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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글 시리즈 묵상

3.자만-아간 때문에 진짜 회개는 여호수아가 했다

by GOTOKINGDOM 2025. 11. 3.

 

 

여호수아가 여리고에서 사람을 벧엘 동편 벧아웬 곁에 있는 아이로 보내며

그들에게 일러 가로되 올라가서 그 땅을 정탐하라 하매 

그 사람들이 올라가서 아이를 정탐하고 여호수아에게로 돌아와서 그에게 이르되

백성을 다 올라가게 말고 이삼천 명만 올라가서 아이를 치게 하소서

그들은 소수니 모든 백성을 그리로 보내어 수고롭게 마소서 하므로 (수 7:2-3)

 

오늘은 영적 교만이 자리잡기 전에 한 단계 경고의 시기가 있음을 나누어본다

교만은 사탄의 선봉되는 특징이다

하지만 교만이 불신자나 신앙인에게 한순간에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그전에 한 단계 경고로 나타나는 현상이 인간의 자만 곧 자만심이다 

그것은 신앙인도 인간이기에 믿음 안에서도 그 자만이 나타난다

 

지금은 마지막 때이며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이 약속의 땅이었던 것과 같이

마지막 세대도 약속의 땅인 천년왕국으로 들어가게 될 것이다

그럼 이스라엘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였던 지도자 여호수아 세대와

오늘날 마지막 세대는 숨겨진 연결된 가르침이 있을 것이다 

그것을 가르치고 배우는 것이 성령님과 동행하는 삶이기에 일용할 영적 양식을

오늘도 구하며 부족함 없이 배를 채워 보기로 하자 

 

오늘 본문 말씀은 여리고 성을 기상천외한 이적으로 무너트리신 자신들의 신 

곧 여호와 하나님의 전쟁에서 승리함을 맛보고 용기가 충만해진 상태이다

여호수아 1장부터 "마음을 강하게 하라 담대히 하라" 말씀이 여러 번 반복되어

기록이 되었다 그 이유는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지도자 모세가 죽은 뒤에 

그 뒤를 이어서 많은 무게감을 느꼈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인지 여호수아는 여리고 성을 점령하기까지 사소한 것 하나 빠짐없이 

모든 일에 세심하게 준비하며 진행하는 모습들을 보이고 있다 

 

1️⃣ 정탐군 두 사람을 파송함 (2:1)

       믿음의 눈으로 먼저 영적 실상을 살피는 단계.

2️⃣  여호수아가 아침 일찍 일어남 (3:1)
       ‘아침 일찍’은 영적 지도자인 여호수아의 경건한 행동(기도와 순종의 자세).

3️⃣ 요단 강가에서 사흘 동안 대기 (3:2)
      사흘은 ‘죽음과 부활’의 시간, 성결의 준비 기간(인내와 절제의 기다림).

4️⃣ 언약궤를 맨 제사장이 먼저 요단에 들어감 (3:6–17)
      언약궤(하나님의 임재)로 구별된 자들이 먼저 앞서감.
      요단 물이 끊어지고 백성이 마른땅을 건넘.

5️⃣ 열두 지파가 돌을 취해 기념비 세움 (4:1–8)
       제사장들이 굳게 선 요단에서 건져진 돌은 택함 받는 자가 각 지파와 함께함 예표 

       12 돌은 12 지파의 표징이 되고 곧 계시록 7장 12지파 인침을 예표

6️⃣ 여호수아가 요단 가운데 12돌을 세움 (4:9)    

       먼저 12돌은 각 지파 대표들이 세운 돌이다 그러나 요단 가운데 12돌을 세운 것은

       여호수아가 제사장들이 선 곳에 세웠다 

       여호수아는 예수님을 예표하며 그가 세우실 12 제자를 예표하는 것이다

       그러나 요단 가운데 세워진 12돌은 이스라엘이 건넌 후에 다시 요단물이 덮인다 

       이는 12제자들이 모두 순교한 것과 같이 오늘날까지 순교자를 예 표한다 

7️⃣ 이방에서 태어난 자들을 할례 시킴 (5:2–9)
       길갈에서 광야 동안 행하지 못한 언약의 표징 회복.
       “오늘 내가 애굽의 수치를 너희에게서 굴러가게 하였다.” (길갈: ‘굴러감’의 뜻)

8️⃣  유월절을 지킴과 약속의 땅 첫 소산 먹고 만나는 그침 (5:10–12)
       가나안 땅 여리고 평지에서 첫 유월절.(새 언약 시작)
       만나가 그치고, 그 땅의 소산을 먹음.(양식이 변한다)

