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 하나님이 가라사대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너희는 정다이 예루살렘에 말하며 그것에게 외쳐 고하라
그 복역의 때가 끝났고 그 죄악의 사함을 입었느니라
그 모든 죄를 인하여 여호와의 손에서 배나 받았느니라 할지니라
(이사야 40:1-2)
이사야 40장을 읽을 때면 늘 가슴 중앙이 뻥 뚫리며 샬롬이 터져 나옵니다
그 어떤 우상과 비교 대상이 되기를 원치 않으시는 하나님의 독보적인 영광이
하나님께서 친히 증거 하시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아니 믿음의 공동체 안에서도 실망과 낙담이 될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의 모든 죄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손에서 두 배를 받았느니라.”(시 40:2)
כִּֽי־לָקְחָ֤ה מִיַּ֙ד יְהוָ֔ה כִּפְלַ֖יִם בְּכָל־חַטֹּאתֶֽיהָ׃
ki laqḥah miyad YHWH kiflayim b'khol ḥatto'teha
“그녀는 여호와의 손에서 그녀의 모든 죄에 대하여 두 배를 받았다.”
예루살렘(יְרוּשָׁלִַם, Yerushalayim)은 여성형 명사입니다.
그래서 “그녀(she/her)”라고 번역되었고
여기서 כִּפְלַיִם (kiflayim) 은 "두 배" 또는 "배나"라는 뜻입니다.
단순히 수학적 '두 배'라기보다, '충분히', '넘치도록', '철저하게'의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나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이중 곧 쌍겹이라는 의미도 있기에
이 말씀은 이중적 예언의 말씀임을 알 수 있습니다
실제로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징계를 70년 포로 생활이라는 환란으로
그 죄의 형벌을 받았습니다
또 이중적인 예언으로 그 징계가 단순히 인간의 손에서 받은 것이 아니라,
“여호와의 손에서” 받았다고 선언합니다. 여기에는 깊은 복음의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곧 하나님이 직접 하나님 손에서 받으신 것을 뜻하며 그것이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인 것입니다
거룩하고 완전하신 하나님의 공의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징계는 온전하고도 충분하며, 동시에 회복을 위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은 단지 이스라엘의 과거 징계를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는 이중예언인 것입니다
장차 올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완전한 죄악을 사함 받음이 성취됩니다.
이사야 53장에서 우리는 같은 흐름을 봅니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여호와께서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백성이 받아야 할 징계를 대신 받으셨습니다.
여호와의 손에서 나오는 그 징계는 바로 십자가 위에서 그분께 쏟아졌습니다.
그래서 이사야 40장의 말씀은 그저 유다의 포로 귀환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서 이루어진 완전한 속죄의 예언이기도 합니다.
이스라엘이 여호와의 손에서 “두 배를 받았다”라고 하신 말씀은 단순히 두 배의 고통이 아니라,
더 이상 죄의 대가가 남아 있지 않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것은 완전한 형벌이었고, 하나님 자신이 치르신 심판이었습니다.
바로 이 진리 위에서 우리는 위로를 받습니다.
죄가 아무리 크고 무겁더라도, 그 죄는 하나님의 손에서 온전한 형벌로 치르셨기에,
이제는 더 이상 정죄함이 없습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 주시는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로마서 8:1)
하나님은 우리에게 다시 회복을 선포하십니다. 죄를 사하셨다고 말씀하십니다.
그 선언의 근거는 우리가 회개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 징계를 예수님이 이미 대신 받으셨기 때문입니다.
“내 모든 죄는 여호와의 손에서, 예수님의 십자가 위에서 이미 심판받았습니다.”
그러나 죄 사함으로 끝나는 것이 우리의 신앙이 아닙니다.
그 이후의 삶, 죄를 이기고 거룩함으로 나아가는 여정이 바로 복음에 합당한 삶입니다.
심판 후에는 반드시 부활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합하여 죽고 그와 합하여 다시 살아나는 것입니다
죄에서 죽은 자들은 이제 사망의 권세 아래 있지 않습니다
이미 죽었다면 더 이상의 죽음은 없으니까요
그러나 그 누구도 자신의 힘으로 다시 살아날 수 없습니다
오직 그리스도와 죽은 자들만이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6장에서 이렇게 외칩니다.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오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 (로마서 6:1-2)
십자가는 죄를 용서받는 자리일 뿐 아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자입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우리의 죗값을 위한 죽음이지만, 동시에 우리가 더 이상 죄 가운데 살 수 없다는 선언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더 이상 옛사람으로, 옛 본성의 지배 아래 살아갈 수 없습니다.
