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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글 시리즈 묵상

1.수치 -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너를 소환한다

by GOTOKINGDOM 2025. 10. 23.

 

생각지도 못한 숨겨진 나의 쓴 뿌리를 성령님이 소환해 올리셨다

그것은 너무도 오래도록 내안에서 낮은 자존감으로 웅크리고 있었다

넌.... 누구니?

나는 "수치" 라고해....(본문 중에서)

 

오늘은 내안에 자리 잡고 있는 부정적인 감정들을 성령님이 고치심을 

함께 나누어봅니다

누구나에게 공감이 되는 부분들이라 지극히 개인적인 배움이었지만

회개의 열매를 얻기 위해 나의 못난 부분을 드러내려고 합니다 

계속적인 성령님의 이끄심이 계셨기에 내면의 감정들을 묵상하기 원했습니다 

순종하는 마음으로 내안에 주님이 기뻐하지 않으실 성품들을 하나하나

떠올려보며 성경 말씀에 비추어 나를 정죄하고 판단하며 스스로 

어두움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그때에 내게 찾아와 인사를 하는 것이 "외로움"이었습니다

외로움.... 그래 네가 좋겠다

내면의 감정 시리즈 첫 번째로 너를 선택했어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창 2:18)

 

아담의 외로움은 죄 이전의 상태에서도 느껴졌습니다.
이것은 타락한 결핍이 아니라 사람이 관계 안에서 완전해지도록 지음 받은 존재임을 나타냅니다.
외로움은 하나님이 사람을 사랑과 교제의 자리로 부르시는 창조적 신호입니다.

 

성경을 보면 믿음의 조상들이 모두 외로움의 시간을 보내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고향을 떠나 홀로 외로이 순례기를 떠났습니다

이삭은 어머니를 떠나보낸 후 외로운 시간을 보내고 리브가를 맞아 위로를 얻었습니다

야곱은 형 에서를 떠나 외로운 도망자의 시간을 떠났습니다

요셉은 사랑하는 아버지를 떠나 형제들에게 버림을 당하며 외로이 고난을 받았습니다

수많은 믿음의 조상이 있지만 그중에서 다윗과 욥이 내 마음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욥기 19:13–19

“그가 내 형제들을 내게서 멀리 하셨고… 내 친척들이 나를 잊었으며

내 친구들은 나를 미워하며… 내가 내 하인에게 불러도 대답하지 아니하니
내 입으로 그에게 간청해야 하겠구나.”

 

욥은 모든 관계에서 철저히 끊어졌습니다.
가족, 친구, 종들까지도 그를 버렸습니다.
그의 외로움은 단순히 사람의 고독이 아니라
하나님께서도 침묵하시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는 부와 명예, 자녀와 건강, 사람의 위로마저 잃은 사람이었습니다.

욥은 세상의 모든 의지처를 잃었습니다.
그러나 그 외로움 속에서 하나님을 향해 단련되어 정금같이 세워지는 과정이 됩니다.

 

“나의 친구는 나를 조롱하나 내 눈은 하나님을 향하여 눈물을 흘리나이다.” (욥 16:20)

 

욥의 눈물은 사람에게 향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기도의 눈물이었습니다.

욥은 하나님이 자신을 대적하신다고 느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불의한 자로 아시고… 나를 대적하시는 줄 아노라.” (욥 19:6–7)

 

그의 고백은 믿음의 사람이 느낄 수 있는 가장 깊은 절망의 자리입니다.
그러나 그 절망의 끝에서 욥은 놀라운 신앙 고백을 터뜨립니다.

 

“내가 알기에는 나의 구속자가 살아 계시니 마지막에 그가 땅 위에 서실 것이라.” (욥 19:25)

 

외로움의 절정은 하나님을 ‘살아 계신 구속자’로 만나는 자리로 바뀌었습니다.
하나님은 침묵하셨지만, 욥의 믿음은 그 침묵 속에서 성장한 것이었습니다.

 

욥의 고난이 끝나자 하나님은 친구들을 중보 할 권한을 주십니다.

“너희는 내 종 욥에게 가서 너희를 위하여 번제를 드리라.

내 종 욥이 너희를 위하여 기도할 것이라.” (욥 42:8)

외로웠던 욥이 이제는 다른 사람을 위해 중보 하는 자로 세워졌습니다.
그의 외로움은 자기중심의 신앙에서 이타적 사랑으로 변화되는 통로였습니다.

 

“내가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 (욥 23:10)

욥은 외로움의 불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아심(דָּעַת, 다아트)을 믿었습니다.
그 믿음이 그를 정금 같은 사람으로 만들었습니다.

