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숨어 있는 부정적인 감정들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막고 있는 담이 되었다
그것이 "나"이기에 버릴 수도 없고 미워할 수도 없다
그러나 성령 안에서 발견된 "나"는 너무도 귀한 존재였다
온유하신 주님은 당신 안에 있는 나를 정결하게 씻어 주신다

귀한 자의 딸아 신을 신은 네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가
네 넓적다리는 둥글어서 공교한 장색의 만든 구슬 꿰미 같구나
배꼽은 섞은 포도주를 가득히 부은 둥근 잔 같고
허리는 백합화로 두른 밀단 같구나(아 7:1-2)
오늘은 앞서 중간 삽입글에 힌트 하였던 "의심"이란 감정을 소환했습니다
이는 성령님의 인도하심으로 연결되는 말씀 묵상과 체험에서 기반된 것입니다
나의 뜻과 의지는 상관 없이 나의 좋은 스승님의 가르침대로 순종합니다
https://idea5936.tistory.com/entry/중간-삽입시리즈-묵상-중에-있었던-영적-체험
(중간 삽입)시리즈 묵상 중에 있었던 영적 체험
나는 우리 안에 성령이 안 계시다는 말을 하는 지도자들을 이해할 수가 없다어떻게 성령이 없이 사역을하며 어떻게 성령이 없이 숨을 쉴 수 있단 말인가....성령이 임하시면 우리의 죄에 대하여
idea5936.tistory.com
의심은 먼저 영적 체험에서 그 끝이 분명치 않아 계속 마음에 의심이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영적 체험에 대해서는 않보신분을 위해 링크를 달아 두었습니다
어두운 영의 방문을 받아 내 위에 겹치려고 했기에 주님의 이름으로 쫓았으나
떠나지 않고 계속 나를 눌려와서 혹시라도 내 안에 어두운 영이 들어갔을까 해서
계속 마음에 의심이 올라오고 불안했기 때문입니다
그때 알았습니다이번엔 성령님이 내 안에 "의심"을 불러오셨구나....그렇게 깨닫게 되면 나는 모든 진행을 성령님께 맡겨드립니다성령님이 내 안에 의심이 있다는 것을 알려 주셨기에 의심이란 감정과 싸우지 않습니다아, 성령님이 알려 주셨으니 의심하지 말라는 말씀이시구나....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오히려 의심의 소제를 더 발견하게 됩니다
쉽게 말해 삼계탕을 한 번도 끓여 보지 못한 사람이 유튜브를 보고 따라 할 때한번 끓여보고 이제 나는 삼계탕은 자신 있게 끓인다고 자랑할 수 없는 것 같이성령님이 다루시는 교육에 내 뜻과 노력을 넣어서는 온전한 배움의 원뜻을 깨닫지 못하고 지식만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배우는 모든 시간과 사건들을 오직 성령님께 집중하여 여쭙고 또 여쭈어한걸음 한걸음 따라가 봅니다
이번에도 성령님은 내 안에 부정적인 감정 "의심"을 성경 말씀을 통해 깊은 비밀을 열어 주셨습니다 천 번을 말해도 부족하지만 정말 성령님은 너무 좋으신 스승이십니다 그럼 성령님이 알려주신 "의심"의 말씀을 배워보실까요
민수기 5:11–31을 보면 “의심의 법”(תּוֹרַת הַקְּנָאוֹת, 토라트 하크나옷)이라 불리며,
‘의심의 소제’ 혹은 ‘생각하게 하는 소제’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부분은 단순히 부부간의 의심 사건이 아니라,
인간 마음의 깊은 내면에서 시작되는 불신과 죄의 작용을 드러내는 율법의 거울입니다.
이 법은 남편이 아내의 부정을 의심하되 증거가 없을 때,
그 문제를 하나님 앞에 가져와 성막의 제사장 앞에서 판단받는 절차입니다.