9️⃣ 하나님의 작전 지시를 받음 (6:1–5)
      “너희는 성을 돌되, 하루에 한 번씩 이같이 하여 여섯 날 동안 그리하라.
        일곱 제사장은 일곱 양각나팔을 잡고 언약궤 앞에서 행할 것이며,
        일곱째 날에는 그 성을 일곱 번 돌고 나팔을 불라.”(정확한 지시를 받는 영적 민감함)

        영적 지도자는 하나님과의 관계에 정확한 예언을 받아 해석에 오류가 없도록 해야 함

🔟 하나님 명령대로 지도자와 백성이 함께 행함 (6:6-10)

       제사장들이 언약궤를 메고, 무장한 자들이 앞서고, 나팔 부는 제사장들이 뒤를 따름,

       백성은 조용히 뒤를 따르며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순종의 행위.

 

10가지로만 정리했지만 이것만 보고도 여리고성을 점령할 때 철두철미한 준비가

여호와 하나님과 여호수아와 백성들이 한 마음으로 움직였음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아이성을 점령할 때는 너무도 단순하게 진행함을 보이며

결국 첫 번째 아이성 점령은 실패로 돌아온다 

왜 그런 것인지 자세히 살펴보자 

 

먼저 여호수아가 아이성의 위치를 과할 정도로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분명 그곳에 숨겨진 가르침이 있을 것이다

 

 

   지명     히브리어                              발음                            의미                                   영적 상징

여리고 יְרִיחוֹ Yericho “향기(냄새)” 또는
“달(달의 도시)”
"종려나무 성읍"
육체적 아름다움과 세상의 유혹,
인간의 향기 같은 외적인 영광을 상징함.
인본적인 견고한 진이 무너지고
종교적 열심이 무너짐을 의미함.
아이 הָעַי ha-‘Ai “폐허, 잔해, 무더기 
(heap of ruins)”
죄와 심판의 결과로 남는 ‘황폐함’을 상징.
인본적인 견고한 진으로 무너지고
무너진 인간의 본성이 혼돈한 시기를 드러냄.
벧아웬 בֵּית אָוֶן Beit-Aven “악(불의)의 집”,
“헛된 것(우상)의 집”
원래는 ‘벧엘(하나님의 집)’과 대조되는 이름.
선지자들이 우상숭배로 타락한 벧엘을 조롱할 때
“벧아웬(헛된 집)”이라 부름.
하나님 없는 종교, 헛된 경건을 상징함.
벧엘 בֵּית־אֵל Beit-El “하나님의 집” 야곱이 하나님을 만났던 장소(창 28:19).
나중에는 금송아지가 세워진 곳으로 타락함
(호 10:5).
하나님을 만나는 자리이자, 동시에 우상으로
배도될 수 있는 예배의 자리.
동쪽 מִקֶּדֶם (mi-qedem) “동쪽으로부터” ‘시작’ 또는
‘옛적부터’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진 방향’으로 자주 상징됨
(창 3:24, 창 11:2 참고).
인간이 타락 후 ‘동쪽으로’ 나아간다는 것은
하나님의 임재로부터 멀어짐을 의미함.

 

위에 정리된 도표를 보고 본문 말씀 순서를 따라가 보자

여호수아가 여리고에서 사람을 벧엘 동편 벧아웬 곁에 있는 아이로 보내며...

종려나무 성읍에서(여리고) 하나님의 집에서(벧엘) 옛적 시작한(동편)

악의 집 곧 헛된 우상의 집(벧아웬) 곁에 있는 폐허 무더기(아이)로 보내며....

 

여호수아는 예수님을 예 표한다고 했다 

종려나무는 의인을 뜻하며 여호와의 집에 심긴 나무로 시편에 기록되어 있다(시 92:12)

무너진 여리고 성은 종교적 열심의 견교한 진이 무너졌음을 말한다

마음에 할례를 받는 곳에서 하나님의 집은 에덴을 뜻하며 옛적에 에덴 동쪽으로 

이동한 무리들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바벨탑을 쌓는 자들의 무리들이며 시날땅이었다

그곳은 우상이 자리 잡은 곳이었고 아이성은 그곳 곁에 있었는데(실제 위치를 말함이 아님)

다만 폐허 무더기라는 것은 아직 자리 잡은 것 우상이 없이 버려진 곳이다

창세기 11:1–2
온 땅의 언어가 하나요 말이 하나였더라
이에 그들이 동방으로 옮기다가 시날(שִׁנְעָר, 쉬느라르) 평지를 만나 거기 거하였더니

창세기 11:4
또 말하되, “자,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고,
우리의 이름을 내어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

