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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글 시리즈 묵상

3.사사 옷니엘 시대는 세상을 넘어서는 싸움

by GOTOKINGDOM 2026. 9. 21.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사 그들을 메소보다미아 왕 

구산 리사다임의 손에 파셨으므로 이스라엘 자손이 

구산 리사다임을 팔 년을 섬겼더니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한 구원자를 세워 구원하게 하시니

그는 곧 갈렙의 아우 그나스의 아들 옷니엘이라.(사사기3:8-9)

 

오늘은 이스라엘 첫 번째 사사 웃니엘과 그 시대의 영적 의미를 묵상해 봅니다.

웃니엘은 앞편에서 짧게 사사 이전의 활동을 나누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사사로서의 웃니엘은 기록이 미흡합니다.

이미 앞편에서 나누었던 내용에서 우리는 웃니엘과 그의 아내 악사가 성령과 신부와

어떻게 연결이 되어 있는지 살펴보았습니다.

https://idea5936.tistory.com/entry/성령과-신부의-사역-오라-Ἔρχου엘쿠

 

2.성령과 신부의 사역 - 오라! (Ἔρχου엘쿠)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또 원하는 자는 값 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계22:17)Καὶ τὸ Πνεῦμα καὶ ἡ νύμφη λ

gotokingdom.com

 

웃니엘은 이미 가나안 전쟁에서 큰 공을 세운 용사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이 8년을 고통당하고 있을 동안 무엇을 하다

이제야 다시 등장을 한 것일까요?

여호와의 신이 그에게 임하셨으므로 메소포타미아 왕 구산 리사다임을 이겼다고

짧은 기록만 남았습니다.

그래서 사사로서 웃니엘이 기록된 것은 그 인물보다 그 시대에 등장하는 

하나님께서 사용하신 가시와 올무를 찾아보기로 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또 말하기를 내가 그들을 너희 앞에서 쫓아내지 아니하리니

그들이 너희 옆구리에 가시가 될 것이며 그들의 신들이 너희에게 올무가 되리라"

 

위 지도에서 메소포타미아 지역은 두 개의 큰 강줄기가 형성되어 있습니다.

두 강은 시리아(현 튀르키예 동부)에서 시작되어 남동쪽으로 평행하게 흐르다가,

하나로 합쳐져 페르시아만으로 흘러 들어갑니다.

지도에서 황금색으로 표시가 된 곳이 메소포타미아 전체입니다.

그러나 사사기 3장에 나와있는 메소포타미아 왕은 황금색 전체 왕이 아닙니다.

히브리어 원어에는  אֲרַם נַהֲרַיִם (아람 나하라임)(Aram-Naharaim)’이며

그리스어로 올린 것이‘메소포타미아(Mesopotamia)’로 기록되었습니다.

그래서 지도에 표시된 것처럼 메소포타미아 전체 왕이 구산 리사다임이 아니고

두 강 사이 아람 곧 "두 강 사이에 있는 아람 평야 지대"를 표현한 명칭입니다.

참고로 아브라함이 떠난 '우르'도 아비 데라가 죽은 곳 '하란'이나 나홀의 성도

이 두 강의 상류 지역(북부 메소포타미아)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구산 - כּוּשַׁן (Kushan), 은 70인역본에 구스인(Cush )으로 되어 있습니다.

참고로 '구스'는 창세기에 '함'의 장자이며 '가나안'의 형제입니다.

리사다임 - רִשְׁעָתַיִם (Rish'athayim)= רֶשַׁע (reshaʿ)+ יִם (-ayim)

구산  כּוּשַׁן (Kushan),구스인(Cush )- 검다, 어둡다

רֶשַׁע (reshaʿ)- 악, 악행, 사악함, 불의

יִם (-ayim)- 히브리어에서 흔히 쌍수(dual)에 사용되는 형태를 붙은 것입니다.

구산 리사다임을 표현하면 "두 배나 악한  사람"을 뜻합니다.

그럼 메소포타미아 왕 구산 리사다임을 원어로 찾았던 흐름대로 묵상해 봅시다.

두 강 사이 평지 땅에서 두 배나 악한 사람들의 왕입니다.

 

이렇게 의미를 묵상하여 풀어낸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이 여호와 하나님을 버리고 목전에서 악을 행하여 다른 신을 

섬겼기 때문에 하나님은 진노하사 그들이 섬기고 있는 신들보다 더 두려운 

악한 나라 왕에게 파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 목전에 악을 행하여 자기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고

바알들과 아세라들을 섬긴지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메소보다미아 왕 구산 리사다임의 손에 파셨으므로…”.(삿3:7-8)

 

하나님은 다른 신을 섬기는 이스라엘을 먼저 악을 행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들보다 두 배나 더 악한 존재를 가시처럼 사용하셨습니다.

