟁에서 사용된 무기들을 7년 동안 태운다는 말이 있다
마지막 시대에 사용되었던 그 도구적 존재들이 완전히 제거되는 것을 상징한다
현재의 인공지능 시스템 역시 그 성격상 ‘지시받아 움직이는 도구’라는 점에서
우사인 세 번째 존재와 비슷한 면이 있다고 본다.
마지막 시대의 미혹은 항상 “보이는 것”을 통해 온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작동하는 실체를 깨닫지 못하면 사람은 시기와 징조를 오해하고
준비하는 시기를 놓치게 된다.
바로 이 시점에서 성경은 “이후로는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이 복이 있다”(계 14:13)고 밝힌다.
죽음이 끝이 아니라, 영생을 위해 마지막 수확의 낫이 휘둘러질 때 그 기회를 놓치면 안 된다
육신의 죽음이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영광이 되기 때문이다.
이 묵상은 두려움이나 단지 미래의 예언을 분석하려는 것이 아니라,
지금 우리의 영적 눈이 열려서 미혹을 분별하고 더욱 깨어있게 하려는 마음에서 나온 것이다.
그 누구도 사람을 추종하고 따르면 안 된다
우리의 소망이 불확실하기에 사람들로 무리를 지어 모이기를 힘써라고 하면 안 된다
모이기를 힘쓰는 이유는 하나님 백성으로 세상에서 구별되어 살며 하나님 백성이기에
세상에서 미움을 받기 위해서 이다
그러니 말세에 모이기를 힘쓰는 자들이라면 세상에 핍박과 환란을 기쁘게 받겠다는
믿음의 고백이 되는 것이다
그렇지 않은 공동체라면 이미 세속화되고 타협한 교회일 것이다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예하지 말고 그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계 18:4)
이 모든 흐름은 예수님이 펼치신 말씀을 그대로 성취하는 구조다.
마지막 때에는 다수가 아니라 소수가 은혜 안에 남게 된다.
엘리야 시대에 한 과부가 은혜를 받았고, 엘리사 때에 한 나아만이 고침을 받았듯이,
계시록의 마지막 장면에서도 하나님은 짐승의 권세 아래 흔들리지 않는
극히 소수의 남은 자들을 통해 자신의 구원을 나타내신다.
그들은 믿음의 결단과 인내로 예수 이름을 붙드는 자들이며,
시대의 배도와 때에 임하는 심판 속에서도 하나님의 긍휼을 바라는 마지막 남겨진 무리다.
엘리야 시대는 온 땅에 기근이 왔는데 이는 말씀의 기근이다
그 시대에 아합 왕이 이세벨 아내 곧 음녀와 결합하여 혼합 주의를 형성한다
혼합 주의는 하나님의 자녀와 사단의 자녀를 혼합시켜 부정한 자손을 만드는 것이다
그것이 이스라엘 왕 아합과 이세벨의 딸 아달랴를 유다 왕 여호람과 혼인한 것이며
그 결과 종교 통합이 일어난다
바로 옛 바알 왕의 딸 이세벨이 바알 종교를 가지고 온 것 같이 아달랴가 유다에 바알 종교를
확립하였고 결국 다윗의 자손을 모두 죽이고 아달랴가 여왕으로 6년을 통치를 한다
이는 정말 아찔한 환란 시기이다
아달랴가 죽인 다윗의 자손들은 사실 여호람과 본인이 낳은 자손이기도 하다
그러니 아달랴는 자신의 자손들을 죽인 것으로 볼 것이 아니라 사단의 자손으로서
하나님의 언약의 자손들을 죽인 것이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창 3:15)
만약 하나님이 남겨두신 요아스가 없었다면 다윗의 혈통으로 오신다는 메시아의 계보는
끊어졌을지도 모른다
남겨진 자 "요아스"가 바로 아달랴의 손자이다
아달랴가 낳은 아들 유다 왕 아하시야의 아들이 바로 요아스이다
이 현상이 마지막 때에 그대로 나타난다
교회 안에 세속화가 들어와 하나님 자녀들과 세상 자녀들을 결합하게 만들며 부정한 자녀들이 나오고
종교 통합이라는 슬로건을 걸고 유일하신 구원의 이름 예수 그리스도를 욕되게 하며
교회에 지도자는 하나님이 세우신 자가 아닌 권력과 부정으로 세워지는 현실들이다
예수님께서 이미 말씀하신 것처럼, 은혜는 종교적 다수에게 자동적으로 임하지 않는다.
마지막 때에 하나님은 엘리야와 엘리사처럼,마음 깊은 곳에서 주님께 굴복한 자들,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주님을 사모하는 자들을 찾아가 구원을 베푸신다.
그러므로 마지막 때의 역사는 결국 남은 자들의 구원의 역사이다.
짐승의 권세 앞에서도, 세상의 모든 체제가 흔들리는 가운데에서도,
끝까지 주님을 붙드는 자들, 예수님이 말씀하신 사렙다 과부와 나아만의 길을 선택하는 자들이
바로 계시록이 말하는 “남겨진 성도들 곧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복된 자들”이다.
보라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 내가 의뢰하고 두려움이 없으리니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며 나의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심이라
(이사야 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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