 

시날 땅은 니므롯이 세운 첫 바벨 제국의 중심지이며,
바벨탑이 세워진 곳으로써 인간이 하나님 없이 스스로 이름을 높이려 한 교만과 반역의 상징이다.
아간이 숨긴 노략물이 "시날산 아름다운 외투 한벌"....이라는 말씀과도 연결된다 

 

이런 곳에 여호수아가 정탐을 보내며 아무런 당부의 말도 없이 보낸다 

신약에 말씀을 인용한다면 바로 이 말씀이 될 것이다

갈지어다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어린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눅10:3)

                                중간 말씀 꼭 찾아 읽어 보세요 

70인이 기뻐 돌아와 가로되 주여 주의 이름으로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눅10:17) 

여호수아와 예수님의 차이가 무엇인가?

여호수아는 정탐의 목적과 지시사항을 정확히 일러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눅10:3-17에 파송의 목적과 지시사항이 아주 세심하게 기록되어 있다

마치 여호수아가 여리고 성을 함락하기 전의 모습과 같다 

그런데 여호수아가 여리고 성에서는 그렇게 했으나 아이성에서는 왜 못했을까?

그것이 바로 자만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여호수아는 여리고성 함략 전에 행하였던 일들을 아이성에서는 한 가지도 하지 않았다

 

가장 먼저는 하나님의 아무런 개입이 없으셨고 여호수아의 지시 명령도 없었다

또한 여호수아가 아침 일찍 일어나 준비했다는 말이 없었고 

싸움에 백성들과 함께 하지도 않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여호수아가 여호와 하나님께 여쭈어 보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간의 범죄 사건은 여리고 성을 진멸한 후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만에 빠졌고

무엇보다 영적 지도자인 여호수아가 자만에 빠졌음을 가르쳐 주시기 위한 사건인 것이다

 

예수님은 영적 자만에 빠질 수 있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세를 주었으니

너희를 해할 자가 결단코 없으리라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눅10:19-20)

 

여리고 성이 무너진 것이 이스라엘의 힘으로 된 것이 아니듯이 예수님의 제자들의 힘으로

귀신들이 항복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오늘날도 많은 은사자들이 그렇듯이 자만에 빠지며 또 신앙인들은 은사자를 

추종하며 맹신으로 사람을 높이는 실수를 한다 

그래서 예수님은 귀신이 항복하는 것은 예수님의 능력과 권세로 당연한 것이니 

그 기쁨에 빠져서 자만하지 말고 하늘에 너희 이름이 기록된 것에 기뻐하라 하신다

 

그런데 이것이 쉽지 않다 

하늘에 내 이름이 기록되었는지 우리는 볼 수가 없다

그러나 우리 앞에서 귀신이 떠나가고 질병이 나으며 오병이어 같이 양식이 생기는 것은

우리 눈에 밝히 보이는 것들이다 

그래서 예수님이 말씀하셨다 "보지 못하고 믿는 자가 복되다" 

히브리서에도 "믿음은 보지 못하는 것의 증거"라고...(히 11:1-3)하는데

그 믿음을 가지고 살기가 이 땅에서 쉽지가 않다

 

오늘의 진짜 주제는 여기에 있다 

오늘날 교회 지도자들은 교회에서 아간을 찾아 경고를 주기에 급급하다 

그것은 아간 사건을 통해 하나님이 바로 세우시고자 하는 사람이 누군인지

당신이 깨닫지 못하는 눈먼 지도자이기 때문이다 

아간 사건을 통해 가장 많이 깨닫고 회개한 사람은 바로 이스라엘 지도자 여호수아였다

두 번째 아이성 점령에는 완전히 변한 여호수아를 보게 된다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두려워 말라 놀라지 말라

군사를 다 거느리고 일어나 아이로 올라가라 

보라 내가 아이 왕과 그 백성과 그 성읍과 그 땅을 다 네 손에 주었노니

너는 여리고 와 그 왕에게 행한 것 같이 아이와 그 왕에게 행하되

오직 거기서 탈취할 물건과 가축은 스스로 취하라

너는 성 뒤에 복병할지니라(수 8:1-2)

 

여호수아가 다시 두려워하기 시작했다 

이는 여호와를 다시 경외하게 되었다는 것이며 "두려워 말라 놀라지 말라"

여호와 하나님의 개입하심도 보여주신다 

무엇보다 우리가 무엇일에도 주님께 여쭈어 보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이

아이성 점령에 잘 나타나 있다

 

여리고 성을 점령할 때와 아이성을 점령할 때에 동일하게 전략을 주시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모든 전쟁에는 그 땅 기후와 지형 그리고 무기를 파악하고 적국의 전술을 

미리 예측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여리고 와 아이성을 그 전술이 다르며 여리고에서는 아무것도 취하지 말하여하셨는데

아이성에서는 스스로 탈취물을 취하라고 하시고 전술도 진격하는 것이 아닌

복병으로 진행하라 명하신다 

 

“너는 여리고 와 그 왕에게 행한 것 같이 아이와 그 왕에게 행하되, 

오직 거기서 탈취할 물건과 가축은 너희가 스스로 가지라.