히브리서 6장은 더욱 엄중한 경고를 줍니다.
“한번 빛을 받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 바 되고…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나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드러내 놓고 욕되게 함이라.” (히브리서 6:4-6)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죄 가운데 고의적으로 거하는 삶은,
주님의 십자가를 다시 못 박는 것과 같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그것은 은혜를 경시하고, 대속을 가볍게 여기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는 삶의 방향을 완전히 바꾸는 능력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실 때, 동시에 삶의 길도 제시하셨습니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누가복음 9:23)
우리의 삶은 단지 ‘죄를 안 짓는 삶’이 아닙니다.
자기 부인과 자기 십자가를 지는 삶, 다시 말해 주님과 함께 고난과 영광을 동행하는 삶입니다.
십자가는 더 이상 무섭고 피하고 싶은 형벌이 아니라, 나를 죽이고 예수로 사는 길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나의 죄를 끝냈습니다.
이제 나의 십자가는 예수의 생명을 드러내는 삶을 시작하게 합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9장에는 이렇게 선포합니다
13 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재로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하게 하거든
14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
그리스도 안에서 사는 삶은 변화되는 살아있는 생명입니다
살았다 하는 이름을 받고서도 죽은 자로 살아가는 교인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성령이 임하신 삶은 반드시 하나님의 책망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아들을 양육하시는 참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책망받을 것이 없다 생각한다면 또 두루두루 평탄한 삶이라면
어쩜 당신은 버려진 자일지도 모릅니다
그것은 자신을 살피면 자신이 가장 잘 알 것입니다
너희가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받은 자니라(고후 13:5)
Ἰησοῦς Χριστός ἐν ὑμῖν –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ἀδόκιμοι ἐστέ (adokimoi este) – 너희는 버림받은 자 (시험에 탈락한 자, 인정받지 못한 자)
또한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롬 1:28)
“그 상실한 마음대로”: 헬라어로 ἀδόκιμον νοῦν (adokimon noun) – 시험에 통과하지 못한,
분별력을 잃은, 쓸모없는 상태의 마음입니다.
“내버려 두사”: 헬라어 παραδίδωμι (paradidōmi) – 넘겨주다, 방치하다.
하나님께서 간섭을 거두시고 인간이 원하는 대로 살도록 두신 상태를 의미합니다.
저는 성령님이 끊임없이 내 안에서 책망하심을 알고 있습니다
그 누가 뭐라 하여도 성령이 저와 영원히 함께하심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옛뱀이 하와를 유혹하였을 때 하나님의 살아계신을 부인하게 한 것이 아닙니다
뱀은 간교하다 하였습니다
우리를 어떻게 하든 하나님의 완전하신 사랑을 의심하게 만들려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또 다른 보혜사를 보내신다 하셨습니다
그가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실 것이라 하셨습니다
그 세상에 온 세상을 말하는 것일까요?
위에 그 마음에 하나님을 두기 싫어하는 자들에겐 성령님은 관심도 없으십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를 받은 자들에게 오셔서 그 마음에 책망하시며
죽었던 행실에서 이제는 새 삶의 행실로 살 수 있도록 양육하시는 것입니다
제발 스스로 터진 웅덩이를 파고 물을 모으려고 하지 마십시오
그 웅덩이는 물이 잠시 있다 해도 저장되지 않는 이슬과 같은 것입니다
그것이 말씀을 들을 때는 신비한 말씀처럼 고급진 비밀의 말씀이 열린듯합니다
그러나 심비에 세겨주시는 성령님의 말씀이 아닌 것입니다
그래서 돌아서면 당신은 그 말씀을 금방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오직 생수의 근원대시는 그리스도를 구하십시오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생수의 근원 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물을 저축하지 못하는 터진 웅덩이라(렘 2:13)
기도하겠습니다
주님, 십자가 위에서 저의 죗값을 온전히 감당하신 은혜를 감사합니다.
이제는 그 십자가를 바라보며 죄에서 떠나고, 나의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기를 원합니다.
죄에 대해 죽고, 의에 대해 살아 있는 자로 매일을 살도록 도와주시옵소서
날마다 다시 살아나는 나의 옛 자아가 죽은 행실로 원수가 나를 정죄하려 하지만
그것 또한 감사함으로 주님께 영광을 올려드립니다
나를 상실한 마음대로 행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으시고 책망하시어 돌이키게 하심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모든 순간순간을 하나님 앞에 사는 자가 되었으니
오직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가게 하옵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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