- 남편이 아내를 위한 보리 가루 준비하여 제사장에게 데려감
- 제사장은 ‘성소의 거룩한 물’과 ‘성막 바닥의 티끌’을 그릇에 담음
- 여인은 머리를 풀고, 손에 소제물을 들며, 제사장은 ‘저주의 물’을 손에 들게 함
- 제사장은 ‘의심의 저주’를 말로 선포하고, 여인이 ‘아멘, 아멘’으로 응답함
- 저주를 쓴 것을 쓴 물에 빨아 넣고 소제물을 여호와 앞에 요제로 흔든다
- 소제물 중 한 움큼을 기념으로 단 위에 소화한 후 쓴 물을 마심
- 여인이 부정했을 경우, 물이 들어가 배가 부어오르고 허벅지가 썩음
- 여인이 정결하면 해를 입지 않고 후손을 잉태함
그런데 왜 의심의 소제 혹은 생각하게 하는 소제일까요?
아내에 대한 부정이 심증만 있고 물증이 없기 때문입니다
말 그대로 의심되는 나의 모습이 깊이 생각하게 되는 묵상과도 같은 느낌이 옵니다
그러나 그렇게 단순한 부분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기에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그 아내를 데리고 제사장에게 가서 그를 위하여 보리 가루 에바 십분지 일을 예물로 드리되
그것에 기름도 붓지 말고 유향도 두지 말라 이는 의심의 소제요 생각하게 하는 소제니
곧 죄악을 생각하게 하는 것이니라(민 5:15)
먼저 여인에 대한 예물 보리 가루 에바 십분지 일을 준비하여
그 소제에 기름도 유향도 두지 말라고 합니다
보리 가루는 첫 추수 곡식 즉 첫 열매입니다
추수한 첫 이삭 한 단을 요제로 흔들어 드리는 초실절 부활의 예표 예물입니다


보리는 고운 가루로 만들기가 어렵습니다
보리는 밀보다 탈곡하기에 쉬운 곡식이지만 고운 가루가 되기에는
더 많은 수고가 필요합니다
보리 - שְׂעֹרִים (se’orim, 세오림) 대맥
- 어근: שׂער (śaʿar, 샤아르)
- 기본 뜻: 털, 거칠다, 거칠게 하다
보리(se’orim)는 밀(ḥittim, חִטִּים)과 달리 거친 곡식을 상징합니다.
가난한 자의 양식이며, 정결하지 않은 짐승의 먹이로도 쓰였습니다 (왕하 7:1–2).
따라서 보리 소제는 “가난한 심령, 가난한 죄인”의 예물을 상징합니다. - 또한 보리의 어근 śaʿar은 “털이 서다, 소름 끼치다”의 뜻을 가지므로,
내면의 감정적 상태가 외면의 현상으로 나타나는 상태를 말합니다
의심의 소제에 보리가 사용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의심과 믿음 속에서 흔들리는 인간의 갈등을 생각하게 하는 것입니다.
가루 – קֶמַח (qemaḥ, 케마흐) 거친 가루
- 어근: קמח (q-m-ḥ) “빻다, 가루로 만들다”
- 소제는 “자아가 깨어지고 부서진 자”가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로,
그리스도의 겸손과 순종을 예표 합니다. - 의심의 법에서는 보리가루 즉 거친 가루를 드이므로,
아직 완전한 순종과 거룩함에 이르지 못한 상태의 부서짐을 의미합니다
심판을 통해 가난한 심령으로 정결케 되는 과정입니다.
참고로 고운 가루 “סֹלֶת (solet)”은 단순한 곡식가루가 아니라,
성령 안에서 정결하게 다듬어진 인격을 상징합니다.
불순물을 제거하고, 맷돌에 갈아서, 체로 걸러진 다음에야 “고운 가루”가 되듯이,
그리스도 안에서 자아가 부서지고 성령에 의해 다듬어진 자가
하나님께 향기로운 제물로 드려질 수 있습니다.