오직 신은 여호와 한분이심을 알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그러면 너희가 선택한 그 신들이 너희를 구원할 수 있는지 보라”하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섬기던 바알과 아세라는 구산 리사다임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지 못했습니다.

고통가운데 비로소 이스라엘이 여호와께 부르짖으며 찾을 때 구원자를 보내셨습니다.

그가 첫 사사 웃니엘입니다.

 

위 지도를 보면 이스라엘 북쪽으로 있는 곳이 메소포타미아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스라엘 최 남단 네게브 땅에 있는

옷니엘  עָתְנִיאֵל - 하나님의 힘, 하나님의 사자(Lion)을 세우십니다.

앞에 2 묵상에 올려진 것 같이 옷니엘에서 유다의 사자로 오신 예수님을 발견했습니다.

가장 높은 곳에서 오셨지만 가장 낮은 곳까지 낮아지신 예수님은 세상 권세를

지배하는 마귀를 심판하셨듯이

이스라엘 최 남단에서 올라간 웃니엘이 가장 위쪽에서 억압하는 악한 왕을 심판합니다.

악한 왕은 세상의 눈에 강하고 견고한 성벽 같은 두 강 사이 평지에 거하지만

웃니엘 곧 하나님의 힘은 건조한 사막에서도 마르지 않고 샘 쏟는 윗샘과 아랫샘을 의미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강함으로 승리한 것입니다.

 

가나안 땅에서 이스라엘은 지파대로 자리를 잡았지만 하나님의 말씀대로

그 땅에 원주민을 모두 쫓아내지 못했기에 하나님의 나라로 정체성을 받지 못했습니다.

이스라엘이 끊임없이 침략을 받아 억압을 받았던 것은던것은 이스라엘이 이방 왕들과

그들의 신들을 섬겨 하나님을 버렸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이스라엘이 왜 여호와 하나님을 버렸을까? 하는 의문을 가져봅시다.

하나님이 주신 십계명과 율법은 지켜야 하며 사람에게 즐거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이방 신들을 섬김은 사람에게 즐거움을 주었습니다.

예를 들면 첫 사사 옷니엘이 세워질 때 이스라엘은 바알과 아세라를 섬겼습니다.

바알은 비를 내리는 신 그리고 아세라는 다산 즉 많은 자손과 풍요를 주는 신이었는데

그들을 섬기는 방식이 신전의 여 또는 남 사제들과 성관계를 행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신들에게 제사를 지낸 그 땅 소산의 음식을 함께 먹고 마시며 취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또 하나의 큰 문제가 있었습니다.

40년을 광야에서 하나님이 주신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고살던 백성들이

이제 농사를 짓고 추수하며 가축을 기르고 과일나무들을 심고 열매를 거두는

스스로 생존에 필요한 양식을 생산해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날 만나가 끊어졌기 때문입니다.

"그 땅 소산을 먹은 다음 날에 만나가 그쳤으니 이스라엘 사람들이 

다시는 만나를 얻지 못하였고 그 해에 가나안 땅의 열매를 먹었더라."(수5:12)

 

이스라엘이 그 땅에 들어갔을 때는 이미 추수가 끝났을 때였습니다.

요단을 건널 때가 모맥 거두는 시기라고 했으니 이스라엘이 그 땅을 점령했을 때

성과 가옥들에는 곡식과 과일들이 가득했을 것입니다.

광야 40년 생활하며 보지도 먹지도 못한 양식과 과일들은 정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마치 롯이 소돔을 보고 좋아했듯이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과 같아 보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들 모두 여호와께서 얻게 하신 것이지 이스라엘의 노력으로 생산된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얻은 땅에서 그들은 속히 여호와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그 땅의 신을 섬겼습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열조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향하여

네게 주리라 맹세하신 땅으로 너로 들어가게 하시고

네가 건축하지 아니한 크고 아름다운 성읍을 얻게 하시며

네가 채우지 아니한 아름다운 물건이 가득한 집을 얻게 하시며

네가 파지 아니한 우물을 얻게 하시며

네가 심지 아니한 포도원과 감람나무를 얻게 하사

너로 배불리 먹게 하실 때에 너는 조심하여

너를 애굽 땅 종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를 잊지 말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며 섬기며 그 이름으로 맹세할 것이니라

너희는 다른 신들 곧 네 사면에 있는 백성들의 신들을 좇지 말라."(신명기 6:10-14)

 

가나안 땅에서 이스라엘은 자신의 기업을 얻고 그 땅에서 집을 얻어 살았습니다.

