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한글 단편 묵상

솔로몬이 타락한것에 우리의 책임 있습니다

by GOTOKINGDOM 2026. 1. 17.

 

성경에서 가장 축복받은 인물을 찾으라 한다면 

나는 당연 솔로몬을 뽑을것이다

솔로몬의 태평성대와 영광은 우리가 천국에서 예수님과 함께 하는 영화를

이땅에서 예표로 보여주는 것이며 더욱 그날을 소망하게 만든다

 

솔로몬은 다윗과 밧세바의 아들이다

그런데 마태복음에서는 다윗이 우리아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았다고 한다

그럼 무슨 뜻인가?

다른 사람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았다는 말로 보인다

자신의 아들은 맞는데 불륜으로 낳은 것이 된다

율법에는 이들을 모두 죽이라고 명하셨다

 

“누구든지 남의 아내와 간음하면 간음한 남자와 여자는 반드시 죽일지니라.”(레 20:10)

“남자가 유부녀와 동침한 것이 발견되면 남자와 여자를 둘 다 죽여
이스라엘 중에서 악을 제하라.”(신 22:22)

 

다윗은 나단을 통해 하나님의 책망을 듣고 회개하였으나 그 죄의 대가를 받게 된다

이는 공의로 판단하시는 하나님 최고의 긍휼 베푸심을 볼 수 있다

첫째, 칼이 다윗의 집에서 떠나지 않을 것이다.
둘째, 다윗이 은밀히 죄를 범했지만 하나님은 다윗의 집안에서 공개적인 수치를 일으키실 것이다.
셋째, 죄로 태어난 아이는 반드시 죽을 것이다.

이 심판은 다윗의 생애에 모두 받게 된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은 솔로몬은 불륜으로 태어난 아들이 아니었다

왜 솔로몬이 우리아의 아내에게서 태어났다고 족보에 기록되었을까?

그리고 누가복음에 족보에는 솔로몬의 이름이 아닌 나단의 이름으로 족보가 이어진다 

나단은 솔로몬의 형이며 성경에는 그에 대한 역사가 한 부분도 설명하고 있지 않다

이것으로 보아 하나님은 우리 각자에게 무엇을 배우기를 원하시는 것일까?

역시 오직 예수님을 알기 원하시는 것이다예수님도 요셉의 아내 마리아에게 성령으로 잉태되셨다 그렇게 다윗과 밧세바 사이에 처음 난 아이로 죽으신 것이다 이후에 태어난 솔로몬은 보아스가 말론의 아내 룻에게 기업을 무르고 아들 오벳을 낳아 나오미에게 안겨준것과 같은 의미를 가지는 것이다 

 

최근에 내 주변 환경이 많이 변했다

두렵기도 하고 정죄감도 있었지만 한편으로 하나님이 나를 향한 기대와 인도하심이

흥분과 평강이라는 대조적인 양면성을 넘나들게 하신다 

오랜 시간 고민하며 기도했던 교회 부분도 결정이 되었고 마음에 끈어내는 인간 관계도 정리되었다 

물론 많은 고통과 아픔이 있었지만 하나하나 나에게 큰 교훈이 되었다

마지막까지 사랑을 놓지 않는 부분이 무엇인지 예수님이 말씀하신 형제란 무엇인지

그리고 어리석은 백성들을 어떻게 용서하고 그들을 위해 하나님 앞에 중보자가 될 수 있는지 

많은 깨달음이 있었지만 사실 배움대로 살 수 있다는 자신은 없다

그래서 천 번을 기도해도 부족한 간구를 할 수밖에 없다

"성령님 도와주세요"

 

오늘은 설명과 설득의 묵상이 아니다 

성령님의 가르침을 받은 그대로 남기려고 한다

전하는 메세지와 개인 묵상글이 함께 합해져 오늘 글도 길어질것 같다 

직접 전해야 하는 메세지가 있지만 내가 그렇게 할 수 없었다

그러나 꼭 전해야 한다면 성령님이 어떻게든 나를 움직이실 것이다

마지막까지 나에게 집중하지 않고 성령 안에서 순종하기를 간구하며

때가 되면 기회를 주실 것임을 나는 알고 있다

그러나 진심은 내가 전하기 전에 성령이 교회와 사자에게 깨닫게 하시기를 원한다

 

지금부터 교회는 솔로몬 시대로 들어간다

솔로몬의 시대는 겉으로 보면 영광과 평안의 시대였다.