에바 십 분의 일
- 보리(שְׂעֹרָה, 세오라)는 첫 열매, 즉 부활의 첫 열매이신 그리스도(고전 15:20)를 상징합니다.
또한 연약하지만 충성된 자, 신랑과 연합된 자 첫 이삭 한단으로 묶임을 나타냅니다.
막달라 마리아처럼 연약하되 신랑만을 바라본 사랑 그것이 보리의 본질입니다. - “에바 십 분의 일”은 온전한 헌신의 일부를 드리는 겸손한 자의 분량을 가리킵니다.
그는 낮은 자이지만, 자신의 사랑을 신랑에게 완전히 바치는 자입니다.
기름도 유향도 두지 말라
- 기름(שֶׁמֶן, 셰멘)은 성령의 기름부음을, 유향(לְבוֹנָה, 레보나)은 중보의 향기를 상징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 의심의 제사에 기름과 유향을 금하셨습니다.
이는 성령의 능력이나 중보자의 개입 없이도 신랑만을 사랑한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신부는 오직 신랑에 대한 사랑과 신실하심을 믿어야 합니다. - 다시 말해,
“성령의 능력이나 이적이 아닌 오직 신랑을 사랑할 수 있는가?”
“중보자의 막아주심이 없어도 고난 가운데 신랑만 바라보며 인내할 수 있는가?”
이것이 의심의 법의 시련이며 시험입니다.
기름은 항상 성령의 기름 부 음, 충만함, 친밀함, 능력의 흐름을 상징합니다.
이 제물 위에는 기름을 붓지 말라 하셨습니다.
이는 곧 이 제사는 성령의 교통으로 드리는 예배가 아니라,
의심으로 인해 성령의 교통함이 막힌 상태임을 말합니다.
믿음이 흔들릴 때 성령의 기름 부 음이 자유롭게 흐르지 못합니다.
유향(히브리어 לְבוֹנָה, 레보나)은
성경에서 언제나 기도와 경배의 향기를 의미합니다(계 5:8, 시 141:2).
예수님이 하늘 보좌 우편에 계시며 우리를 위해 중보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이 제물에는 유향을 두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그의 기도가 하나님께 향기로 오르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의심으로 인한 거리감, 숨은 불신, 감춰진 죄가 기도의 통로를 막고 있음을 말합니다.
이 의심의 소제는 사랑이 식고, 관계가 단절된 상태를 드러내는 제사입니다.
기름 없는 제단은 성령 없는 예배, 즉 형식만 남은 예배를 뜻하며
기도가 상달되지 않고 주님이 받으시지 않으니 응답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갈망함이 없이 잘못된 것을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 제사를 신랑이 요구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신랑 되신 주님이 신부에게 의심의 법을 적용시키심은
신부의 사랑을 더욱 열망하게 만드시기 위함입니다
성령의 기름 부 음이 없어도 주님의 중보가 없어도 아무렇지 않게 살 수 있다면
이는 이미 신랑에게서 마음이 떠난 신부일 테니까요
이 의심의 소제에서 신부는 자신의 결백을 밝히는 유일한 길이 있습니다
제사장이 만들어 주는 쓴 물을 마시는 것입니다
제사장이 만들어 주는 쓴 물을 마시기 전에 저주의 맹세를 하게 하는데
그 맹세에 신부는 한 번도 아닌 두 번을 아멘 아멘 해야 합니다
그만큼 억울하면 강하게 답하라는 것입니다
그 저주의 맹세는 이렇습니다
여호와께서 네 넓적다리로 떨어지고 네 배로 부어서
너로 네 백성 중에 저줏거리, 맹셋거리가 되게 하실지라
이 저주가 되게 하는 이 물이 네 창자에 들어가서 네 배로 붓게 하고
네 넓적다리로 떨어지게 하리라 (민 5:21-22)
신부는 이 저주의 말에 아멘 아멘 하고 이 쓴 물을 마셔야 합니다
그때에 부정하였다면 그 저주가 임할 것이요
정결하다면 그 보상으로 잉태를 하게 됩니다
그러나 여인이 더럽힌 일이 없고 정결하면
해를 받지 않고 잉태하리라 (민 5:28)
그러나 여자들이 만일 정절로써 믿음과 사랑과 거룩함에 거하면
그 해산함으로 구원을 얻으리라.(딤전 2:15)
이 말씀들은 오늘날 사고방식으로는 결코 이해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모두 신랑 되신 예수님이 기록된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불의한 말씀이 아닌 것은 분명합니다
그럼 이 말씀은 무엇을 알려주시기 위해 기록된 것일까요?