너는 아이 성 뒤에 복병을 둘지니라.”(수 8:2)

וְאֶת־שְׁלָלָהּ וּבְהֶמְתָּהּ תָּבֹזּוּ לָכֶם
“그 탈취물과 그 가축은 너희 자신들을 위해 취하라”는 뜻이다.

  • שְׁלָל (셸랄) – 전리품, 탈취물, 잡은 것
  • תָּבֹזּוּ (타 보주) –  약탈하다,  (동사 בָּזַז, 바자즈, ‘노략하다’)
  • לָכֶם (라켐) – “너희를 위하여, 스스로를 위해”

이 구조는 분명히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직접 전리품을 소유할 수 있도록

허락하신 것을 나타낸다.

반면, 여리고성에서는 이렇게 명령하셨다

“그 성읍과 그 가운데 있는 모든 것은 여호와께 온전히 바치되…” (수 6:17)
“온전히 바쳐 여호와의 곳간에 들이라” (수 6:19)

 

하나님은 여리고 성은 탈취물을 손대지 못하게 하시고 아이 성에는 탈취물을 

백성들이 취하도록 허락하셨을까?

그것은 여호와의 절기법에 기록된 것과 같이 첫 열매 소산은 모두 여호와의 것이 때문이다

즉, 여리고는 약속의 땅 가나안에서의 첫 열매(firstfruits)로서 하나님께 온전히 드려야 하고,
아이성 이후부터는 하나님께서 그 전쟁의 열매를 백성에게 허락하신 것이다.

이 차이는 단순한 실용적 명령이 아니라, 구속사적인 원리를 보여준다.

  • 첫 성(여리고)은 하나님께 드림으로 첫 열매의 원리가 세워지고,
  • 그다음 성(아이성)부터는 하나님께서 그 열매를 백성에게 분배하심으로
  • 상속의 원리가 드러나는 것이다.

 

여호수아 10:31
여호수아가 그 성에서 나와 온 이스라엘과 더불어 립나로 나아가서 립나와 싸우매.”

‘온 이스라엘과 더불어(함께)’  ‘עִם כָּל־יִשְׂרָאֵל’ (임 콜 이스라엘)는

여호수아가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철저히 변한 모습을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이후의 싸움에서는 여호수아에게 또 다른 별칭으로 붙는 말씀이다

이스라엘의 모든 싸움에 왕이 백성들 가운데 함께하듯이 여호수아는 싸움은

공동체 연합적 싸움임을 보여주며 이는 곧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싸움을 나타낸다.

 

 

아담의 칠세 손 에녹이 사람들이게 대하여도 예언하여 이르되

보라 주께서 그 수만의 거룩한 자와 함께 임하셨나니(유 1:14)

또 내가 하늘이 열린 것을 보니 보라 백마와 탄 자가 있으니 

그 이름은 충신과 진실이라 그가 공의로 심판하며싸우더라(계 19:11)

하늘에 있는 군대들이 희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고 

백마를 타고 그를 따르더라(계 19:14)

 

 

아간의 사건으로 오늘날 우리에게 경고하시는 것은 영적 자만심이다 

이것은 교만과는 다른 것이며 누구나에게 항상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을 깨닫는 자는 더 큰 싸움의 승리를 얻을 것이지만

스스로 섰다고 생각하는 자는 넘어지게 될 것이다 

그러나 넘어지면 또 일어나면 된다 

 

우리가 주의해야 하는 것은 오늘날 교회 안에서 문제가 생기면

누가 문제의 원인인지를 찾으려고 한다

모두가 아간을 찾으려고 하지 자신들의 잘못은 생각지 않는다

아간을 찾아서 그 원인을 제거하면 앞으로 그런 문제들이 생겨나지 않는가?