 

이쯤 해서 나는 외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나 자신을 말씀에 잘 포장해서 

등장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난데없이 새벽에 성령님이 사건을 일으키셨습니다 

그 사건으로 성령님은 내 안에 "수치"라는 감정으로 한 주간 있었던 싸움에

최종 심판을 내리셨습니다 

 

믿음의 동역자로부터 메시지가 왔습니다

집에서 기른 상추를 주시겠다 하셨습니다

나는 늘 그분의 사랑으로 나누어 주시는 것을 많이 받았습니다 

감사한 마음에 다른 사람 주셔도 된다고 답장을 드렸는데...

내 안에 있던 감정이 답장에 제대로 전달이 되지 못했습니다

 

그분의 답장에는 그럼 다른 사람에게 나누겠다는 것이었는데

제가 잘못 보고 오해를 했던 것입니다

제 진심은 다른 사람에게 주셔도 되는데 늘 제게 주셔서 감사하다는 뜻이었나 봅니다 

그런데 마음에 있는 말을 하지 않고 앞에 말만 답했던 것입니다 

이상하지요? 나의 의도는 없었습니다 

 

새벽 기도를 가서 함께 기도를 한 뒤에 아무 생각 없이 그분이 챙겨 오신 

상추 가방을 가지고 유유히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집에서 가방을 열어보니 너무도 귀하고 사랑이 담긴 유기농 야채들과 

과일이 들어 있었습니다 

 

순간 눈물이 날뻔하며 주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왜냐하면 그 과일이 얼마 전에 "먹어볼까" 했지만 식구들이 좋아하지 않아

나 혼자 먹자고 살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과일이 그 가방에서 나왔으니 주님의 사랑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이렇게 세심하신 주님이 저는 너무 좋고 사랑합니다 

 

그런데 일을 가서 전화를 보니 그분께 카톡이 와 있었습니다

저는 감사 인사를 드려야겠다 생각했는데 그분의 카톡 내용이 뭔가 이상함을 알았습니다

전화를 드렸는데 제가 다른 사람 주셔도 된다는 말에 그분이 다른 사람을 주려고

챙겨 온 것을 아무 생각 없이 내가 덜렁 가지고 온 것이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난감한 일이 생겼는지 당황스러웠지만 그분은 괜찮다며 

주님이 나를 주는 것을 더 원하신 것 같다며 수습을 해 주셨습니다 

 

나는 정말 뭐라고 말씀드려야 할지 다시 돌려 드리겠다고 했지만 

이미 너무 우스운 꼴이 되어 버렸기에 정말 부끄러웠습니다

그렇게 그 일은 마무리가 되고 일을 하며 차근차근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왜 내게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주님, 주님이 그러신 것인가요?

 

그때 생각지도 못한 숨겨진 나의 쓴 뿌리를 성령님이 소환해 올리셨다

그것은 너무도 오래도록 내 안에서 낮은 자존감으로 웅크리고 있던 것이었다

나 : 넌.... 누구니?

자아 : 나는 "수치" 라고해....

나 : 수치.... 넌 내 안에 언제부터 있었니?

자아 : 오래전 네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야

나 : 그렇구나.... 그럼 넌 부정적인 감정이니?

자아 : 네가 꽁꽁 숨겨 둔 것을 보면.... 아마도

 

나는 성령님이 왜 이런 일을 벌이신 것인지 바로 깨달아 알게 되었습니다

내가 수치스러웠구나....

내가 수치스러웠다는 것은 다른 사람 주려고 가지고 온 야채와 과일 가방을 

가지고 와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사실은 좀 더 깊은 다루심이 이었습니다 

아담이 선악과를 먹은 후에 눈이 밝아져 옷을 입지 않은 자신이 수치스러웠을까요?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 보이지 않게 하고(계3:18)

 

 

교회 목사님 퇴직 후 사례에 대한 나의 감정을 성령님이 다루시고 계신 것입니다

내 마음에 숨은 생각은 교회 인원도 적고 헌금도 많지 않은데 형편껏

결정해야 되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집 드리고 차도 드리고 생계비도 드리면 정말 좋겠지만 교회 형편이 여유가 없고

더욱이 새 목사님도 대우를 해 드려야 하니 성도들의 부담은 배로 늘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처구니없게도 내가 하는 것도 아니면서 그렇다고 내가 헌금을 더 낼 것도 아닌데

굳이 현실적인 이야기를 해서 내가 미움을 받을 필요가 없는데 그것이 또 내가 

잘 안 되는 부분입니다 

사람 보지 않고 옳다고 생각되는 말은 해야 하기에 그 미운틀 박힐 것을 뻔히 알면서도

실질적인 이야기를 해버립니다 

물론 사람 감정이 상하지 않을 수 없기에 성경 말씀을 인용하여 마음에 있는 의견을 

담대히 말해 버렸습니다 

 