하나님은 솔로몬에게 전에 없던 지혜를 주셨고, 나라의 경계는 넓어졌으며 외교는 안정되었다.

성전은 완성되었고 백성들은 태평성대를 누리는 듯 보였다.

그러나 이 찬란한 겉모습 아래에는 다윗 시대에는 없었던 거짓 평강이 자라고 있었다.

다윗이 일러준 그대로 솔로몬에게 대적이 될만한 자는 모두 제거되었다.

그와 동시에 솔로몬 옆에는 나단 선지자와 같이 옳은 말을 해 주는 사람도 함께 사라졌다.

 

다윗은 사울, 압살롬, 시므이, 요압과 같은 수많은 사람들을 통해 끊임없이 마음을 점검받았지만,

솔로몬 시대에는 이런 ‘바로잡아 주는 음성’이 등장하지 않는다.

솔로몬은 나단과 사독에게 기름부음을 받았지만 이후로 그들이 함께한 사명은 없다 

나단이 솔로몬에게 하나님 사랑의 마음이 담긴 이름을 전해 준 것으로 끝이 난다

“여호와께서 그를 사랑하셨고 선지자 나단을 보내서 그의 이름을 여디디아라 하시니
이는 여호와께서 그를 사랑하심이더라.” (삼하 12:24-25)

 

하나님이 솔로몬을 이처럼 사랑하셨음에도 불구하고 타락에서 멈추지 못한 것은

사랑받은 자에게 더 큰 사단의 역사가 있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하나님은 두 번이나 직접 솔로몬에게 나타나셨지만, 솔로몬은 타락에서 돌아오지 못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이유는 주변에 그를 깨우는 옳은 말을 하는 자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 지혜를 경배하던 백성들도, 솔로몬을 의지하여 그와 한 식탁에서 먹던 지도층도,

그에게 율법으로도  경고의 소리를 내는 것을 모두 하지 않았다.

솔로몬이 몰렉을 섬길때 그 누구도 멈추라는 말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 

 

왜 그랬을까? 당신이 그들이라 생각하고 스스로 질문해 보자

현실에 눈과 귀가 세뇌당해서 지금 보고 듣는 것이 진리라고 주입되는 것을 아무 의심 없이

평강으로 받아들인다.

또 다윗의 시대 싸움의 용사들의 자손들은 솔로몬 시대에 백성들이 바치는 공물로 

왕의 식탁에서 매일 먹고 마시기만 했다. 

솔로몬의 시대에는 전쟁이 없었으므로 싸움의 용사들이 실전으로 할 일은 없었을 테니까

그리고 하나님이 세상에 없는 지혜를 솔로몬에게 주셨는데 어느 선지자가 솔로몬 앞에

책망을 들고 갈 수 있었겠는가.

 

솔로몬이 태평성대를 이루었고 백성들이 더욱 평안하다 안전하다 했던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솔로몬이 노예 역군으로 부리지 않았기에 다른 사람 노역에 모른 채 했고

전쟁이 없는 부강한 나라였기에 용사들이 전쟁을 모르고 먹고 마셨기 때문이며

솔로몬의 지혜에 눌려져 옳은 소리를 내지 못한 선지자들이었기 때문이다 

가나안 땅을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주신 것은 은혜이지 그들이 합당해서가 아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참으로 아이러니하고 이때가 정말 "신의 한 수"라는 말이 절로 나오게 한다

왜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도 안식을 얻지 못하였는지 

왜 솔로몬이 하나님의 사랑하는 자라 이름을 받고도 타락하였는지 알 수 있었다.