아니다 제2의 아간, 제3의 아간으로 문제들은 끝이 없다

 

다른 사람에게 원인을 찾으려 하지 말고 자신의 잘못을 먼저 점검하는 자가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는 힘을 얻을 수 있는 자이다 

아간을 찾아 뽑을 때 하나님은 그를 바로 잡아 낼 수도 있으신데 굳이 

몇 단계를 거쳐서 진행하심은 마지막까지 회개의 기회를 주신 것이다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신 하나님의 눈을 속일 수는 없다 

 

아간처럼 하나님이 자신을 뽑을 때까지 끝까지 버티고 있지 말고

몇 번의 경고가 있을 때 속히 자복하고 회개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해결방도가 없는 것은 그런 자신을 깨닫지 못하는 것이며

결국은 교만으로 들어가게 될 것이다 

잘 알고 있듯이 교만은 멸망의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여리고 전투는 하나님께서 친히 싸우신 전쟁이었다.
이스라엘은 나팔을 불고, 함성을 질렀을 뿐인데 견고한 성이 무너졌다.
그러나 그 놀라운 승리 후에 여호수아는 아이성 앞에서 하나님께 묻지 않았다.
정탐꾼들이 “2천 명이나 3천 명이면 족합니다 백성 모두가 번거롭게 갈 필요가 없습니다"

이것이 자만이었다 

여리고 성은 백성들 모두가 참여했었는데 아이성은 여리고 성에 비하면 

작은 성이니 번거롭다는 것은 가소롭다는 것이다 
그런 정탐군들 말에 여호수아도 더 이상 하나님께 묻지 않았고,

백성과 함께 싸움에 임하지도 않았다. 이것이 패배의 시작이었다.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이 범죄 하였도다.”
하나님은 단 한 사람의 죄를 “이스라엘 전체의 죄”로 말씀하셨다.
이는 지도자의 무지함과 공동체의 분리가 한 몸의 고통으로 이어진다는 뜻이다.

아이성에서의 실패는 여호수아의 자만을 깨뜨리는 훈련이었다.


그 이후, 여호수아의 모습은 완전히 달라졌고 다시는 홀로 결정하지 않았다.
그는 백성을 점검하고(수 8:10), 장로들과 함께 나아가며,
온 이스라엘과 더불어 싸웠다(수 10:29–38).
그는 “모든 군사와 함께” 움직였고(수 11:7),
마지막에는 백성과 함께 하나님 앞에 섰다(수 24:1).

이 변화의 핵심은 “함께” 또는 "연합"이다.
여호수아는 더 이상 “앞서 가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과 백성 사이에 서는 자”가 되었다.

 

여호수아 8:10–11
여호수아가 아침 일찍이 일어나 백성을 점검하고 이스라엘 장로들과 함께 백성 앞서 아이로 올라가매,

여호수아 8:21
여호수아와 온 이스라엘이 그 복병이 성을 점령하고 성의 연기가 치솟는 것을 보고 돌이켜 아이 사람을 치고…”

여호수아 10:29, 31, 34, 36, 38

“그때에여호수아와 온 이스라엘이… 함께 올라가서…”

여호수아 11:7
“이에 여호수아가 모든 군사와 함께 그들에 대한 기습 공격을 하여…”

여호수아 24:1
“여호수아가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를 세겜에 모으고 이스라엘 장로들과 그들의 두령들과

재판장들과 관리들을 부르매 그들이 하나님 앞에 나아온지라.”


그의 리더십은 지휘하는 자리에서, 동행하는 자리로 옮겨졌다.

지도자의 교만은 ‘내가 아는 길’을 옳다 하고 또 믿게 된다.
그러나 참된 리더십은 ‘하나님이 이끄시는 길’을 기다린다.
여호수아는 처음에는 ‘승리의 주역’이었지만, 마지막에는 ‘동행의 증인’이 되었다.
그의 이름처럼 “여호와는 구원이시다(יְהוֹשֻׁעַ, 여호슈아)”라는 고백은
결국 자신의 힘이 아닌, 하나님과 함께함 속에서 완성되었다.

진정한 하나님의 종 곧 영적 지도자는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하나님 앞에 서는 것이다 

 

이와 동일한 가르침의 왕이 유다의 사자 예표인 다윗 왕이었다 

다윗 왕이 전쟁에 승승장구할 때에 백성들의 말을 듣고 전쟁에 참여하지 않고 쉬었을 때

밧세바 사건이 일어난 것처럼 그 또한 자만의 가르침을 배웠던 것이다 

지도자가 된다는 것은 자신의 위로 하나님과 자신이 다스리는 백성들과 연합됨을

균형 잡고 영적 민감함으로 깨어 있어야 할 것이다 

열방의 모든 영적 지도자들이 주님께 여쭈며 매일을 민감하게 영적 싸움에 임하기를

늘 중보 하며 기도하기를 원한다 

내가 먼저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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