제가 말씀의 그 여인이라 생각하고 그 자리에 서 보았습니다
만약 내가 신랑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이런 어처구니없는 의심의 법을
행하려는 신랑을 죽도록 저주했을 것 같습니다
내가 부정했던 정결했든 상관없이 나에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수치를 끼친 신랑이 원수같이 느껴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신랑만 바라보고 사랑하고 있다면 어떻게든 신랑의 의심을
풀어서 나의 정결함을 인정받고 신랑의 마음을 돌리고 싶어 질 거 같습니다
내가 부정한 일이 없고 거리낌이 없다면 그 쓴 물을 당당히 마시수 있다
생각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성령님이 나의 정결함과 부정함을 몰라서 이런 시험을 하실까?


나는 다시 한절 말씀이 떠 올랐습니다
이는 의심의 소제요 생각하게 하는 소제니
곧 죄악을 생각하게 하는 것이니라
어느 여자가 다른 남자와 부정을 저지른 일을 잊어버리겠는가...
그러니 죄악을 생각하게 하는 것이란 우리가 알지 못하는 부분에
부정한 일들을 행한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회개할 때 생각나지 않는 죄도 회개를 하는 것도 이런 이유일 것입니다
이 말씀에 또 다른 여인이 있습니다
바로 엘리야에게 마지막 남은 양식 보리 가루로 떡을 만들어 주고
통에 가루가 마르지 않고 기름이 없어지지 않도록 복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녀에게 큰 시련이 왔습니다
그녀의 아들이 병이 들어 숨이 끊어졌습니다
저가 가로되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나는 떡이 없고 다만 통에 가루 한 움큼과 병에 기름 조금 뿐이라(왕상17:12)
가루 – קֶמַח (qemaḥ, 케마흐) 거친 가루
사르밧 과부가 엘리야에게 대접한 통에 "가루"가 의심의 소제 가루와 동일한 것입니다
이제 그녀의 아들이 병들어 숨이 끊어질때 그녀가 하는 말을 보겠습니다
여인이 엘리야에게 이르되 하나님의 사람이여 당신이 나로 더불어 무슨 상관 있기로
내 죄를 생각나게 하고 또 내 아들을 죽게 하려고 내게 오셨나이까(왕상 17:18)
이는 의심의 소제요 생각하게 하는 소제니
곧 죄악을 생각하게 하는 것이니라
보셨나요?