“솔로몬왕이 역군을 일으킨 까닭은 여호와의 전과 자기 궁과 밀로와 예루살렘성과

하솔과 므깃도와 게셀을 건축하려 하였음이라"(왕상 9:15)

"자기에게 있는 모든 국고성과 병거성들과 마병의 성들을 건축하고

솔로몬이 또 예루살렘과 레바논과 그 다스리는 온 땅에 건축하고자 하던 것을

다 건축하였는데 무릇 이스라엘 자손이 아닌 아모리 사람과 헷 사람과 브리스 사람과

히위 사람과 여부스 사람의 남아 있는 그 자손들을 솔로몬이 노예로 역군을 삼아

오늘까지 이르렀으되 오직 이스라엘 자손은 솔로몬이 노예를 삼지 아니하였으니

저희는 군사와 그 신복과 방백과 대장이며 병거와 마병의 장관이 됨이더라.”(왕상 9:19-22)

 

이 말씀은 표면적으로만 보면 솔로몬이 자기 백성들을 아껴 노역을 삼지 않았다로 본다

그도 그런 것이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의 노역을 역사적 사실로 살았기 때문이다

백성들의 태평성대는 그때의 애굽 바로왕 아래에서 평강을 누리던 애굽인들을 

그대로 모방이 되고 있다

노동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감당하고 그것을 감독하는 자들은 애굽인들이었다

솔로몬이 그때를 그대로 재연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곧 오늘 당신의 교회가 알지 못한 것이 하나 있다

마지막 때는 주님의 성전 된 자들과 함께 하신다는 것이다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으면서도 깨닫지 못할 것이다 

지금부터 주님의 한 수 가르쳐 주신 것을 나누며 당신이 행할 일을 깨닫기를 바란다 

다윗이 받았던 연단과 책망이 사라진 자리에는 사람(솔로몬)의 영광이 자라났고,

실로 그 사람(솔로몬)은 하나님이 주신 지혜로 공동체를 이끌어 감이 어쩜 

산 아이와 죽은 아이 엄마를 가려내는 지혜처럼 감탄할 정도일 것이다 

 

그러다 보니 그 사람(솔로몬)이 하는 말은 모두 하나님의 지혜처럼 믿게 된다

그 결과 교회는 서서히 자신들이 만든 종교 신에 잡혀서 자신들이 믿고 있는 진리가

절대적이며 택함 받은 자로 여기고 극단적인 길로 향한다.

이 모습은 오늘의 교회를 향한 미혹의 때를 알리는 경고의 메시지가 된다.

하나님은 교회에 목사를 세우시고 은사를 주셔서 성령의 나타나심을 알게 하셨만,

하나님의 사용을 받는 목사에게 맹종하라고 주신 것이 아니다.

 

목회자는 다윗처럼 하나님 앞에서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항상 서 있어야 하고,

교회 안에는 나단과 같은 하나님의 메세지 전달의 음성이 반드시 필요하며

연약한 자들을 위해 영혼 사랑하는 마음으로 끊임없이 하나님 앞에 중보 기도자들이 있어야 한다.

이 모든 주체는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지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우리가 이론적으로는 당연히 알고 있지만 그렇게 행하지 않고 있다 

당신은 지금 옳지 않은 모습에 침묵하고 있지는 않는가

선지자의 역할은 달콤한 말이 아니라, 진리 앞에서 목회자와 공동체가 바른 길을 가도록

하나님이 전하라 하신 말씀으로 붙들어주는 것이다.

 

목사에게 싫은 말을 하면 정죄받고, 교인들은 눈치만 살피고 있는 현시점에는 

참 선지자가 자신의 사명을 감당하기란 힘이 든다.

그래서 미혹하는 거짓 선지자가 많이 나오는 시대임은 분명하다.

거짓 선지자는 예언과 기적을 나타내지 못하는 자가 아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일하며 자신의 영광과 유익을 챙기는 자가 거짓 선지자이다

발람 선지자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며 대면했던 자였지만 자신의 유익을 챙기므로

거짓 선지자의 대표로 계시록에 표현되어 있다 

 

목사가 불편해하는 사람은 조용히 압박받고, 결국 스스로 떠나도록 내몰리는 경우도 있다.

목사를 향해 끊임없이 말을 하는 자가 선지자이든 불평을 하는 광야 이스라엘 백성이든

목사는 그 말에 자신을 하나님 앞에서 점검받아야 되는 것이지 화살을 그들에게 돌려

하나님께 그들을 참소하며 원망해서는 안 된다 

사람들 앞에서 직접 핍박은 하지 못하고 늘 뒤에서 자신은 의로운 자인 것처럼 말씀으로 권면하지만

사실은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말씀에서 찾아 하나님의 이름으로 영혼을 학대하는 것이다

이것이 거짓된 경건이며 하나님을 기만하는 행위임을 알아야 한다

 

솔로몬 시대의 백성들이 지혜를 주신 하나님이 아니라 그 지혜를 가진 사람을 의지했던 것처럼,

교회가 목사를 교주처럼 떠받들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을 섬기는 데 몰두하고 있다.