집에 와서 마음이 내내 불편했습니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사실 내 마음에는 좀 부당하게 생각이 되었습니다

마지막 때를 준비하며 성도들에게 주님을 주인으로 모셔야 된다고 설교하면서

목사님은 퇴직 후를 준비하신다는 것이 불법으로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목사도 직업이라 생각하면 퇴직금을 받는다 했을 때 남은 여생을 집 걱정,

먹을 걱정, 입을 걱정 안 해도 된다면 아주 괜찮은 직업인 것입니다

 

한 사람이 평생직장을 다닌다 해도 사실 그만한 노후를 누리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면서 나 자신의 형편과 비교를 했던 것 같습니다

나와 남편은 힘들게 노동일을 하면서 집도 없고 아직도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걱정해야 하는 나 자신이 안쓰러웠습니다

코로나때도 일을 하지 못할때 백신을 맞지 않으면 돈을 벌수 없을때도

그것이 믿음의 양심에 걸려서 끝까지 돈에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로 내 집이 아니니 집세를 못내어 쫓겨나면 

길 바닥에 나갈 작정하고 믿음으로 버텨왔었습니다 

그런 와중에도 목사님은 사택에서 먹을거 걱정 없으셨잖아 하며 

나 스스로 의롭다고 높이고 있었습니다 

 

나도 남들만큼 열심히 살았는데 왜 만만한 작은 집도 없지?

우리는 부부가 다 열심히 일을 하는데 왜 통장에 잔고가 하나도 없지?

나는 그것이 나의 시기와 질투라고 생각하고 스스로 나를 정죄했습니다 

비로소 나는 주님을 찾았습니다

주님, 왜 그런 거예요?

 

나는 목사님의 퇴직 사례를 드리는 것이 싫었던 것이 아닙니다

저는 목사님을 사랑합니다

저는 이 나이가 되도록 집도 없고 통장에 잔고도 없는 나 자신이 수치스러웠던 것입니다 

그것은 오래전 어릴 때부터 내 안에 자리 잡고 있던 가난이라는 수치입니다 

나의 부모님도 집이 없으셨고 늘 가난하여 힘겹게 사셨습니다 

부모님은 열심히 일하셨고 선한 분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왜 늘 가난하셨는지 어린 마음에 그것이 수치스럽게 생각되었습니다 

 

그런 감정을 신앙이라는 포장으로 그리스도인은 고난이 있어하고 합리화시켰습니다

주일 설교 말씀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우리가 마땅히 누려야 하는 것들을 모두 마귀에게 빼앗겼다고

그런데 그것도 모르고 우리는 내가 가난하고 내가 병들었다고 모두 속아 살았다고

이제는 마귀를 내 안에서 쫓아내고 다시 에덴에 주권을 찾아야 한다는 말씀이었습니다

 

그 말씀이 걸림이 되어 내가 마귀에게 속아서 여태껏 가난한 것이라고?

주님, 그런가요? 저는 주님의 뜻이 있어 그렇다고 생각했는데요?

나의 상급은 주님! 

나의 기업도 주님!

나의 분깃 역시 주님!

그래서 제게 아무것도 주지 않았다고 생각했어요 

 

저같이 아무것도 아닌 성도가 그렇게 생각하며 일용할 양식 주심을 감사하며 족하게 여기는데

하물며 목사님은 당연한 거 아닌가요?

제사장이라면서요 그럼 오직 여호와께서 기업 되시고 분깃이 되어야 하잖아요 

엘리사가 게하시에게 "지금이 은과 금을 받을 때냐" 했는데 어떻게 마지막을 설교하며 

전하시는 목사님이 이 땅의 거처를 준비하시냐고요

그럼 어떻게 예비처로 인도받을 수 있겠어요 

 

정신없이 주님께 하소연하다 보니 눈물 콧물 범벅이 되어 버렸습니다

하소연하는 내내 나의 마음은 더욱 아파왔지만 멈추고 싶지 않았습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갈 때까지 가서 끝을 보고 와야겠다는 심정이었습니다

내 치졸함과 더러움을 어설프게 보게 되면 적당히 또 덮어두기 때문입니다 

막다른 길에 이르렀을 때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가시채를 뒤발질하기가 네게 고생이니라"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완전하라"

 

“내 뜻을 거슬러 발버둥 칠수록 너 자신이 더 고통이다.”라는 뜻입니다

"다른 사람이 어떻든 네가 주님 앞에 합당하라"는 뜻입니다 

 

나는 다시 회개하며 주님께 고백했습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설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로 나의 높은 곳에 다니게 하시리로다(합 3:17-19)

 

 

수치야,

너 아직도 거기 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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