사르밧 과부가 하는 말과 의심의 소제의 역활이 동일하며
또한 보혜사 성령이 행하시는 죄에 대한 책망과 동일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외에 다른 우상이 있다면 하나님은 질투하시는 분이시기에
그것을 부정하다 하십니다
단지 불교에 가든지 힌두교에 간다는 수준이 아닌 예수님 보다 더 사랑하는 것
나는 모르지만 수만 가지 비교되는 선택가운데 예수님보다 내가 먼저 선택하는 것
남편, 자녀, 명예, 물질, 건강 등등 그것이 부정을 저지른 것입니다
우리의 신랑 예수님은 우리의 사랑이 온전하기를 원하십니다
사르밧 과부가 죄가 생각난것은 아들이 우상이 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은혜인것은 유대인이 개, 돼지로 여겼던 이방 여인에게 신부의 시험을
하셨다는 것입니다
바로 거친 보리 가루가 가난한 자의 양식이며 짐승의 양식으로 예표한것도
그 의미들이 숨겨져 있어서 입니다
탕자가 집을 떠나 이방에 돼지 치기를 하며 돼지 먹이(짐승 양식)를 먹었던 것도
이방인 신부의 시험을 말하는 것입니다 (탕자 비유)
성령님은 우리 죄에 대해 의에 대해 심판에 대해 책망하신다 하셨습니다
바로 의심과 질투하시는 분이시기에 신랑만 사랑한다면 증명해라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니 현재 그 쓴 물을 주시며 마시라 하신다면 나는 과연 담대히 마실 수 있을까요?
그래서 항상 자신을 살피라 하는 것입니다
성령님이 보혜사라 하신 것도 우리의 죄악을 생각나게 하시고 책망하시기 때문입니다
책망하신다는 것은 우리가 주님의 신부요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자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요?
부정한 신부인 것 같기도 하고 신랑을 사랑하기도 하는데 나는 이 쓴 물을 마셔야 할까요
아님 잘못했다고 부정하였다고 실토하고 벌을 받아야 할까요?
이는 답이 없습니다 아니 답이 있지만 각자가 해결해야 하는 답입니다
저는 그 쓴 물을 마실 것입니다
내가 정결하다는 말이 아닙니다
어찌 주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결단코 없다고 말할 수 있겠어요
다만 주님을 사랑함도 거짓이 아닙니다
그러니 주님의 심판에 맡겨드리고 그 결과에 굴복할 것입니다
정결히 보시어 잉태를 하면 더없이 좋겠지만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내 넓적다리가 떨어지고 배가 부풀어 오른다 할지라도 그 쓴 물을 마시고
지금 죄의 벌을 받을 것입니다
더 늦기 전에 회개할 기회가 있을 때 하기를 원합니다
나의 신랑의 사랑을 느끼지 못하면서 신랑 오시기를 기다린다면
오신 그날에는 다시는 돌이킬 기회가 없기 때문입니다
결론으로 내가 악한 영이 내 안에 들어왔을까 의심이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내 안에 악한 영이 있는것이 아니라 나의 부정한 감정을
악한 영이 유혹하여 나로 죄를 범하게 한다는 믿음이 있습니다
이 믿음은 우리 안에 마귀가 있다는 말에 저는 동의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날 그 어두움의 영이 내게 겹치려는 모습에 여지껏 내가 믿고 있던것이
틀린것이란 것을 알려 주시려는 것인줄 알고 의심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신랑 되신 주님이 의심의 법으로 증명해 주셨습니다
나는 주님을 사랑하고 나는 주님 안에 안전하게 보호받고 있습니다
그래서 악한 영이 내 안에 들어올 수가 없습니다
내 안에 들어오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 주님의 사랑을 뚫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약 1:5-8)
두 마음을 품다 - διακρινόμενος (diakrinomenos) 분열, 나뉘다
정함이 없다 - ἀκατάστατος (akatastatos) 흔들림, 견고하지 못함
나는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신뢰합니다
믿음의 법 외에 아무것도 나의 정결을 증명할 법이 없습니다
아니면 당신은 다른 것으로 증명할 수 있나요?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유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계 3:17-20)
하나님은 형식의 제사가 아니라 마음의 제단을 보시는 분이십니다.
성령의 임재 안에서 이루어지는 영적 예배로 우리의 부정이 정결로 바뀝니다.
“너희가 다 내 안에 거하며 내가 너희 안에 거하리라” (요 15:4)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롬 12:1)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시 51:17)
의심아,
믿음 앞에서 넌 아무 힘이 없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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