이는 타락의 시작이며, 결국 나라가 갈라졌던 것처럼 공동체도 분열과 황폐함을 피할 수 없다.

하나님은 다윗에게 나단을 보내셨고, 아비가일을 보내셨으며, 심지어 시므이의 저주까지 사용하여

그를 죄에서 멈추게 하셨고 회개에 이르게 하셨다.

다윗은 그 책망을 들으면서도 하나님 앞에서 더욱 낮아지고 회개했고,

그 겸손이 다윗 왕조를 지켰으며 메시아의 언약이 다윗의 통치로 이루어지며

유대인들도 솔로몬의 시대와 통치를 기다린다는 말씀은 없다

 

교회도 마찬가지다. 건강한 교회는 목사 한 사람의 능력이나 은사가 아니라,

공동체 안에 있는 진리의 음성, 책망의 음성,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경외함에서 시작된다.

교회 안에 나단이 사라질 때 솔로몬의 교만이 시작된다.
교회 안에 책망이 사라질 때 다윗의 회개가 사라진다.
교회 안에 진리보다 사람이 높아질 때 하나님은 그 공동체를 더 이상 기뻐하시지 않는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다시 질문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가, 아니면 사람을 두려워하는가.
우리는 진리를 확신하는가, 아니면 사람의 감정을 먼저 살피는가.
우리는 나단의 음성을 듣고 변화되는가, 아니면 그 음성을 교회 밖으로 밀어내고 있는가.

 

솔로몬 시대의 영광은 오래가지 못했다.

하나님이 다윗과 맺은 언약으로 인해 솔로몬에게 끝까지 참고 기다려 주신 것이다 

만약 백성들이 그 안락함에 빠져 살고 있지 않고 하나님 율법에 순종하였더라면 

만약 솔로몬 상에서 함께 먹고 마셨던 고관들이 육신의 부귀와 존귀와 영광보다

영혼을 위한 영광을 더 바라보았더라면 

만약 솔로몬이 수많은 우상을 섬길때 책망할수 있는 선지자나 제사장이 있었다면

만약 솔로몬 죽은 후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역이 너무 힘들었다고 말했는데 

솔로몬 살아생전에 그렇게 고백했더라면 솔로몬이 다시 바로 설 기회가 있지 않았을까?

 

왕국 식량을 공급했던 12 구역에서 그 엄청난 식량 감당에 힘이 겨웠을 것이다 

열왕기상 4:7
“솔로몬에게는 12명의 관리들이 있어 온 이스라엘을 다스렸으니,

왕과 왕실을 위하여 양식을 공급하였고, 각 사람은 자기 달에 양식을 공급하였더라.”

왕상 4:22–23 솔로몬 왕실의 하루 식사량은
• 고운 가루 30코르 + 굵은 가루 60코르 = 총 90코르 = 약 16,200리터의 곡식
• 살진 소 10마리, 초장의 소 20마리, 양 100마리
• 기타 사슴, 노루, 살진 새 등이었다 

 

솔로몬이 건축하고자 했던 모든 역사를 마칠 때까지 고역에 동원된 인원이다

성전 7년 왕궁 13년을 건축했으니 모두 20년은 노역에 동원된 것이다 

 

  • 가나안 족속의 강제 부역자들
  • 이스라엘 백성 3만 명이 교대로 레바논에서 벌목
  • 짐꾼 7만 명
  • 채석장 노동자 8만 명
  • 감독관 3,300명

이렇게 솔로몬은 하나님 임재가 계신 성전을 건축하고도 결국은 

그 마음이 하나님을 떠났다고 하였다 
하지만 하나님 앞에서 떨며 책망을 받아도 그 마음이 한결같이 하나님께 있었던 다윗은

죽은 후에도 그 통치는 세대를 넘어 다윗의 자손으로 이어지고

 

이제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가 다윗의 뿌리로 영원한 통치를 계시하셨다

나 예수는 교회들을 위하여
내 사자를 보내어 이것들을 너희에게 증언하게 하였노라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 곧 광명한 새벽별이라 하시더라.”(계 22:16)

 

오늘 우리의 선택도 그 두 길 중 하나이다.
사람을 섬기며 결국 무너지는 길이 아니라, 진리 앞에서 겸손히 서서

그리스도께서 다스리는 교회로 돌아가는 길을 택해야 한다.