그들도 처음에는 여호와께 감사하며 기뻐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양식이 떨어지고 스스로 농사를 지으며 쉽지만은 않았을 것입니다.

40년 광야 생활하며 농사도 과원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랐을 테니까요.

그러나 그 땅에 남겨진 원주민들은 그것을 알 것입니다.

그래서 각 지파마다 그 땅의 원주민에게 사역을 시켰다는 말씀이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강성한 후에 가나안 사람에게 사역을 시켰고..."(삿1:27)

 

그들에게 그 땅 소산을 얻게 하시고 어떻게 하라고 명해 주셨음에도

그들이 마주한 현실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았던 것입니다.

성막과 모든 기구를 만들 때에도 여호와 하나님이 사람을 택하여 지혜를 부어 주셨습니다.

그와 같이 모든 지혜와 지식을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사람의 지식과 지혜로 살다가 여호와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결국에는 여호와께서 금하신 사방의 백성들과 혼인을 하며 그들의 신들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들의 신들은 농사에 필요한 비를 내리고 사람이나 가축에게 번성하도록 

태의 문을 열어준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은 그 땅의 소산이 장정 둘이서 어깨에 메고 올만큼

크고 탐스러운 포도송이였음을 12 정탐 조상들로부터 전해진 이야기를 알고 있고

그것이 그 땅 신들이 주는 복이라 생각했을 것입니다.

"에스골 골짜기에 이르러 거기서 포도 한 송이 달린 가지를 베어

둘이 막대기에 꿰어 메고..."(민13:23)

 

그렇게 이스라엘은 점점 그 땅에 정착하며 살기 위해서는 그 땅의 신을 섬겨야 했을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기억하는 것은 여호와께서는 광야의 신이었고 

백성들에게 만나와 메추라기만 양식으로 주셨고 

광야에서 목마름으로 늘 불평했어야 바위에서 물을 얻었던 기억들입니다.

그런데 가나안 땅에는 너무도 모든 것이 풍족했던 것입니다.

그 땅을 여호와께서 주셨다는 것을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당연히 풍성한 

그 땅의 신을 섬기지 않겠습니까?

저는 그들의 죄악이 이성으로는 이해가 충분히 되었습니다.

우리가 이스라엘처럼 되었다면 우리는 아니라고 확신할 수 있을까요?

 

그렇게 여호와 하나님이 주신 땅에서 이스라엘이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 신을 섬겼을 때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질투하셨습니다.질투는 사랑하는 자가 상대방을 향해 나타나는 마음입니다.

"너희 중에 계신 너희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신즉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진노하사 너를 지면에서 

멸절시키실까 두려워하노라."(신6:15)

 

질투하시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가나안 정복 후 처음으로 진노하신 것이 

오늘 본문 말씀 구산 리사다임의 손에 이스라엘을 8년 동안 파신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여호와께 부르짖으니 구원자를 보내시어 

그 땅에 40년 동안 태평함을 주셨습니다.

8년 벌하시고 다섯 배 40년을 보상해 주신 것입니다.

 

저는 오늘 묵상을 하며 계속 떠오르는 말씀이 있었습니다.

계시록 3:14-22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해 주신 말씀입니다.

메소포타미아의 원어가 "두 강 사이에 있는 평야 지대"라는 말이

마치 차지도 덥지도 아니하고 미지근한 안전한 평야 지대에 있는 사람을

비추는 듯 보였습니다.

 

그리고 구산 리사다임의 원어처럼 "두 배로 악한 존재"같이 자신의 기만으로

가난하고 눈멀고 벌거벗은 것도 모르고 스스로 "나는 부자라 부족함이 없다"하며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께서 주신 모든 것을 누리면서 여호와를 잊어버리고

다른 신을 마음에 담아두고 주께서 문밖에 서서 두드리고 계신대도 

문을 굳게 닫아두고 있는 악한 모습과 닮아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라오디게아 교회에도 주신 말씀처럼 주께서 사랑하시기에 책망하시고

징계하시는 것 같이 이스라엘을 사랑하시기에 진노하시고 또다시 구원하시기를 

사사 시대뿐만 아닌 오늘날까지도 반복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죄악을 동일하게 범하고 있는 나 자신이 발견될 때마다

정죄감과 낙심이 오지만 그래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셨고 

그 죗값을 감당하셨기에 그 어떤 것으로도 값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나 자신이기에

정죄감과 낙심에 빠져 시간 낭비할 여유가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 하루도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평안과 기쁨을 충만하게 누리며

제가 할 일을 묵묵히 하려고 합니다.

여러분 사랑합니다 ~ ~ ~