구원 얻을 자가 적어서 좁은 문 좁은 길이 아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질문에 한 번도 구원 얻을 자가 적다 말씀하시지 않았다

구원 얻을 자가 적다고 말씀하셨다면 계 7:9 능히 셀 수 없는 흰옷 무리들은 

진리로 연결되지 않기 때문이다 

 

좁은 문 좁은 길은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에게 하신 말씀이다 

모든 성도들에게 그 제자의 길을 요구하시지 않으셨다 

베드로에게 나를 따르라 하셨을때 베드로는 성령이 임하신 후에도 

수많은 어려움과 실수를 반복했음을 본다 

누구나가 갈수 없는 길이기에 찾는 이도 적고 힘써야 갈수 있는 것이다 

내 힘으로 갈수 없는 하나님으로만 가능한 길이다 

 

요한복음 10:7, 9
예수께서 또 이르시되 내가 양의 문이니라
내가 문이라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얻고, 들어가며 나가며 꼴을 얻으리라

오직 예수를 믿는 자들은 예수로 말미암아 그 공로 때문에 구원을 얻었다.

또 그 문을 들어가기도 하고 나가기도 하는데 그때 꼴(양식)을 얻는다는 말씀이시다

 

요한복음 14: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오직 예수만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시며 이 역시 예수로 말미암아 아버지께 갈 수 있다 하신다

문을 들어가 늘 주님 안에 걷는 길을 말하는 것이다 

"나"라는 자아가 서 있을 수 없기에 좁은 길인 것이다 

 

빌립보서 3:8–9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좁은 문 좁은 길이다

그래서 늘 내 안에 거하라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이다

예수님만 갈 수 있는 문이요 길이기 때문에 우리가 예수님 안에 들어가야 하는 것이다

모든 말씀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았는데 그것은 곳 믿음으로 이루어진다 

 

말씀처럼 오직 예수님 안에서 발견된다는 것은 연합된 자를 뜻한다 

내가 사라지고 예수로 말미암아 살아가는 자들이 그 길 끝에 아버지를 만나는 것이다

그러니 넓은 문 넓은 길은 예수가 아닌 당신을 인도하는 사람을 따라간 길이다 

그런데 그 길이 멸망으로 인도하는 길이라고 하니 단순히 인도자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는 자신의 유익을 위해 일하는 거짓 선지자, 삯꾼 목자를 가리켜하신 말씀이다 

예수님은 내 양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고 앞서 가시면 따라온다고 하셨다

그러나 알아듣지 못하는 자들은 다른 사람을 영접하게 될 것이라 말씀하신다

요한복음 5: 43
“내가 아버지의 이름으로 왔으나 너희는 나를 영접하지 아니하나 

만일 다른 사람이 자기 이름으로 오면 영접하리라

예수님은 자신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의 권위와 뜻으로 오셨음을 선언하셨다. 

‘이름’은 단순한 명칭이 아니라 하나님의 권능과 보내심, 구속의 권위를 상징한다.

반면 예수님은 책망의 맥락에서 “만일 다른 이가 자기 이름으로 오면 너희가 영접하리라”

여기서 ‘자기 이름’은 헬라어로 ἑαυτοῦ ὄνομα (heautou onoma 헤아우투 오노마)이며,

자신의 권위, 인간적 주장, 세상적 권위를 의미한다.

 

위에 말씀하신 사람의 이름과 영접한다는 말씀이 무슨 의미인지 아는가?

계13:17 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하니

이 표는 곧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수라

짐승의 이름 바로 짐승의 표를 가진 자는 그를 영접한다는 뜻이다

이 짐승 이름을 영접하도록 백성들을  이적으로 미혹하는 자가 거짓 선지자이다 

계 19:20 짐승이 잡히고 그 앞에서 이적을 행하던 거짓 선지자도 함께 잡혔으니

이는 짐승의 표를 받고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던 자들을 이적으로 미혹하던 자라

분명히 말하지만 거짓 선지자는 진리를 모르는 자도 아니요

하나님을 모르는 자도 아니요 이적과 신비한 능력을 나타내는 자이다

그러나 그 마음에 하나님이 주인이 아닌 자신이 주인이며 섬기는 대상이 있는 자인 것이다

 

구약에 이런 인물들의 예는 수없이 많이 나온다 

아합과 이세벨이 대표적이며 또 발람과 발락도 그러하다

모세와 아론 앞에 있는 바로와 애굽의 술객들 박사와 박수들도 그러하다

오늘날 오리가 그들을 어떻게 구별할 수 있는가

아주 쉽고 간단하다 

오직 모든 사역에 사람의 이름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 이름만이 높임을 받는다면 

그는 참 선지자이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 이름을 높이지 않는다면 말할 것도 없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높이면서

또 사람의 이름도 높이는 밥상에 숟가락 얻기를 하는 자도 마찬가지 

그 들의 사역은 곧 끝이날 것이며 숨은 의도가 다 드러날 것이다 

 

당신은 지금 솔로몬 시대에 살고 있다

이제부터 솔로몬이 여디디아 이름으로 하나님 앞에서 끝까지 바로 서는 일에 

당신은 방관하지 말고 함께 입을 열어야 한다 

불평하고 원망하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과 겸손한 마음으로 주님이 원하시는

성전으로 함께 지어져 가야 한다

지금 다시 정리하자면 솔로몬 성전을 지은 자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니었다

가나안에 남아있던 원주민들이 성전과 왕궁과 중요한 기관들 건물을 모두 만들었다

 

에스라가 바벨론 포로기 때 다시 돌아와서 다시 성전 건축을 하였는데 

그때 돌아온 무리 중에 솔로몬의 신복들이 있었다

그 시대에 솔로몬의 신하들이 누구겠는가?

솔로몬 성전 완공이 기원전 963년경

예루살렘 성전 파괴 기원전 586년경

에스라 귀환 기원전 458년경

대략 계산해도 500년은 지났는데 그때에 솔로몬의 신복들을 어떻게 구별하겠는가

솔로몬의 신복이라고 표현한 것은 바로 성전 건축을 하는 자손들을 말한다

이들이 바로 솔로몬이 노역군으로 삼았던 이스라엘 자손이 아닌(왕상 9:20)

아모리 사람과 헷 사람과 브리스 사람과 이위 사람과 여부스 사람의 남아 있는 그 자손들이다

 

에스라 2: 55-58

“솔로몬의 신복의 자손 소대, 하소베렛, 브루다, 야랄라 자손 … 모든 느디님 사람과

솔로몬의 신복의 자손이 392명이었더라

솔로몬의 종들’(עַבְדֵי שְׁלֹמֹה, avdei Shelomoh) 솔로몬 시대 성전과 왕궁 건축에

동원된 사람들의 계보를 의미한다.

느디님 사람(Nethinim)은 성전 봉사와 건축을 돕도록 레위인에게 

주어진 노예 같은 자손들이었다

느디님은 원래 가나안의 주민(히위 족속) 기브온 사람으로 이방인이었다.

아모리, 히위, 헷, 여부스, 브리스 등 가나안 원주민 출신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들은 성전에서 종으로 나무 패는 일과 물 긷는 일을 했었다

이들이 솔로몬 성전 건축을 했고 또 레바논 백향목을 베어 오는 일을 했다

 

마지막 때에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 성을 단장된 신부로 표현을 한다

솔로몬 시대에 부귀영화를 누렸던 이스라엘 백성들과 고관들은 솔로몬이 타락했을 때

함께 그 보응을 받았다 

나라가 둘로 쪼개지면서 급속히 퇴락의 길을 가게 된다 

그러나 그때 소외된 이방인과 노역군들은 성전 건축하는 일을 알았다

그 당시에는 고된 노역으로 힘들었겠지만 돌 하나 나무 문짝을 달면서 성전의 모양이 

갖추어 가는 것을 다 지켜보았다 

그들이 새 단장할 줄 아는 하늘 예루살렘 성 바로 신부들이 된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솔로몬이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아들로 완성되는 것도 

솔로몬이 하나님을 떠나 타락하는 것도 

당신에게 책임이 있다

성령으로 올바른 소리를 내며 함께 아름답게 지어져 가는 성전 되기를 축복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